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게 왔구나.
실비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애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니, 구태여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혹시나 애쉬의 얼굴에서 실비아를 향한 짜증이 보이기라도 한다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애쉬의 얼굴에 흔들리는 촛불의 빛이 일렁거려 제대로 표정을 읽기 힘들었다.
실비아는 천천히 눈을 감아버렸다.
애쉬는 조용히 실비아의 잔에 물을 따르며 말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계시는가요.”
실비아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쉬는 그런 실비아의 얼굴을 보며 코로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얼었어요?”
“…”
“지난 며칠간 실비아씨의 그 행동… 제가 안 좋아 한다는 거 알고 계셨는군요.”
“… 응,”
그녀는 애쉬의 추궁에 아무런 저항 없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실비아는 분명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 탁자를 뒤집어엎고, 애쉬의 어깨를 짓눌러 바닥에 눕혀 버릴 수도 있었다.
사실 애쉬 정도는 손가락만으로도 제압할 수 있기에 정말 단순히 그가 떠나지 않기만을 원한다면 실비아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았다.
하지만 어째서 인지는 몰라도, 애쉬가 자신의 의지로 그녀의 곁에 남겠다고 선택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게 허상에 불과할 것이라는 기이한 불안과 확신을 실비아는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강압적인 방법으로 그를 붙잡아 둔다 해도 그는 반드시 그가 원할 때 나를 떠나버릴 것 같았다.
실비아가 느끼는 확신의 근거는 아마 이 오두막에 처음 도달했던 그날 애쉬의 모습에서 기인할 것이다.
도저히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죽어가는 몸으로 그 먼 거리를 걸어온 그의 의지력을 실비아는 분명히 보았다.
이론 위주의 공부만 해와서, 실전 감각도 재능도 없는 마법사였던 그가 고작 일주일만의 훈련으로 실비아를 깜짝 놀라게 만들 만큼의 실력을 갖추었던 그날에도 그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의지력의 편린을 엿볼 수 있었다.
비록 마음은 심약하고, 힘은 미약하기 짝이 없지만, 실비아는 애쉬의 그 타오르는 의지야말로 그가 지닌 진정한 재능이라 생각했다.
애쉬가 진정으로 원했다면 그는 어떻게든 나를 떠났을 것이다.
심지어 실비아가 그의 다리를 잘라낸다 해도,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고민하고 있었다.
모든 방법이 다 통하지 않을 때, 어떻게든 자신을 떠나려 하는 애쉬의 마음과 육신을 꺾고 부수어서라도 그를 곁에 두어야 할까.
그녀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테스트 도중, 자기도 모르게 애쉬를 다치게 할 뻔했던 그날 느꼈던 그 감정.
불안, 공포, 후회
다시 아무도 없는, 그 누구도 찾지 않는 그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망.
그런 감정을 또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은 애쉬가 떠나 버리면 결국 찾아오고 마는 것 아닌가.
실비아는 혼란 속에서 조용히 숨을 몰아쉬었다.
“일단 이거 먼저 확실하게 묻고 싶어요.”
“…”
“제 가족 이야기를 흉내를 낸 거였나요?”
“…응,”
실비아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솔직히 단박에 알아차릴 줄 알았는데, 애쉬가 질문하는 태도를 보면 아마 모르고 있다 오늘에서야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그럼 그동안 대체 실비아가 뭘 하는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가 가족의 품의 따스함을 떠올리기를, 그와 동시에 그 가족들을 잊고 실비아를 생각해 주기를 바랐는데, 그는 갑자기 변한 실비아의 태도에 그저 혼란만 느끼고 있던 걸까.
실비아는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부끄러워져서 죽고 싶어졌다.
애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 역시 그렇구나…”
“어땠어?”
실비아는 구태여 물어보았다.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뻐하지 않았을까 하는 바보 같은 기대를 살짝 걸었다.
애쉬는 나를 조금이라도 가족이라 생각해 주었을까.
이 오두막을 집이라 생각해 주었을까.
저주 때문에 갇혀 있는 곳이 아니라, 언제나 돌아오고 싶은 곳으로 여겨주게 되었을까.
“…어, 음… 놀랐어요.”
애쉬의 대답은 가차 없었다.
물론 실비아는 그가 최대한 온건하고 얌전한 단어를 골랐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애쉬가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지 않고 말할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애쉬가 실비아의 기행을 보고 느낀 감정이 단순한 놀라움 정도가 아니라는 건 실비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
실비아는 탄식에 가까운 조소를 한번 짧게 흘렸다.
애쉬는 천천히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을 숟가락으로 뜨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랬는지 물어도 될까요?”
“…”
실비아는 숟가락을 들었지만 차마 음식에 가져다 대지는 못한 채 굳어있었다.
애쉬 역시 숟가락 위에 음식을 괜히 떨어트리고 다시 뒤적거리기만 할 뿐 입으로 가져가지는 않았다.
식기들이 부딫혀 달그락거리는 메마른 소리만이 오두막 안에 울리고 있었다.
실비아는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애쉬.”
“…네.”
실비아는 조금 뜸을 들였다.
어쩌면 지금까지 바보 같은 짓을 해 온 걸지도 모른다.
차라리, 직접 물어보면 편했을 텐데,
어쩌면 이미 애쉬는 나를 가족이라 생각해 주지 않을까.
실비아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애쉬, 너는 나를… 가족이라 생각하니?”
“어? 아니요,”
애쉬는 단숨에 대답했다.
*
실비아씨는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너무 뜬금없는 말이라서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대답해버렸다.
그게 실수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는 건 단 일초도 걸리지 않았다.
실비아씨의 표정이 말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실비아씨?”
“…”
실비아씨는 고개를 숙였다.
사과를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마치 머리를 지탱할 힘이 다 빠져버린 것처럼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놀다 팽개쳐진 인형의 모가지가 축 처져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내 말이 혹시나 설명이 부족했나 싶어 즉시 말을 덧붙였다.
“실비아씨는… 용사님이잖아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어떻”
“애쉬.”
“…네?”
실비아는 내 말을 끊고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예전 그녀가 살기를 뿜어낼 때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내 몸에 소름이 돋거나, 그때처럼 휘몰아치는 냉기가 감싸는 것 같은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실비아씨는 살짝 물기가 어린 목소리로 나지막이 물어왔다.
여전히 그녀는 고개를 바닥을 향해 숙이고 있었다.
“너는, 가족이 뭐라고 생각해?”
“…예?”
“가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
“나는 모르겠어. 알 수 없어서 그랬어, 어떻게 가족이 되는지 알 수 없어서… 가족 같은 거 가져본 적 없으니까.”
“…아, 실비아씨…”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가족이 되는 방법.
실비아씨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녀가 하던 그 이상한 행동에 그런 의미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가족이 되고 싶었던 걸까.
나와 가족이 되고 싶어서 내 이야기 속 가족들의 모습들을 따라 한 것이었나.
그녀의 그 어설프기 짝이 없는 기행들은 그녀가 가족을 원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한 번도 가족이 있어 본 적이 없다는 그녀의 고백이 조금 놀라웠다.
하긴, 내가 그녀의 유년 시절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용사 실비아는 유명한 귀족 집안 출신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거나 내가 모르는 무언가 다른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조금 뜬금없게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가족? 굳이?
물론 가족의 따스함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큰 원동력과 위로가 되어주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어차피 타인과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며 살아가야 할 우리들에겐 아무런 의미 없는 이야기 아닌가 싶었다.
나는 조금 얼떨떨한 기분으로 되물었다.
“가족이… 요?”
“…응.”
“갑자기?”
“안 그러면 네가…”
“제가 뭐요…?”
“…”
“실비아씨?”
“…아니야.”
실비아씨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겨우 촛불에만 의지해 앞을 보는 이 어둠 속에선 그녀의 표정을 자세히 알아보기란 어려웠다.
그녀는 무슨 말을 원했을까?
내가 그녀의 가족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나는 그녀와 가족인 걸까?
그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애초에 아직도 그녀를 ‘실비아씨’ 라는 딱딱한 호칭으로 칭하는 것부터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어차피 우리는 계속 같이 살 거잖아요.”
“하지만, 언젠가…”
“…언젠가?”
“…”
실비아씨는 앞니로 아랫입술을 살짝 당겨 물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입안에서 맴도는 모양이다.
혼란스러운 걸까.
나 역시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뭘 원하는 걸까.
뭘 무서워하는 걸까.
“저랑 가족이 되고 싶으셨나요?”
“…가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 부부의 연을 맺거나 혈연관계가 되거나?”
“…”
“…”
아, 이런,
부부라고 말하니까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나는 서둘러 변명했다.
“아, 아니 제가 실비아씨를 그런 눈으로 본다는 건 아니고요.”
“…하, 하하.”
“… 그, 무… 물론 실비아씨는 무척 매력적인…”
“… 후, 아니야. 애쉬.”
그녀는 거칠게 내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착잡한 목소리로 천천히 읇조렸다.
“지금까지 미안했어. 앞으로는 안 그럴게.”
실비아씨는 그렇게 말하고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비아씨, 저녁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미안해.”
“아… 그 거위는…”
“내일 손질하게 미안, 조금 피곤하네.”
뭔가 그녀의 심기를 크게 거스른 모양이다.
이대로 그녀를 보내면 안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실비아씨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 꼭 그런 사전적 의미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족이 될 수 있어요.”
“애쉬.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아뇨, 아뇨, 그… 있잖아요. 서로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나 뭐… 그런 거로 똘똘 뭉쳐서 가족이 되는 사람들도 많고… 그,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내 횡설수설에 실비아씨는 싸늘하게 되물었다.
나는 섣불리 말하기보다 천천히 내 생각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피를 나눈다고 가족일까?
아니, 오히려 부부는 서로 피를 나눈 사이일수록 부부가 되어선 안 된다.
그렇다면 부부의 조건은 무엇일까.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사랑하고 신뢰할 것이다.
즉 서로를 향한 그 감정이 진짜 가족의 의미 아닐까.
피를 나누었다고 해도 부모와 자식, 형제나 자매 사이에 서로를 향한 헌신과 믿음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올바른 가족이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가족이란 건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의 집단이라 말할 수 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실비아씨에게 전했다.
“가족이라는 건 결국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걸 말하는 걸 거예요.”
“… 신뢰?”
“실비아씨도 동료들과 그런 관계 아니었나요?”
“… 뭐?”
실비아씨는 우뚝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
그녀의 동료들은 모두 죽었다.
내 가족들처럼.
병신.
“…그. 죄송해요.”
“애쉬.”
“…네.”
“내 동료들은 모두 소중한 인연들이고 친구들이야. 함께 목숨을 걸고 여행했고, 목숨을 잃어가며 목표를 이뤘어. 그래, 나는 그들을 신뢰했고, 그들 역시 나를 신뢰했을 거야.”
“… 네, 왕국의 국민으로서 정말 감사와 존경을…”
“하지만, 그 녀석들은 내 가족이 아니었어.”
“…”
“아니어야 해. 왜냐하면.”
“…실비아씨?”
“나는… 그럼 친구나, 동…료가… 아니라…”
“…아,”
“가족을 죽게 내버려 둔 게 되잖아…”
툭툭,
바닥에 핏방울 같은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비아씨의 목소리는 마치 피아노 줄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 애달프고 나약해서, 그녀의 그 건장한 육체마저도 톡 건드리면 산산이 부서질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실비아씨는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녀는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모두 잃었다.
어쩌면 그녀가 가족이 없었다고 말하는 건, 그들을 죽게 만든 죄책감을 최대한 덜기 위한 애처로운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수했다.
너무 큰 실수다.
그 상실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실수였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그녀를 안아주었다.
“죄송해요. 제가 실수했어요.”
나는 진심으로 사과하며 실비아씨의 등을 힘껏 껴안았다.
내가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끌어안아도 그녀가 아파하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나는 정말 그녀의 등을 꽉 조이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내 품으로 끌어당기며 단단히 안아주었다.
“미안해요.”
실비아씨는 말없이 내 어깨에 천천히 자기 얼굴을 묻었다.
또 냄새를 맡으려는 걸까.
그녀가 진정된다면 내 목덜미 정도야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내 어꺠가 뜨거운 액체로 젖어갈 뿐이었다.
나는 더 세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실비아씨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이상한 짓 해서 미안해.”
“무신경한 말 해서 죄송해요.”
“너랑 가족이 되고 싶어서 그랬어. 네가 여기에 갇혔다는 생각 대신 이곳이 집처럼 느껴지길 원했거든.”
“거실에서 잔다는 것만 빼면 이미 여기는 우리 집인데요.”
“나는 가족이 아니라면서.”
“…가족은 그렇게 기괴한 연극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기괴했구나.”
“솔직히 식겁했어요.”
“…그래.”
실비아씨도 천천히 손을 들어, 내 등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팔은 나와는 달리 부드럽고 포근하게 내 몸을 감싸 쥐듯 안았다.
“어떻게 하면 가족이 되어줄래?”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나누고 같은 걸 느끼면 가족이 되는 거 아닐까요.”
“…그래?”
“솔직히. 이제 한 달 조금 넘은 정도밖에 안됬잖아요. 그마저도 거의 삼 분의 일은 기절해 있었고요”
“…”
“지금은 사실 적응하는 걸로도 벅차거든요.”
“숲에서 사는 게 어렵긴 하지.”
“아뇨. 가족들이 다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어요.”
“… 그래, 어렵지. 그거…”
나는 천천히 그녀의 머리 쪽으로 손을 올려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실비아씨의 키는 나와 비슷하고, 몸은 나보다 더 크고 탄탄했지만, 어째선지 지금은 그녀가 무척 작게 느껴졌다.
베개를 쥐고 번개가 무섭다는 헛소리를 할 때보다 지금이 몇백 배는 더 나약하고 귀여워 보였다.
별안간, 얼마 전 그녀가 잠을 자면서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르던 게 떠올랐다.
어쩌면 오늘 그녀는 나 때문에 죽은 동료들에 대한 악몽을 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스쳐 지나갔다.
나는 얼굴을 아주 조금만 틀었다.
내 입가 근처에 바로 그녀의 귀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겨 그녀의 앙증맞은 귀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아주 조용히,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속삭였다.
“오늘 같이 잘래요?”
그녀는 조용히 끄덕거렸다.
내 허리를 끌어안은 그녀의 팔에 조금 세게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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