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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1

        

         

       김철수가 파일철을 펼치자 보인 것은 온갖 유물들의 사진이었다.

         

       유물(遺物).

         

       과거의 사람들이 남겼다는 이름답게, 사진에 찍힌 유물들은 하나같이 전부 낡아 보였다.

         

       어디에 사용했는지 모르는 깎인 돌조각, 흠집이 잔뜩 나고 찌그러져 있는 금 장식품, 묘하게 핏빛이 감도는 옥노리개, 가죽 표지가 인상적인 책, 페르시아의 양식으로 만들어진 은 항아리, 새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문양이 그려진 유리잔….

         

       유물이라기보다는 고물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하지만 진성은 그 볼품없어 보이는 것들을 아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주물이라. 보기에는 문화재 같습니다마는….”

       “아, 그것도 맞습니다.”

         

       김철수는 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물 중에서도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들을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고 있거든요. 지금 보시는 것들은 문화재청이 가지고 있는 주물 중에서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그리 크지 않고 위험도가 낮은 물건들입니다.”

         

       진성은 김철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귀하고 강력한 주물을 고작 방송에 출연한답시고 왜 안겨주겠는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면 꼭꼭 숨겨두거나 자랑을 해야 할 것이고, 위험하다면 그 주물의 힘이 강력한 것이니 유사시에 무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엄중하게 관리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겠는가.

         

       그리고 귀한데다가 강력하기까지 하다?

       그럼 말할 것도 없다.

         

       그건 보물이다.

         

       김철수는 박진성을 바라보았다.

       혹시 실망하지 않았느냐는 듯이.

         

       하지만 진성은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주물조차도 귀한데 거기에 문화재로서의 가치까지 가지고 있다니, 참으로 훌륭하고 귀한 물건이로군요.”

         

       오히려 이런 귀한 물건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눈을 번들거렸다. 마치 욕망에 휩싸이기라도 한 듯 말이다.

         

       하지만 진성의 마음은 겉모습과는 달리 아주 평온했다.

         

       ‘흐음. 이 중에 쓸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꼬.’

         

       유물이자 주물?

       귀한 물건은 맞다.

         

       그냥 주물도 비싸게 팔리고, 유물도 비싸게 팔린다.

       그 두 개가 합쳐졌다면?

       하나 판다면 섭섭지 않은 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반적으로는 기뻐하는 것이 맞다.

       일반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진성은 이러한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유적에서 그가 맨날 보고 얻었던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는 온갖 유물과 주물을 손에 넣었고, 그것들을 알뜰살뜰하게 써먹고 연구까지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면 분해해서 다른 데다가 써먹기까지 했다.

         

       그는 그런 짓을 하면서 짧지 않은 삶을 보냈다.

         

       그런데 고작 저런 물건들을 보고 흔들릴 리가 있겠는가.

         

       ‘흐음. 위험도가 낮다는 것은 곧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이라. 리턴을 기대하기는 힘드니 되도록 옛 한국의 주술 체계를 알아볼 수 있는 물건이거나, 혹은 다른 용도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을 고르는 것이 옳겠다.’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으며 김철수를 바라보았다.

         

       “부디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설명이라면…?”

       “글쎄요.”

         

       김철수 역시 미소를 지으며 진성을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렇지요!”

         

       김철수는 진성의 의미심장한 말을 알아듣고 너털웃음을 터뜨렸고, 가지고 온 서류 뭉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가장 뒤에 있는 묶음만을 내버려 두곤 나머지는 모두 가방에 집어넣어 버렸다.

         

       “박진성 주술사님. 이제 계약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좋습니다.”

         

       김철수가 꺼내든 서류에는 앞으로 박진성이 해야 할 일과, 그 일에 대한 대가가 적혀 있었다. 물론 그 대가는 ‘문화재청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존재하는 주물’이라고 명시적으로 표기되어 있었으며, 혹여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계약 과정에서 보여준 자료에 있는 주물’이라고 강력하게 못을 박았다.

         

       물론 그 숫자만큼은 공란이었다.

         

       계약에 따라 그 숫자의 차이가 변동되게 되리라.

         

       “박진성 주술사님. 일단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오기 전 들었던 한계는, 주물 3개였습니다.”

       “3개라.”

         

       김철수는 계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시작부터 자신의 재량으로 줄 수 있는 최대치를 그대로 까발려버렸다. 게다가 그 얼굴이 어찌나 결연하고 진실한지, 그 누구라도 믿음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계약을 성사해야 하는 회사원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나오고 있었다. 김철수는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면서라도 반드시 이 계약을 성사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을이 갑에게 읍소를 하는 것 같은 모양새처럼 보였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진 않았다.

         

       어차피 김철수가 해야 하는 것은 계약을 성사해서 박진성을 방송에 출연시키는 일.

       대기니 뭐니 하는 것은 그가 알 바가 아니었다.

         

       3개?

       10개도 부를 수 있었다.

         

       문화재청?

       어차피 그가 소속된 곳도 아니다.

       투덜거림 한 번 들으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소속이 다르다고 해도 같은 정부 소속이었고, 일을 하다 보면 다른 곳과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그러니 감당 못할 숫자를 불러서 엿을 먹이는 것은 불가능했으니, 그냥 시작부터 최대치를 불러버린 것이다.

         

       어차피 김철수는 계약을 성사하기만 하면 되고, 문화재청은 한계를 초과하지만 않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윈-윈(Win-Win)이었다.

         

       “3개라면 참으로 충분한 숫자이니, 좋습니다. 아주 만족스럽군요.”

         

       진성은 이러한 김철수의 속을 꿰뚫어 보았다.

       김철수의 표정은 사기꾼이나 배우를 연상시킬 정도로 능통해 보였으나, 김철수가 보이는 분위기나 태도에서 마치 남의 돈을 꺼내다가 쓰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계약서에도 있듯이, 여기 제가 지금 드린 파일철에서 3개를 고르시면 됩니다. 아, 물론 매매 같은 소유권이 양도되는 형태는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면 국부 유출이니, 문화재를 판매해서 부정축재(不正蓄財) 어쩌고 하면서 난리가 날 테니까요. 그러니 외부적으로는 문화재청이 ‘주물 연구 의뢰’를 위해 주물을 박진성 주술사님께 보낸 것이 될 것입니다. 기한은…. 무기한이거나, 기한이 있기는 하되 계속 갱신되는 형태가 되겠지요.”

         

       물건을 사용하고 소유한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었다.

       정당하게 돈을 주고 구매해서 사용하는 방법도 있고, 남에게 물려받아서 사용하는 방법도 있고, 가족이 쓰는 물건을 자신도 같이 쓰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면 기한이 없이, 무한정 빌려 쓰면서 독촉도 받지 않는다면 이 역시 물건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연구를 의뢰하는 것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물건이 사라지거나 부서지지 않도록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뭐…. 부서진다고 할지라도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변질이 되었다거나 망가지는 거야 뭐…. 흔히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김철수는 은근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냥 단순히 빌려주는 것 정도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고.

       그냥 진짜 자기 물건처럼 막 써도 되고, 그 과정에서 부서지거나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김철수가 한 말에는 아주 교묘하게 이러한 뜻도 숨겨져 있었다.

         

       『 물건을 멀쩡히 가지고, 부서졌다고 보고를 올려도 된다. 그렇다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고, 물건은 손실·분실 처리가 될 것이다. 그러면 온전히 주물이 어디에 얽매이지도 않고 당신의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

       『 들키는 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서류상으로는 망가져서 사라진 물건인데 무슨 상관이냐. 그냥 우연히 비슷한 것을 얻게 되었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그것도 아니면 외형을 바꾸거나 하면 그만이고. 어떤가? 』

         

       진성은 이러한 김철수의 신호를 받고 미소를 지었다.

         

       “김철수 비서님께서 아주 큰 배려를 해주시는군요.”

       “하하, 아닙니다. 제가 아니라 정부에서 그러는 것이지요.”

         

       그럴 리가 없었다.

       아무리 정부라고 할지라도 고작 주술 유망주한테 이런 교묘한 방법을 알려주면서까지 ‘배려’를 해줄 리가 없었다.

         

       즉, 이것은 김철수의 호의였다.

       물론 그 호의가 타산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조금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계약을 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이리도 풍족하니, 오히려 걱정이 듭니다. 본래 먹구름이 거대할수록 많은 비가 내리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반대급부로 어떠한 방송에 출연하게 될는지….”

       “아, 그것 말입니다만.”

       

       김철수는 진성이 방송 이야기를 꺼내자 턱을 한 번 쓰다듬고는 약간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박진성에게 ‘이것은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라는 뜻을 보내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단 정부에서는 세 번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 번?”

         

       세 번.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다.

         

       단순히 환기용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본전을 뽑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아, 물론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각기 다른 포맷에 한 번씩 출연해주시면 되거든요.”

         

       김철수는 손가락 세 개를 펼치더니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로 출연하실 방송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인데…’추적, 탐사, 보도’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하하. 예. 알고 있습니다. 유명한 프로그램 아닙니까? 국영방송에서 장수하고 있는….”

       “예. 그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괴물을 조사하는 장면이 나가게 될 겁니다.”

         

       김철수는 말을 이었다.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첫 번째 걸음이라고 하지요? 그렇기에 많은 고민을 거듭하다 결정한 것이 바로 탐사보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도 생각하기는 했는데, 그건 생각보다 그리 반향이 좋지 않을 것 같더군요. 아시다시피 그…. 다큐멘터리라는 게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잖습니까? 고루하고 지루하다는 인식도 있고요. 그렇기에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정보 전달에 있어서 효과적인 것을 찾다 보니 나온 것이 바로….”

         

       “탐사보도 프로그램이었군요.”

         

       “그렇습니다.”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시청률도 높고, 파급력도 크고, 화제성도 충분하다.

       게다가 이름이 알려진 프로그램이니만큼 시청률은 어느 정도는 보장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게다가 박진성 주술사님이 출연하는 방송은 특집으로 구성될 겁니다.”

         

       김철수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광고도 세게 때리고…. 본래의 늦은 밤에 방영하는 게 아닌, 조금 더 당겨진 시간에 방송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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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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