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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1

   “하링.”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검은색 머리칼 안쪽 연보랏빛이 빛나는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아주 오래전 보았던 얼굴이 있었다.

     

   “오빠.”

     

   아링 라그렌.

   하링이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르던 자신의 오빠였다.

     

   늘 자상하고 믿음직했던 오빠.

   그가 들판 위에서 하링에게 미소 짓고 있었다.

     

   하링은 무심코 달렸다.

   그리고 달려 나간 발과 함께 손을 뻗어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던 오빠를 얼싸안았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아링이 미소를 지은 채 하링의 머리칼을 자연스럽게 쓰다듬었다.

     

   하늘 위에서 내리쬐오는 햇빛이 무척이나 따스했다.

   아링의 품 또한 그러한 햇볕만큼 따스했다.

     

   이건 꿈일까.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이 하링은 너무나 평온했다.

     

   “응, 잘 지냈어. 너무 잘 지냈기에 탈이야.”

     

   어느새 성인이 되어 이제는 17살의 해를 맞이한 하링이다.

     

   예전에는 깊디깊은 원한 속에서 뒹굴었던 하링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신의 원한은 한 소년의 전력이 모두 해소해 주었기 때문이다.

     

   “오빠, 나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

     

   하링은 자상한 오빠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천천히 털어놓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링이 가장 이야기가 길어진 부분은 지난 2년간이다.

   라헬른 아카데미의 생활은 어느샌가 하링에게 가장 긴 부분을 차지했다.

     

   신기했다.

   고작해야 2년 사이에 이토록 많은 일이 있었고, 자신이 이토록 변할 수 있었다는 게.

     

   그리고 기뻤다.

   예전이었다면 하링은 아링을 보자마자 반가움보다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자신 때문에 죽어야만 했던 그에게 매일같이 사죄하고 그를 그리워하며 피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링을 보며 하링은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여러 일들을 떠들 만큼.

   그녀는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링은 이 부분이 누구 덕분인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하링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띄워졌다.

   그것을 본 아링은 하링을 따라 웃었다.

     

   “크라슈라는 그 아이가 참 좋은가 보네.”

   “응, 처음이야. 누군가가 이렇게 좋아진 건.”

     

   하링은 자신의 마음속 깊디깊게 자리 잡은 크라슈의 모습을 떠올렸다.

     

   크라슈에게 광견이 향하던 순간.

   하링은 자신이 차라리 대신 죽어도 된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를 필사적으로 지켰다.

     

   설령 이 세상에 자신이 없더라도 그만은 살아 달라고 부르짖을 만큼.

   어느샌가 하링에게 크라슈는 너무나 큰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날 광견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싸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하지 못해 후회했을 정도로 하링은 크라슈를 지키고 싶어 했다.

     

   “질투 나는걸. 내 예쁜 여동생을 이렇게 빠지게 만든 남자가 있을 줄이야.”

     

   아링은 키득거리는 웃음과 함께 하링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그러니 이제 슬슬 그 마음을 그만 죽였으면 좋겠어.”

   “…….”

     

   속마음을 꿰뚫어 본 아링의 말에 하링이 입술을 즈려 물었다.

     

   그의 말대로 하링은 어떻게든 크라슈를 향한 마음을 누르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녀도 알고 있다.

   이 마음은 누른다고 한들 눌러지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크라슈에게는 비앙카가 있어. 나는, 나는 그냥 크라슈에게 빚을 갚고 싶어질 뿐이었는데.”

   “하링, 알잖아. 이제 새어 나오는 걸 더 이상 멈출 수 없다는 걸 말이야.”

     

   하링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안다.

   알기에 그녀의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이 마음을 조절할 수 없다는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노력했다.

     

   하지만 크라슈를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 날.

   그녀의 마음은 구멍 뚫린 것처럼 결국 터져 버리고 말았다.

     

   “그럼 이제 슬슬 작별해야겠네.”

     

   하링이 고개를 들었다.

   아링의 모습은 어느새 별가루가 되어 천천히 흩날렸다.

     

   “잘 있어. 내 동생.”

     

   그러한 별가루 속에서도 따스함을 느낀 하링이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낯선 천장이다.

   코를 찌르는 소독 향을 보건대 아무래도 라헬른 아카데미의 병실인 듯싶었다.

     

   하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일어났어?”

     

   그 순간 하링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링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검푸른 머리카락의 소년이 보였다.

     

   소년은 하링을 보자마자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는 하링이 참으로 좋아하던 미소였다.

     

   “크라슈.”

     

   하링이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크라슈는 아직 비몽사몽인 그녀를 바라보고는 입을 떼려는 순간 하링의 입이 먼저 열렸다.

     

   “좋아해.”

     

   그동안 참아왔던 말이 입 밖으로 무심코 튀어나왔다.

     

   크라슈가 멈칫하였다.

   하링은 이 말을 하게 된다면 그가 곤란해 할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한 번 터진 말은 더 이상 주워 담을 수 없다.

     

   “좋아해. 나 크라슈를 너무 좋아해.”

     

   그녀의 솔직한 마음이 입 밖으로 넘쳐흘러 나왔다.

     

   하링은 어느새인가 울고 있었다.

   감정이 격해진 탓에 눈물샘이 제멋대로 움직인 탓이다.

     

   분명 내뱉지 말아야 했던 말이다.

   이 말을 내뱉는 순간 크라슈와는 예전 관계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그는 비앙카를 사랑했고, 그녀와 결혼식까지 올렸으니까.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 뜻대로 되던 법인가.

   터져 나온 그녀의 감정은 이제 하링의 뜻대로 조절되지 않았다.

     

   “이, 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아는데도, 참아도 안 됐어.”

     

   하링의 눈물은 멈출 줄은 몰랐다.

     

   이렇게나 추한 고백이 있을까.

   하링은 크라슈의 얼굴을 보는 게 두려웠다.

     

   지금 그의 표정을 보게 된다면 자신은 이제 영원히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오래전,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라그렌 가문에는 지독한 독이 하나 있다고.

   그 독은 라그렌 가문의 핏줄에 대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사랑.

   그 독에 한 번 빠지는 순간 라그렌 가문의 일족은 평생토록 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오직 한 사람만을 영원히 그 마음속에 품게 되기 때문이다.

     

   지독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기에 라그렌의 일족은 누구보다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하링은 그 이야기가 떠오르자 깨달았다.

   자신은 앞으로 크라슈 말고는 어느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되리란 것을 말이다.

     

   그것이 기뻤고, 그렇기에 슬펐다.

     

   “하링.”

     

   크라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링은 여전히 눈물 젖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크라슈의 얼굴을 보는 게 여전히 두려웠다.

     

   그러자 어느새인가 자연스럽게 하링의 머리카락을 크라슈가 쓰다듬어 줬다.

   그 자상한 손길에 하링의 애처로운 마음이 순식간에 녹아들었다.

     

   좋았다.

   고작, 이런 거라도 하링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렇기에 이 정도로 만족하려 했던 것을.

   오늘에 이르러 전부 망쳐버리고 말았다.

     

   크라슈는 그런 하링을 보며 입술을 떼었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그러고는 이내 결국 그 입을 열었다.

     

   “비앙카가 내게 말한 게 있어. 그걸로 나도 꽤 오랜 시간 고민해왔고.”

     

   비앙카는 크라슈의 곁에 더 많은 사람이 있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하지만 오늘, 네 말을 들으니 알겠어.”

     

   크라슈가 가는 길은 험난하다.

   그리고 그 길은 비앙카 혼자서 크라슈를 지탱할 수 없었다.

     

   크라슈는 앞으로도 수많은 위기에 들어설 것이고, 그때마다 위험을 마주할 테니까.

     

   그러니 비앙카는 크라슈에게 말하였다.

   자기 말고 다른 부인을 둬도 괜찮다고 말이다.

     

   ‘오늘 하링을 내가 거절한다면.’

     

   하링은 기필코 망가진다.

   크라슈는 하링이 자신에게 심리적으로 많이 기대고 있음을 알았으니까.

     

   ‘아니, 됐다. 이런 건 전부 변명이지.’

     

   크라슈가 숨을 가다듬었다.

     

   크라슈는 하링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비앙카와 회귀 전 과거에 엮여 있었던 독봉 하링 라그렌.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크라슈는 하링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들어섰다.

   그리고 그건 반대로 크라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링 또한 크라슈의 삶 속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

   그녀에게 받은 도움은 수없이 많았고, 그녀와 엮인 일 또한 수없이 많았다.

     

   당연히 하링도 크라슈의 마음속에서 크게 한자리하고 있었다.

     

   크라슈는 하링에게 유달리 약했다.

     

   비앙카와의 일이 엮인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자기 마음을 애써 누르려고 노력했던 것이 계속 눈에 밟혔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 그녀의 감정이 터져 나오자 크라슈 또한 깨닫게 되었다.

   하링 또한 자신에게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었음을 말이다.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링은 밝게 웃는 게 잘 어울리는 이였다.

     

   친구로서도 이성으로서도 하링은 크라슈에게 행복하기를 바라는 인물이다.

     

   ‘이건, 내 책임이다.’

     

   크라슈는 주먹을 쥐었다.

   자신을 사랑하여 이토록 서럽게 우는 하링을 크라슈는 그냥 둘 수 없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일이지만.

   크라슈는 드디어 자신의 마음에 결단을 내렸다.

     

   이기적이다는 말을 들어도 좋다.

   결국 이 길을 선택한 것은 크라슈였기에 감당할 몫이었다.

     

   “나도 널 좋아해.”

     

   결심과 함께 크라슈는 그 말을 입에 담았다.

     

   하링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녀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눈물이 젖어 얼굴이 엉망인 꼴인 하링이 크라슈를 보았다.

   내일 눈이 퉁퉁 불 것 같았다.

     

   크라슈는 손을 들어 하링의 볼을 감쌌다.

   그렇게 손이 닿는 것만으로 하링의 몸을 가늘게 떨렸다.

     

   “앞으로 이것저것 많이 복잡해질 것 알지만.”

     

   크라슈는 하링의 눈물을 엄지로 닦아 주었다.

     

   “내가 다 감당할게. 그러니까 앞으로도 내 곁에 있어 줘.”

     

   크라슈의 말을 들은 하링은 멍하니 크라슈를 올려다보았다.

     

   이번 일은 사실상 자신의 폭주였다.

   감정이 너무 커져 버린 탓에 기어코, 터져 나와 버린 폭주.

     

   하지만 그 폭주를 크라슈는 자신이 감내하여 받아 주었다.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미안했다.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타인이 자신의 마음에 같은 마음으로 응답해 주는 것이 이토록 기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 눈물이 한 움큼 쏟아나올 것 같았다.

   가슴이 뛰다 못해 바깥으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이미 너무 많은 욕심을 부렸지만.

   그녀는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크라슈.”

     

   하링은 크라슈의 옷깃을 꾸욱 잡았다.

     

   “나, 나 키스해도 돼?”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

   숨결도 평소보다 훨씬 뜨겁게 새어 나왔다.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린다는 게 과하게 부리고 말았다.

     

   부끄러웠다.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크라슈는 그런 하링을 보며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피식하니 웃고는 하링의 볼을 당겼다.

   그러고는 이내 그녀의 입에 입술을 맞춰 주었다.

     

   부드러운 촉감이 하링의 입술에 닿았다.

   하링의 눈은 이제껏 중 가장 커지더니 이내 스르륵 닫혔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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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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