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30

       나는 전생에 결혼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아니, 연애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내 친구들은 그런 나를 비혼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절대로 비혼주의자는 아니었다.

        

       언젠가 여자친구를 사귀게 된다면, 그래서 마음이 적당히 맞고 능력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면 결혼할 생각은 있었다.

        

       한마디로,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 그런 상황이 너무 오랫동안 당연히 지속되다 보니 내 주변 친구들이 나를 보며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으로 착각했을 뿐.

        

       사실 나도 그렇게 일부러 떠올리지 않으면 종종 헷갈릴 정도이긴 했다. 아예 혼자 지내던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실제 여자를 보면서 사귀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도 많이 줄었다. 애초부터 가능성 자체를 굳이 따지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내 주변에 원형으로 가느다란 선을 그어두고, 그 안에 들어올 사람을 정해두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보통 내 가족이거나, 아니면 아예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사귀던 애들 뿐이었다. 대학교 졸업 이후에 알게 된 사람 중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건 성별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나라도, 결혼식에 갈 때면 꽤 즐거웠다.

        

       친구 중 몇 사람이 결혼하게 되고, 친척 중에도 결혼하는 이들이 생겼다.

        

       나와 친했던 사람들이 긴장한 듯 덜덜 떨면서도 정장을 입고 방문한 나를 보고 얼른 달려와 악수하며 ‘찾아와줘서 고맙다’라고 하는 것이 좋았다. 그런 친구에게 앞으로 잘 살라는 덕담을 하는 것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다른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것도 즐거웠다.

        

       더 어렸을 때는 사람 만나는 것보다는 결혼식 이후의 밥시간이 더 즐거웠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으니 생각도 조금 바뀌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사실, 이쪽으로 오고 나서는 그런 결혼식에 참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아니, 이 경우에는 조금 다르지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못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황녀님.”

        

       “……일부러 그런 호칭을 쓰는 거야?”

        

       “아니, 여기서 호칭을 쓰지 않으면 그림이 조금 이상해질 것 같지 않아?”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로는 처음 만나는 건가.

        

       사실 그 졸업이라는 것 자체가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긴 했다. 불과 저번 달이었으니까.

        

       “뭐 어때. 오히려 이렇게 말 놓고 지내는 쪽이 사람들한테 보였을 때 더 유리할걸. 무려 황녀랑 말 놓고 지내는 거잖아.”

        

       그래도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여 조금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제이크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제이크는 주변을 얼른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야 당연히, 결혼식의 주인공 근처였기 때문이다. 결혼식 주인공 치고는 평소와 다른 부분이 옷차림새 정도뿐이었지만.

        

       음, 그래도 지금은 그 차림새가 아카데미 다닐 때보다는 훨씬 더 정갈해 보이긴 했다.

        

       “그래도 조금 봐주라. 아무리 그래도 황녀한테 반말 쓰는 미친놈이 되고 싶지는 않거든.”

        

       “남들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학창 시절을 보낸 너희가 할 이야기는 아니네.”

        

       사실 ‘학창 시절’같은 말을 하기에는 우리가 아직 그렇게 나이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쪽 세계의 다른 사람들 눈으로 봤을 때는 또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살던 곳에서처럼 쭉 독신을 유지했다가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기 딱 좋다. 물론 나는 그렇다고 결혼할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그럼…….”

        

       하지만, 뭐. 친구 결혼식이지 않은가.

        

       주변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긴 했지만 다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우리 대화가 거기까지 들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제이크가 말한 대로 조심해서 나쁜 것은 없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서도 아무 데서나 아카데미의 말투를 쓰면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지 모르니까.

        

       정말이지 피곤한 시대다.

        

       “신부는 보셨습니까, 제이크 공자?”

        

       “아쉽게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식장에 들어가기 전 신부의 얼굴을 보는 것은 하면 안 될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그럼 신부께선 어디 계십니까?”

        

       “그야 당연히 신부 대기실에 계시겠지요. 먼저 오신 누이분도 그곳에 가 있으실 겁니다.”

        

       “어느 쪽의 누이를 말씀하시는지요.”

        

       “양쪽 다입니다.”

        

       오,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난 모양이다. 앨리스는 물론이고, 클레어까지.

        

       아무래도 내가 제일 늦게 온 모양인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친구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전부 신부 곁에 가 있을지 모르겠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로티보다 조금 어두운 피부색을 한 한 여인이었다. 만약 로티가 순조롭게 나이를 먹는다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외모가 로티와 닮았고, 입고 있는 옷도 꽤 고급스러운 드레스였지만—

        

       아무래도 조금 초조해 보였다. 그런 드레스를 입어보는 것이 오랜만이기라도 한 것인지 드레스 자락을 쥔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던 데다가, 주변에서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잠깐만.”

        

       내가 제이크에게 작게 말하자, 제이크는 내가 무슨 생각인지 알아차렸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사실 제이크는 내가 말을 걸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녀와 대화 중이었다. 그나마 자기 딸의 연인인 제이크를 몇 년 동안 보아와서인지 제이크와의 대화는 곧잘 하였지만, 그래도 이 결혼식에 참석할 정도로 지체 높은 집안의 사람과 인연은 없을 것이다.

        

       ……아니지, 따지자면 있기는 하지만…… 별로 좋은 인연은 아니었다. 악연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려나.

        

       나는 제이크에게 무릎을 살짝 굽혀 보이고, 로티의 어머니 리디아, 아니, ‘아서’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셨는지요.”

        

       “아, 황녀님.”

        

       로티의 어머니는 바로 나를 알아보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신분은 평민의 신분이었지만, 다년간 대귀족 곁에서 일한 적이 있으신 분이었다. 당연히 예법은 완벽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보다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따님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내가 정중하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숙이자,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자리에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신분이 낮은 이는 없다. 초대된 평민조차도 아카데미의 평민 반 출신 아이들이고, 그 아이 중에서 내 얼굴을 모르는 애들은 없으니까.

        

       그렇게 유명한 ‘황녀’가 고개를 숙여 보인 ‘식민지 출신’ 사람에게 시선이 가는 것은 당연했다.

        

       “화, 황녀님, 고개를……!”

        

       로티의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얼른 그렇게 말했다.

        

       “기분은 좀 어떠세요? 따님이 그렇게 좋아하던 연인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러고 보니 로티 어머니의 신분도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은데.

        

       로티는 약속했던 대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비아 팬그리폰’의 기사였다. 제국에서 기사 작위 자체는 귀족 신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기사 작위를 내린 이의 신분에는 영향을 받는다.

        

       황족으로 인정받는 이가 거의 남지 않은 제국에서 황족이 직접 내린 기사 작위는 그 존재감이 거대했다.

        

       게다가, 내가 오기 전에 앨리스나 샤를로트도 한 번씩은 이분과 대화를 나누고 갔으리라.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에서 쉽게 접근하지 못한데는 그런 이유도 있겠지. 분명 높은 사람과 연이 닿아있지만, 신분이 그렇게 높아 보이지는 않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말을 걸기에는 인연이 없다.

        

       적어도 앞으로는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지겠지.

        

       “……행복합니다. 사실 딸이 그렇게 미소지을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로티의 어머니는 생각만 해도 감격스럽다는 듯 살짝 젖은 눈동자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내 코도 조금 찡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황녀님 덕분이었다는 말도 자주 들었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요?”

        

       “은혜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그저 친구로서 서로 돕고 살 뿐인데요. 저도 로티에게 받은 도움이 많은데, 그걸 은혜라고 생각하고 살아갈까요?”

        

       “아,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저 눈앞에 있는 행복을 좇으셔도 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제 친구와 제 친구의 가족이 어떤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로티의 어머니는 다시 한번 내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

        

       “오, 언니, 이제야 왔네!”

        

       신부준비실 밖으로 나오던 클레어와 마주쳤다.

        

       “해결해야 할 일이 좀 있었으니까. 그래도 결혼식 전에 도착할 수 있었어.”

        

       “언니 찾으러 나오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클레어의 손에는, 요 몇 년째 요긴하게 쓰는 중인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로티는?”

        

       “안에 있어. 엄청 예뻐. 벌써 사진도 몇 장이나 찍었다니까.”

        

       흥분해서 그렇게 말하는 클레어를 보고 쓴웃음을 지은 나는, 그대로 클레어와 함께 신부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클레어가 한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우박이아저씨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다른 사람의 소설을 보다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게 꿈이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읽었던 소설이 해리포터와 불의 잔이었는데, 저는 지금도 그 소설을 제가 읽은 첫 소설로 고른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진짜 재미있었거든요. 처음 본 소설이 그렇게 재미있는 소설이었기에 제가 지금까지도 소설을 계속 찾아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가지고 있던 꿈을 결국에는 이루게 되었고요. 만약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다면 한 번 써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굳이 어딘가 올리지 않더라도, 짧은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니까요!

    이렇게 후원해주신 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후원 감사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독자님께서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