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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1

       갑작스레 찾아온 어둠에 한치 앞도 살피기 어려워진 엔리는 입을 다문 채 가만 하늘을 쳐다봤다.

       

       그녀는 이 현상을 두 눈에 담은 적이 있었다.

       

       화룡무인이 아니라, 그녀가 아라에게 놀아나게 된 원인이 된 쓰레드라는 게임 안에서의 일.

       백에 달하는 스트리머 연합을 앞에 두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과 함께 태양을 베어 세상에 어둠을 만들던 그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그렇기에 이 현상을 만들어낸 범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었다.

       

       “화령 씨이이이이이!”

       

       아라 씨! 아무리 저를 놀려주고 싶었다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요?!

       

       이런 대단한 기술을 사람한테 장난 쓰는 데 쓰지 말란 말이에요!

       

       – 이거 범인 화령이지?

       – 화령말곤 없지.

       – 아닠ㅋㅋ 재능낭비 너무 오지는 거 아냐?

       – 친구를 놀려먹겠다는 의지.

       

       빛이 사라져 버린 숲은 너무도 어두웠다.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망설일 게 분명한데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겁쟁이 중의 겁쟁이인 엔리.

       

       과거 혼자서 VR이 아닌 보통 공포게임을 하다가 못하겠다며 오열한 적이 있는 그녀가 저 앞으로 향할 수 있을 리 없잖은가.

       

       “…잠깐 나가서 회의 좀 할까요?!”

       

       엔리가 다급히 발을 돌리려 하자 채팅창에서 쫄보니 겁쟁이니 뭐니하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그녀를 도발할 목적에서 나온 채팅이겠지만 엔리는 거기에 자그마한 관심도 주지 않았다.

       

       지금 엔리에겐 채팅창을 보며 화를 낼 여유조차 존재치 못했으니까.

       

       애써 여유로운 체 휘파람을 불며 걸음을 재촉하던 엔리였지만 그녀의 발은 머잖아 멈추고 말았다.

       

       그녀의 앞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 등장했기에.

       

       뒤 편에 존재하는 숲이 보일 정도로 흐릿한 형상.

       

       죽었을 때의 원한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얼굴.

       

       너덜너덜해진 옷.

       

       바닥에 닿아있지 않은 발.

       

       엔리는 이런 존재를 무어라 부르는 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유령?”

       “원통하다…”

       “끼야아아아아아악!”

       

       숲 안에 존재하는 모든 유령을 끌어모으기라도 할 셈인지 쩌렁거리는 목청으로 비명을 내지른 엔리는 즉시 뒤로 돌아서는 무작정 유령의 반대편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이 어둡니 길을 모르니 뭐니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은 오롯이 유령에게서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의지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달리다가 게임이 허락하는 체력이 끝을 맞이했을 무렵.

       

       “여긴 대체 어디죠?”

       

       숨을 헐떡이던 엔리는 지금 자신이 완벽하게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낮에 방문했어도 길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스러운 숲이다.

       

       빛 하나 없는 상황에서 길을 찾아내는 게 가능할 리가.

       

       …어떡해야하죠?!

       

       저 이 숲에 더 있기 싫어요!

       

       유령이 나오는 숲이잖아요!

       

       그. 그. 원한이 가득 담긴 얼굴을 또 다시 보기는 싫단 말이에요!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지도 열면 되잖아.]

       

       “히갸아아악!”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머리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던 엔리였지만 이내 그 정체가 후원음성임을 깨닫고는 평정을 되찾았다.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그녀는 애써 침착한 체를 하며 다시금 후원음성을 읽었다.

       

       “그래요. 지도. 지도 기능이 있었죠!”

       

       다급하게 지도 기능을 켠 그녀였지만 그런다고 무언가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게임에서 제공해주는 지도가 까맣게 물들어 있었으니까.

       

       “이건 또 뭐에요?!”

       

       – 무알못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몰?루]

       

       – 나 화룡무인 안 해.

       – 잘은 모르겠지만 겁나 공들였넼ㅋㅋ

       – 이야. 이거 시스템으로 막는 게 아니라 도술의 영향이었구나.

       – 걍 버그난 거 아님?

       – 확실히 신령은 신령인가 보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엔리를 놀리는 데에 여념이 없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이 모인 방송에는 당연 설명과 참견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이건 버그가 아니라 이 게임에 존재하는 시스템 중 하나인 모양이다.

       

       보통 신령이나 영물의 영역 안에 들어가면 일어나는 현상인데 그 정체 모를 도술을 바루가 이 영역에 펼친 것이다.

       

       “…지도 못 봐요?”

       

       – ㅇㅇ.

       – 의미 없지.

       – 걍 꺼.

       

       “그럼 저 여기서 어떻게 탈출해요?”

       

       – 파이팅.

       – 힘내.

       – 이것도 다 경험이라고 생각해야지.

       – 정 안 되면 사망귀환 하셈.

       

       사실 엔리에게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죽어서 다른 장소에서 귀환하는 방법이나 아예 화룡무인에서 로그아웃을 해버리는 방법으로 이 숲을 탈출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방법을 사용했을 때 어떤 여파가 닥쳐올지 엔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엔리가 방송에 불을 낸 것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지금에야 아라보고 장작의 여신이라면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과거 엔리의 방송은 매번 화형식이 열리는 장소였다.

       

       그간 경험이 쌓인 엔리는 지금 여기서 도망쳐버리는 순간 머잖아 초록 크로마키 앞에서 정장을 입고 고개 숙이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공포에 벌벌 떨면서도 극단적인 수단을 고르지 못했다.

       

       “아니이이이. 최소한 탈출 방법 정도는 알려줘야죠. 아무 단서도 없이 무작정 탈출하라 그러면 그건 똥망겜이잖아요!”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지도 위에 주황색 점 떴는데?]

       

       “낚시하지 마요. 저 지금 심각. 어라? 이게 왜 있어?”

       

       후원으로 날아든 목소리가 한 말이 맞았다.

       

       방금 전까지 까맣게 물들어 있던 지도에 주황색의 점이 떠오른 것이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엔리가 그를 터치하자 점으로 향하는 화살표가 떠올랐다.

       

       – 엔리부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단서 줬네.]

       

       – 실시간 소통되는 갓겜이잖아?

       – 키야야야.

       – 어서 가죠?

       

       그렇다고 실시간으로 패치를 해주실 필요는 없었는데요.

       

       오류가 났다면서 그냥 이 숲에서 빼내주시면 그 자비에 감복했을 텐데…

       

       탈출의 단서가 될 화살표를 본 엔리는 기쁨보다는 절망을 느꼈지만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엔리는 화살표를 따라 무작정 앞으로 향했다.

       

       그 끝에 있는 것은 숲에 존재하는 자그마한 공터였다.

       

       스산한 분위기가 풍기는 그 곳에는 여러 물건들이 올려두어진 탁자와 로브를 뒤집어 쓴 사람이 있었다.

       

       “상점…인가요?”

       

       물건을 살 이 하나 없는 적막한 숲에 상점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이리라.

       

       아라가 엔리를 위해 준비해 둔 무언가.

       

       엔리는 그를 알고 있었지만 차마 저 쪽으로 다가가지는 못했다.

       

       보통 공포 게임에서는 사람이 안심하는 순간을 노리니까.

       

       “겁을 먹었나?”

       

       그 때였다. 로브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인 것 같기도 하고 여자인 것 같기도 한 미묘한 목소리.

       

       “겁을 먹었군.”

       “겁쟁이야.”

       “여기까지 오는 데도 오래 걸렸으니까.”

       “기다리라 죽는 줄 알았어.”

       

       로브의 아래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말 한 마디가 새어나올 때마다 달라지는 목소리의 향연.

       

       그것은 할머니이기도 했고 어린아이이기도 했으며 성질 사나운 남성이기도 했으며 부드러운 여인이기도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혼돈의 앞에서 엔리의 발이 굳는다.

       

       허나 상대는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정체 모를 이가 주름진 손을 치켜 들자 엔리의 몸이 자연스레 움직인다.

       

       다가가고 싶지 않다 생각함에도, 저항하고 있음에도. 그녀의 몸은 주인의 명령보다 정체 모를 이의 뜻을 우선했다.

       

       그렇게 강제로 로브의 앞에 도착한 엔리는 싸늘하게 식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꼈다.

       

       “걱정 마.”

       

       또 다시 목소리가 바뀐다.

       

       이번에 나온 목소리는 심술궂은 노파의 것이었다.

       

       “난 너를 도와주려는 거니까.”

       “…저를요?”

       “그래. 이 숲에서 나가고 싶잖아? 적절한 대가만 지불하면 나만한 조력자도 없을 걸?”

       

       보통 스스로를 조력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제일 의심스러운 사람인데요.

       

       엔리는 속으로 그리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이 사람에게 미움을 사면 좋은 꼴을 보진 못할 것 같았으니까.

       

       “내가 원하는 건 이 문양이 새겨진 동전이야.”

       

       로브를 쓴 이의 설명은 이러했다.

       

       숲 여기저기에 동전이 떨어져 있고 그걸 모아오면 여기에 있는 물건을 팔아주겠다.

       

       엔리의 머릿속에 여러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녀는 그를 입 밖에 내는 대신 상점에 있는 물건들을 살폈다.

       

       순간적으로 빠른 속도를 내게 해주는 부적.

       

       유령으로부터 숨을 수 있게 해주는 망토.

       

       공격을 막아주는 패 등.

       

       수많은 물건들의 각자의 가치에 따라 다른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

       

       제일 싼 것이 5전이고 그 후로는 5전식 올라가는 구조인가.

       

       “이건 뭐지?”

       

       탁자의 끝에는 목패가 있었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목패에는 10000전이라는 금액이 매겨져 있었다.

       

       이것 이외에 제일 비싼 것도 500전에 불과한데 10000전이라니.

       

       “그거? 네게 행복을 가져다 줄 물건이지.”

       “자세한 설명은 안 되나요?”

       “궁금하면 사보도록 해. 돈을 모을수 있다면 말이야.”

       

       로브를 쓴 이의 기분 나쁜 웃음 소리에 엔리는 설명을 듣는 걸 포기했다.

       

       딱 봐도 못 살 물건처럼 보이니까.

       

       신경 쓰지 말자.

       

       그걸로 구경을 끝마친 엔리는 로브를 쓴 이에게 다른 물음을 던졌다.

       

       “이 숲에서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걸어야지.”

       “네?”

       “바깥을 향해 필사적으로 걸어야지. 안 그래?”

       “…그 바깥으로 향하는 길을 묻고 있는 건데요.”

       

       엔리의 짜증어린 물음에 킬킬거리던 이가 손가락을 튕기자 나무들이 저 알아 움직이며 길을 만들어낸다.

       

       저 쪽으로 가라는 건가.

       

       기분 나쁜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엔리는 재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허나 그녀는 머잖아 그 결정을 후회했다.

       

       로브를 쓴 사람이 기분 나쁜데다 수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보다 둘이 낫다는 말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단 말이다.

       

       그녀에게서 벗어나 혼자가 되자 또 다시 숲의 어둠과 고요가 공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 진짜 싫다.

       

       아라 씨도 너무하시지.

       

       내가 무서운 거 엄청 싫어하는 걸 아시는 분이 왜 이런 컨셉을 잡으신 거야.

       

       나 오늘 혼자서 못 자.

       

       아니 혼자 집에 못 있어.

       

       무서워서 어떡하냐고!

       

       나중에 아라씨한테 책임지라고 하든가 해야지.

       

       자신에게 찾아드는 공포를 외면하려는 것인지 계속 혼잣말을 해대며 앞으로 향하던 엔리는 철을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야. 뭐야? 뭔데!

       

       엔리의 의문은 머잖아 해소되었다.

       

       무언가가 칼을 갈고 있었다.

       

       숯돌이 아니라 정체 모를 누군가의 백골에다가.

       

       스윽.

       

       스윽.

       

       스윽.

       

       굳어버린 피가 묻어 있는 칼을 멍하니 바라보던 엔리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저기에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그녀의 본능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것이 패착이었다.

       

       뒷걸음질을 치던 그녀의 발에 마른 나뭇가지가 부서지며 파삭하는 소리를 낸다.

       

       그에 따라 검을 갈던 이가 고개를 든다.

       

       가면 너머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가 엔리를 가리킨다.

       

       “끼야아아아앙아아악!”

       

       *

       

       공포에 질려 도주하던 엔리였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검을 든 이의 속도는 엔리로써는 따돌릴 수 없을 정도로 빨랐던 것이다.

       

       짧은 저항 끝에 붙잡혀 죽음을 맞이하게 된 엔리였지만 그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으면 돌아갈 수 있어.

       

       이 숲에서 빠져나갈 수 있어.

       

       무서워서 정신나갈 것 같은 짓거리를 그만둘 수 있어.

       

       “빠르군. 벌써 돌아왔나?”

       

       허나 그런 그녀의 그대는 기분 나쁜 노파의 웃음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숲은 그녀에게 탈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를 괴롭히는… 아니 교훈을 주는 데 진심이신 천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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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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