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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마지막 파밍까지 끝마치자 손에 들어온 금액은 대략 15실버가량.

       

       예전이었다면 거금을 벌었다며 빵디를 흔들었겠지만…일전에 골드 단위의 돈을 태워본 경험이 아직 남아있는 터라 그 정도로 기쁘진 않더라.

       

       한때는 8쿠퍼에 목숨을 걸고 그랬던 시기가 있었으나, 이젠 쿠퍼는 잔돈으로 취급하는 것도 그래서고.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픈 일이네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경험이 쌓인 만큼 무감각해지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리디아 님은 어른이고요.”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짜증 나.”

       

       인상을 와락 찌푸린 리디아가 내 볼을 마구 꼬집기 시작했다. 

       

       쭈와아악-

       

       “아파파팟!”

       

       쭉쭉 늘어나는 볼살. 그에 비례해 얼얼한 통증이 올라온다. 평소였다면 마구 발버둥 치며 어떻게든 벗어났겠지만…지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쭐렁쭐렁.

       

       리디아가 내 볼을 괴롭힐 때마다 눈앞에서 흔들리는 거대한 살덩어리. 세상에. 저 체구에 이만한 크기가 말이 된다고?

       

       사복 너머로 봤을 때도 엄청났는데, 아예 비키니 아머를 입고 오니 그 자유분방한 움직임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볼에서 올라오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크게 떴다. 조금이라도 더 지금의 모습을 뇌리에 새길 수 있도록.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조금 이상했던 걸까. 신나게 나를 만지작대던 리디아가 손에서 힘을 풀었다.

       

       “많이 아팠어?”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아까 말했던 신고받아서 왔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따로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던 것 같은데.”

       

       “문제는 안 일으켰지. 하지만 신고는 당할만했어.”

       

       “네?”

       

       “온 동네의 양아치들이 떼로 몰려다닌다고 생각해 봐. 일반인이 불안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

       

       “아하.”

       

       하기야. 건달 몇 명이 어슬렁거리는 건 그냥 혀 몇 번 차고 넘어가면 될 일이지만, 수십 명이 우르르 뭉쳐있는 건 바로 신고할 일이긴 하지.

       

       “설마 그 배후에 요나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저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구요. 들어보세요 리디아 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이러쿵저러쿵 구리구리오리너구리.

       

       대충 사정을 전해 들은 리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소매치기하려다가 퍽치기가 되었다는 소리지?”

       

       “뭔가 어감이 좀 그렇긴 하지만 얼추 맞네요! 정말 너무하지 않나요?!”

       

       “요나는…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없어? 아무리 상대가 양아치라지만 무자비하게 폭행한 건 요나 쪽.”

       

       “하지만 리디아 님 말대로 놈들은 양아치잖아요. 고아들 삥 뜯어서 번 돈을 고아인 제가 다시 가져가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건….”

       

       “전 나쁘지 않아요. 나쁜 건 전부 예전의 저를 괴롭힌 미궁도시의 양아치들이지. 이거 시험에 나오니까 기억해 주세요?”

       

       “…….”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으로 내 말을 곱씹는 리디아. 마지막 말은 농담이었는데, 이렇게 무반응이면 조금 부끄럽단 말이지.

       

       한차례 헛기침을 하며 주제를 돌렸다.

       

       “흠흠! 그나저나 이제 어디 가는 건가요 리디아 님?”

       

       “길드. 원래 용건은 따로 있었는데, 그거 해결하고 가려니까 신고가 들어왔다고 도와달라더라.”

       

       “그리고 거기엔 제가 있었군요. 이거 운명이네요!”

       

       “운명 같은 소리하지 말고. 그래서 왜 거기에 요나가 있었던 건데.”

       

       “네? 그거야 슬쩍 소매치기를….”

       

       “이제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잖아. 저번에 2골드나 벌었으니까.”

       

       “으음. 그게 그렇지가 않단 말이죠.”

       

       “…설마 정말 전부 도박에 쓴 거야?!”

       

       붉은 눈동자를 크게 뜨고 경악하는 리디아. 그녀의 시선에 모종의 책임감 같은 것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 내가 어떻게든 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막장 인생이 되어버릴 것이다…!

       

       같은 느낌이려나.

       

       평소에 감정표현이 옅은 리디아가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표정을 드러내니 엄청 알기 쉽네.

       

       하지만 이야기가 그쪽으로 흘러가면 여러모로 귀찮기도 하고 곤란해지기도 하는 터라 선수를 쳤다.

       

       “그 2골드로 새로운 무기의 재료를 샀거든요!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제가 싸게 사긴 했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더라구요.”

       

       “…새 무기?”

       

       장비충답게 무기 만들 재료 샀다는 소리에 한결 누그러진 반응을 보이는 리디아. 그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맞아요! 에덴의 이브 씨에게 제작을 맡겼죠. 그러고 나니 남는 돈이 없지 뭐예요.”

       

       “에덴의 점장…믿을 수 없는 건 둘째 치고 뛰어난 장인은 아닌 것 같았는데.”

       

       “이브 씨가 장인은 아니죠. 하지만 직접 만드는 게 아니라, 공방 연합의 드워프들에게 맡긴다고 하니 그 부분은 안심해도 괜찮을 거예요!”

       

       “공방 연합에 인맥이 있다고…? 그 물건은 잘 만들지만 말귀는 못 알아먹는 꼴통들이랑?”

       

       어째 공방 연합과 연이 있다는 쪽에 더 놀라는 리디아.

       

       뭐, 그럴 수도 있지. 이 세계의 드워프는 우리가 아는 그 전형적인 외골수 장인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종족이니까.

       

       물건을 잘 만들지만…그 제작에 있어서는 일체의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 꽉 막힌 놈들.

       

       그런 녀석들이다 보니, 뭐 하나 만들면 잘 만드는데 납품일이나 소소한 요구 사항 같은 걸 잘 못 지킨다.

       

       평범한 강철 검을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다면 납품일이 몇 달이나 밀린다거나.

       

       창을 만들러 갔더니, 넌 장창보다 쌍단창이 더 어울린다며 멋대로 다른 물건을 만들어 오는 등.

       

       아주 제멋대로인 종족이다. 남의 물건을 만들어 준다는 인식이 아니라 내가 물건을 만들었더니 다른 사람이 쓴다는 인식이라 그런 거겠지.

       

       물론, 어떤 물건을 만들건 한번 받은 가격은 번복하는 일이 없고, 퀄리티는 항상 기대 이상이라 지금껏 큰 문제는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자기가 만들고 싶은 물건만 뚱땅거리는 것이 공방 연합인데….

       

       그런 곳에 개인적인 부탁을 넣을 만큼의 인맥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긴 하다.

       

       공방 연합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미궁 도시의 그림자에 군림한(그런 적 없음) 이브에겐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말했다.

       

       “이브 씨는 엘프잖아요. 겉보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테니 이런저런 친구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죠.”

       

       “…하긴. 엘프가 오래 살며 모으는 재산이 돈뿐만은 아니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인맥 또한 그 자체로 힘이고 돈이 된다. 세상 혼자 살 건 아니잖은가.

       

       지금 이렇게 리디아의 미궁 교습을 받는 것도, 엘리 덕에 안전한 잠자리를 제공받는 것도, 심지어 유니콘의 뿔을 망설임 없이 이브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인맥빨이라면 인맥빨이니까.

       

       “그래서 요나는 무슨 재료로 무슨 장비를 의뢰했어?”

       

       “음. 그건 말이죠….”

       

       히히 웃으며 검지로 윗입술을 지그시 누르는 제스처를 취했다.

       

       “쉿. 완성되기 전까지는 뭐로 만든 건지 비밀이에요. 대신 완성되면 바로 보여드리러 올 테니까 기대하세요!”

       

       “…역시 짜증 나. 어쨌든 자신을 강화하기 위해 썼다면 다행이야.”

       

       “…혹시나 해서 묻는데 정말 도박에 썼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어요?”

       

       “도박장을 박살 내야지.”

       

       “네?”

       

       “아니면 요나의 팔다리를 박살 내거나.”

       

       “…….”

       

       선택지가 왜 이렇게 폭력적이야.

       

       오들오들 떨며 굳게 다짐했다. 절대 리디아에겐 가챠 능력을 들키면 안 되겠다고.

       

       ***

       

       이후로는 잠깐 제련 맡겼던 마력초와 회복초로 만든 영약을 수령해, 그 자리에서 먹은 뒤에야 요정과 은화로 돌아왔다.

       

       참고로 영약은 약초일 때보다 아주 조금 효과가 좋았는데…그 정도면 오차거나, 제련 과정에 들어간 다른 약 성분의 차이겠지.

       

       앞으로 약초 계열은 따로 써먹을 곳이 있는 게 아니면, 그냥 바로 먹어 치워야겠네.

       

       그렇게 돌아온 뒤에는 평소처럼 엘리까지 껴서 저녁을 먹는다거나,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이제 남은 건 적당한 때에 인사를 나누고 위층으로 올라가 쉬는 일뿐. 내일은 미궁에 들어가니 일찍 자는 게 맞겠지. 하지만….

       

       아무리 태연한 척 해봐도 리디아의 가슴이 신경 쓰여 어쩔 수가 없다. 이대로라면 침대에 누워도 잠에 들지 못할 터.

       

       하여, 눈 꾹 감고 입을 열었다.

       

       “리디아 님…! 새 갑옷, 예쁘시네요!”

       

       “응? 응. 고마워. 역시 요나도 알아보는구나. 이전보다 움직이기 편하고, 튼튼한 데다가, 온갖 저항도 붙어있는 최신형. 아무리 나라도 구하는 게 쉽지 않았어. 길드의 도움을 받았을 정도니까.”

       

       “헤, 헤에…그렇군요. 대단하네요.”

       

       하체는 제대로 드레스형 갑옷이지만, 상체는 거의 비키니나 다름없는 스타일. 대체 어떻게 더 튼튼한 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지만 판타지니까 그럴 수 있지.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이렇게 보니까 알았는데…리디아 님은 가슴이 크시네요.”

       

       “흐흫. 그렇지? 나도 알아.”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손을 얹고, 상체를 쭉 펴는 리디아.

       

       가슴을 강조하는 것 같은 포즈를 취한 그녀의 입가에는 우쭐대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야 판 대륙에서 여자의 가슴을 칭찬하는 건 평범한 외모 칭찬이나 다름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지.

       

       속눈썹이 기네, 손톱이 예쁘다, 목소리가 좋다, 가슴이 크다. 전부 비슷한 뉘앙스의 칭찬이니까.

       

       “코흠코흠. 리디아 님. 그래서 말인데요….”

       

       지금껏 내 몸을 들이대며 엘리를 유혹하는 일은 자주 해왔다. 남녀역전 세상이었기에 자괴감이 들지언정 부끄럽지는 않았던 언행.

       

       하지만 이제부터 하려는 일은 조금 다르다. 반대로 남녀역전이기에 리디아에겐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내겐 꽤나 말로 꺼내기 부끄러운 일.

       

       하지만 해야 한다. 그야 이만한 기회를 어떻게 놓치겠는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쉴 새 없이 뛰는 심장. 미친 듯이 끓어오르는 체온. 그리고 약간의 주저와 그 이상의 결심이 내 몸으로 하여금 애절함을 자아낸다.

       

       “리디아 님!”

       

       “…어?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어?”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디아. 그런 그녀를 향해 재차 외쳤다.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옆에서 듣고 있던 엘리가 손에 든 컵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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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EP.33





       마지막 파밍까지 끝마치자 손에 들어온 금액은 대략 15실버가량.


       


       예전이었다면 거금을 벌었다며 빵디를 흔들었겠지만…일전에 골드 단위의 돈을 태워본 경험이 아직 남아있는 터라 그 정도로 기쁘진 않더라.


       


       한때는 8쿠퍼에 목숨을 걸고 그랬던 시기가 있었으나, 이젠 쿠퍼는 잔돈으로 취급하는 것도 그래서고.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픈 일이네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경험이 쌓인 만큼 무감각해지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리디아 님은 어른이고요.”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짜증 나.”


       


       인상을 와락 찌푸린 리디아가 내 볼을 마구 꼬집기 시작했다. 


       


       쭈와아악-


       


       “아파파팟!”


       


       쭉쭉 늘어나는 볼살. 그에 비례해 얼얼한 통증이 올라온다. 평소였다면 마구 발버둥 치며 어떻게든 벗어났겠지만…지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쭐렁쭐렁.


       


       리디아가 내 볼을 괴롭힐 때마다 눈앞에서 흔들리는 거대한 살덩어리. 세상에. 저 체구에 이만한 크기가 말이 된다고?


       


       사복 너머로 봤을 때도 엄청났는데, 아예 비키니 아머를 입고 오니 그 자유분방한 움직임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볼에서 올라오는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크게 떴다. 조금이라도 더 지금의 모습을 뇌리에 새길 수 있도록.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조금 이상했던 걸까. 신나게 나를 만지작대던 리디아가 손에서 힘을 풀었다.


       


       “많이 아팠어?”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아까 말했던 신고받아서 왔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따로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던 것 같은데.”


       


       “문제는 안 일으켰지. 하지만 신고는 당할만했어.”


       


       “네?”


       


       “온 동네의 양아치들이 떼로 몰려다닌다고 생각해 봐. 일반인이 불안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


       


       “아하.”


       


       하기야. 건달 몇 명이 어슬렁거리는 건 그냥 혀 몇 번 차고 넘어가면 될 일이지만, 수십 명이 우르르 뭉쳐있는 건 바로 신고할 일이긴 하지.


       


       “설마 그 배후에 요나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저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구요. 들어보세요 리디아 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이러쿵저러쿵 구리구리오리너구리.


       


       대충 사정을 전해 들은 리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소매치기하려다가 퍽치기가 되었다는 소리지?”


       


       “뭔가 어감이 좀 그렇긴 하지만 얼추 맞네요! 정말 너무하지 않나요?!”


       


       “요나는…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없어? 아무리 상대가 양아치라지만 무자비하게 폭행한 건 요나 쪽.”


       


       “하지만 리디아 님 말대로 놈들은 양아치잖아요. 고아들 삥 뜯어서 번 돈을 고아인 제가 다시 가져가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건….”


       


       “전 나쁘지 않아요. 나쁜 건 전부 예전의 저를 괴롭힌 미궁도시의 양아치들이지. 이거 시험에 나오니까 기억해 주세요?”


       


       “…….”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으로 내 말을 곱씹는 리디아. 마지막 말은 농담이었는데, 이렇게 무반응이면 조금 부끄럽단 말이지.


       


       한차례 헛기침을 하며 주제를 돌렸다.


       


       “흠흠! 그나저나 이제 어디 가는 건가요 리디아 님?”


       


       “길드. 원래 용건은 따로 있었는데, 그거 해결하고 가려니까 신고가 들어왔다고 도와달라더라.”


       


       “그리고 거기엔 제가 있었군요. 이거 운명이네요!”


       


       “운명 같은 소리하지 말고. 그래서 왜 거기에 요나가 있었던 건데.”


       


       “네? 그거야 슬쩍 소매치기를….”


       


       “이제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잖아. 저번에 2골드나 벌었으니까.”


       


       “으음. 그게 그렇지가 않단 말이죠.”


       


       “…설마 정말 전부 도박에 쓴 거야?!”


       


       붉은 눈동자를 크게 뜨고 경악하는 리디아. 그녀의 시선에 모종의 책임감 같은 것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 내가 어떻게든 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막장 인생이 되어버릴 것이다…!


       


       같은 느낌이려나.


       


       평소에 감정표현이 옅은 리디아가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표정을 드러내니 엄청 알기 쉽네.


       


       하지만 이야기가 그쪽으로 흘러가면 여러모로 귀찮기도 하고 곤란해지기도 하는 터라 선수를 쳤다.


       


       “그 2골드로 새로운 무기의 재료를 샀거든요!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제가 싸게 사긴 했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더라구요.”


       


       “…새 무기?”


       


       장비충답게 무기 만들 재료 샀다는 소리에 한결 누그러진 반응을 보이는 리디아. 그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맞아요! 에덴의 이브 씨에게 제작을 맡겼죠. 그러고 나니 남는 돈이 없지 뭐예요.”


       


       “에덴의 점장…믿을 수 없는 건 둘째 치고 뛰어난 장인은 아닌 것 같았는데.”


       


       “이브 씨가 장인은 아니죠. 하지만 직접 만드는 게 아니라, 공방 연합의 드워프들에게 맡긴다고 하니 그 부분은 안심해도 괜찮을 거예요!”


       


       “공방 연합에 인맥이 있다고…? 그 물건은 잘 만들지만 말귀는 못 알아먹는 꼴통들이랑?”


       


       어째 공방 연합과 연이 있다는 쪽에 더 놀라는 리디아.


       


       뭐, 그럴 수도 있지. 이 세계의 드워프는 우리가 아는 그 전형적인 외골수 장인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종족이니까.


       


       물건을 잘 만들지만…그 제작에 있어서는 일체의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 꽉 막힌 놈들.


       


       그런 녀석들이다 보니, 뭐 하나 만들면 잘 만드는데 납품일이나 소소한 요구 사항 같은 걸 잘 못 지킨다.


       


       평범한 강철 검을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다면 납품일이 몇 달이나 밀린다거나.


       


       창을 만들러 갔더니, 넌 장창보다 쌍단창이 더 어울린다며 멋대로 다른 물건을 만들어 오는 등.


       


       아주 제멋대로인 종족이다. 남의 물건을 만들어 준다는 인식이 아니라 내가 물건을 만들었더니 다른 사람이 쓴다는 인식이라 그런 거겠지.


       


       물론, 어떤 물건을 만들건 한번 받은 가격은 번복하는 일이 없고, 퀄리티는 항상 기대 이상이라 지금껏 큰 문제는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자기가 만들고 싶은 물건만 뚱땅거리는 것이 공방 연합인데….


       


       그런 곳에 개인적인 부탁을 넣을 만큼의 인맥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긴 하다.


       


       공방 연합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미궁 도시의 그림자에 군림한(그런 적 없음) 이브에겐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말했다.


       


       “이브 씨는 엘프잖아요. 겉보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을 테니 이런저런 친구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죠.”


       


       “…하긴. 엘프가 오래 살며 모으는 재산이 돈뿐만은 아니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인맥 또한 그 자체로 힘이고 돈이 된다. 세상 혼자 살 건 아니잖은가.


       


       지금 이렇게 리디아의 미궁 교습을 받는 것도, 엘리 덕에 안전한 잠자리를 제공받는 것도, 심지어 유니콘의 뿔을 망설임 없이 이브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인맥빨이라면 인맥빨이니까.


       


       “그래서 요나는 무슨 재료로 무슨 장비를 의뢰했어?”


       


       “음. 그건 말이죠….”


       


       히히 웃으며 검지로 윗입술을 지그시 누르는 제스처를 취했다.


       


       “쉿. 완성되기 전까지는 뭐로 만든 건지 비밀이에요. 대신 완성되면 바로 보여드리러 올 테니까 기대하세요!”


       


       “…역시 짜증 나. 어쨌든 자신을 강화하기 위해 썼다면 다행이야.”


       


       “…혹시나 해서 묻는데 정말 도박에 썼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어요?”


       


       “도박장을 박살 내야지.”


       


       “네?”


       


       “아니면 요나의 팔다리를 박살 내거나.”


       


       “…….”


       


       선택지가 왜 이렇게 폭력적이야.


       


       오들오들 떨며 굳게 다짐했다. 절대 리디아에겐 가챠 능력을 들키면 안 되겠다고.


       


       ***


       


       이후로는 잠깐 제련 맡겼던 마력초와 회복초로 만든 영약을 수령해, 그 자리에서 먹은 뒤에야 요정과 은화로 돌아왔다.


       


       참고로 영약은 약초일 때보다 아주 조금 효과가 좋았는데…그 정도면 오차거나, 제련 과정에 들어간 다른 약 성분의 차이겠지.


       


       앞으로 약초 계열은 따로 써먹을 곳이 있는 게 아니면, 그냥 바로 먹어 치워야겠네.


       


       그렇게 돌아온 뒤에는 평소처럼 엘리까지 껴서 저녁을 먹는다거나,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이제 남은 건 적당한 때에 인사를 나누고 위층으로 올라가 쉬는 일뿐. 내일은 미궁에 들어가니 일찍 자는 게 맞겠지. 하지만….


       


       아무리 태연한 척 해봐도 리디아의 가슴이 신경 쓰여 어쩔 수가 없다. 이대로라면 침대에 누워도 잠에 들지 못할 터.


       


       하여, 눈 꾹 감고 입을 열었다.


       


       “리디아 님…! 새 갑옷, 예쁘시네요!”


       


       “응? 응. 고마워. 역시 요나도 알아보는구나. 이전보다 움직이기 편하고, 튼튼한 데다가, 온갖 저항도 붙어있는 최신형. 아무리 나라도 구하는 게 쉽지 않았어. 길드의 도움을 받았을 정도니까.”


       


       “헤, 헤에…그렇군요. 대단하네요.”


       


       하체는 제대로 드레스형 갑옷이지만, 상체는 거의 비키니나 다름없는 스타일. 대체 어떻게 더 튼튼한 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하지만 판타지니까 그럴 수 있지.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이렇게 보니까 알았는데…리디아 님은 가슴이 크시네요.”


       


       “흐흫. 그렇지? 나도 알아.”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손을 얹고, 상체를 쭉 펴는 리디아.


       


       가슴을 강조하는 것 같은 포즈를 취한 그녀의 입가에는 우쭐대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야 판 대륙에서 여자의 가슴을 칭찬하는 건 평범한 외모 칭찬이나 다름없으니 당연한 반응이지.


       


       속눈썹이 기네, 손톱이 예쁘다, 목소리가 좋다, 가슴이 크다. 전부 비슷한 뉘앙스의 칭찬이니까.


       


       “코흠코흠. 리디아 님. 그래서 말인데요….”


       


       지금껏 내 몸을 들이대며 엘리를 유혹하는 일은 자주 해왔다. 남녀역전 세상이었기에 자괴감이 들지언정 부끄럽지는 않았던 언행.


       


       하지만 이제부터 하려는 일은 조금 다르다. 반대로 남녀역전이기에 리디아에겐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내겐 꽤나 말로 꺼내기 부끄러운 일.


       


       하지만 해야 한다. 그야 이만한 기회를 어떻게 놓치겠는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쉴 새 없이 뛰는 심장. 미친 듯이 끓어오르는 체온. 그리고 약간의 주저와 그 이상의 결심이 내 몸으로 하여금 애절함을 자아낸다.


       


       “리디아 님!”


       


       “…어?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어?”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디아. 그런 그녀를 향해 재차 외쳤다.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옆에서 듣고 있던 엘리가 손에 든 컵을 떨어뜨렸다.


       


       쨍그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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