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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어떻게 할까요, 마르모 님.”

       

       “크으, 저런 년이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너희들, 내가 시키는 대로 한 거 맞아?!”

       

       “네, 네! 물론입니다!”

       

       “젠장···!”

       

       

       CCTV의 참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은신처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며 놀고먹으려고 했는데, 웬 미친년 하나 때문에 망해버렸다.

       

       누군가에게 들킬 걱정은 하지도 않았었는데.

       

       아니, 애초에 들켰다는 낌새가 보이는 순간 바로 도망칠 수 있었는데.

       

       도망치고 숨어드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오직 그 재주 하나로 위버멘쉬의 간부까지 올라왔으니까.

       

       ···그래, 인정한다. 은신처의 위치가 위험하기는 했지.

       

       하지만 수백 명의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 많은 입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옛 던전의 터전.

       

       그곳에서도 외곽 중의 외곽인 장소.

       

       사유지로 속여 혹여나 실수로 들어오는 사람마저 예방해두었는데.

       

       우연히 들어왔을 리가 없다.

       

       확실하게, 제대로 된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거야.

       

       하지만 설마 내가 눈치채지도 못하다니.

       

       조금이라도 이곳의 위치를 눈치챘다는 낌새가 느껴졌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어, 엄청난 속도입니다! 이대로라면 금방 이곳에 도착해요!”

       

       “미친···!”

       

       

       소름이 끼쳐왔다.

       

       나는 간부 중 최약체다. 그도 그럴게, 숨고 도망치는 데 특화되어있으니까.

       

       하지만 간부는 간부.

       

       말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 여자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십 명을 한순간에 큐브 스테이크로 만들어버리다니.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손속에 소름이 끼쳐왔다.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 저런 짓을 벌인다고?

       

       하, 아무리 요즘 아카데미 학생들의 변절이 사회적 문제가 된다고 한들 그런 인간이 있을 리가.

       

       저건 아카데미 학생 같은 게 아니다.

       

       빌런이지.

       

       

       “다른 빌런 조직에서 아카데미에 잠입한 년인가···? 칫, 도망친다! 어서 준비해! 시간이 없어!”

       

       “그건 힘들 것 같은데요.”

       

       “힘들긴 뭐가 힘들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

       

       

       잠깐만.

       

       ···방금 그 목소리.

       

       나랑 이야기하던 녀석이 아니잖아.

       

       누구지?

       

       

       “처음 뵙겠습니다. 이곳의 책임자 되시는 분. 맞으시죠?”

       

       “···!”

       

       

       -서걱.

       

       

       “하하, 열정적인 분. 마음에 들어요. 행동력이 좋으시네. 역시 간부. 합격이에요.”

       

       

       미친, 눈도 깜짝 안 한다고?!

       

       혼신의 기습이었다.

       

       품에 항상 지니고 다니는, 위험할 때 사용하기 위해 보관해두는 단검.

       

       그 단검에 마나를 잔뜩 담아 쏘아냈다.

       

       침입자는 잔뜩 방심하고 있었다.

       

       여유로운 몸짓. 내 손을 바라보지 않는 안일함.

       

       수많은 정황이 완벽한 기습이었다고 알리고 있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단검이 조각났다.

       

       그리고 기습이 실패했음을 확인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려고 한 순간.

       

       저 미친년의 치마에 마력이 담기는 게 보였다.

       

       

       “젠장! 그 공격이다! 다들 대비해!”

       

       

       부하 한 명이 그렇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게 아니야.

       

       저건 그런 무차별 살상과는 다른···!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순식간에 풀린 실들이 부하들과 나의 목을 휘감았으니까.

       

       제, 젠장. 사람을 깍둑썰던 모습에 너무 긴장했어···!

       

       

       “움직이지 마세요. 다칠지도 모르니까요?”

       

       “마, 마르모 님! 크으, 죽어라!”

       

       “아, 움직이지 말라니까요.”

       

       

       콰드득.

       

       살점과 뼈가 우그러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하, 하하···.

       

       뭔데, 저거.

       

       분명히 저 녀석, 신체 강화 계열 능력자잖아.

       

       기억에 남아있다.

       

       임무에 나갈 때 선봉에 주로 서던 녀석이었으니까.

       

       마수에게 전신을 물려도 생채기만 나던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저렇게 쉽게 죽는다고?

       

       목에 휘감긴 실들이 순식간에 목을 조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정말 순식간에 끔찍한 소리와 함께 목이 뒤틀렸다.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죽었다. 저 여자의 손에.

       

       깔끔하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도살장의 돼지를 도축하는 것 같은 감정 없는 손길에 한 사람의 생명이 끊어졌다.

       

       

       “으음, 그러게 움직이지 말라니까. 위험하잖아요.”

       

       

       소름이 끼쳤다.

       

       그 장면을 본 누구나 그렇겠지.

       

       그야, 사람의 목이 그렇게 거칠게 뜯어졌다고.

       

       아무리 빌런이라고 한들 사람을 죽일 때 저렇게까지 망설임이 없는 놈은 드물다.

       

       제대로 미친년이군.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빌런들이어도 이제 반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목숨은 소중하니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인간에게 대드는 건 쓸데없이 명을 재촉하는 행위다.

       

       이제 저 여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겠군.

       

       이곳 사람들 전원의 목에 저년의 실이 달려있으니까!

       

       식은땀이 흐르고 속이 울렁거려 목을 쓰다듬었다.

       

       마치 아기의 뽀얀 살결을 만지듯 보드라운 감촉.

       

       더럽게 부드럽네.

       

       마치 고급 비단을 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평소 같았다면 저 음란한 몸뚱아리를 희롱하며 놀려먹었겠지.

       

       하지만 불가능했다.

       

       순식간에 싸늘한 시체로 변한 부하의 모습이 떠올라서.

       

       이 여자, 지금 우리를 협박하고 있는 게 분명해.

       

       당장이라도 죽일 수 있는데 죽이지 않고 있는 걸 보면 확실했다.

       

       자기 말을 따르지 않으면 죽을 거라고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었다.

       

       

       “···원하는 게 뭐냐.”

       

       “아하하. 원하는 거라뇨?”

       

       “발뺌은 그만 해. 당장이라도 죽일 수 있는데 살려두고 있으니까. 말해. 조건은 뭐지?”

       

       

       마음에 든다는 듯 웃는 모습이 역겨웠다.

       

       젠장.

       

       재수 옴 붙었군.

       

       

       “아까 나가신 분들과 똑같아요? 학생들을 습격하고, 죽이면 살려드리죠. 어때요?”

       

       “···거부권은 없겠지. 알겠다.”

       

       “좋아요. 말이 잘 통해서 기쁘네요! 자아, 빨리 가주세요!”

       

       “···칫. 가자, 얘들아. 산 중턱의 산장이다. 목표는 아카데미 학생 셋.”

       

       “네, 넵!”

       

       

       이곳에 오는 아카데미 학생들은 넷이라고 들었는데.

       

       넷은 개뿔이.

       

       괴물 한 마리랑 세 명이었다.

       

       시발, 진짜. 아카데미 더럽게 무능하네.

       

       내가 내는 세금이 얼마인데 이런 위험한 년 하나 못 걸러?

       

       

       “마, 마르모 님.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아니, 불가능해. 잘못 걸렸어. 너무 치밀한데.”

       

       

       당연히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벌써 그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불가능했다.

       

       

       “너, 그년의 얼굴 기억나냐?”

       

       “어, 어째서. 기, 기억이 나지 않아···?!”

       

       

       그럼 그렇지.

       

       내가 그것도 기억 못하는 치매 환자일 리가.

       

       자기 옷을 무기로 쓰는 치녀 주제에 치밀하다.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

       

       분명 눈앞에서 봤을 때는 얼굴을 기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잠깐 눈을 감고 그 외견을 다시 곱씹어보려고 하는 순간 머리에 안개가 낀 듯 외모가 생각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레오타드를 입은 치녀라는 것뿐.

       

       어디서 저런 아티팩트를 구했지?

       

       능력자는 한 명당 하나의 능력.

       

       실을 다루는 게 저 치녀의 능력이라면 얼굴이 보여야 하는데.

       

       후드티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도 알겠군.

       

       그게 아티팩트였어.

       

       

       “목의 실도 풀리지 않았으니, 위험해. 일단 원하는 대로 따라줘야겠지.”

       

       “크, 크으···.”

       

       “걱정하지 마라. 나를 잘 알잖나.”

       

       “예, 예. 마르모 님! 믿고 있겠습니다!”

       

       “그래.”

       

       

       밀려오는 짜증을 억눌렀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저 치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

       

       

       

       “이야,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요!”

       

       [그, 그렇죠? 헤헤.]

       

       “네에. 왜 그렇게 쭉정이들밖에 없나 했더니, 설정을 더 집어넣은 거면 말씀하셨어야죠.”

       

       [그, 그게.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아서.]

       

       

       아하하.

       

       내가 화를 낼 이유가 없잖아.

       

       우리 작가님이 빌런 수 2,400명의 개연성을 챙겨왔는데.

       

       

       “총을 왜 들고 있나 했더니, 초인이 아니라서 그런 거였군요.”

       

       

       그래.

       

       실도 눈치채지 못한 쭉정이들.

       

       그것들이 왜 총을 들고 있나 했더니, 작가님이 어느새 설정을 추가로 집어넣은 모양이었다.

       

       

       “으음, 위버멘쉬다운 좋은 설정이었어요. 전 인류의 초인화. ···그게 평면적인 이유라고요?”

       

       [네, 네. 그래도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안 돼요! 아무리 독자님이라도, 이건 말 못하니까!]

       

       “괜찮아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으니까.”

       

       

       그래.

       

       초인들이나 될 수 있다는 빌런이 어째서 이렇게 많은지 이해가 가는 설정이었다.

       

       전 인류의 초인화?

       

       물론 아주 클리셰 덩어리인 설정이다.

       

       우려먹고 우려먹어서 무슨 느낌인지 먹지 않아도 알 정도지.

       

       하지만 클리셰는 클리셰인 이유가 있는 법.

       

       아는 맛이 좋다고, 독자들은 이미 맛이 보장된 것을 선호하는 법이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보겠답시고 시도했다가는 망치기 딱 좋다.

       

       민트초코 파인애플 피자가 나올지, 김치 피자 탕수육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먹어볼 사람은 소수니까.

       

       그런 걸 도전하는 사람도 물론 있는 법이지만, 대중은 안정적인 맛을 좋아하는 법.

       

       검증된 김치찌개 같은 클리셰가 인기 있는 이유다.

       

       물론 너무 김치찌개만 먹여버리면 물려서 다른 걸 찾게 되기는 하겠지만···.

       

       지금 신경 쓸 건 아니니까.

       

       민트초코 파인애플 피자를 먹이는 것보다야 조금 물려도 김치찌개나 먹으라지.

       

       작가님의 소설을 보는 독자들도 내게 감사하게 될 거다.

       

       암, 물론. 그렇고말고.

       

       

       “환약의 적합도에 따라서, 적합도가 높으면 정말 일반인도 초인이 될 수 있다는 설정. 아주 좋아요.”

       

       [에헤헤···.]

       

       “빌런 조직의 수장이 필요하다면 조직을 배신할 수 있을 만한 목표가 있다는 것도 가산점이에요.”

       

       [그, 그걸 어떻게?!]

       

       

       아니, 클리셰니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말했잖아.

       

       안 먹어봐도 아는 맛이라니까?

       

       

       “자, 그럼 가볼까요. 슬슬 유시우 군을 지켜봐야죠.”

       

       [네, 네! ···잠깐 이것만 하고.]

       

       “네? 무슨 말씀하셨어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싱겁긴.

       

       ···그리고 나는 나중에 작가님을 추궁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나 몰래 멋있다고 그런 짓을 해놨을 줄이야.

       

       아니, 멋있는 건 인정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김치피자탕수육은 무슨 맛일까요

    맛있다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맛없을것같아

    아 그리고 왜 모바일은 gif를 못보나 했더니

    작년에 막아놨더라구요? 왜 몰랐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클릭 전 표지를 가끔 바꿔보려고 합니다

    모바일만 보시는 분들은 표지 하나만 볼수도 있잖아요?

    오늘은 레오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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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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