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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1

    어느정도 사태가 진정된 이후, 루크는 아이가 어째서 이런 숲 속까지 온 것인지에 대한 경위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귀신을 직접 보러 왔다고?”

    “네.”

     

    루크는 아이의 당돌한 발언에 말을 잃었다.

    이 대책없는 아이들을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잠깐 고민해본 결과, 아이의 이마에 딱밤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녀석들아, 그게 더 위험한 짓이 아니냐.”

     

    -딱.

     

    “아얏.”

     

    아이는 둘이었으나, 소리는 한번이었다.

    저 겁에질린 채 귀를 축 늘어트리고 있는 남자아이를 보면 어느 누가 보더라도 주동자는 저 여자아이였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루크에게 딱밤을 맞은 여자아이는 억울하다는 눈빛을 루크에게 향했으나, 루크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아이가 항의하더라도, 밤중의 숲을 멋대로 거니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숲지기들이 밤낮없이 숲의 경계를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루크 숲과 인접한 곳이라 가끔은 소형 몬스터들이 출몰하곤 한다. 달랑 어린아이 둘이서 야밤에 손잡고 데이트를 할 만한 장소는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지.”

     

    이제는 루크의 강대한 마력과 드래곤 피어로 인한 공포심, 그리고 정교한 보호 결계 덕분에 근방에 몬스터는 커녕 좀 위협적인 야생동물조차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을 테지만.

    그래도 혹시모를 상황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루크가 앞서 떠든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모조리 잊어버린 채, 마지막에 말한 ‘데이트’라는 부분이 훨씬 신경쓰였던 모양이다.

     

    “데, 데이트 아니에요!”

    “맞아요, 얘는 그냥 끌려온 거에요.”

     

    남자아이의 외침에, 여자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저 루크가 보기엔 여전히 사이좋은 남녀 소꿉친구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밤에 다니지 말라는 얘기다. 여기에 귀신 같은 건 나오지 않으니까.”

    ‘더 이상은, 말이지.’

    루크는 뒷말은 삼킨 채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뭐, 소문이 아주 틀린 건 아니었다.

    귀신이 나오던 때도 있기야 했으니까.

    지금은 직접 없애버리긴 했지만.

    만약에 이 아이들의 행동력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실제로 악령을 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게 과연 저 아이에게 불행일지, 행운일지는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악령은 결코 인간에게 호의적인 존재도 아니고, 애초에 폐가를 어린아이 둘이서 찾아오는 과정도 순탄할 리가 없고 말이다.

     

    “그, 그치만. 분명히 악기 소리가 들렸는데…….”

    “그건 내가 연주한 거다. 그리고, 네가 알고 있던 저택은 이제 폐가도 아니야. 이렇게 내가 살고 있지 않느냐.”

     

    확실히, 루크의 집은 이야기로 듣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절대 폐가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꾸며진 예쁜 저택이었으니까.

    여러모로 정원의 화단도 예쁘고, 울타리와 벽의 색도 귀엽고. 이렇게 밤에 봐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밝은 분위기의 저택에는 귀신도 나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뭐, 정리하자면 여긴 주인이 있는 땅이다. 그리고 그 ‘폐가’라는 곳은 최근 내가 이사한 곳이고. 그러니 귀신이 나오는 폐가라는 둥, 악기 소리가 들렸다는 둥 이상한 소리는 어디가서 하지 말거라.”

    “히잉…….”

     

    칭얼거리는 여자아이를 뒤로 하고, 남자아이가 쭈뼛거리며 다가와 묻는다.

    하지만 여전히 이상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누나는 귀신이 아닌건가요?”

    아이는 살면서 루크처럼 기묘한 분위기의 소녀는 본 적이 없었다.

    그 느낌은 단지 루크의 예쁜 생김새와 서로 다른 눈동자의 색 때문은 아니다.

    우아하며 고고한 분위기의,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공주와도 같은 몸짓과, 조용하고 나긋하지만, 강한 의지를 담은 특유의 목소리는 자세한 관찰력과 분석력이 없는 아이라도 충분히 ‘뭔가 다름’을 느끼게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또래에 맞지 않는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이, 마치 ‘귀신’과도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루크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그래, 귀신은 아니다.”

    “정말로요?”

    “그래. 귀신이라면 내가 어찌 저 아이의 이마를 때렸겠느냐.”

    “그건 그렇네요…….”

     

    고스트는 무기를 조작해 찌른다거나 하는 것은 가능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절대 생물체에게 물리적인 타격을 줄 수 없다.

    때문에, 루크가 여자아이의 이마에 날린 딱밤은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본다면 루크도 딱히 ‘귀신’과도 같은 존재라고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나, 일단은 귀신이 아니다.

    사실은 그렇다고 인간도 아니기는 하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

     

    루크는 이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걱정하시기 전에 얼른 돌아가거라. 알겠지? 다음에 또 놀러오면 그때는 초대해 주마. 숲에서 나가는 길은 저쪽 길을 따라서 쭉 나가면 된단다.”

     

    시간이 낮이라면 집에 초대해 주겠지만,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까.

    게다가, 아직 ‘정리’도 안 되었고 말이다.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이야기하자, 두 아이들은 부끄러워하거나 실망하는 등, 각각 상반된 반응을 보이며 대답했다.

     

    “정말 나중에 놀러 와도 돼요?” 

    “아뇨, 귀신 없으니까 안 올건데요.” 

    “하하하하.” 

     참 재미있는 아이들이었다.

     

    ——–

     

    아이들을 길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온 루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불 꺼진 집은 그저 고요하고, 적막했다.

    항상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들려오는 예르나의 따듯한 인삿말도, 항상 찰싹 달라붙어오던 디아나도, 그런 디아나를 떼어내며 잔소리를 늘어놓던 다이튼도 없다.

     

    반기는 이 하나 없는, 빈 집처럼 말이다.

    그건 사실은 당연한 일이다.

     

    루크가, 그들을 모두 보내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조금 이상하군.’

     

    문득, 루크는 머릿속에 떠오른 그 문장을 조금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여행을’ 보냈다는 이야기였다.

     

    최근 경시대회의 상금이 들어온 이후, 루크는 예전에 생각한 대로 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제라드에게 말했던 것처럼 인형은 아직 구매하지 않았지만, 컴퓨터를 사고, 마법도구를 사고.

    남는 돈은 예르나와 다이튼에게 못간 신혼여행이라도 다녀오라며 건네주었다.

    게다가 여행 티켓을 건넬 때 디아나를 따로 재울 수 있는 숙소로 잡아주었으니, 어쩌면 이번 여행이 끝나면 파이리스가 바라던 선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비록 자신은 따라가지 않았지만, 분명 좋은 추억이 남겠지.

    아마도, 상당히 즐거운 여행이 되지 않을까, 약간은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루크는 그들의 여행에 따라가지 않았을까?

     

    그것은, 이 모든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선 루크가 집에 혼자 남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루크는 자신의 방에 산처럼 쌓인 각종 택배 상자들을 바라보며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하루, 정말로 많은 택배를 받았지.

    그건 택배기사가 ‘혹시 뭐, 이걸로 장사할 생각이니?’하고 물어볼 정도로 심각하게 많은 양이었다.

     

    “하하. 나도 참, 정말 자제심이라고는 전혀 없었군.”

     

     

    아무리 경제관념이 좋아도 결국 루크는 마법사였다.

    돈이 손에 쥐어진 상태에서 원하는 물건이 눈에 보이면, 딱히 앞뒤를 재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건 충동적인 소비도 아니었다.

    비록 소비수준은 굉장히 충동적인 것처럼 보이긴 한다만, 실제로 그 이면에는 철저한 계산이 포함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경제적인 소비였다.

     

    ‘인형 만들 재료값까지 남기지 않고 전부 써버린 건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반면, 인형의 재료는 나중에 목화씨라도 사서 기르면 그만이다.

    아니, 오히려 골렘의 마력을 담기엔 그 편이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들은 다르다.

     

    아무리 루크라고 해도, 컴퓨터 부품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연산코어, 인챈트보드, 시드메모리, 텔레파시 디바이스, 아카식 레코딩파트…….

    하나같이 최신식의 고성능 컴퓨터 부품들이다.

    허나 이상한 점이라면, 그 양이었다.

     

    컴퓨터 한대를 조립하는데 필요한 부품의 양은 절대 아니다.

    심지어 집 뒷편에는 고물상을 찾아 돌아다니며 각종 고장난 마도기기와 버려진 부품등을 대충 쌓아둔 것들도 산더미다.

    그러니까, 평범한 가정집에서 컴퓨터를 조립하는 상황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것들은 절대 아니었다.

     

    그건 당연하다.

     

    루크가 만드려고 하는 컴퓨터는 그저그런 일반적인 가정용 컴퓨터가 아니었으니까.

     

    자신의 새로운 두뇌가 되어줄 컴퓨터인데, 대충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현존 최고성능이 아니라면, 루크가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목표는 바로, ‘슈퍼 컴퓨터’.

     

     

    컴퓨터 부품을 찾던 중 루크의 눈에 들어온 그 단어는, 루크의 가슴에 꽤 깊이 틀어박혔다.

     

    어떤 복잡한 대규모의 연산작업도 순식간에 끝마쳐버리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초 고성능의 시스템.

    그것을 알게 된 이상, 구축하지 않을 수 없다.

     

    루크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첼로를 벽에 기대어 세웠다.

     

    “좋아, 이 정도면 신성력에 대한 내구력 테스트도 충분히 된 것 같군.”

     

    그 밤중에 루크가 첼로를 연주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신성력이란 근본적으로 신에 대한 믿음과 감사로 작동하기 때문에 신을 찬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루크는 그런 과정이 그다지 필요하지는 않지만, 루크가 직접 사용가능한 신성력과 정상적인 찬송을 거친 신성력은 그 성질이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찬송을 통해 발산된 신성력은, 같은 양의 신성력에 비해서 성능은 떨어지더라도 루크의 몸에 별로 부담을 주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예컨대, 찬송과 악기는 마법사의 영창이나 지팡이 같은 역할인 것이다.

    비록 마법사인 루크는 찬송을 통해 신성력의 영향을 휘두르는 방법만큼은 전혀 감도 잡을 수 없어서, 누군가를 회복시키거나 부활시키는 등의 영향력 행사를 위해서는 여전히 신체의 부담감을 져야만 했지만.

     

    그런데, 의문이 남는다.

    어째서 루크가 컴퓨터 부품에 대고 신성력을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이 많은 부품들 사이에서 컴퓨터에 반드시 필요한 ‘컴퓨팅용 마력 정제 식물 재배 키트’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를, 루크는 몸을 풀며 중얼거렸다.

     

    “자! 그럼 이제 하나씩 아린세이아로 옮겨 볼까!”

     

     

    아린세이아의 신성력을 머금은 세계수와 드넓은 초목들 모두가 바로, 루크가 생각한 ‘컴퓨터’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참고로, 현대 마법사회의 슈퍼컴퓨터는 작은 식물정원처럼 생겼습니다.

    아린세이아의 넓은 삼림지대 그 자체를 컴퓨터화 하려는 루크의 야심찬 계획…!

    루크는 아주 아린세이아 전체가 자기건줄 아는군요!
    레니에가 들으면 무덤에서 박차고 올라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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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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