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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2

    이제 슬슬 겨울에 접어들어 추워지기 시작한 에이레스와는 달리, 사시사철 따듯한 날씨가 유지되는 어느 섬나라.

     

    하늘에는 탁 트여서 가만히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로 좋은 날씨와, 땅에는 하늘만큼이나 푸른 바닷가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항구도시, 거기에는 기념품이나 과일등을 파는 알록달록한 노점상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함께 어우러져 보기만 해도 아주 기분이 들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와아! 정말 멋지다!”

    “갈매기다, 갈매기!”

     

    관광지가 신기한지 여기저기 가리키며 꺄르륵, 꺄르륵 거리는 디아나와 파이리스의 웃음소리가 참으로 즐거워 보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이튼이 아이들을 붙잡으며 말한다.

     

    “너희들, 너무 흥분한 것 같다. 가만히 머리 좀 식혀.”

    “시원해서 괜찮아!”

    “응!”

     

    그 때, 너무 알맞게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아이들의 이마를 쓸고 지나갔다.

    과연 그것이 파이리스의 정령적인 영향력 때문인지, 그저 단순한 자연 현상인지 알 길은 없다.

    그리고 둘 사이엔 별로 차이도 없으리라.

    정령이 곧 자연이니 말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하니 즐거운 가족여행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르나의 표정은 편치 않았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루크가 오질 않았네.’

     

    그렇다.

    루크는 이 멋진 여행지와 관광계획은 전부 기획해 놓고도 정작 자신은 비행기에 몸을 싣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까.

     

    루크의 가슴에 새겨진 서클은, 일반적인 비행기의 탑승을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드니까.

    루크도 그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예르나의 첫번째 신혼여행이니 좋은 곳을 갈 수 있도록 자신이 양보하겠다며 발을 뺀 것이다.

     

    그것이 불쌍하다 여긴 예르나는 루크에게, ‘그러면 차라리 국내 여행지를 다 함께 가는 게 어때?’하고 제안했지만, 루크는 ‘어차피 국내라고 해도 제대로 관광을 할 만한 지역을 찾으려면 비행기를 운용해야 할 정도로 먼 거리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일 뿐더러,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오랜만에 혼자 남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말았다.

     

    예르나는 여기에 오기 전, 루크와 함께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려 보았다.

     

    —-

     

    “예르나, 알다시피 저는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선호하는 편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하루도 빠짐없이 집이 굉장히 떠들썩한 분위기잖아요. 가끔은 저도 조용한 일상을 누리고 싶단 말이죠. 저도 힘들어서 그래요.”

     

    실제로 루크가 그들에게 해외 여행지를 권유한 이유는 예르나나 다이튼에게 수많은 마도기기 장치들을 아린세이아로 가져가는 장면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것 말고도, 오랜만에 평온하고 안락한,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이 섞여 있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 새삼스럽지만 루크도 고요와 신비를 사랑하고 은밀과 사색을 즐기는 마법사라는 족속이다.

    실제로 과거 영웅으로 불리던 찬란하고 위대한 루크조차도, 목적은 있었다지만 아주 조용한 시골에 은거하는 삶을 살았을 정도가 아닌가.

     

    물론 그 시대의 마법사인 루크와 지금의 자신은 동일한 인물이 아님을 알지만, 그렇다고 그 성향이 한번에 확 바뀌는 것은 딱히 아니었다.

    지금처럼 떠들썩한 일상도 썩 나쁘지는 않지만, 루크는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 말에 예르나는 속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 루크가 삶의 여유를 잃은 것은 바로 아이들 때문이었다.

     

    루크가 아이들 때문에 피곤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자신의 엄마로서의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임을 새삼 깨달았다는 것이다.

    루크 나름대로 아이들과 노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그냥 별 생각 없이 두었는데, 그것이 잘못이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길러야 하는 역할은, 루크가 아니라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자신이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해서, 정작 루크가 피곤해하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니.

     

    예르나는 속으로 자신을 자책하며 루크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 내가 너무 너한테 아이들을 맡겼나봐, 너도 아이인데…….”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루크도 그런 예르나를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으니까.

    뭐, 그렇다고 자신이 아이를 길러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도 없기는 하지만, 적어도 바쁘게 숲지기의 삶을 유지하던 예르나 보다는 훨씬 아이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고 본다.

    덕분에 사서 고생을 한 것도 분명이 있기는 하지만, 적재적소라는 말이 있듯이 루크는 그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알선을 했을 뿐이다.

     

    완벽주의자인 루크는, 미숙한 누군가가 실수하여 실패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나서서 일을 완벽하게 해결하고 매듭짓는 것은 더 좋아하니까.

    실제로 루크의 육아스킬은 ‘거의’ 완벽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무리 매듭을 지어도 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이 문제지.

    그러니 피로도가 쌓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겠어? 그래도 역시 다 재밌게 노는데 너만 혼자서 집을 보는 건……. 차라리 가깝지만 모두가 같이 놀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어때.”

    “예르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루크는 이렇게 덧붙였다.

     

    “어쩌면 일생에 한번 뿐일 신혼여행인데, 그저 그런 곳으로 가는 건 아쉽잖아요, 오히려 신혼여행에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하는 제가 더 미안한걸요. 그리고……윽.”

     

    그 때, 루크는 방금 전 방청소(청소라기보다는 비우기에 더 가까운 행위였지만)를 하다가 발생한 먼지가 하필이면 지금 눈가에 앉은 것을 느꼈다.

    보통의 먼지는 저택의 인챈트 때문에 이렇게 눈에 내려앉을 수 없었을 텐데, 루크가 방에 두었던 물건들 중에는 그런 종류의 마법적 조작에 민감한 것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에 저택의 인챈트를 우회하는 설정이 따로 붙어 있었다.

    어쩌면 그 때 겹쳐있던 먼지들이 우연히도 함께 설정된 것인지,‘청결 유지마법’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돌연 루크의 고개가 내려가며 말이 끊기자 예르나가 루크가 말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그에 루크는 우물쭈물 거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

    “부디 제 몫까지 즐겁게 즐겨주시길 바래요. 그거면 돼요.”

     

    그렇게 말하며, 루크는 웃었다.

     

    ——–

     

    그 때의 상황을 다시 짚어본 예르나는 역시나 이번에도 확신했다.

     

    ‘그 때, 분명 울음을 참았던 것 같은데.’

     

    루크가 슬쩍 보이고 만 눈물은, 사실 루크도 여행에 끼고 싶었던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쩌면, 첫 신혼여행지를 좋은 곳으로 가도록 하기 위해서 루크 자신이 희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예르나는 그 뒤로 이어진 대화도 떠올렸다.

     

    ‘너, 방금 울지 않았니?’

    ‘안 울었는데요, 전혀 안 울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분명 눈물을 닦는 걸 봤는데.’

    ‘그거는 그냥 먼지 때문이었어요.’

    ‘네가 저택에 인챈트를 걸어서 먼지는 안 생긴다면서.’

    ‘……하여튼! 그런 게 있으니까 그만 캐물으세요. 자꾸 그러면 저 진짜로 울어버려요?’

    ‘아, 아니……. 그건……. 알았어…….’

     

    루크가 그렇게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결국 이렇게 놀러 오기는 했다만, 그런 생각을 하니 예르나는 계속 답답해서 어찌할 길이 없었다.

    웃으며 배웅해주긴 했지만, 루크는 정말 괜찮은 거였을까.

     

    그 때, 뒤늦게 다이튼이 예르나가 혼자서 그렇게 침울해 있는 것을 발견해 다가와 묻는다.

     

    “또 루크 때문에 그래?”

    “아, 으응.”

     

    예르나는 이 순간에도 어둡고 고요한 방 안에서 혼자 훌쩍거리고 있을 루크가 계속 떠올랐다.

    훌륭한 숲지기인 예르나의 뛰어난 관찰력은 아주 사소한 행동이나 단서도 놓치지 않는다.

    루크가 짧은 순간 흘린 눈물을 본 예르나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르나는 아직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한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가 된다면 모두가 갖게 되는 염려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예르나는 이미 충분히 훌륭한 어머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루크가 혹시 지금 외로워서 혼자 울고 있으면 어떡하지?”

     

    문제는, 그것이 너무 과하다는 것이다.

     

    다이튼과 디아나, 파이리스는 전부 예르나를 유난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럴리가.”

    “언니가 울어? 왜?”

    “언니는 안 그럴걸?”

     

    루크가 외로워서 울다니, 그런 건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가 없는 장면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예르나가 여전히 염려하는 표정을 짓고 있자, 다이튼이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

     

    “그렇게 걱정되면 한번 전화해보면 되잖아? 아까는 비행기라서 못 했지만, 지금은 괜찮으니까.”

    “아, 그렇네.”

     

    예르나는 그에 깨달았다는 듯이 다이튼의 휴대폰을 집어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한번 전화해 볼게.”

    “한번 해봐, 루크는 오히려 지금쯤이면 아주 좋아서 입꼬리가 귀에 걸려 있을 걸.”

     

    해외라서 통신료가 조금 비싸게 나오긴 하겠지만, 그건 별 거 아닌 일이다.

    예르나는 망설임 없이 빠르게 루크의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몇번의 신호음이 간 뒤, 루크가 전화를 받는다.

     

    -다이튼? 왜 갑자기 전화를 하고 있나, 바쁜데.

     

    루크의 목소리는 약간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역시 혼자 있어서 신경이 날카로워 진 걸까.

     

    “루크? 지금 괜찮아?”

    -아, 아아……. 예르나? 예르나, 미안해요. 갑자기 전화가 걸려서 보니까 다이튼이길래, 저는 또 쓸데없는 얘기인 줄 알고.

     

    그 말에 예르나는 다이튼을 슬쩍 보았다.

     

    마치, ‘너 평소에 루크한테 쓸 데 없는 연락 많이 해?’라는 눈빛이었다.

    그에 다이튼은 슬쩍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언제 그리 쓸데없는 부탁을 했나. 대회 상금을 새 차 사는데 보태줄 수 있냐고 몇 번 물어본 것 밖에 없는데…….’

     

    떼어먹을 것도 아니고, 월급 받으면 조금씩 갚아줄 생각이었다.

    가족인데 그 정도는 괜찮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은 저도 아빠한테 돈 많이 뜯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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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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