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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사이고 리세 씨의 부친, 사이고 켄지 씨는 신관이 아닙니다. 고고학부를 졸업한 후 향토 유적 관리자로 살아오셨죠. 이미 역사의 유물이 되어버린 폐신사(廢神社) 관리 감독 책임자이기도 하고, 폐신사를 관광지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내신 분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어서 주민들에게 많은 신망을 얻었죠.”

       “아, 아니. 잠깐….”

       “사이고 씨는 그런 아버지의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작년 여름, 아버지의 친우분이 프라이빗 비치(Private Beach)를 사용해도 된다고 했고, 리세 씨는 절친과 함께 그곳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기억나시나요? 사이고 씨의 절친 중에 운전면허증을 딴 분이 딱 한 분이 있습니다.”

       “레, 레나?”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레나 씨입니다. 레나 씨는 운전면허 딴 김에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차를 몰고 갔죠. 차는 평범한 세단(sedan)이어서 5명이 제각기 짐을 갖고 타기에는 조금 비좁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참고 갈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던 도중 다리에서 트럭이 차선을 넘어오게 되었고, 자동차는 다리 아래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사이고 씨만 살아남았죠.”

       “잠깐….”

       “다행히 사이고 씨는 별다른 상처는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물을 먹은 정도였죠. 하지만 다른 친구분들은 안타깝게도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심장마비 한 명, 익사 두 명, 경추골절로 인한 사망 한 명.”

       “잠깐만요…!”

       “하지만 사건의 충격 때문일까요? 사이고 씨는 정신적인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건망증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기억이 매일매일 리셋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망상에 가까운 과거 왜곡과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견디다 못한 사이고 켄지 씨께서 우리 병원에 입원을 결정했습니다.”

       “잠깐, 잠깐! 잠까아아안!”

         

       리세는 이를 악물며 의사에게 소리쳤다.

         

       “거짓말이지!”

       “진실입니다.”

       “거짓말이야!”

       “진짜입니다.”

       “싫어!”

       “믿어주십시오. 저는 오직 진실만 말하고 있습니다.”

       “싫어! 싫어어어어!”

       “사이고 씨. 저를 믿어주십시오. 현실을 직시해주세요.”

         

       의사는 담담히 악을 쓰는 리세를 보며 말했다.

         

       “지금 사이고 씨의 증상은 심각합니다. 이제는 환각과 환청까지 들리고, 꿈속에서 악몽의 형태로 트라우마가 재현되고 있어요. 이 상태가 지속한다면 나중에는 정말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할지도 몰라요. 후우우우…. 사이고 씨. 정신도 항상성이 있어요. 항상 정상 상태로 유지되려고 하는데, 악화한 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악화한 상태를 정상으로 알게 됩니다. 그럼 정말 치료가 어려워지는 거예요.”

       “난 미치지 않았어! 미치지 않았다고요!”

       “하아….”

         

       의사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리세의 난동을 쳐다보았다.

         

       “미치지 않았어요 난! 항상성?! 항상성이 뭔데! 난 연속성밖에 몰라! 꿈은 연속…성?”

         

       그 순간 리세의 몸이 딱 굳었다.

         

       “연속성?”

         

       연속성.

       꿈의 연속성.

       꿈은 연속적으로 이어지려고 한다.

       그렇기에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것은 연속성이다.

         

       『 리세! 내가 알려준 걸 잊어선 안 돼! 』

       『 리세! 들리느냐! 리세! 』

       『 리얼리티 체크를 해야 한다! 』

         

       리얼리티 체크(Reality Check).

         

       그 순간 리세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의사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리얼리티 체크. 리얼리티 체크를 해야 해.”

         

       그녀가 배운 리얼리티 체크의 방법은 세 개.

         

       “리얼리티 체크를…해야…하는데…?”

         

       첫 번째는 코를 막고 숨을 쉬는 것이다.

       꿈에서는 손으로 코를 막아도 숨이 잘 쉬어진다.

         

       하지만 코를 막아야 할 그녀의 팔은 단단히 묶여있었다.

         

       두 번째는 시계를 보는 것이다.

       꿈에서는 글자와 숫자가 주기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그것을 본다면 바로 꿈인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방 안에는 시계가 없었다. 글자가 적힌 것은 노트와 의사가 손에 들고 있는 차트가 있지만, 차트는 종이가 보이지 않도록 의사가 잡고 있었고 방금 전 그녀가 보았던 노트는 간호사가 손에 들고 있었다. 참 기묘하게도 리세가 보는 위치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절묘하게 표지의 글자를 가리는 각도였다.

         

       세 번째는 손가락을 있는 힘껏 뒤로 젖히는 것.

       꿈이라면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데다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손가락이 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팔이 묶여있다.

       손가락을 젖히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단단히 말이다.

         

       “하, 할 수가 없어…. 리얼리티 체크를…할 수 없어….”

         

       리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의사는 그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왜, 뭐가 잘 안됩니까?”

         

         

         

        * * *

         

         

         

       치료는 계속되었다.

       몸이 철저하게 구속된 리세는 오직 치료를 받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이고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신의 아버지는 신관이 아닙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의 아버지가 신관이라면 신을 모시고 있을 텐데, 당신은 그 신의 이름과 내력을 제대로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망상은 논리와 계산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단순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의 기억이 가진 모순이고, 당신의 과거가 거짓이라는 증거입니다.”

         

       의사는 몇 번이고 말했다.

         

       “친구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것, 반드시 맞이하는 일이에요. 다만 당신과 같이 여행을 가던 도중 그런 사고가 난 것은 비극. 그래요. 인생 전부를 둘러봐도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커다란 비극이겠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세요. 사이고 씨가 신을 믿고 있고, 그 신이 사이고 씨에게 힘을 주고 있다면 어째서 그 비극을 막지 못했습니까?”

         

       의사는 몇 번이고 그녀의 과거를 부정하듯 말했다.

         

       “사고를 믿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 여기 신문기사 보이시죠? ㅁㅁ대교에서 추락…20대 여성 4명 사망, 1명 경상. 날짜도 딱 작년입니다. 그래요. 사이고 씨는 21살이 아닙니다. 22살이에요. 사고 이후 사이고 씨는 제대로 기억을 할 수 없었고, 몇 달 전 우리 병원으로 입원했습니다.”

         

       리세는 철저하게 침대에 묶인 상태로 의사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믿어주십시오. 저는 리세 씨를 치료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리얼리티 체크요? 보여드릴 수 있어요. 몇 번이고, 원하신다면 몇 번이고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사이고 씨가 앓고 있는 통합실조증으로 인한 환각이 아니라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습니까? 저도 리얼리티 체크에 대해선 조금 알고 있어요. 자각몽을 꾸는 사람이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죠? 간호사! 팽이랑 시계 준비해줘요!”

         

       의사는 철저하게 리세의 말을 부정했다.

       리세의 생각을 부수고, 리세의 믿음을 부수고, 리세의 정신을 부쉈다.

         

       팽그르르.

         

       간호사가 가져온 팽이가 탁자 위에서 돌았다. 팽이는 돌고 또 돌며 바닥에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 리세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팽이가 돌았습니다. 점점 회전이 낮아지고, 아. 지금 멈췄군요. 하지만 사이고 씨. 당신의 눈에 저 팽이는 어떻게 보이나요? 저 팽이가 멈췄나요, 아니면 계속해서 돌고 있나요?”

       “돌고 있어요! 돌고 있다고! 여긴 꿈이에요!”

       “하아…. 사이고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이고 씨는 지금 통합실조증을 앓고 있어요. 통합실조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환각과 환청이에요. 지금 환각을 보고 계신 겁니다.”

       “아니에요! 내 뇌는 멀쩡하다면서요!”

       “얼마 전 검사 결과 그렇게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이고 씨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고, 통합실조증과 정확히 일치하는 증상을 보이는 건 사실이에요. 뇌가 멀쩡해도 충분히 환각을 볼 수 있고, 지금 검사를 해보면 도파민이 과다 분비가 되어있을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까 지금 사이고 씨가 보고 있는 돌고 있는 팽이는 현실이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아니에요! 저렇게…. 저렇게 돌고 있는거…얼?”

         

       리세가 다시 탁자를 보자 팽이가 멈춰있었다.

         

       “후우…. 이거 중증이군요. 좀 오래 걸릴 수도 있겠는데…. 간호사! 시계도 좀 줘봐요.”

         

       8:45.

         

       2:13

         

       9:54

         

       1:11

         

       리세가 한 번 눈을 깜빡일 때마다 디지털 시계의 숫자가 널뛰듯 변해갔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보는 게 아닌가 싶어 눈을 부릅떴지만, 시야를 돌릴 때마다 바뀌는 시계의 숫자는 확실하게 이곳이 꿈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의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때요. 지금 시간이 마구 변하는 것처럼 보이나요?”

       “네! 저렇게, 저렇게 변하고 있잖아요!”

       “사이고 씨. 제 눈에는 꺼져있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의사는 디지털 시계를 뒤집었다.

         

       “어?”

         

       뒤집힌 디지털 시계의 전지 넣는 부분은, 비어있었다.

         

       “저를 믿어주셔야 합니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치료의 첫걸음입니다.”

         

       치료는 계속되었다.

         

       “자, 이걸 봐주세요. 사이고 씨가 그동안 써온 일기장입니다. 점점 심각해지는 게 눈에 보이죠? 사고우원증(Circumstantiality)과 사고의 지리멸렬(Incoherent thinking)이 주로 나타나는데, 이 상태에서 더 심해지면 말비빔(word salad)도 일어날 수 있어요. 그 지경까지 가면 정말 치료하기 어려워지는겁니다.”

         

       의사는 노트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이건 사이고 켄지 씨의 재직증명서입니다. 사이고 씨는 국가 공무원에 속해있어요. 보이시죠? 이건 공무원증입니다. 그리고 이건 사이고 켄지 씨가 고고학부를 졸업할 때 받았던 졸업장이고, 이건 학위 수여 증명서입니다. 어디를 봐도 신관과는 연관이 없어요. 사이고 켄지 씨는 신관 복장을 하고 관광객들을 맞은 것이지, 신을 모시는 사람이 아니에요. 어디 신관이 공무원과 겸직을 한답니까? 그런 소리 들어본 적 있어요?”

         

       온갖 서류들을 보여주며 그녀의 아버지가 신관이 아니라고 부정했고.

         

       “이건 뉴스 영상입니다. 어지간하면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더군요. 여기 세단 보이시죠? 사이고 씨와 친구분들이 타고 있던 차량입니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트럭 한 대가 중앙선을 침범해서 다가왔고, 세단은 피하고자 핸들을 팍 틀었죠. 그런데 운 나쁘게 틀었는데도 트럭과 부딪쳤고, 이렇게 다리 아래로 추락하게 된 겁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녀의 친구가 죽었다고 말했다.

         

       그 과정은 끔찍할 정도로 길었으며, 리세의 진이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후우…. 이 이상은 계속해도 의미가 없겠어요. 일단 한숨 자고 시작하죠. 아,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사이고 씨가 나을 때까지. 세뇌에서 풀려날 때까지 이 병실에 있을 겁니다. 잊지 마세요, 저는 사이고 씨를 치료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눈을 뜨면 제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완전히 지쳐서 눈을 감았을 때 잠을 자도 좋다는 의사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녀는 복잡해지는 머리를 수마로 덮으며 애써 잠에 빠졌다.

         

         

         

        * * *

         

         

       리세는 친구들을 만났다.

         

       “안녕, 리세?”

       『 환상에 속지 마라! 』

       “다시 만나서 반가워!”

       “우리 백물어 다 안 끝냈잖아!”

       “같이 여행가자!”

       “신이 우리를 불러줬어!”

       『 리얼리티 체크를 해라! 』

       “이건 꿈이 아니야! 신은 존재한다고!”

       “우리는 살아있어! 어? 입이 왜 이렇게 찢어졌냐구? 그게 중요해?”

       “얼굴에서 왜 물이 계속 흘러나오냐고? 아하하하하! 리세 웃기다!”

       “그나저나 리세!”

         

       꿈속에서 만난 친구들은 일제히 입을 양손으로 찢어발기곤 머리통보다 커다란 입을 쩍 벌리며 소리쳤다.

         

       “다시 들어갈 시간이야!”

         

         

         

        * * *

         

         

       눈을 뜨니 의사가 있었다.

         

       의사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리세의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일어났습니까? 악몽을 꾼 것 같더군요.”

         

       피로감에 찌든 의사의 얼굴은 더 수척해져 있었다. 다크서클은 더 짙어지고 넓어져 있었고, 과장을 좀 보태서 다크서클이 발에 닿을 정도 같아 보였다. 리세는 그 모습에 묘한 죄책감과 고마움을 느꼈다.

         

       “고, 고마워요….”

       “별말씀을.”

         

       짧은 대화였다.

       하지만 적어도 리세는, 대화보다는 더 긴 감정의 교류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럼 치료를 계속해볼까요.”

         

       그리고 다시 치료가 재개되었다.

         

       “사이고 씨. 당신의 치료는 현실을 인지하고 사실을 인정하는 데부터 시작합니다. 일단 인정하십시오. 아주 조금이라도 좋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신관이 아니고, 작년 당신의 친구들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22살입니다. 이걸 인정해주세요. 기억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저를 믿어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치료를 위해 여기 있고, 당신의 믿음이 있어야 치료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낫게 해주고 싶어요.”

         

       …..

       ….

       …

         

         

        * * *

         

         

       다시 악몽을 꾸었다.

         

       이번엔 리세의 아버지가 꿈에서 나와 입을 크게 벌리고 그녀의 머리통을 물어뜯었다.

         

        * * *

         

         

       의사가 말했다.

         

       “당신 세뇌의 근원은 ‘신’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신이요. 마치 블랙박스처럼 당신 마음속에 깊숙이 가라앉아서 당신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주범이라 이 말입니다. 사이고 씨가 아무리 현실을 인지한다고 한들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언제고 병은 재발할 수 있어요. 트라우마란 극복하거나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거예요. 정신은 너무 섬세해서 하나만 고장 나도 다른 부분까지 고장이 나버려요. 연쇄적으로, 그렇게 파탄이 나는 거예요.”

       “고장….”

       “저는 그런 환자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간단한 우울증 때문에 목숨을 끊는 분을 보았고, 환상통 때문에 뇌가 망가져서 매일매일 약을 달고 사는 분도 봤어요. 저는 사이고 씨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원해요. 이건 진심입니다.”

         

       대체 이 치료는 언제까지 하는 걸까?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리세는 다시 눈을 감았다.

         

         

         

        * * *

         

         

         

       꿈을 꾸었다.

       길을 가던 행인이 리세의 목을 물어뜯었다.

         

       의사가 말했다.

         

       “허구를 부정하고 현실을 직시하세요. 당신은 신이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건 그냥 허구의 존재일 뿐입니다. 귀신인 줄 알았는데 마른 억새였다는 말처럼, 확인해보면 그건 모두 당신일 뿐이에요. 다른 이름을 붙이고 외면한다고 하더라도 그 근본은 바뀌지 않아요!”

         

       꿈을 꾸었다.

       리세는 좁은 차 안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빠—앙하는 귀청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의사가 말했다.

         

       “사이고 씨…. 아니. 리세 씨. 당신은 낫고 있습니다.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꿈을 꾸었다.

       리세의 아버지는 어릴 적 리세에게 목말을 태워주고 있었다.

         

       “리세! 무녀 좋아하니?”

       “응? 응! 무녀 좋아!”

       “그래? 그럼 이제부턴 무녀 옷 마음껏 입을 수 있단다! 자랑해도 좋아!”

       “왜에? 나 이제부터 무녀야? 아빠 신관이야?”

       “아니! 신관은 아니지만…. 신사는 관리하게 됐단다!”

         

       의사가 말했다.

         

       “리세 씨. 마침내 인정하셨군요…. 하지만 마지막 고비가 남았습니다. 휴우…. 말에는 힘이 실린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말이라는 것은 일종의 자기 선언입니다. 선언을 좀 더 강하게 마음에 박는 역할을 하는 거죠. 자, 저를 따라 해주세요.”

       “네.”

       “아버지는 신관이 아니다.”

       “아버지는 신관이 아니다.”

       “친구들은 죽었다.”

       “친구들은…죽었다….”

       “신은 없다. 신은 나와 한 몸이고, 나의 또 다른 자아였다.”

       “신은 없다. 신은 나와 한 몸이고, 나의 또 다른…. 자아였다….”

       “흠…. 조금 부족하군요. 신의 이름과 당신의 이름을 넣어서 말해볼까요? 그게 더 효과가 좋을 것 같네요.”

         

       리세는 의사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むくりこくりの犬神)는 없다.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는 사이고 리세와 한 몸이고, 사이고 리세의 또 다른 자아였다.”

         

       의사는 그녀의 말에 짝, 짝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잘했습니다! 정말. 정말 기쁩니다. 사이고 리세 씨는 치료되었어요! 과거의 주박에서 벗어나, 트라우마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저를 믿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는 감격에 차서 리세를 그대로 와락 껴안았다. 리세는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서 살짝 몸을 떨었지만 이내 눈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저를 치료하느라 고생하셨고. 그리고…저를 포기하지 않아서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의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리세 씨의 완치를 기념하며, 마지막에 하신 자기 선언을 크게 외쳐볼까요?”

       “에? 크게요? 그건 부끄러운데….”

       “하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병실은 방음이 잘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밖에는 안 들릴 거에요.”

       “그, 그러면…해볼…까요?”

         

       리세는 살짝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는 없다.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는 사이고 리세와 한 몸이고, 사이고 리세의 또 다른 자아였다!”

       “작아요! 더 크게!”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는 없다.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는 사이고 리세와 한 몸이고, 사이고 리세의 또 다른 자아였다!”

       “다시 한 번만 더 해볼까요!”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는 없다.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는 사이고 리세와 한 몸이고, 사이고 리세의 또 다른 자아였다!”

         

         

         

        * * *

         

         

         

       리세가 눈을 떴을 때 의사가 눈앞에 있었다.

         

       “그렇다. 신체의 이름은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むくりこくりの犬神)고, 이제는 없어질 것이고.”

         

       의사는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끔찍한 몰골의 귀신의 기다란 머리털을 장막처럼 두르고, 바닥에 충견(忠犬)처럼 꿇어앉은 채 몸을 움찔거리고 있는 귀신의 머리를 한 손으로 억누르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사이고 리세는 새로운 신을 모시게 될 것이다. 어떠한가.”

         

       양복.

       끔찍한 귀신.

       통나무에 묶여있는 아버지.

         

       기억이 돌아온다.

       모든 기억이, 돌아온다.

         

       “아.”

         

       리세는 몽중몽(夢中夢) 속에서 헤매며 잃어버린 기억을 그제야 떠올릴 수 있었다.

         

       “아…아!”

         

       그리고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도 깨달았다.

         

       “아아아!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

        “참으로 고맙도다. 그 대가로 너에게 복을 주겠노라.”

       “아아아악! 아아아아!!!”

         

       본전에는 리세의 절규와 주술사의 기쁜 웃음이 가득 메웠으니.

         

       오직 통나무에 묶인 사이고 켄지만이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러스 전환하면 연참을 해야 한다고 해서….
    얍 🙂
    6000자로 봐주세요…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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