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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흐음…”

       

       딸랑 –

       

       “으음…”

       

       없다.

       

       아무리 봐도 없다.

       

       세계수의 육신이라 칭해지는 이 나무는 거의 비어 있는 상태였다.

       

       가지위에 엘프의 영혼이 앉아 있다는 것만 빼면 빈집이었다.

       

       “아무도 없으신데…?”

       

       나는 슬쩍 로메넬의 눈치를 한번 봤다.

       

       이곳에 세계수가 머물고 있을거라 생각하던 엘프들에게 사실은 안이 텅 비었다고 말하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진짜로 신이 느껴지지 않는데.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지난번에 허주와 싸우고 있을 때 분명히 느꼈다.

       

       잠시나마 강신했던 신이 원래 내 몸에 깃들던 신이 아닌 다른 분이라는 걸 말이다.

       

       실제로 방울을 따라 가지가 흔들렸던 걸 보면 그 신은 세계수라고 추정할 수 있다.

       

       “잠시 어딘가로 가셨을 수도 있어요…”

       

       나는 다시 한번 로메넬과 다른 엘프의 반응을 살폈다.

       

       똑같이 신을 모시는 입장으로서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상황.

       

       하지만 엘프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그렇군요.”

       

       다들 온화한 미소를 입에 걸고 있을 뿐.

       

       분노의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로메넬 만은 걱정이 조금 어려 있기는 했다.

       

       아마 나무의 안에 있었던 시커먼것에 대한 걱정이리라.

       

       “이번처럼 다른 놈이 자리를 잡을까 봐 걱정되는 거라면….방법이 있어요.”

       

       “방법이요?”

       

       “부정한 기운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음…일종의 방어 마법이라고 해야 하나…?”

       

       클로셀 영감이 냅다 내 말을 받으며 눈을 반짝거렸다.

       

       “당장 해 보시게.”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마법이 아니라…”

       

       “뭐가 되었든 마법학계를 뒤흔들만한 것이 분명하네. 말년에 좋은 구경을 많이 하는 구만.”

       

       그놈의 마법학계는 지금 몇 번째 뒤흔들리는 건지 모르겠다.

       

       뭐만 하면 흔들흔들.

       

       로메넬이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크리스님께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세계수는 본디 엘프들이 모시는 분. 이제부터는 저희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예요.”

       

       “딱히 폐는 아닌데…”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기도 하다.

       

       어차피 나로서도 계속마음에 걸리는 일이기도하고 말이다.

       

       우리 영감들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는 게 보였다.

       

       클로셀영감이 능글능글한 얼굴로 로메넬에게 다가 갔다.

       

       “세계수를 구했으니 크리스는 다시없을 엘프의 은인이겠군.”

       

       얼마나 표정이 능글 맞았던지 점잖은 로메넬 마저도 흠칫거리는 게 보였다.

       

       “우리 크리스가 몸이 좀 약해서 말일세…엘프들에게는 ‘그것’이 있지 않은가?”

       

       파라몬 영감마저 거들고 나섰다.

       

       “내 일행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 말고는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네.”

       

       “라몬 말이 맞네. 마법사들도 이런 것은 할 수가 없어.”

       

       “….”

       

       영감들의 뜨뜨미지근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제발 그런 시선으로 날 보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로메넬이라면 모를까.

       

       “로메넬님…?”

       

       내 생각이 틀렸다.

       

       로메넬의 시선은 영감들 보다 더 뜨거웠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님께 정식으로 의뢰를 하겠어요.”

       

       “…예?”

       

       “잘됐군.”

       

       “어서 받으시게.”

       

       어서 로메넬의 말을 수락하지 않고 무얼하느냐는 얼굴이었다.

       

       그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영감님들이 말한 그거. 혹시 얼마예요?”

       

       “….”

       

       “….”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진 후 영감들이 피식거리기 시작했다.

       

       “값을 매길 수가 없는 물건일세.”

       

       “그것에 값을 매기는 사람은 처음 보는군.”

       

       그렇다면 받을 수가 없는 물건이다.

       

       내가 무당으로서의 일을 행한 후 받을 수 있는 대가는 한정되어 있다.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입을 열려는 찰나, 두 영감이 먼저 나서서 로메넬의 손을 덥썩 잡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수락할 것 같네.”

       

       “우리끼리는 말을 안 해도 통한다네. 바로 진행하도록 하지.”

       

       영감들의 얼굴을 마주보니 딱 잘라 거절하기가 애매했다.

       

       마치 손주 놈 떡하나 더 챙겨 주고 싶어 하는 얼굴이랄까.

       

       어차피 받지 못할 물건이라면 알아서 그렇게 될 테니···.

       

       그때 가서는 영감들도 별말을 못 하겠지.

       

       “그럼, 바로 시작하시죠. 그 전에 준비가 조금 필요한데…”

       

       필요한 것들을 말하니 멀리서 귀를 쫑긋거리고 있던 엘프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준비가 갖춰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식물 줄기들은 마른 것들만 들고 와야 해요.”

       

       짚이 없으니 최대한 비슷한 식물을 구해 달라고 했다.

       

       대충 보니 새끼줄을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지만 저렇게 촉촉한 상태라면 금방 썩어 없어질 것이다.

       

       “말리기만 하면 되나요?”

       

       “네. 바짝 마른 애들일수록 좋아요.”

       

       나에게 질문을 던진 엘프가 식물 줄기를 물끄러미 쳐다 보며 정령을 소환했다.

       

       “카사.”

       

       화르륵 –

       

       불의 정령은 이곳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묘사되고는 한다.

       

       카사라는 불의 하급정령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냥 작은 아이의 모습이었다.

       

       노움과 비슷한 크기를 가진.

       

       화르륵 –

       

       화륵 –

       

       불길을 흔들며 엘프와 나를 번갈아 보던 카사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멀뚱 멀뚱.

       

       세계수를 보다가 나를 한번.

       

       나를 보다가 세계수를 한번.

       

       어리둥절한 얼굴로 양쪽을 번갈아 보던 카사는 이내 무언가를 알았다는 듯이 세계수를 향해 인사를 꾸벅 올렸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인사를 한번 더 올렸다.

       

       도대체 왜 매번 나한테 인사를 하는 건지···.

       

       “로메넬님, 정령들이 왜 인사를 하는지 아시나요?”

       

       로메넬은 이미 나와 카사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응이 카사와 다를 게 없었다.

       

       나와 세계수를 번갈아 보던 로메넬이 무언가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에 정령들이 하이엘프에게 인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기에 그저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식물을 말리는 카사를 보며 로메넬이 말을 이었다.

       

       “크리스님이라면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히려 저보다 가지와 가까워 보이시니…”

       

       로메넬의 가물은 세계수의 육신에게 나눠받은 것이다.

       

       그런 신가물이 자기보다 가깝다고 느끼는 거라면···.

       

       내 생각을 끊고 엘프가 바싹마른 식물줄기를 내밀었다.

       

       “이 정도면 괜찮나요?”

       

       “네. 딱 좋네요.”

       

       멀리서 형형색색의 천들을 들고 오는 엘프들도 보였다.

       

       대충 준비된 것 같다.

       

       당산제를 지내고 나면 이번처럼 허주가 자리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금줄.

       

       삿된 것의 출입을 금하는 용도로 쓰이는 줄이다.

       

       영기를 잔뜩 때려 넣은 부적을 중간중간 묶어 놓았으니 효과가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 한가요?”

       

       로메넬의 물음에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는 최초일지 몰라도 이미 그 효능이 충분히 증명된 방법이었으니까.

       

       “어지간한 놈들은 다 막아 줄거예요. 나무자체도 신성하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지금 세계수는 그 몸통에 금줄이 치렁치렁 감겨 있었다.

       

       가장 큰 줄기들에는 색색의 천들이 감겨서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고,그것도 모자라 엘프들이 천을 더 올리는 중이었다.

       

       “아니, 거기는 더 올리면 안 돼요. 가지가 쳐지잖아요.”

       

       당산나무의 가지는 하늘을 향해 있어야 한다.

       

       천문을 향해야 당산나무지 가지가 아래로 향하면 전혀 다른 나무가 되어 버린다.

       

       “그거 내려가면 잡귀 꼬인다니까….”

       

       지하로 향하는가지가 많을수록 잡귀들이 앉기 좋은 환경이다.

       

       큰 가지들이 온통 하늘로 향해 있어서 문제는 없겠지만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이미 허주가 한번 앉기도 했고···.

       

       “보자…금줄 잘 둘렀고… 부적 위치 좋고…”

       

       아주 그럴싸한 풍경이었다.

       

       “이 줄들은 때가되면 갈아줘야 해요. 일단 당산제를 지내보도록 하죠.”

       

       당산신에게 풍요와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

       

       세계수를 위한 제사로 딱이었다.

       

       나는 금줄을 매만지며 발을 옮겼다.

       

       저벅.

       

       저벅.

       

       “엘프들을 잘 보살펴 주시고…”

       

       저벅.

       

       “엘프의 마을 또한 잘…”

       

       딸랑 –

       

       “음…?”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손을 바라봤다.

       

       딸랑 –

       

       나는 방울을 흔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들리는 소리는 내 손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직접 울리는 듯한 소리.

       

       투둑 –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툭 –

       

       그 소리의 근원지는 금줄이었다.

       

       툭 –

       

       바닥에 떨어진 금줄이 내 발등을 때렸다.

       

       “금줄이 끊어져…?”

       

       부정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끊어진 금줄도 고작 한 가닥.

       

       “….”

       

       딸랑 –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방울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검게 드리우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큰 횡액이었다.

       

       동시에 껴서는 안 될 운수가 사방에서 느껴졌다.

       

       엘프들을 중심으로.

       

       “상문수…?”

       

       쉽게 말해 죽을 운이었다.

       

       엘프들 주위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시체가 눌러앉은 형국이네.”

       

       당산나무에 금줄이 끊겼으니 이 또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갑자기 상문수가 생겨난다고?

       

       무언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딸랑 –

       

       나무의 중심에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당산나무가…”

       

       나는 조심스럽게 나무에 손을 얹었다.

       

       “….!!!”

       

       머릿속에서 비명이 들렸다.

       

       오른쪽 귀 어림에서 찢어질 듯한 고통도 느껴졌다.

       

       세계수가 무언가를 나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아니, 이건 명백하게 공수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상처 입은 엘프들이 스쳐 지나갔다.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끊임없이 절망을 토해내고 있었다.

       

       조화로운 엘프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절규였다.

       

       “하아…”

       

       안타까움에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세계수는 지금 굉장히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그 엘프들을 지켜보며 말이다.

       

       “이러니 나무가 비어 있지.”

       

       손을 떼어내자 마자 다시 방울 소리가 울렸다.

       

       처음 아이린을 만났을 때 비슷한 장면들을 보았던가.

       

       입이 저절로 움직이며 점사들을 뱉어냈다.

       

       “몸을 풀어 주고 눈을 뜨게 해 놓았더니 이제서야 보는구나.”

       

       아이린에게 뱉어냈던 점사와 비슷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 입이 열렸다.

       

       그때와 달라지지 않은 점사를 내뱉으며.

       

       “많이도 죽겠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몇 편 동안 너무 평화로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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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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