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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1

    <331 – 살인적인 강의시간표2>

     

    야심한 시각, 암흑상회의 비밀회의실에 눈부신 조명이 들어왔다.

     

    “티토소가. 작은 조명으로 부탁드립니다.”

    “아앗.”

     

    눈부신 조명이 밤늦게 수면에 저항하며 이불 속에서 몰래 깨어있는 아이들의 손전등처럼 빛이 희미하게 줄어들었다.

     

    “저, 이렇게 늦은 시간에 깨어있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설레요. 밤에는 코코넨네 해야 하는데… 이러다 나쁜아이가 되어버릴지도 몰라요!”

    “이 정도로 나쁜아이가 되면 오크노디는 벌써 무진장 나쁜아이가 되었을 걸?”

     

    나쁜아이 즈앙이 핀잔을 주었다.

    빛을 보고 모여든 이들은 티토소가와 즈앙만이 아니었다.

    크루즈선에서 큰 공헌을 했던 실력자들이 속속들어 모여들었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네요.”

    “그간 옥체는 강녕하셨는지요, 아카디아 님.”

    “로지니. 당신, 원래 그런 말투를 썼던가요?”

     

    졸린 눈을 부비며 애써 허리를 꼿꼿이 들던 아카디아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로지니를 쳐다봤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귀족의 체면 따위는 쥐뿔도 신경 쓰지 않고 지 맘대로 살아가기에 예법 따위는 알아도 대놓고 무시하지 않았던가?

    샌드쿠커가 옆에서 큭큭 웃으며 로지니의 기행의 이유를 실토했다.

     

    “<제국사교회 입문체험기> 강의에서 다과 종류 맞추기 내기를 진 탓입니다. 일주일 간 말투를 교정하는 저주에 걸렸다나?”

    “귀족영애를 우습게 봤으니 깨질만하죠. 강해지려는 노력을 할 시간조차 자신을 가꾸는데 전념하는 귀족영애의 예법수준을 우습게보지 말아요.”

    “제국귀족한테 졌다는데요.”

    “하는 일이라고는 사교회에서 놀아나고 입이나 좀 떠드는 것밖에 없는 인형놀이에 심취한 얼간이한테 지다니, 로지니 당신은 마법사의 수치예요!”

     

    뭐가 됐든 까이는 건 마찬가지인데…?

    아무튼 변방출신은 제국출신을 진짜 싫어하는구나.

    샌드쿠커는 새삼 뿌리 깊은 변방진영과 제국진영의 갈등을 실감했다.

     

    “머리 식힐 겸 고르는 강의들은 하나같이 교수들이 학생 놀려먹는 재미로 만든 강의 같지? 다들 날로 먹을 생각 말고 사다코 교수님의 강의를 들어야 할텐데.”

    “그러게. 안타까울 정도로 이상한 강의만 고르는 어느 대공자가 떠오르네.”

     

    티토소가와 즈앙도 한쪽 구석에서 나란히 창턱에 앉아 속닥였다.

    슬슬 인원들이 다 모여간다 싶을 즈음, 마지막으로 들어온 이가 즈앙의 말을 받았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어. 마법사라면 마법관련 강의로 도배해야지.”

     

    북부대공녀 아이린의 신랄한 지적에 로지니는 분하다는 듯이 입술만 꾹 깨물었다.

    아이린은 크루즈선에서의 위기가 어지간히도 자극이 되었는지 무려 9개나 되는 강의를 수강했다.

    모름지기 일침도 진짜 잘난 사람이 하면 반박하기 힘들었다.

     

    “아무튼 이쪽은 오늘의 심야소집에도 출석하지 못할 정도로 과제에 쫓기고 있어. 다 모인 것 같은데 이만 본론으로 들어가면 좋겠어.”

     

    그녀는 인사치레를 나눌 시간조차 아깝다며 지젤을 재촉했다.

    크루즈선에서처럼 자신의 목숨을 타인이 쥐락펴락하는 무능한 처지가 되는 일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학생들도 그녀의 의지에 공감을 표했다.

    크루즈선에서 모였던 멤버 중에서는 용사와 성녀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오크노디의 잠재적인 적.

    지젤이 그들을 부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모두가 순순히 납득하였다.

     

    “모두의 성원에 부응하여 그럼 본론부터 들어가겠습니다. 금일 긴급대책위원회를 소집한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이 시간표를 봐주십시오.”

     

    지젤의 업무용 마나보드 위로 살인적인 스케쥴의 시간표가 떠올랐다.

     

    “으하핫. 이 녀석 1학기에는 아카데미 다녀본 적도 없었던 거 아니냐? 저런 말도 안 되는 숫자의 강의를 듣다간 잠 잘 시간도 없겠어.”

    “갸하핫. 원숭이 녀석의 말대로야. 죽고 싶어 환장한 녀석이 만든 시간표 아닌가?”

     

    손오천과 지고쿠의 적나라한 비웃음에 주변에서 두 사람을 말렸다.

     

    “손오천. 그쯤 해둬. 너도 아는 사람 시간표니까.”

    “응? 이 몸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

     

    손오천도 일단은 원숭이‘수인’.

    세상이 평등을 표방한다 하더라도 뿌리 깊은 인종차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손오천의 인간관계는 그가 원치 않더라도 비교적 협소할 수밖에 없었다.

    몇 안 되는 인간관계.

    그 비좁은 인맥 사이에서 저런 말도 안 되는 강의를 신청할 사람을 추려내던 손오천은 머지 않아 정답에 도달하였다.

     

    “설마 저거 쥐방울 녀석의 시간표냐?”

    “유감스럽게도 정답입니다.”

    “미친. 저 일정대로라면 하루 종일 강의실만 뺑뺑이 치다가 자고 일어나서 또 강의실만 뺑뺑이 치는 꼴이잖아.”

    “실제로는 저것보다 더 안 좋을 거야.”

     

    이사벨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크노디는 새벽만 되면 조깅에 나가는 기사학부 지망생들을 졸졸 따라다니니까. 하루일과를 새벽 6시부터 시작하는 거야.”

    “그럼 과제는?”

    “주말에 하겠지.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면 새벽까지 날밤을 지새울 테고.”

     

    가혹하다.

    사람이 기계도 아닌데 이런 스케쥴을 견딜 수는 없다.

    훈련에 미친 훈련귀신도 능률이 떨어지다 못해 파탄이 날 정도의 과중한 강의시간.

    누구라도 시간표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오크노디가 엄청나게 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간표를 본 직후에 저는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이 시간표는 자의로 만든 것이냐고. 꼬마숙녀는 대답했죠. 이사장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많은 강의를 들을 일은 없었을 거라고.”

    “그때 식당에서 본 그 남자가…”

    “재단의 이사장. 그 소름 끼치는 웃는 남자가…”

    “용서 못 해. 자기 딸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오크노디는 공부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고!”

     

    인간성이 결여된 계획표에 공분은 쉽게 모였다.

    지젤은 그 흐름을 이용하기로 작정했다.

     

    “꼬마숙녀는 도움이 절실합니다. 재단의 함정에 빠진 우리를 구해주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구해주지 않으면 꼬마숙녀는 그 가혹했던 재단의 시설로 돌아가게 됩니다.”

    “돕는다고 해도 어떻게 도와달라고?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헤스티아는 지혜를 요구했다.

     

    “우리가 같은 강의를 들으면서 강의 도중에 생기는 시간지연이나 다른 학생의 방해, 교수의 괴롭힘이나 조별과제로부터 꼬마숙녀를 지키는 겁니다.”

    “그 많은 강의를?”

    “꼬마숙녀의 몸은 하나지만 저희들의 몸은 하나가 아닙니다. 돕고 싶다는 마음은 같더라도 실제로 도울 강의를 모두가 나누어 가질 수 있죠.”

     

    마음만 앞서지 막막함을 느끼던 헤스티아도 두 눈에 빛이 돌아올 정도로 간단명료한 대응책이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아카데미 내에서 시간을 벌어주며 꼬마숙녀를 지탱하는 사이에 저는 외부에서부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낼 계획입니다.”

    “그 재단을 상대로? 어설픈 압력 따위는 통하지 않아. 수틀리면 당신 신변만 위험해져.”

    “하하. 북부대공녀에게 진심어린 걱정을 받다니, 저도 참 복 받은 남자군요.”

     

    걱정해서 손해 봤다는 것처럼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는 아이린.

    발치에서 쩌적쩌적 바닥이 얼어붙는 모습에 깜짝 놀란 지젤이 냉큼 계획을 실토했다.

     

    “돌파구는 이미 나왔습니다. 제가 할 일은 구슬을 실에 꿰는 것처럼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일 뿐, 재료가 될 구슬은 이미 있죠.”

     

    마나보드 위로 떠오르는 것은 불타버린 숲과 엘프들의 서식지, 그리고 가지가 꺾이고 잔뜩 상처 입은 세계수의 모습이었다.

     

    “재단은 꼬마숙녀의 환심을 얻고자 무리해서 유니크요리의 소재를 채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엘프들의 세계수 또한 큰 상처를 입었죠. 그리고 아카데미에는 실력이 뛰어난 엘프궁수가 있습니다.”

    “용사파티의 천재궁수 스콜라?”

    “지금 말한 그가 맞습니다.”

    “그를 포섭하겠다고?”

    “일단은 그럴 심산입니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은? 스콜라는 원래부터 오크노디와 척을 졌던 학생이야. 고향을 불태운 조직의 일원인 오크노디를 곱게 볼 리가 없잖아. 심지어 세계수가 다친 원인이 오크노디가 먹을 요리 때문이라면 더욱.”

    “그 부분이 중요한 대목입니다. 꼬마숙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큰 착각을 하고 있죠.”

     

    아주 중요한 착각을.

     

    “꼬마숙녀는 재단과 한통속이 아닙니다. 재단이라는 이름의 둥지에서 벗어나려고 격렬하게 날갯짓을 하는, 도약을 준비하는 아이이죠.

    재단은 그런 아기 새의 다리를 꺾어 둥지에 주저앉히려는 이들입니다. 둥지의 수익과 발전을 위해서는 아기 새가 제 둥지를 지으러 떠나면 곤란하기에.”

     

    그렇기에 오크노디와 재단은 같은 편이지만 서로에게 칼을 겨눌 수 있다.

     

    “꼬마숙녀와 스콜라가 1학기에는 서로 불편한 관계를 맺었지만 엘프들의 세계수가 다친 것에 비하면 작은 원한일 뿐입니다. 재단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오크노디를 돕는 것이 최선임을 스콜라와 그 뒤의 용사파티에 납득시키면 됩니다.”

    “그 꼴통들이 순순히 납득할까?”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젤은 확신했다.

     

    “한 학기에 38학점을 이수하려 드는 아이가 있는데 동정심이 안 생기면 그게 사람입니까?”

     

    척박한 북부출신답게 남에게 정을 쉽게 주지 않는 아이린조차도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큐령님의 오크노디 팬아트가 팬아트게시판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화가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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