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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0

    <330 – 살인적인 강의시간표>

     

    오랜만에 돌아온 아카데미는 서비스가 투철했다.

    우선 1학년 2학기에 허락될 리가 없던 우량강의들이 부쩍 늘어났다.

     

    스텐드 밀 교수님의 <기능독점론>.

    피타고라스 교수님의 <지식판정으로 마법쓰기>.

    데모니카 교수님의 <피크닉으로 힐링하기>.

     

    기억대로라면 1학년들의 전체적인 성적이 일정수준 이상을 달성해야 개방되는 히든강의다.

    집요하게 서로를 견제하거나 평화에 찌들어 나태하거나 챕터보스가 날뛰어서 면학분위기가 개판이 된 회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벤트!

    헤스티아의 멘탈을 잘 관리하고 친구들을 챙긴 보람이 이렇게 돌아왔다.

     

    “대공자님. 솔직히 말하십쇼. 우리 엿 먹이려고 일부러 힘든 강의만 골라 들으시는 거죠?”

    “…오해다. 강의 하나쯤은 마음 편히 쉬면서 학점을 챙기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진짜 골라도 어떻게 이딴 것만… 이거 <어디서나 잘 자기>보다 심하잖아요…”

     

    아카데미 생활을 자체 하드모드로 하고 있는 안데르센 대공자도 나름 지분의 한 몫을 하겠지?

    서귀연의 타의 모범이 되는 아카데미 생활은 정말 언제 봐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금요일에 강의 같이 들어요!”

    “진심이냐? 내가 들은 강의를 같이 듣겠다고?”

    “그럴 수도 있죠 머!”

     

    안데르센 대공자는 자신과 같은 강의를 듣겠다는 내 결정에 몹시 동요했다.

    가뜩이나 서귀연의 귀족들과 추종자들에게도 따가운 눈총을 받던 그는 주변의 사람을 모두 물리고는 내게만 따로 언질을 남겼다.

     

    “지금이라도 수강신청을 취소해라. 신청취소가 안 된다면 아예 포기해버려.”

    “저도 어려운 강의 듣는 거 좋아해요!”

    “누구나 겪어보기 전에는 그렇게들 말하지. 서귀연 내에서 욕을 먹는 건 괜찮다. 그들의 잘못된 선택은 리더로서 책임질 수 있으니까. 네가 휘말리는 건 경우가 다르다. 서귀연의 힘으로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으니 아카디아를 볼 낯이 없어.”

    “그래도 전 들을 거예요!”

    “후우… 누굴 닮아서 이리 고집스러운지 모르겠군. 정 듣겠다면 일단은 챙겨주도록 노력해보마.”

    “에이프릴도 데려올까요?”

    “…필요 없다.”

     

    눈동자가 엄청나게 떨리셨어요, 대공자님!

     

     

    * *

     

     

    새 학기가 되어서 좋은 점 두 번째.

    범죄현장 주변마냥 접근금지 띠가 둘러쳐진 구역이 아카데미 곳곳에 늘어났다.

     

    “여긴 머지?”

    “조심해. 유적에서 본 마나과밀집구간이랑 느낌이 비슷해.”

    “그거 위험해요?”

    “잘못 들어가면 신체가 찌그러지거나 허공에서 불이 붙기도 해. 자신을 지킬 수단이 확실하지 않으면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돼.”

    “히익!”

     

    이번에도 브론즈 교수님의 강의를 신청한 티토소가의 호기심에 이사벨이 찬물을 끼얹었다.

     

    “헤에. 이사벨은 은근히 지식이 높네요.”

    “몇 번이고 말하지만 나는 요리사가 아니라 에소니아 탐험단의 차기단장 내정자라니깐. 이 정도 경험쯤은 지니고 있다고.”

    “힝. 부럽당… 나두 탐험가 하고 싶어…”

     

    제 손가락을 입에 물고 칭얼거리는 티토소가.

    그런 티토소가의 볼을 콕콕 찔러 불렀다.

     

    “티토티토. 이거 봐라?”

    “먼뎅?”

    “얍!”

     

    접근금지테이프를 무시하고 폴짝 뛰어들어가기!

     

    [훌륭한 도약으로 접근금지구역에 진입했습니다.]

    [도약 경험치+1]

     

    “히에엑! 거긴 들어가면 안 돼! 몸이 터져서 죽을지도 모른대자나!!”

    “오크노디! 위험하게 무슨 짓이야. 빨리 밖으로 나오지 않고 뭐해?”

    “이사벨도 말했잖아요. 자신을 지킬 수단이 있으면 들어가도 된다고. 수단쯤은 이미 가지고 있다고요?”

     

    [근방에서 조립되는 마나패턴을 연속적으로 끊어내며 이상현상발현을 저지했습니다.]

    [마나제어술 경험치+1]

     

    많은 량의 마나나 강력한 마나연공법이 없어도 고인물의 테크닉만 있다면 마나과밀집지대에서 발생하는 이상현상은 손쉽게 저지할 수 있다.

    이것도 패턴의 결집을 끊을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더 높아지거나 재발현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불가능하지만 여기는 1학년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그렇게까지 흉악한 밀도가 계측된 마나과밀집지대는 아니었다.

    현상이 발현되지 않는 마나과밀집지대는 인간에게는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처럼 여겨지지만 다른 생물에게는 제집처럼 편안함을 선사한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마나 속을 헤엄치는 정령물고기가 그 주인공이다.

     

    “물고기야 이리온~”

     

    지속적으로 이상현상 발현을 억제시키고 마나를 안정시키자 정령물고기가 차원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뻐끔뻐끔

    허공을 부유하며 입을 여닫는 정령물고기의 모습에 티토소가뿐만 아니라 이사벨마저도 물고기마냥 입을 멍하니 열었다.

     

    “예쁘다…”

    “그치? 예쁘지?”

    “잡아서 키울 거야?”

     

    부모에게 애완동물을 키우자고 조르는 아이처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조르는 티토소가.

    아쉽지만 난 네 엄마가 아니란다!

     

    “이렇게 할 거야!”

     

    암흑마나로 정령생명체의 몸체를 휘감고는 그대로 입을 아앙 벌렸다.

    정령은 실제 생명체와는 메커니즘이 다르기에 살도 뼈도 눈에 보이더라도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에너지체로 이루어진 형태.

    그래서 이런 짓도 할 수 있다.

     

    꿀꺽!

     

    통으로 삼켜버리기!

     

    “꺄아아아악! 물고기, 물고기가아아…!”

     

    ━━━

    [요리도감에 희귀요리 <정령물고기>가 수집되었습니다.]

    ━━━

    [식품도감 <레어><해산물><생식><정령> 스택이 상승합니다.]

    ━━━

    [컬렉션효과]

    생식요리수집20종 – 자연치유력 2%증가

    ━━━

    레어요리 [정령물고기 생식] 수집 – [고운피부], 마나순도1%상승 습득.

    ━━━

     

    길에서 본 댕댕이가 보신탕집에 팔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슬픈 얼굴을 한 티토소가.

     

    “힝잉잉.”

     

    보신탕집 뒷마당에 버려진 목줄을 발견한 것처럼 눈물이 고이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진정해, 티토소가!”

    “물고기 왜 머거써…”

    “이걸 먹으면 마나가 맑아져!”

    “울 아빠도 그랬어… 뽀삐 먹으면 건강해진다고… 그래서 뽀삐가 죽었어…”

     

    앗차차.

    이미 티토소가 파파가 써먹은 패턴이었구나.

     

    “거짓말이 아니야. 실제로 정령물고기는 영약의 주재료로 쓰여.”

    “이사벨.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요!”

    “앗, 미안.”

    “히끅히끅!”

    “봐요, 티토소가가 더 울잖아요!”

     

    1단계 울음소리 힝잉잉에 이어서 2단계 울음소리 히끅히끅까지 나왔는데도 도통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티토소가.

    설마… 3단계 으앙앙앙 울음까지 터뜨리려는 건가!?

     

    “미안해, 티토소가. 그래도 정령물고기는 생태계의 먹이피라미드 하층에 자리한 피식자야. 아무리 귀여워도 누군가에겐 잡아먹히게 되어있어.”

     

    안 된다.

    그런 합리성에 의거한 설득으로는 티토소가의 눈가에 맺힌 힝잉잉이나 심금을 울리는 히끅히끅, 듣는 사람까지 머리가 아픈 으앙앙앙을 막을 수 없어.

    칫,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나는 큰맘 먹고 티토소가의 손을 잡았다.

     

    “울음 뚝! 안 울면 다음에 잡는 정령물고기는 티토소가한테 줄게. 울면 안 줄 거야!”

     

    세상 서러워라 울던 티토소가가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쳤다.

     

    “정말로?”

    “응.”

    “정말정말로?”

    “응응.”

    “히히. 오크노디 너무 좋아!”

     

    이사벨이 기가 막혀서 한 마디 했다.

     

    “누가 애인지 모르겠네.”

     

    기어이 고인물에게서 영약재료를 뺏어먹는 티토소가.

    그래도 밉지 않은 귀여움은 정말 치트키 급이다.

     

     

    * *

     

     

    지젤은 기회가 되면 오크노디에게 재단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물어보려고 결심했다.

    물론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대놓고 꺼낼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강의가 끝나고 시간이 빌 때, 남들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안전한 장소로 이동한 뒤에나 물어볼 수 있는 민감한 사안.

    그래서 지젤은 기다렸다.

    오크노디도 사람인데 기다리다보면 강의를 듣지 않는 시간이 찾아오겠지.

     

    오전 9시부터 10시 50분.

    1교시, 홈룸시간.

    오크노디는 강의를 신청하느라 바빴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2시 50분.

    2교시, 해체의 모든 것.

    브론즈 교수는 이번 학기 강의는 <안목>의 연장선상으로 다양한 함정을 해체하거나 자물쇠를 해체하는 방법 등을 가르친다고 말하며 단계별 잠금장치를 나란히 놓았다.

    가장 먼저 최고등급의 잠금장치까지 풀어버린 오크노디는 신이 난 걸음으로 물고기를 먹겠다며 사라졌다.

     

    오후 1시부터 오후 2시.

    아카데미 공식 점심시간.

    이 시간을 침해하는 교수는 온갖 악질교수들이 넘쳐나는 아카데미 내에서도 최악의 쓰레기로 분류되지만 다행히도 브론즈 교수님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뒤늦게 풀려나서 오크노디를 찾아다녔지만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찾아낼 겨를이 없었다.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 50분.

    3교시, 전투기능 테크트리.

    암흑상회의 정보망이 한 건 해냈다.

    기사학부의 소굴에서 오크노디가 발견됐다.

     

    “기능이란 같은 분야에서 동시에 발동하지. 그런 동시발동기능을 몇 개나 지니고 있는지로 같은 활동, 같은 작업의 위력과 효율이 크게 뒤바뀐다. 일반인의 휘두르기에는 보정배율도 형편없는 <막노동> 하나라도 붙으면 다행이지만 용병의 휘두르기에는 보정배율이 튼튼한 <검술><근성>이 따라오지. 그리고 여기 오크노디는 무려 5종의 관련기능을 동시에 펼쳤다. 모두 박수.”

     

    짝짝짝.

    떨떠름한 얼굴의 기사학부 지망생들 사이에서 에헤헤 웃는 꼴을 보니 오크노디 때문에 마음 졸였던 시간들이 허탈하게 느껴졌다.

    꾸벅 인사하고 강의장 밖으로 타다닷 달려 나가는 모습에 지젤이 기겁하며 외쳤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어라? 지젤아조씨. 여기서 머해요?”

     

    그 잠깐 사이에 담벼락을 박차 올라 나무로 뛰어오르려던 오크노디가 고양이처럼 두 손 두 발로 담벼락을 짚고 멈춰 섰다.

     

    “저녁식사 후에 잠시 재단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단 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혹시 시간이 되십니까?”

     

    마법시계를 꺼내 일정표를 본 오크노디가 대답했다.

     

    “안 돼요!”

    “저런. 강의가 있습니까?”

    “넹. 7시부터는 사다코 교수님 강의가 있고 9시부터는 핑크베리 교수님 강의가 있어요!”

    “그럼 화요일은 어떻습니까?”

    “강의랑 훈련으로 꽉 찼어요!”

    “…수요일은?”

    “강의랑 훈련으로 꽉 찼어요!”

    “그럼 언제 시간이 됩니까? 아닙니다. 그냥 주말에 대화를 나누죠. 토요일 조식 후는 괜찮겠죠?”

    “아카디아 언니랑 강의 듣는데요?”

    “…혹시 시간표 좀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38학점 13강의로 꽉 찬 일정표에 지젤은 공포마저 느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일정을 견딜 수가 있지?

     

    “강의가 왜 이렇게 많습니까?”

    “파파 덕분에 많이 듣게 되었어요!”

    “이것도… 재단의 짓입니까?”

     

    분노로 일그러진 그의 목소리에 오크노디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넹! 파파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많은 강의를 듣지는 못했을 거예요.”

     

    재단 이 녀석들.

    오크노디를 아카데미에서 휴식시간도 수면시간도 모두와 노는 시간도 박탈해서 공부만 하다가 지쳐 쓰러지게 만들 작정이구나!

    친구와의 유대가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자 아카데미 그 자체에 질려서 자신의 의지로 자퇴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틀림없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강의를 들으면… 과제에 치여서 죽게 될 겁니다.”

    “괜찮아요. 전 특별한 아이니까 안 죽어요!”

     

    그렇게 오크노디를 속인 거냐?

    재단의 수석장학생.

    그 ‘특별함’을 무기로 삼아 오크노디가 있을 장소를 재단 이외에는 없앨 작정이었나?

    일주일이나 늦게 복귀시킨 것도 재단이 아카데미의 제재를 받지 않는 선에서 오크노디가 강의진도를 따라잡지 못하게 만들려는 수작질이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재단의 비겁한 행보는 언제나 그를 화나게 만들었지만 이건 정말 선을 넘었다.

    지젤의 실눈이 작지만 날카롭게 열렸다.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재단의 사악한 음모, 제가 역이용해드리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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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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