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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1

       소위 신고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끝난 뒤에는 비교적 얌전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노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일부는 자신이 데리고 온 여자를 붙잡고 지분거렸으며, 일부는 최신 화제에 대해 떠들었고, 일부는 그저 술만 계속 마셔댔다. 그리고 절반 정도는 황태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사람을 잘 골랐다고 해야 하나?’

         

       연이은 위기의 연속에서 겨우 숨돌릴 틈을 찾은 니카는 눈을 감고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배꼽 아래를 쓰다듬었다.

         

       왜 이렇게 배 안쪽 공간이 쑤시는지 모르겠다. 배탈 나면 보통 여기가 아팠던가? 그는 그렇게 배를 살살 문지르면서 한량들과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 ‘황태자’를 가만히 관찰했다.

         

       자신이 술자리 기녀로 지목당했을 때만 해도 그는 본래 신분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당장 그를 내쳐버리겠다고 이를 갈았었다. 그러나 가만히 지켜보면 그가 특별히 선을 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펠레빈과 자신이 말한 규칙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평소 놀고 싶었던 대로 놀아라.

       단, 네 원래 신분에서 수습 불가능한 선은 넘지 마라.

       정치, 사회에 대한 말은 입에 담지 마라.

         

       실제로 그는 술이건 담배건 여자건 내키는 대로 즐기다가도 조금 무거운 얘기가 나오려고 하면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그렇게 말을 돌리는 데도 전혀 억지스러운 티를 내지 않으니 실로 여우 같은 솜씨였다. 그라면 딱 의도한 지점까지 자신의 평판을 떨어트려 줄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이미 호텔 안에는 소문이 파다했다. 황태자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논다고 말이다. 오늘도 몇 번이나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것을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각오한 일이었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3일 동안 그에겐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니카는 아까의 기억을 떠올렸다. 원더스타인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 안에서 느껴지는 파장은 적잖은 실망감과 혐오감을 품고 있었다.

         

       코카 딴에는 선을 지킨다고 했지만, 하층민들이 봤을 때, 이렇게 노는 꼬락서니는 충분히 아니꼬울 수 있었다. 특히 코카는 아직도 간간이 원더스타인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그의 두 일행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훑어보고 있었으니까.

         

       니카는 황태자를 향한 그의 적의가 껄끄러우면서도 고마웠다. 감히 황태자에게 대적할 수 있는 저 용기는 죄 없는 소녀 니카를 보호하려는 마음에 나온 것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황태자라고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니, 그러면 혐오감이 더 심해지겠지?’

         

       그럴 확률이 높았다. 분명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애초에 한낱 떠돌이의 오해를 풀고자 그의 가장 중요한 약점을 밝히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일탈은 일탈로 끝내야 했다. 좀 특이한 파장을 내뿜고는 있지만, 어차피 상대는 자신과는 사는 세계가 다른 인물이었다.

         

       ‘그냥 별난 추억으로 좋게 간직하자.’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니카는 원더스타인에게 슬쩍 몸을 기댔다. 눈을 감고 온천욕을 즐기다가 그만 잠들어버렸다는 느낌으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마음이 편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와 피부만 스쳐도 질겁하던 니카는 이제 거리낌 없이 그의 가슴에 머리를 갖다 댈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하려고 하니까 그가 왠지 몸을 빼는 느낌이었다. 그의 몸뿐만 아니라 그의 고개도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치우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그는 아나이스하고만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니카는 살며시 눈을 뜨고 둘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폈다. 그리고 그는 곧 경악스러운 장면과 마주했다.

         

       원더스타인과 아나이스는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다. 거기다 그의 오른손은 아나이스의 수영복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서 그녀의 가슴을 마구 주물러댔다.

         

       이 장소에서는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지만, 설마 원더스타인도 이럴 줄은 몰랐다. 니카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키스를 마친 둘이 속삭이고 있는 내용을 훔쳐 들었다.

         

       “후후, 처음이라면 이렇게까지 하기 힘든데……누가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죠?”

       “……알던 신부님이었어요. ……갑자기 제 방으로 들이닥쳐서……제 안에 그걸……너무 아프고 무서워서 저는……흐읏!”

       “신음을 꽤 많이 흘리시는군요……. 제게 몸을 맡기면……편안해질 것…….”

       “믿어요. 단장님을……저를 한 번 구해주셨으니……아흣, 거, 거기는……하아, 하아…….”

         

       주변의 소음이 워낙 커서 단편적인 말 몇 마디밖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니카는 충분히 그 뜻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저질.’

         

       니카의 마음속에 원더스타인에 대한 혐오감이 치솟았다. 정의의 사도인 양 자신들을 보호해주는 척했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에 나섰던 것도 단순히 자기가 점찍은 여자를 뺏길까 봐 그랬던 걸지도 몰랐다. 결국 이 자리에 잘 섞여들게 되자 이제 제 욕망을 채우려고 들었다.

         

       경멸스러운 건 아나이스도 마찬가지였다.

         

       니카는 어둠 속에 얼핏 드러나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굉장히 만족해하고 있었다.

         

       늙은 공작에게 아양을 떨 때부터 그 근본이 보였다.

       천박한 여자 같으니.

         

       믿었던 교회 신부님에게 당했다는 그녀의 과거사는 불쌍하긴 했지만, 그렇게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역겨운 건 위해주는 척하면서 그녀를 희롱하는 원더스타인이었다. 본질적으로 코카와 하려는 일은 같으면서 어느새 그녀를 ‘구해준’ 것으로 자신을 포장했다.

         

       그렇게나 똑똑했던 여인이 잘생긴 남자의 입에 발린 말 몇 마디에 홀랑 넘어가 버리다니……. 원래 여자라는 종족은 저렇게 쉬운가? 아니, 그렇게 말하자면 자신도…….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니카의 가슴속에 들끓었다. 저따위 망나니 같은 인간에게 자신이 첫 키스를 허용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잠든 척을 했다. 그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랬다간 자신이 상처받을 것 같았다.

         

       잠시 후, 원더스타인은 가까스로 아나이스의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갑자기 시작된 그녀의 발작을 가라앉히기 위해 입으로 숨을 불어 넣어주면서 그녀의 가슴에 데볼루트를 주입했다.

         

       그녀의 폐는 ‘고유 특성’으로 전환되는 시점인 6개월이 되기 전에 빛의 힘에 노출되어 한 번 망가진 터라 고치는 게 쉽지 않았다. 망가진 부위는 조금씩 변형된 신호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조직째로 태워버려야 했다. 그 덕분에 아나이스도 아픈지 신음을 많이 흘렸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라면, 이 정도 증상은 고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과 축적된 데볼루트 덕분에 이런 까다로운 조작 과정도 그는 소화해낼 수 있었다.

         

       그는 동네 신부도 이 정도로 데볼루트를 태워버릴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게임에서 성직자들은 몇몇 주요 캐릭터를 제외하면 그렇게 대단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원더스타인은 괴물 단원들의 고유 특성도 마구 주무르고 데볼루트에 대해 절대적인 힘을 행사했다. 원작의 원더스타인에게 있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없는 것. 아마 보석 트릴의 힘일 것이다.

         

       “더, 덕분에 편해졌어요. 감사합니다.”

         

       위급한 고비를 넘기고 나자 아나이스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얼굴을 붉혔다. 그들이 한 건 순수한 치료였지만, 어쩌다 보니 주변의 다른 커플들처럼 야한 짓을 한 게 되어버렸다.

       

       “일단 급한 불은 껐으니, 나중에 숙소에서 제대로 해드리죠.”

         

       원더스타인은 그녀에게서 손을 뗐다. 그리고 다시 몸을 원래 방향으로 돌렸다. 그는 니카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괜히 이런 모습을 보였다가 오해를 살 수 있었다.

         

       ‘숙소에서 제대로 해준다고? 기어코 자기 방까지 끌고 갈 생각인가.’

         

       니카의 입술이 당장이라도 욕을 내뱉을 것처럼 꿈틀거렸지만, 원더스타인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때, 코카가 갑자기 손뼉을 치며 좌중의 시선을 모았다.

         

       “자자, 또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 같은데, 재밌는 쇼를 열어볼까?”

         

       코카는 그와 방금까지 대화를 나눴던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친구는 도박을 잘하기로 유명한 친구지. 각종 카드 게임에도 통달했고 말이야. 그쪽의 기녀. 이름이 아나랴고 했지? 내가 너를 데려오라고 한 이유는 이 친구와 겨루게 하기 위해서야. 어때? 한 판 붙어 보는 건.”

         

       황태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형식만 제안이지 사실상 명령과 같았다. 아나이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지! 좋아, 그러면 이번 게임에도 상품을 걸어야 하는데…….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하나를 요구하는 건 어때? 당장 줄 수 있는 것 중에서만 말이야. 그러니까 은행에 맡겨둔 돈 같은 건 안 돼.”

         

       얼핏 들으면 파티에서 흔히 있는 선물 교환 레벨의 벌칙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분위기를 봤을 때, 당연히 그런 걸 의미할 리가 없었다.

         

       “저 여자가 제 물건을 원하면 어떡하죠, 전하?”

         

       도박꾼 청년의 말에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 이 자리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농담이었다.

         

       “자네가 이기면 뭘 요구할 건가?”

       “글쎄요. 미천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전하께 받은 은혜가 있는데 그 권리를 전하께 바칠까 합니다.”

         

       둘의 대화는 미리 준비한 듯 매끄럽게 이어졌다.

         

       “하하, 벌써 이긴 것처럼 구는군! 좋아. 그러면 난 뭘 요구할지를 둘이 게임 하는 동안 고민하고 있지!”

         

       아니이스는 이를 꽉 악물었다. 아까부터 황태자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요구’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선고할 줄은 몰랐다.

         

       “괜찮겠습니까?”

       “믿어주세요. 카드 게임으로는 누구에게든……이길 자신이 있어요.”

         

       그 순간, 아나이스는 니카와 시선이 마주쳤다. 둘 다 아까 결착을 내지 못한 승부가 떠오른 것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서로를 가만히 노려봤다.

         

       ‘엉큼한 꼬맹이.’

       ‘더러운 창녀.’

         

       원더스타인은 둘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황태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주 대단한 측근들 나셨다. 어째 주변에 둔 인간들이 하나 같이 이 모양인가 싶었다. 저놈은 술이 특기, 이놈은 여자랑 잘 노는 게 특기, 이제는 특기가 도박인 측근도 나왔다.

         

       이 정도면 황태자에 대해 충분히 알았다. 그가 정말 기대대로의 사람이었다면, 원더스타인은 그에게 미래에 정보를 선물로 줄 생각이었다.

         

       메인 퀘스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2년 안쪽의 정보는 무리겠지만, 그 이후의 정보는 가능했다. 그런데 그의 실체를 안 지금은 그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일을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근위대원들이 탕 중앙에 커다란 테이블을 설치해주었다. 밑에서 올라오는 거품과 증기 때문에 테이블 위는 금방 젖었지만, 카드는 기본적인 코팅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 게임 한 판 동안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종목은 요즘 유행하는 원더월드로.”

       “좋아요.”

         

       게임 한 판으로 승패를 가려야 하는 승부.

       당연히 포커 같은 베팅 형 게임은 안 나올 것 같았다.

         

       도박꾼 청년과 아나이스는 병사가 가져다준 카드에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극장 카드로 ‘글린카프 극장’과 ‘아테레나 노천극장’을 고르겠습니다.”

       ”저는 ’장미 풍차 카바레‘와 ’크리스티앙 기념관‘을 고르죠.

         

       아나이스는 상대가 선택한 카드를 보고 긴장했다. 둘 다 성능이 강력하기로는 극장 카드에서 1, 2위를 다퉜지만, 상당한 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원하는 카드를 손으로 마음대로 가져올 수 있다면 모를까, 평균적인 확률로 봤을 때는 약한 축에 속하는 카드였다.

         

       ’설마 카드에 무슨 수작을 한 건 아니겠지?‘

         

       아나이스가 경계한 것은 속임수였다. 그래서 굳이 병사가 카드를 가져왔을 때, 그것을 살펴본 것이다.

         

       그러나 카드에는 아무런 흠집이나 표시가 나 있지 않았다. 아주 미세한 흠이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불빛도 미약한 이런 곳에서 그런 걸로 카드를 파악하기는 무리였다.

         

       중간에 카드를 빼돌리거나 교체할 염려도 없었다. 상대는 수영복 한 장만 입고 있었다. 어디에도 카드를 감출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남은 건 테이블인데…….‘

         

       혹시 여기에 어떤 장치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지금 그것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다. 그건 곧 황태자를 의심하겠다는 것과 같았으니까.

         

       아나이스는 결국 상대의 수작을 알아내는 것을 포기하고 승부에 집중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속임수 같은 것은 없었을 수도 있었고, 어차피 이 게임은 모든 카드가 막판에 공개되는 형식이었다. 다소 속임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승패 자체를 결정하기는 힘들었다.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3대 1의 승부도 이겼던 그녀였다. 1대 1은 상대가 무슨 수작을 부려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게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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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시 님, 100코인 후원! 꾸준한 응원 감사드립니다! 요즘은 1주에 5편은 올리겠다는 목표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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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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