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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1

       

       

       

       

       

       331화. 차원의 폭풍은 정말 최고야 ( 3 )

       

       

       

       

       

       가장 먼저 오크들의 초록 물결이 파도쳤다. 초원에서 거친 야생마처럼 살아왔던 오크들은 넓은 광야를 만나자 고향에 돌아온 듯 활개 치며 기세를 떨쳤다.

       

       “크워어어어어! 나, 나나나나! 악마! 죽인다! 죽이고 또 죽인다!!”

       “별자리!! 만든다!! 가장 강한 신부를 얻을 거다!!”

       

       그 주된 이유가 자신의 별자리를 만들어 가장 강한 신부를 얻겠다는 이유였지만. 어찌 보면 가장 오크다운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아우우우ㅡ! 녀석들을 한 곳으로 몰아라!”

       “사냥 시작이다!”

       

       늑대와 고양이 귀를 달고 있는 수인들은 수인족 특유의 유대감을 발휘하며 능숙하게 집단 사냥을 이어갔다.

       

       우르르 달려가서 한 무리가 악마들을 몰아오면, 나머지가 숨어있다가 악마들을 덮치며 단번에 숨통을 끊는 형식이었다.

       

       놀라울 정도의 단합력을 발휘하는 두 종족과는 달리 국적과 신념, 관습마저 다른 인간들은 그리 쉽게 통합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저마다 자신이 최강이라고 여기는 이들을 모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누군가 대표로 나서서 이끈다고 하면 이견의 여지 없이 으뜸가는 자가 나서야 할 터인데.

       다들 타고난 전사라서 누군가 자신의 머리 위에 선다는 상황 자체를 굉장히 불쾌하게 여긴 까닭이었다.

       

       “…한스 경, 오크나 수인들은 저렇게 힘을 합치는데 우리 인간들도 좀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나?”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척 보니까 다들 한 가닥 하는 인물들만 모였는데.”

       “그건 그렇지만… 저대로 두면 아무래도 우리 인간들이 사냥한 수가 적을 수밖에 없네.”

       

       집단과 개인이 사냥한 결과물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스칼은 그것이 염려스러웠다. 

       

       “이스칼. 하나 된 분께서는 많이 잡아 온 순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들면 별자리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어…? 그런가?”

       

       듣고 보니 그렇다. 하나 된 분께서는 많이 잡아 온 이에게 포상을 주겠다는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이를 깨달은 이스칼의 표정이 점점 묘해졌다.

       

       “지금까지 하나 된 분의 행보를 감히 헤아리자면, 그분께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본인의 힘으로 역경과 고난을 뛰어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아무리 불가능할 것 같은 적이라도 당당히 맞서고, 목숨을 걸고 싸우면 그 용기에 합당한 도움을 주시지요.”

       

       한스는 자신이 역병의 대악마와 싸울 때를 기억했다. 당시의 자신은 특별한 것 없는 범부에 불과했다.

       그런데 검을 들고 대악마와 맞서기로 결심한 순간, 하나 된 분께서는 자신의 용기에 힘을 실어주셨다.

       

       치열하고 아찔했던 순간을 추억한 한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집단의 힘을 빌어 악마를 많이 죽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 된 분께서는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실 것이기에.”

       “그렇군! 하나 된 분께서는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역경과 고난을 어떻게 넘는지, 그것을 보겠다는 의미 아닌가?”

       “예. 자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전사라고 하셨지, 악마를 많이 죽인 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으니까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신께서는 본인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든 전사라고 말했을 뿐, 그 어디에도 악마를 많이 죽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

       

       “그러니 저런 잡졸들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의미가 없을 겁니다. 막말로 저런 녀석들은 맨몸으로도 상대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그럼 우리는 강한 녀석을 잡으러 가는 건가?”

       

       이스칼이 커다란 원형 방패를 단단히 고쳐 매며 물었다. 한스가 묵 빛을 띠는 의수의 붕대를 풀었다.

       

       “예. 못해도 고위급, 혹은 대악마. 저희는 녀석들을 죽이러 갑니다.”

       “그거 좋군. 어서 가지! 아내들한테 해줄 이야기가 아주 많이 생기겠어.”

       

       대악마의 저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일전에 팔라딘 라이언하트는 심연 원정에서 대악마와 동귀어진을 각오하여 결사의 항전을 펼쳤을 정도.

       

       고작 한스와 이스칼, 둘이서 대악마와 정면으로 싸운다는 것은 무모해 보일지도 모른다.

       

       허나 이스칼과 한스는 서로의 실력을 믿었다.

       일이 잘못되어도 서로를 챙기며 능히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만신전에서 대(對) 악마 전용 법구도 든든하게 챙겨왔으니, 두려울 것이 무엇일까.

       

       “그러면 어디로 갈 텐가?”

       “흠. 어디보자… 저쪽으로 가죠.”

       

       어차피 심연의 사방은 평평한 지평선의 연속.

       어느 곳으로 향하더라도 지형은 다 똑같을 테니, 한스는 마음 내키는대로 방향을 잡았다.

       

       “키, 키히이이이이!! 키샤아아아아!!”

       

       유유히 심연의 어딘가로 향하는 둘의 뒤로, 악마들의 구슬픈 비명이 높이 울려 퍼졌다.

       

       

       

        * * * * *

       

       

       

       간단한 폭풍의 시험을 통과한 녀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악마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크와 수인도 제법 그 숫자가 있었는데, 종족마다의 차이점을 관찰하는 재미도 나름 쏠쏠했다.

       

       – “크워어어어어!! 내 명예와 미래의 아내를 위해 죽어라!!”

       – “죽어라!! 신께서 녀희들의 피를 원하신다ㅡ!!”

       

       그중 역시 가장 보는 맛이 시원한 건 오크들.

       

       상남자스럽게 웃통을 까고 바지만 입었을 때부터 짐작했지만, 오크들은 정말 빠꾸 없이 돌격이라는 말을 몸소 보여줬다.

       

       녹색 물결이 거칠게 악마들을 유린하고 지나가면, 그 뒤로 남은 것은 피와 약간의 살점뿐.

       

       왜 살점이 약간 밖에 없냐면 오크들이 싸우다가 배고프면 악마의 살점을 뜯어 먹어서 그렇다.

       

       ‘…저걸 그대로 먹어도 되는 건가?’

       

       태어나길 상남자로 태어난 녀석들이다.

       그윽하게 풍겨오는 마초 향기에 그만 질식할 지경이었다.

       

       – “녀석들을 한 곳으로 몰아라! 아우우ㅡ! 아우우우우!!”

       – “냐냥! 약한 녀석들은 이런 펀치로도 충분해!”

       

       그다음으로 재밌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수인들.

       

       늑대와 고양이 귀를 달고 있는 수인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수인들은 곧장 능숙하게 무리로 움직이며 악마들을 집단 사냥했다.

       

       이리저리 한 몸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

       

       오크들이 육체적으로 돌격하며 모조리 분쇄하는 느낌이라면, 수인들은 조금 더 스타일리쉬하게 몰이사냥을 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어느 쪽이라고 할 것 없이 둘 다 보는 맛이 쏠쏠했다.

       

       ‘그에 비해 인간 쪽은…’

       

       역시라고 해야 할까.

       

       대표로 나서는 이 없이 어영부영하더니, 결국 아는 얼굴끼리 따로 움직이며 악마를 사냥하고 있었다.

       

       개인 단위로 싸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볼만한 그림이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이 몹시 귀찮았다.

       

       ‘적당히 보다가 위험한 것 같으면 도와줘야지.’

       

       하청을 부리는 입장에서 산재 예방은 필수. 녀석들이 전부 모여있을 때 안전 교육을 하기는 했지만,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한참이나 이리저리 화면을 돌려가며 확인했지만 보이는 보든 장면들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튀는 인간들도 있었다.

       

       사자 가죽을 망토처럼 두른 녀석도 있었고, 악마를 원수처럼 여기며 두 눈알을 파내는 녀석도 있었다.

       

       ‘결투 축제에서 본 것 같은 애들도 섞여 있구만.’

       

       99인에 남았던 녀석들은 거의 다 참가한 것 같다. 당시 99인에 들 정도의 실력자라면 이번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긴 하지.

       

       와중, 아주 특이한 집단을 볼 수 있었다.

       

       – “대가리! 녀석들의 대가리를 뜯어서 비료로 만들어 버려라!!”

       – “나는 악마의 눈동자를 모아서 목걸이를 만들거야!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너무 예쁘거든!!”

       – “케ㅡ넬름! 하나 된 분이시여!! 그대들의 분노를 우리가 대행하겠나이다!!”

       

       잠깐 눈을 의심했다.

       

       “뭐지. 피부 하얀 오크인가?”

       

       요즘 오크들 사이에서 화이트 워싱이 유행 중인가? 아니지. 그럴 리 없잖아.

       그런데 저건 아무리 봐도 그냥 피부 하얀 오크인데.

       

       우락부락한 근육, 시원하게 깐 웃통과 닥치는대로 돌격해서 찢어발기는 특유의 잔혹함.

       

       아무리 봐도 피부 하얀 오크… 아니, 이제 보니까 인간이었다.

       

       ‘이 녀석들 만신전 소속이잖아?’

       

       바지에 새겨진 만신전의 표식으로 간신히 눈치챌 수 있었다. 그마저도 피와 내장 따위에 얼룩이 된 채였지만.

       

       녀석들은 연신 케넬름과 하나 된 신을 외치며 악마의 대가리를 무 뽑듯 뽑아내고, 악마의 배를 갈라 창자를 길게 늘어뜨린 뒤에 창자로 교수형을 시키는 등.

       고어와 엽기의 선을 오가는 막장스러운 행보를 보여줬다.

       

       “……이게 도대체 뭔…..”

       

       얘네가 도대체 왜 케넬름의 이름을 외치는 거지?

       

       그러다 케넬름이 지상에 강림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내가 강림시켰었지.

       

       당시의 나는 자느라 정신이 없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케넬름이 알아서 적당히 잘 훈련시켰다고 했는데…

       

       설마 저 인간들이 그 훈련의 성과?

       

       ‘도대체 뭘 만든 거야…’

       

       내가 심연에 도대체 무슨 괴물을 풀어놓은 거지?

       

       

       

        * * * * *

       

       

       

       저벅저벅.

       

       한스와 이스칼은 하염없이 심연의 지평선을 걸었다. 끝도 없이 똑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간간이 달려드는 악마들의 사체를 이정표처럼 남겨 지나온 길을 표시하지 않았다면, 아마 제자리를 빙빙 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키샤아아악!”

       

       잔챙이들을 처리하며 얼마나 나아갔을까. 문득 보이는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점점 독무가 사라지는 것 같은데?”

       

       이스칼이 고개를 갸웃하며 사방을 훑었다.

       

       “확실히 그렇군요. 출발했을 때보다 확실히 독무가 옅어졌습니다.”

       

       발밑을 자욱하게 채우던 보랏빛의 독무가 사라지고 있다. 이는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심연의 어디를 가도 보이던 독무가 없다는 건, 독무보다 더 안 좋은 것이 있다는 소리 아니겠는가.

       

       항상 최악의 최악만 모이는 곳이 심연이었으니, 독무가 사라졌음에도 한스와 이스칼은 더욱 바짝 경계를 끌어 올렸다.

       

       저벅. 저벅.

       

       고요한 광야를 한참이나 나아간다.

       어느새부터 잔챙이 악마들도 달려들지 않았고, 그저 하염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걷는 시간이 이어진다.

       

       얼마나 걸었지?

       몇 시간? 며칠? 아니면, 몇 달?

       

       심연은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이 없어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디 어려웠다. 그렇게 이스칼과 한스는 끝없이 심연의 지평선을 걸었다.

       

       저벅. 저벅.

       

       침묵이 가득하고 같은 풍경이 반복되니, 정신이 멍해진다.

       

       둘의 주변으로 보랏빛의 독무 대신 음란한 분홍빛을 띤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아주 느리고, 천천히.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

       “……”

       

       코와 입으로, 눈과 피부를 통해서. 

       분홍빛 연기가 스며든다.

       

       그 모양새가 어찌나 신중하고 교묘한지 이 둘을 바라보던 초월자마저도 대충 보고 넘어갈 정도였다.

       

       “…아?”

       

       심연을 걷던 한스는 퍼뜩 정신을 차리니 성도의 거리 한가운데 있음을 눈치챘다. 

       

       ‘내, 내가 왜 여기에… 어라? 나는 분명히…’

       

       심연에…

       

       “심연? 심연이 뭐지? 내가 왜 심연을…”

       

       욱씬.

       

       머리가 지끈거린다. 뭔가 터무니없는 상황에 처한 것 같은데, 이를 떠올릴 수 없으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ㅡ한스? 뭐해요?”

       “아?”

       

       상념은 옆구리를 파고드는 부드러운 감촉에 사라진다. 황급히 돌아보니 꽃처럼 화사하게 미소 짓는 케니스가 보였다.

       

       한스의 얼굴이 단번에 터질 듯 붉어졌다.

       

       “으, 어… 아? 요, 용사님?”

       

       뻐끔뻐끔 물고기처럼 입을 움직이는 한스가 퍽 우스꽝스러운지 케니스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 그 표정은 뭐에요? 그리고 갑자기 웬 용사님? 딱딱하게 옛날처럼 부르기에요?”

       “예, 옛날이요…?”

       

       멍청하게 케니스를 바라보던 한스가 차츰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 기억난다.

       자신은 케니스에게 고백해서 연인이 됐고, 데모닉 팔라딘에게 대련을 빙자한 혹독한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리고, 지금 연인이 된 케니스와 첫 데이트 중이었지.

       

       ‘어떻게 이걸 잊을 수 있지?’

       

       아무래도 데모닉에게 머리를 너무 세게 맞은 것 같다.

       연인과 첫 데이트 중에 한 눈을 팔다니.

       

       “아… 아, 아아. 아닙니다. 잠깐, 오늘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을 좀.”

       “그런 거면 같이 걸으면서 찾아야죠. 얼른 가요!”

       

       케니스가 한스의 손을 깍지 끼며 앞장섰다.

       

       살짝 서늘한, 그리고 생각보다 얇은 손가락이 한스의 손바닥을 스르륵 간지럽혔다.

       

       한스는 생각했다.

       

       ㅡ아. 지금이라면 죽어도 좋다고.

       

       환하게 웃는 케니스를 향해, 한스도 함께 걸음을 옮기려 달려갔고.

       

       《정말 여기서 죽을 셈인가?》

       

       쩌적ㅡ

       

       눈앞의 풍경에 금이 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분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 ‘신선우’ 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대학살의 시간…!! 맛이 어떠냐 악마 녀석들!! 이건 네가 죽인 인간의 몫!! 이건 네가 죽인 수인의 몫!! 이건 그냥 내가 때리고 싶어서 때리는 거다!!! 지긋지긋하고 길었던 모멸과 핍박의 시간은 이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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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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