Switch Mode

EP.33

       *

        올 게 왔구나.

        ​

        실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애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아니, 구태여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

        혹시나 애쉬의 얼굴에서 실비아를 향한 짜증이 보이기라도 한다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

        다행히도, 애쉬의 얼굴에 흔들리는 촛불의 빛이 일렁거려 제대로 표정을 읽기 힘들었다.

        ​

        실비아는 천천히 눈을 감아버렸다.

        ​

        애쉬는 조용히 실비아의 잔에 물을 따르며 말했다.

        ​

        ​

        ​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계시는가요.”

        ​

        ​

        ​

        실비아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애쉬는 그런 실비아의 얼굴을 보며 코로 한숨을 내쉬었다.

        ​

        ​

        ​

        “왜 그렇게 얼었어요?”

        ​

        “…”

        ​

        “지난 며칠간 실비아씨의 그 행동… 제가 안 좋아 한다는 거 알고 계셨는군요.”

        ​

        “… 응,”

        ​

        ​

        ​

        그녀는 애쉬의 추궁에 아무런 저항 없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

        이상한 기분이었다.

        ​

        실비아는 분명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 탁자를 뒤집어엎고, 애쉬의 어깨를 짓눌러 바닥에 눕혀 버릴 수도 있었다.

        ​

        사실 애쉬 정도는 손가락만으로도 제압할 수 있기에 정말 단순히 그가 떠나지 않기만을 원한다면 실비아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았다.

        ​

        하지만 어째서 인지는 몰라도, 애쉬가 자신의 의지로 그녀의 곁에 남겠다고 선택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게 허상에 불과할 것이라는 기이한 불안과 확신을 실비아는 가지고 있었다.

        ​

        아무리 강압적인 방법으로 그를 붙잡아 둔다 해도 그는 반드시 그가 원할 때 나를 떠나버릴 것 같았다.

        ​

        실비아가 느끼는 확신의 근거는 아마 이 오두막에 처음 도달했던 그날 애쉬의 모습에서 기인할 것이다. 

        ​

        도저히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죽어가는 몸으로 그 먼 거리를 걸어온 그의 의지력을 실비아는 분명히 보았다.

        ​

        이론 위주의 공부만 해와서, 실전 감각도 재능도 없는 마법사였던 그가 고작 일주일만의 훈련으로 실비아를 깜짝 놀라게 만들 만큼의 실력을 갖추었던 그날에도 그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의지력의 편린을 엿볼 수 있었다.

        ​

        비록 마음은 심약하고,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지만, 실비아는 애쉬의 그 타오르는 의지야말로 그가 지닌 진정한 재능이라 생각했다.

        ​

        애쉬가 진정으로 원했다면 그는 어떻게든 나를 떠났을 것이다.

        ​

        심지어 실비아가 그의 다리를 잘라낸다 해도,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사라지고 말 것이다. 

        ​

        그렇기에, 그녀는 고민하고 있었다.

        ​

        모든 방법이 다 통하지 않을 때, 어떻게든 자신을 떠나려 하는 애쉬의 마음과 육신을 꺾고 부수어서라도 그를 곁에 두어야 할까.

        ​

        그녀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

        테스트 도중, 자기도 모르게 애쉬를 다치게 할 뻔했던 그날 느꼈던 그 감정.

        ​

        불안, 공포, 후회

        ​

        다시 아무도 없는, 그 누구도 찾지 않는 그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망.

        ​

        그런 감정을 또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

        하지만, 그 순간은 애쉬가 떠나 버리면 결국 찾아오고 마는 것 아닌가.

        ​

        실비아는 혼란 속에서 조용히 숨을 몰아쉬었다.

        ​

        ​

        ​

        “일단 이거 먼저 확실하게 묻고 싶어요.”

        ​

        “…”

        ​

        “제 가족 이야기를 흉내를 낸 거였나요?”

        ​

        “…응,”

        ​

        ​

        ​

        실비아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

        솔직히 단박에 알아차릴 줄 알았는데, 애쉬가 질문하는 태도를 보면 아마 모르고 있다 오늘에서야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

        그럼 그동안 대체 실비아가 뭘 하는 거라고 생각한 걸까?

        ​

        그가 가족의 품의 따스함을 떠올리기를, 그와 동시에 그 가족들을 잊고 실비아를 생각해 주기를 바랐는데, 그는 갑자기 변한 실비아의 태도에 그저 혼란만 느끼고 있던 걸까.

        ​

        실비아는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부끄러워져서 죽고 싶어졌다.

        ​

        애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

        ​

        “어… 역시 그렇구나…”

        ​

        “어땠어?”

        ​

        ​

        ​

        실비아는 구태여 물어보았다.

        ​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뻐하지 않았을까 하는 바보 같은 기대를 살짝 걸었다.

        ​

        애쉬는 나를 조금이라도 가족이라 생각해 주었을까.

        ​

        이 오두막을 집이라 생각해 주었을까.

        ​

        저주 때문에 갇혀 있는 곳이 아니라, 언제나 돌아오고 싶은 곳으로 여겨주게 되었을까.

        ​

        ​

        ​

        “…어, 음… 놀랐어요.”

        ​

        ​

        ​

        애쉬의 대답은 가차 없었다.

        ​

        물론 실비아는 그가 최대한 온건하고 얌전한 단어를 골랐다는 건 알고 있었다.

        ​

        애쉬가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지 않고 말할 리가 없으니까>

        ​

        하지만 애쉬가 실비아의 기행을 보고 느낀 감정이 단순한 놀라움 정도가 아니라는 건 실비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

        ​

        ​

        “하,”

        ​

        ​

        실비아는 탄식에 가까운 조소를 한번 짧게 흘렸다.

        ​

        애쉬는 천천히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을 숟가락으로 뜨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

        ​

        ​

        “왜 그랬는지 물어도 될까요?”

        ​

        “…”

        ​

        ​

        ​

        실비아는 숟가락을 들었지만 차마 음식에 가져다 대지는 못한 채 굳어있었다.

        ​

        애쉬 역시 숟가락 위에 음식을 괜히 떨어트리고 다시 뒤적거리기만 할 뿐 입으로 가져가지는 않았다.

        ​

        식기들이 부딫혀 달그락거리는 메마른 소리만이 오두막 안에 울리고 있었다. 

        ​

        실비아는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

        ​

        ​

        “…애쉬.”

        ​

        “…네.”

        ​

        ​

        ​

        실비아는 조금 뜸을 들였다.

        ​

        어쩌면 지금까지 바보 같은 짓을 해 온 걸지도 모른다.

        ​

        차라리, 직접 물어보면 편했을 텐데,

        ​

        어쩌면 이미 애쉬는 나를 가족이라 생각해 주지 않을까.

        ​

        실비아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

        ​

        ​

        “애쉬, 너는 나를… 가족이라 생각하니?”

        ​

        “어? 아니요,”

        ​

        ​

        ​

        애쉬는 단숨에 대답했다.

        ​

        ​

        ​

        ​

        ​

        ​

        ​

        ​

        ​

        ​

        *

        실비아씨는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

        너무 뜬금없는 말이라서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답해버렸다.

        ​

        그게 실수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는 건 단 일초도 걸리지 않았다.

        ​

        실비아씨의 표정이 말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

        ​

        “실비아씨?”

        ​

        “…”

        ​

        ​

        ​

        실비아씨는 고개를 숙였다.

        ​

        사과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

        마치 머리를 지탱할 힘이 다 빠져버린 것처럼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다 팽개쳐진 인형의 모가지가 축 처져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

        나는 내 말이 혹시나 설명이 부족했나 싶어 즉시 말을 덧붙였다.

        ​

        ​

        ​

        “실비아씨는… 용사님이잖아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어떻”

        ​

        “애쉬.”

        ​

        “…네?”

        ​

        ​

        ​

        실비아는 내 말을 끊고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

        예전 그녀가 살기를 뿜어낼 때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

        하지만 내 몸에 소름이 돋거나, 그때처럼 휘몰아치는 냉기가 감싸는 것 같은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

        오히려, 실비아씨는 살짝 물기가 어린 목소리로 나지막이 물어왔다. 

        ​

        여전히 그녀는 고개를 바닥을 향해 숙이고 있었다.

        ​

        ​

        ​

        “너는, 가족이 뭐라고 생각해?”

        ​

        “…예?”

        ​

        “가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

        “…”

        ​

        “나는 모르겠어. 알 수 없어서 그랬어, 어떻게 가족이 되는지 알 수 없어서… 가족 같은 거 가져본 적 없으니까.”

        ​

        “…아, 실비아씨…”

        ​

        “…”

        ​

        ​

        ​

        나는 입을 다물었다.

        ​

        가족이 되는 방법.

        ​

        실비아씨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

        그녀가 하던 그 이상한 행동에 그런 의미가 있을 줄은 몰랐다.

        ​

        ​

        그녀는 가족이 되고 싶었던 걸까.

        ​

        나와 가족이 되고 싶어서 내 이야기 속 가족들의 모습들을 따라 한 것이었나.

        ​

        그녀의 그 어설프기 짝이 없는 기행들은 그녀가 가족을 원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

        나는 한 번도 가족이 있어 본 적이 없다는 그녀의 고백이 조금 놀라웠다.

        ​

        하긴, 내가 그녀의 유년 시절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

        용사 실비아는 유명한 귀족 집안 출신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내가 모르는 무언가 다른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

        하지만 솔직히 조금 뜬금없게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

        가족? 굳이?

        ​

        물론 가족의 따스함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큰 원동력과 위로가 되어주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어차피 타인과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들에겐 아무런 의미 없는 이야기 아닌가 싶었다.

        ​

        나는 조금 얼떨떨한 기분으로 되물었다.

        ​

        ​

        ​

        “가족이… 요?”

        ​

        “…응.”

        ​

        “갑자기?”

        ​

        “안 그러면 네가…”

        ​

        “제가 뭐요…?”

        ​

        “…”

        ​

        “실비아씨?”

        ​

        “…아니야.”

        ​

        ​

        ​

        실비아씨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다시 입을 다물었다.

        ​

        그녀의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

        겨우 촛불에만 의지해 앞을 보는 이 어둠 속에선 그녀의 표정을 자세히 알아보기란 어려웠다.

        ​

        그녀는 무슨 말을 원했을까?

        ​

        내가 그녀의 가족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

        나는 그녀와 가족인 걸까?

        ​

        그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

        애초에 아직도 그녀를 ‘실비아씨’ 라는 딱딱한 호칭으로 칭하는 것부터 그 사실을 증명한다.

        ​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

        ​

        ​

        “어차피 우리는 계속 같이 살 거잖아요.”

        ​

        “하지만, 언젠가…”

        ​

        “…언젠가?”

        ​

        “…”

        ​

        ​

        ​

        실비아씨는 앞니로 아랫입술을 살짝 당겨 물었다.

        ​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입안에서 맴도는 모양이다.

        ​

        혼란스러운 걸까.

        ​

        나 역시 혼란스러웠다.

        ​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

        뭘 원하는 걸까.

        ​

        뭘 무서워하는 걸까.

        ​

        ​

        ​

        “저랑 가족이 되고 싶으셨나요?”

        ​

        “…가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어… 부부의 연을 맺거나 혈연관계가 되거나?”

        ​

        “…”

        ​

        “…”

        ​

        ​

        ​

        아, 이런,

        ​

        부부라고 말하니까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나는 서둘러 변명했다.

        ​

        ​

        ​

        “아, 아니 제가 실비아씨를 그런 눈으로 본다는 건 아니고요.”

        ​

        “…하, 하하.”

        ​

        “… 그, 무… 물론 실비아씨는 무척 매력적인…”

        ​

        “… 후, 아니야. 애쉬.”

        ​

        ​

        ​

        그녀는 거칠게 내 말을 끊었다.

        ​

        그리고는 착잡한 목소리로 천천히 읇조렸다.

        ​

        ​

        ​

        “지금까지 미안했어. 앞으로는 안 그럴게.”

        ​

        ​

        ​

        실비아씨는 그렇게 말하고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실비아씨, 저녁은…”

        ​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미안해.”

        ​

        “아… 그 거위는…”

        ​

        “내일 손질하게 미안, 조금 피곤하네.”

        ​

        ​

        ​

        뭔가 그녀의 심기를 크게 거스른 모양이다.

        ​

        이대로 그녀를 보내면 안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

        나는 나도 모르게 실비아씨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

        ​

        ​

        “그… 꼭 그런 사전적 의미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족이 될 수 있어요.”

        ​

        “애쉬.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

        “아뇨, 아뇨, 그… 있잖아요. 서로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나 뭐… 그런 거로 똘똘 뭉쳐서 가족이 되는 사람들도 많고… 그, 그러니까…”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

        ​

        ​

        내 횡설수설에 실비아씨는 싸늘하게 되물었다.

        ​

        나는 섣불리 말하기보다 천천히 내 생각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

        단순히 피를 나눈다고 가족일까?

        ​

        아니, 오히려 부부는 서로 피를 나눈 사이일수록 부부가 되어선 안 된다.

        ​

        그렇다면 부부의 조건은 무엇일까.

        ​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겠지.

        ​

        그리고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고 신뢰할 것이다.

        ​

        즉 서로를 향한 그 감정이 진짜 가족의 의미 아닐까.

        ​

        피를 나누었다고 해도 부모와 자식, 형제나 자매 사이에 서로를 향한 헌신과 믿음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올바른 가족이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

        결국 가족이란 건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의 집단이라 말할 수 있다.

        ​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실비아씨에게 전했다.

        ​

        ​

        “가족이라는 건 결국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걸 말하는 걸 거예요.”

        ​

        “… 신뢰?”

        ​

        “실비아씨도 동료들과 그런 관계 아니었나요?”

       

        “… 뭐?”

        ​

        ​

        ​

        실비아씨는 우뚝 멈추어 섰다.

        ​

        그리고는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

        아, 

        ​

        그녀의 동료들은 모두 죽었다.

        ​

        내 가족들처럼.

        ​

        병신.

        ​

        ​

        ​

        “…그. 죄송해요.”

        ​

        “애쉬.”

        ​

        “…네.”

        ​

        “내 동료들은 모두 소중한 인연들이고 친구들이야. 함께 목숨을 걸고 여행했고, 목숨을 잃어가며 목표를 이뤘어. 그래, 나는 그들을 신뢰했고, 그들 역시 나를 신뢰했을 거야.”

        ​

        “… 네, 왕국의 국민으로서 정말 감사와 존경을…”

        ​

        “하지만, 그 녀석들은 내 가족이 아니었어.”

        ​

        “…”

        ​

        “아니어야 해. 왜냐하면.”

        ​

        “…실비아씨?”

        ​

        “나는… 그럼 친구나, 동…료가… 아니라…”

        ​

        “…아,”

        ​

        “가족을 죽게 내버려 둔 게 되잖아…”

        ​

        ​

        ​

        툭툭,

        ​

        바닥에 핏방울 같은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실비아씨의 목소리는 마치 피아노 줄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

        그 목소리가 너무나 애달프고 나약해서, 그녀의 그 건장한 육체마저도 톡 건드리면 산산이 부서질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실비아씨는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

        하지만, 분명 그녀는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

        그리고 그들을 모두 잃었다.

        ​

        어쩌면 그녀가 가족이 없었다고 말하는 건, 그들을 죽게 만든 죄책감을 최대한 덜기 위한 애처로운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실수했다.

        ​

        너무 큰 실수다.

        ​

        그 상실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실수였다.

        ​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그녀를 안아주었다.

        ​

        ​

        ​

        “죄송해요. 제가 실수했어요.”

        ​

        ​

        ​

        나는 진심으로 사과하며 실비아씨의 등을 힘껏 껴안았다.

        ​

        내가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끌어안아도 그녀가 아파하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

        나는 정말 그녀의 등을 꽉 조이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내 품으로 끌어당기며 단단히 안아주었다.

        ​

        ​

        ​

        “미안해요.”

        ​

        ​

        ​

        실비아씨는 말없이 내 어깨에 천천히 자기 얼굴을 묻었다.

        ​

        또 냄새를 맡으려는 걸까.

        ​

        그녀가 진정된다면 내 목덜미 정도야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었다.

        ​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

        그저 내 어꺠가 뜨거운 액체로 젖어갈 뿐이었다.

        ​

        나는 더 세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

        실비아씨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

        ​

        ​

        “그동안 이상한 짓 해서 미안해.”

        ​

        “무신경한 말 해서 죄송해요.”

        ​

        “너랑 가족이 되고 싶어서 그랬어. 네가 여기에 갇혔다는 생각 대신 이곳이 집처럼 느껴지길 원했거든.”

        ​

        “거실에서 잔다는 것만 빼면 이미 여기는 우리 집인데요.”

        ​

        “나는 가족이 아니라면서.”

        ​

        “…가족은 그렇게 기괴한 연극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

        “…기괴했구나.”

        ​

        “솔직히 식겁했어요.”

        ​

        “…그래.”

        ​

        ​

        ​

        실비아씨도 천천히 손을 들어, 내 등을 끌어안았다.

        ​

        그녀의 팔은 나와는 달리 부드럽고 포근하게 내 몸을 감싸 쥐듯 안았다.

        ​

        ​

        ​

        “어떻게 하면 가족이 되어줄래?”

        ​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나누고 같은 걸 느끼면 가족이 되는 거 아닐까요.”

        ​

        “…그래?”

        ​

        “솔직히. 이제 한 달 조금 넘은 정도밖에 안됬잖아요. 그마저도 거의 삼 분의 일은 기절해 있었고요”

        ​

        “…”

        ​

        “지금은 사실 적응하는 걸로도 벅차거든요.”

        ​

        “숲에서 사는 게 어렵긴 하지.”

        ​

        “아뇨. 가족들이 다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어요.”

        ​

        “… 그래, 어렵지. 그거…”

        ​

        ​

        ​

        나는 천천히 그녀의 머리 쪽으로 손을 올려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

        실비아씨의 키는 나와 비슷하고, 몸은 나보다 더 크고 탄탄했지만, 어째선지 지금은 그녀가 무척 작게 느껴졌다.

        ​

        베개를 쥐고 번개가 무섭다는 헛소리를 할 때보다 지금이 몇백 배는 더 나약하고 귀여워 보였다.

        ​

        별안간, 얼마 전 그녀가 잠을 자면서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르던 게 떠올랐다.

        ​

        어쩌면 오늘 그녀는 나 때문에 죽은 동료들에 대한 악몽을 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스쳐 지나갔다.

        ​

        ​

        나는 얼굴을 아주 조금만 틀었다.

        ​

        내 입가 근처에 바로 그녀의 귀가 있었다.

        ​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겨 그녀의 앙증맞은 귀를 드러냈다.

        ​

        그리고는 아주 조용히,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속삭였다.

       

        ​

        ​

        “오늘 같이 잘래요?”

        ​

        ​

        ​

        그녀는 조용히 끄덕거렸다.

        ​

        내 허리를 끌어안은 그녀의 팔에 조금 세게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

        ​

        ​

        ​

        .

       

    다음화 보기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나를 살려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Score 4.2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Having lost all my family, I fled. As I was running away, she saved me when I was on the brink of death due to an accident. The moment our eyes met, I knew I couldn’t leave h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