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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1

     노스트럼은 그간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제국의 문화를 일찌감치 받아들였고, 제국은 기존 역사보다 더 빠르게 제국의 기술을 퍼뜨리는 걸로 노스트럼이 제국의 기술을 일부나마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최신은 아니다.

     하지만 최신에 가깝게, 두 세대 정도 뒤처지더라도 그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협곡이, 어떻게 되었다고?”

     “그, 그것이….”

     “언제!”

     나는 스칼렛을 닦달했다.

     매국노 그레이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나는 나도 모르게 윽박지르고 말았다.

     “약 세 시간 전…입니다.”

     “……아버지는?”

     “교전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별다른 보고는….”

     스칼렛은 마석을 앞으로 내밀었다.

     노스트럼 왕국에서 정식으로 사용하는 마석이 아닌, 제국 그림자들-첩보부대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통신용 마석.

     “정식으로 전해진 보고는 아닙니다. 노스트럼 내부로 향하는 마도통신을 중간에 가로챈 신호입니다.”

     “정식은 아니지만, 신뢰할 수 있나?”

     “……예.”

     스칼렛은 자기 스스로 말을 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했다.

     확신을 두고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그 정보는 불명확하여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그 내용이 내용인지라 이렇게 달려온 것일 터.

     ‘위험해.’

     협곡에는 아버지만 있는 게 아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오랫동안 보좌해 온 여러 지브롤터의 상급 기사들이 십수 명이 있다.

     하지만 그 적으로 황제가 나선다면?

     황제에 더불어 일곱 명의 소드 마스터가 함께한다?

     “로버트 경과 멘테 경의 이야기는 없었나?”

     “네. 따로 없었습니다.”

     “…….”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할까.

     협곡은 어떻게 되었을까.

     두 사람을 남북으로 갈라서 퍼뜨린 게 패착이었을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지.’

     두 사람을 펼쳐놓았기에, 그 가운데로 기어이 밀고 들어온 것이다.

     ‘세 방향으로 각각 한 명씩 존재하는 마스터. 로버트 경이든 멘테 경이든, 결국 뚫어도 크림슨 지브롤터가 남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초전에 크림슨 지브롤터를 쓰러뜨리는 게 전쟁에서 가장 쉽게 이기는 길.’

     일단 이기고 본다.

     승리라는 목적에만 집중한다면, 아버지를 상대로 마스터 일곱을 데리고 달려드는 것도 예상을 했어야 했다.

     ‘경솔했어.’

     지브롤터에 더 많은 병력을 두고 왔어야 했다.

     지브롤터에 좀 더 많은 지원군을 두고 왔어야 했다.

     세이레네와 세빌리야, 롤랜드가 뚫려서 몰살당하든 말든 오직 지브롤터만-

     “……후.”

     “그레이.”

     

     아스타시아가 다가온다.

     “괜찮습니다. 후회해봤자, 늦은 거니까.”

     나는 내 뒤로 다가온 아스타시아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내 웃음은 누가 봐도 억지로 지은 웃음이었으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익숙한 불쾌감이야.’

     언제나.

     이런 기분이었다.

     어머니. 레타르. 누아르. 아버지.

     그리고 아스타시아.

     내 가족들이 한 명씩 죽어갈 때마다, 나는 전신을 뱀이 휘감아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은 그런 불안감이 들고는 했다.

     이번에도 그렇다고 한다면.

     “아스타시아. 급한 상황이니, 바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네. 휴식은-” 

     “가면서 체력을 회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칼렛. 나리아 여왕 전하는 지금 어디에 계시지?”

     “현재, 대강당 태양의 홀에….”

     “만나 뵈러 가지.”

     나는 바로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아스타시아와 스칼렛이 내 뒤를 따라 기숙사를 나왔다.

     기숙사 거리에도 시신이 가득하다.

     흡혈귀의 잔해도 잔해지만, 오로솔에 있던 이들 또한 많이 쓰러졌다.

     사망자와 사상자를 집계하는 것도 지금 힘들 터.

     

     하지만 그런 통계가 중요하다고 해도, 최전선이 위험에 빠졌다는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노스트럼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브롤터가 뚫리더라도 왕도 톨레도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그건 노스트럼의 승리지, 지브롤터의 승리가 아니야.’

     나의, 우리의 승리는 아니다.

     끼이익.

     대강당의 문을 연다.

     학생들이 앉아있어야 할 의자는 텅 비어있고, 대강당의 연단 가운데 나리아 여왕이 묵묵히 벽을 바라보고 있다.

     붉은 피가 튄 노스트럼의 깃발.

     수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간신히 지켜낸 왕도 톨레도의 상징.

     벽에 걸린 창대에도 피와 땀이 묻어있고, 쭉 펼쳐진 깃발은 X자로 교차한 제국군의 국기를 덮고 있었다.

     “나리아 전하.”

     “…무슨 일입니까?”

     나리아는 여러 가지 감정에 취해있는 것 같지만, 나를 보고는 바로 표정을 굳혔다.

     “뭔가 심각한 상황이라도…?”

     “따로 보고가 들어온 건 없습니까?”

     “아직은.”

     “지브롤터 협곡 제1 관문이 뚫렸습니다.”

     “……?”

     나리아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브롤터가, 왜?”

     “황제를 필두로 한 소드 마스터 총 8명이 협곡 관문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아직 전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언제 정보가 들어온 겁니까?”

     “조금 전이요. 그리고 상황 자체는 약 세 시간 정도 전에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세 시간 전이라고 한다면….”

     나리아가 머리를 한 손으로 누르며 기억을 더듬었다.

     “…이쪽도 한창 전투 중이었잖습니까.”

     “예.”

     “양동…?”

     양동-까지는 아니다.

     시간상으로 따져보면 이쪽이 먼저 전투가 펼쳐진 셈이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즉각적인 보고를 받지 못했다.

     “지브롤터에서 보고가 들어왔다면 한참 전에 들어왔을 텐데…!”

     “모르죠. 노스트럼은 여전히 파발을 이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지브롤터에서 급하게 연락을 넣었다고 해도, 전투 중에 즉시 반응하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마석 통신이든 뭐든, 우리는 이곳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브롤터에서 출발한 파발이 아직 오는 중일 수도 있고, 어쩌면 도중에 달려오다가 제국의 그림자에 의해 중간에 살해당했을 수도 있다.

     ‘나라면 그렇게 할 거야.’

     양동작전 이후, 승리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구원에 나서지 못하도록 정보를 차단하려고 할 것이다.

     혹은.

     “나리아 전하.”

     “예.”

     “어쩌면 적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침 해가 뜬 이후로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

     원군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게 다시 병력을 밀어 넣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 상륙할지도 모르죠. 우리가 돕지 않으면 노스트럼도 지브롤터도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는 그런 곳에.”

     우리가 가다가 ‘이쪽도 공격받고 있습니다!’라는 소식을 듣고 급히 말머리를 돌려야 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전하.”

     “그레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내가 내 마음을 전하기 전, 나리아가 앞으로 다가가 노스트럼의 국기가 그려진 창대를 들고 내게 건넸다.

     “머스킷은 드릴 수 없습니다. 저도 싸워야 하니까.”

     “…….”

     “하지만 이거라면 대신 드릴 수 있습니다.”

     펄럭.

     피가 묻었지만, 그 핏방울 때문에 깃발이 아래로 툭 떨어져 크게 펼쳐진다.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걸 지원하겠습니다. 왕도는 믿고 맡겨주세요. 저도…지난 10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니까.”

     “전하.”

     “비록 기사들은 지금 적을 추격하고 있지만, 이곳에는 아직 노스트럼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레이 당신은 그들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나리아는 쓰게 웃으며 깃발을 가리켰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마음껏 활용하십시오. 당신의 뜻대로.”

     

     나는 나리아에게서 창대를 넘겨받았다.

     검과 지팡이에 비하면 당연히 무거웠지만, 물리적인 무게보다도 더 무거운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일까.

     “그리고, 조용히 빠져나가세요.”

     “…예?”

     “당신은 적국의 마스터를 쓰러뜨린 존재입니다.”

     나리아가 진지하게 밖을 가리킨다.

     “이곳에서 당신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순간, 왕도에 있는 모든 이들이 혼란에 빠질 겁니다. 우리를 지켜주는 유일한 마스터가 사라졌다고.”

     “…….”

     “물론, 극복은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걸 극복해내기까지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레이, 당신은 너무나도 영웅적인 면모를 보였으니까.”

     “그래서 나서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노스트럼의 백성들은 영웅에 심취해있다.

     특히 이런 위기 상황에서 빛나는 존재일수록, 맹목적일 정도로 믿고 따르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야기가 퍼지고 있습니다. 거짓된 황금이 보여주는 세상 속과 마찬가지로, 그레이 지브롤터는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노스트럼을 지켜주는 수호자라고.”

     “…….”

     “그리고 그들은 말하겠죠. 크림슨 지브롤터가 제국에 쓰러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러니 그를 도울 게 아니라, 이곳에 남아 왕도의 백성들을 지켜라.”

     좋게 말하면 아버지를 믿기 때문에.

     고깝게, 나쁘게 생각한다면-

     “지브롤터가 무너져도, 왕도를 지키면 노스트럼을 지키는 게 아니냐.”

     아니.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크림슨 후작이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는 최악의 가정, ‘아버지가 황제에게 밀릴 수 있는’ 그런 상황에 대하여 노스트럼의 백성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레이. 당신이 가고자 한다면, 말리지 않을 겁니다.”

     “왕명입니까?”

     “아니요. 왕명이 아니라, 당신을 10년 전부터 봐왔던 지인으로서.”

     나리아는 떨리는 손을 자기 손으로 굳게 붙잡으며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판단이 틀린 적은 없었기에, 저는 지금까지 제가 지켜봐 온 그레이 당신을 믿는 겁니다.”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왕도를 떠났다.

     

     “동요하며, 혼란에 빠지고, 왕에게 불신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그렇겠죠.”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후.”

     나리아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씩 웃었다.

     “그 정도도 못 하면 국왕 자리 내놓아야죠.”

     “…노스트럼에서 누구에게 국왕 자리를 넘겨주시려고.”

     “누구든지. 백성을 지킬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리아의 말에 나는 약간, 안도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랑 약속 하나 하죠.”

     나는 나리아를 향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혹시나 죽을 것 같다면, 도망치십시오. 지브롤터로, 제가 있는 곳으로 퇴각하십시오.”

     “…….”

     백성을 버려서라도. 그런 말은 애써 전하지 않는다.

     서로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 게 때로는 미덕이 될 수 있으니까.

     “살아만 있다면, 반드시 다시 일어날 방법이 있을 테니까.”

     

     아.

     그러고 보니, 이거 망국의 공주가 내게 했던 말인데.

     “예. 그러면….”

     “전하!!”

     대강당의 문이 거칠게 열린다.

     “모르가니아 공작령에 제국의 비행선 7대가 상륙했습니다!”

     “…….”

     나리아가 잠시 눈을 감더니.

     “응원군은 얼마나 있지?”

     “예? 저기, 그….”

     “지브롤터 경에게는 내가 따로 임무를 내렸다.”

     내 옆으로 지나가며, 나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강당 밖으로 나섰다.

     “따라오라. 남은 기사들을 재편하여, 응원군을 보낼 테니.”

     “아, 알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기사는 나를 멀찍이 바라보면서도, 결국 나리아의 명령에 따라 몸을 돌리고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스타시아.”

     나는 대강당의 안쪽을 가리켰다.

     “빠져나가도록 하죠. 오로솔을.”

     

     그 누구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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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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