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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루크, 미안하다니까!”

    “내 용서한다지 않았느냐. 이제 그만 떨어지게.”

    소르비는 자신을 밀쳐내는 루크의 손길이 너무나 슬펐다.

    며칠전에는 아무때나 안아도 이렇게 밀어내지 않았는데!

    “언니, 루크가 너무 쌀쌀맞아졌어…….”

    “푸흡, 자업자득이야.”

    예르나는 그런 루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그동안 소르비가 귀찮게하기는 했지. 시도때도없이 안아대고……. 게다가…….’

    그 손가락 브이를 알려준게 소르비였다니, 그야 호감도가 깎일만도 하구나 싶었다.

    “그치만……! 언니도 즐겼잖아! 왜 나만 미움받아야 하는건데……!”

    소르비는 억울했다.

    그 귀여운 포즈로 얻어낸 사진은 다같이(?)즐겨놓고,  책임은 왜 자신이 져야만하느냔 말이다.

    하지만 루크의 행동원리는 그런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었다.

    당최 뭘 복수한단 말인가?

    복수라면 상대가 싫어할만한 행동을 하는것.

    그렇다면 자신을 안아들지 못하게 하는게 무슨 복수란 말인가.

    그 말엔 자신의 몸을 안아드는것이 ‘이득’으로 판단하는 기제가 깔려있어야했다.

    그리고 루크는 자신의 몸을 안아드는것이 소르비에게 ‘이득’이 된다는걸 마음속에서부터 부정했다.

    그저 요즘들어 소르비의 안아들어오는 빈도가 늘어서 시도때도 없이 그리 해오니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기에, 그래서 약간 거리를 두고자 단호하게 거절하는게 최근의 판단이었을 뿐.

    애초에, 소르비가 아니면 별로 안아드는 사람도 없고 말이다.

    아무래도 이 나이를 먹고 젊은 여성의 품안에 안긴다는건 부끄러운 일이다.

    주책이라고 불려도 할말이 없지않은가.

    “저거봐, 표정도 엄청 쌀쌀맞잖아!”

    “루는 평소대로 같은데…….”

    “아니야, 완전 쌀쌀맞다구!”

    소르비의 눈에는 이미 그런 피해망상적인 필터가 씌워져있었다.

    객관적으로 루크의 표정은 단순한 무표정.

    독서를 할때 보통 짓는 표정이었다.

    아무튼 루크에게 접근을 거부당한 소르비는 멀리서 그저 루크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커피를 홀짝이면서 흘깃흘깃 쳐다보면,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박스안에 들어가 책을 읽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양이쪽 본능때문에 저러는건 이해하겠는데…….’

    저 좁은 상자 안에 어떻게 들어가서 꼼짝도 안하고 책만 읽을 수 있는걸까.

    운동을 싫어하는것도 아니던데 말이다.

    반면 소르비는 책이라면 질색이었다.

    소르비는 그림책도 아닌 쌩으로 글씨만 박혀있는 그런책을 몇시간이고 읽을 수 있는 루크가 참 신기했다.

    “책 선물같은거 해주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그럴지도? 그런데 루는 책 취향 엄청 까다로워. 마음대로 사가면 실망만 할걸.”

    예르나는 예전에 자신이 ‘마법서적’이라는 말에 마법사가 나오는 동화책을 선물해줬을때 극도로 실망한 표정을 짓던 루크가 떠올랐다.

    그땐 많이 당황스러웠는데 말이다.

    뭐어, 후에 서점에 데려갔을때 눈을 반짝거리던 루크의 표정을 보고는 기분은 금방 풀어졌지만.

    “그, 그래?”

    하지만 소르비가 루크랑 같이 서점에 갈 수 있을리 없다. 그녀는 서점이라면 생리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키는 여자였으니까. 

    숲지기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그렇다나 뭐라나.

    그리고 애초에 루크가 소르비랑 같이 서점에 가줄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언니, 루크가 좋아할만한거 추천좀.”

    “그렇게 말해도…….”

    사실 루크는 예르나가 주는거라면 대부분 감사하면서 웃어준다.

    그녀는 은인이자 보호자이니까, 그녀에겐 언제나 싫은기색 없이 자연스러운 미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특별취급이 왠지 기분이 좋아진 예르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아. 마도기기들 좋아하더라. 휴대폰이나 뭐 그런거.”

    “아, 맞아. 휴대폰!”

    소르비는 알겠다는듯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에르나언니, 루크 아직 휴대폰 없지?”

    “……소르비, 설마 사주게?”

    소르비가 루크에게 휴대폰을 사준다니!

    그게 어디 한두푼인가?

    확실히, 정식신분으로 승급이 되었으니 휴대폰 개통도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너, 너무 무리하는거 아냐?”

    “후후, 언니. 내 유일한 취미는 쇼핑이잖아.”

    예르나는 소르비가 손으로 얼굴의 반쪽을 가린채 악당처럼 웃는것을 보며 몸을 굳혔다.

    “진짜 사주려고……?”

    여기서 사준다고하면 정말로 큰 도움이 되리라.

    “…….”

    소르비는 잠깐 그 자세 그대로 멈춰서 머릿속으로 통장의 잔고를 떠올려봤다.

    ‘사고싶은거 사면 간당간당하네…….’

    새걸로 사주고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안되겠다.

    소르비는 악당같은 미소를 온화한 미소로 되돌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역시 사주는건 안되고, 집에 공기계가 있어.”

    “와, 정말로?”

    “대신 요금제는 언니돈으로 해.”

    “그래, 안그래도 루크한테 휴대폰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정말 잘됐다!”

    ——

    “루크, 언니 한번 안아줄래?”

    “또 그 소리인가, 그대에겐 독서중엔 제발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벌써 몇번이나 말하지 않았는가.”

    루크는 한숨을 내쉬며 이 철없는 처자를 어떻게 달래야하나 머릿속으로 고민을 하던 순간.

    소르비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뒤로 숨겨두었던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루크, 이걸 보고도 그렇게 나올 수 있어?”

    평소답지 않은 억양이었다.

    그 소르비가 저토록 들뜬 목소리라니, 루크는 살짝 불안감을 느끼면서 고개를 들었다.

    “소르비, 대체 또 무엇을…….”

    멈칫.

    루크의 성의없이 움직이던 눈동자가 멈췄다.

    소르비가 쥐고있는 직사각형의 물체, 완벽함에 가깝게 조율된 코어와 수천개의 마법진이 얽혀 만들어진 현대 마도기술의 융합체.

    그래, ‘휴대폰’이었다.

    하지만 루크는 잠깐 시선을 주었던 그것에서 애써 시선을 떼어내며 말을 이었다.

    “……뭐지, 자랑이라도 하려는겐가?”

    “내가 자랑을 왜 하겠니? 이건 네거야.”

    루크는 믿을 수 없는 그 말에 혹시 이 몸이 되면서 청각에 문제가 생긴게 아닌가 잠깐 고민했다.

    머리 위에 솟은 귀를 몇번 긁고, 청력이 괜찮다는것을 확인한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잠깐, 아까전엔 내가 잘못 들은 것 같구나. 다시한번 말해주겠는가?”

    그 반응에 소르비는 씨익 웃으면서 휴대폰을 건네주는듯 내밀며 말했다.

    “아니. 제대로 들었는데? 이건 내 선물이야.”

    “……소, 소르비. 정말인가? 이게, 그대의 선물이라고?”

    루크는 읽던 책에 책갈피를 걸고 벌떡 일어났다.

    그야말로, 군침이 도는 제안이 아닌가?

    군침이 돈다, 그것은 사실 비유가 아니었다.

    루크는 흘러나오는 침을 빠르게 목으로 넘기며, 소르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저, 정말 내가 받아도 되는겐가?!”

    저것만 있다면 현재 갖고있는 마법진의 지식을 몇단계나 앞설 수 있다.

    아니, 몇분정도 살핀것만으로 이미 과거의 마법식을 개량하고 고쳐낸 부분이 벌써 60%.

    만약 저 현대마법의 집약체를 ‘소유’하게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갖고있는 마법적 지식이 몇세대나 건너뛰게 될 것이다.

    루크가 홀린듯이 손을 내미는 순간,

    “하지만!”

    소르비가 마치 놀리는듯이 휴대폰을 들어올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르비언니, 고맙습니다.’라고 하면 줄게.”

    “……뭐라?”

    “들었잖아? ‘소르비언니, 고맙습니다.’ 라고!”

    “…….”

    루크는 숨이 턱 막혔다.

    ‘언니’라니, ‘고맙습니다’라니.

    그것만큼 루크 이루시로서의 자신을 부정하는 어휘선택이 없다.

    그것은 여성이 손윗 여성을 칭하는 호칭이지않은가!

    루크에게 그것만큼 어울리지 않는 호칭도 없으리라.

    겉보기엔 이래도 나이도 소르비보다 많고, 성별조차 남성으로 백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그런 자신의 자존심을…….

    “싫으면 말구. 이건 그냥 팔아버려야겠…….”

    “……소르비언니, 고, 고맙습니다…….”

    챙기기에는, 휴대폰이 너무나 커다란 보상이었다.

    “응? 뭐라고?”

    다 들었으면서 못들은척. 소르비는 씨익 웃으면서 귀를 내렸다.

    루크는 속으로 열이 오르는것을 느끼며 감정을 삼켰다.

    ‘이토록 부끄러워본적은 정말로 오랜만이구나……!’

    대마법사의 의지로, 꾸역꾸역 감정을 삼킨다.

    부끄러움에 손발이 마구 꼬여댈 것 같지만, 억지로 성대를 울리며 입과 혀를 놀린다. 소르비가 요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소르비언니, 고맙습니다……!”

    “방금 그거, 딱 좋았어!”

    -띡.

    루크의 말이 끝나자 소르비의 등 뒤에서 울리는 인위적인 소음.

    “아…?”

    루크는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이제서야 문득 소르비가 한쪽 손을 계속해서 등 뒤로 돌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르비가 건네는 휴대폰을 받아들고서, 왠지모를 불안감에 그녀가 쥐고있는 그녀의 휴대폰에 마력시를 사용한다.

    ‘이 마법배열은…….’

    그게 무엇인지 깨달은 루크는 기겁하면서 외쳤다.

    “소, 소르비! 그건 ‘소리저장마법’이지않느냐?!”

    루크는 자신의 휴대폰을 바닥에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박스에서 폭발하듯이 뛰쳐나갔다.

    -팡!

    그것은 물론 인핸스바디와 윈드를 사용한 속도였다.

    “우왓! 역시 엄청빠르네!”

    하지만 소르비 역시 루크숲의 숲지기. 갑작스런 루크의 육탄공세를 피해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애초에 루크의 몸놀림이 빠를것을 염두에 두고 있기도 했으므로, 소르비는 곧바로 숙소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루크는 그런 그녀의 신발에 그리스를 걸어볼까 했지만 다이튼과는 달리 그다지 튼튼해보이지 않는 소르비는 크게 다칠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앞선다.

    휴대폰을 사준것은 분명 고마울만한 일이었으니, 그정도로 과잉진압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실드를 타인에게 시전해줄 수 있다면 거리낌없었겠지만, 타인에게 실드를 걸어주기위해선 최소한 4서클의 권한이 필요했다.

    라이트? 너무 눈에 띈다.

    밖에서 시야를 잠깐 빼앗을 정도의 빛을 발하면 분명 자신이 마법을 썼다는걸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말것이다. 어쩌면 예르나가 볼지도.

    루크는 예르나에게 무허가로 마법을 사용하는 장면을 들키고싶진 않았다.

    “그 휴대폰 이리 내게!”

    “하하하! 그럴 수는 없지! 이 소르비, 이것은 절대 줄 수 없다!”

    상쾌하게 웃어제끼며 숲을 가로지르는 소르비, 그 뒤를 필사적으로 뒤쫓는 잠옷차림의 루크 이루시.

    방금 가볍게 숙소 주변을 뛰고 수건을 목에 두른채 물을 마시던 키르케는 한 어린이와 한 어른이가 추격전을 벌이는걸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거 가끔 저렇게 운동시키는것도 나쁘지 않아보이는데.’

    소르비가 저렇게 상쾌하게 웃으면서 땀을 뺀적이 얼마만이던가.

    반면 루크는 뭐가 그리 슬픈지 아주 울상이 다 되었지만.

    그러고보니, 오늘 루크한테 선물 줄 거라고, 이제 막 나한테 언니라고 부르는거 아니냐고 호들갑을 떨어대던게 기억나는데.

    “저거 아무래도 또 미움받겠네.”

    뭘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

    잠시 후, 루크와 소르비는 둘다 거의 탈진한 상태가 되어서야 추격전을 멈추었고, 루크는 소르비의 휴대폰에서 녹음된 음성을 삭제했다.

    이미 음성녹음이 숲지기 단체대화방에 올라간 상태라는건  눈치채지 못한채.

    단체대화방에 가입된 모두가 그녀의 장난에 웃음꽃을 피운 순간, 단 한명만은 그것에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소르비. 이건 선을 넘었어.”

    “왜, 왜요? 예르나언니?”

    “루는 아직 나도 언니라고 불러준 적 없는데……. 이렇게 선물로 협박해서 새치기를 하다니.”

    “헉. 그, 그게 정말이에요……?”

    “소르비, 엎드려. 1번부터 시작하자.”

    “ㅇ, 언니! 봐줘, 봐주세요!”

    “소르비, 허리가 내려가잖니?”

    “으이에엑-!”

    소르비는 그날 조금 더 건강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가혹행위가 아닙니다!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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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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