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2

Posted by Kangmin, ? Views, Released on July 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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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은 처음부터 아나이스의 일방적인 우세로 진행되었다. 상대는 번번이 그녀의 수에 당해 차례를 쉬거나, 금화를 털리거나, 카드를 뺏겼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쉽사리 좋아할 수 없었다. 구경꾼들이 본다면, 아나이스가 그의 수를 읽고 일방적으로 유린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상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수는 그녀 자신도 기반을 닦을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래서 그런 소모전을 피할 목적으로 일부러 다른 방향으로 수를 전개해도, 상대는 자꾸 머리를 칼날 아래에 들이밀었다. 마치 일부러 저격당하러 온 사람처럼 말이다.

‘이대로 간다면…….’

그녀가 염려한 대로 그러한 상황은 곧 상대의 극장 카드의 발동 조건을 채우는 것으로 이어졌다.

“<아테레나 노천극장>을 세우겠습니다.”

‘아테레나 노천극장’은 서커스 그랑프리의 예선전이 열리는 ‘6대 극장’ 중 하나로, 돌로 만든 고대 유적을 그대로 현대의 극장으로 개조한 곳이었다. 원래 폐허에 살던 거지들이 동냥을 위해 공연을 시작한 데서 유래된 곳인 만큼, 이 게임에서 유일하게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아닌 자원을 잃는 조건을 충족시킴으로써 건축할 수 있었다.

극장 카드는 게임판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광역 특수능력을 발휘했다. 그 힘이 강력한 만큼 원래 게임 중반부쯤 되어야 지을 수 있는 게 보통이었다. 설립을 위해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이 그만큼 까다로웠다.

그런데 상대는 시작한 지 5분 만에 극장을 건립해 버렸다. 아나이스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상대는 자신의 패와 테이블 위에 뒷면으로 둔 카드들이 뭔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가 어떤 방법을 쓴 건지 알기 힘들었다.

‘혹시 마법? 아니, 동토 깊숙한 곳에서 마법은 무리야.’

이 시대의 마법 문명은 시에라마드레산맥 동쪽에서만 번성하고 있었다. 산맥 서쪽은 북극에서 밀어닥치는 극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극광은 마력을 요동치게 만들어서 마법을 사용하기 힘든 환경을 조성했다.

물론 제국에도 마법사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사회 필수적인 분야에 최소한의 힘만 간신히 발휘할 뿐이었다. 이러한 환경의 차이 때문에 산맥 동쪽의 국가들이 비행선을 띄우며 물류 혁명을 일으키고 있을 때, 제국은 계속 동면하고 있었어야 했었다. 철도들이 놓이기 전까지 말이다.

아나이스가 알기로 황궁의 수석 마법사쯤 되어야 이 제국 땅에서 자유롭게 원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기녀 하나 희롱하고자 그런 높은 사람을 동원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리 황태자라도 말이다.

도박꾼 청년은 아나이스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손이나 눈이 쉬지 않고 카드나 테이블을 살피는 것이 보였다.

‘그래봤자 이 속임수는 알아챌 수 없어.’

그는 평범한 도박꾼이 아니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마술사의 길을 걸었었다. 어릴 때부터 유명한 스승 밑에 들어가 기술을 익혔다.

그러나 그는 젊은 마술사들이 쉽게 매혹되는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바로 도박이었다.

도박판에서는 카드를 바꾸는 것 같은 간단한 기술로도 공연에서 버는 수익의 몇십 배를 벌 수 있었다. 그러니 관객들 앞에서 재간 떠는 일이 눈에 찰 리 없었다.

그래서 그는 스승을 떠나 본격적으로 도박판을 전전했다. 실제로 타짜 중에는 마술을 배우다 온 경우가 많았다.

그가 지금 사용하는 것은 스승의 연구 노트에서 훔쳤던 기술 중 하나였다. 바로 밤에도 빛을 발하는 물질을 활용한 속임수였다.

그 이름은 라듐. 불과 몇 년 전에 발견된 원소로 연금술 길드의 표에 실린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가 준비한 카드의 뒷면에는 그 라듐으로 만든 안료가 발라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 설치된 밝은 등 덕분에 아나이스는 상대가 속임수를 사용하기 힘들 것으로 여겼지만, 그것이 맹점이었다. 야광 물질은 오히려 밝은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누군가 카드를 집기 위해 앞으로 몸을 기울일 때, 테이블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한순간 ‘읽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면, 상대도 우연히 발견할 확률이 높았다.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해도 야광 물질이 내는 빛은 미미했다. 밝은 등에 익숙해진 눈이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힘들었다. 글씨를 읽기 위해서는 눈을 ‘어둠’에 익숙해지도록 동공을 확장해 놓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는 자신의 차례가 끝나면 눈을 아래로 깔고 손에 든 카드를 살펴보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척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눈을 내리깔고 있는 게 아니라 감고 있었다. 그렇게 어둠에 적응한 눈동자로 대기하고 있다가 상대가 앞으로 몸을 기울이는 순간, 슬쩍 떠서 그림자 속에 있는 야광 글씨를 포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자주 애용하는 속임수였다. 그는 자신이 100%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아나이스는 뚫어지도록 카드와 테이블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듯 계속 밀리기만 했다.

‘크크, 평생 들여다봐라. 그게 보이나.’

도박꾼 청년은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았다. 한낱 기녀 따위가 좀 똑똑하다고 해봤자 한계는 뻔했다.

일류 플레이어라면 상대가 카드를 다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다른 작전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고지식한 정석만 계속 반복했다.

넓은 세계를 보고 다양한 안목을 키우는 자신과 같은 상류층과 한계 안에 갇힌 사고를 지닌 상대와 같은 하류층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났다.

‘속임수는 거들뿐. 네 패인은 그 시야 차이다.’

청년은 그렇게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며 게임 진행을 계속했다. 시시할 정도로 일방적인 플레이가 반복되었다.

“이거 너무 하잖아. 자네는 봐주는 법이 없나?”

코카가 껄껄 웃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청년은 황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전하께 드릴 선물을 마련하는데 어찌 한치라도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 이거 마음에 드는군! 그러면 나는 이제 저 기녀에게서 뭘 받아낼지만 고르면 되나?”

“한낱 기녀 따위가 뭘 줄 수 있겠습니까. 가진 건 몸뚱어리밖에 없을 건데 말이죠.”

웃음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지저분한 농담이 하나씩 튀어나왔다. 그러나 아나이스는 끝까지 게임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이렇게 조롱받는 것에 익숙해진 덕분도 있었지만, 그녀의 뒤에 원더스타인이 지켜보고 있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단장님은 이것보다 더한 조롱을 받으면서 웃으면서 무대 위에 섰었어. 내가 우는소리나 할 순 없지.’

원더스타인은 여전히 그녀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나이스는 힘이 솟는 것을 느끼며 다음 카드를 집어 들었다.

‘질 것 같은데?’

원더스타인은 불안한 눈으로 테이블 위를 훑어봤다. 아무리 봐도 아나이스의 열세였다. 그녀의 전략은 통계적으로 승률이 높은 방법인 건 확실했지만, 상대는 이상할 정도로 운이 좋게 그 낮은 확률의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언가 조작이 있는 게 확실했다. 게임에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뭐, 진다고 해도 내겐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

그렇게 게임은 후반전에 접어들었다. 앞서 했던 것처럼 관성적으로 카드를 집으려던 도박꾼 청년은 순간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현재 아나이스 앞에 배치된 카드들.

그곳에서 유독 눈에 띄는 배치가 있었다. 바로 ‘마술’ 카드들이었다.

곡예, 연극, 음악, 마술.

네 가지로 구분되는 188장의 공연 카드 중에서 마술 카드는 14장밖에 없었다. 즉, 수가 가장 적었다. 그런데 아나이스의 앞에는 무려 7장의 카드가 배치되어 있었다.

마술 카드는 각 카드가 7종의 마술 도구 중 하나를 제공했다. 카드 한 장 자체는 가치가 높지 않았지만, 같은 마술 도구를 2장 모으면 해당 마술 도구의 특수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7종 마술 도구를 모두 모으면 그 시점에서 그 사람의 게임 승리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아나이스가 모은 카드는 7장 중 6장이 종류가 달랐다. 즉, 여기서 남은 마술 도구가 그려진 카드를 한 장 더 모으면 그녀의 승리였다.

‘어느새?’

시작부터 끝까지 아나이스의 전략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장미 풍차 카바레>와 <크리스티앙 기념관>의 극장 카드의 능력을 살려서 금화와 점수를 모으려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계속 훼방 놓아 그녀가 노리는 카드 말고 다른 것을 집어 가게 했다. 더 가치가 떨어지는 카드들로 말이다.

그녀의 앞에 놓인 마술 카드 중에는 그렇게 자신이 가져가라고 던져준 카드가 있었고, 그녀가 노리는 카드를 집기 위해 자신이 놓쳐버린 카드도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의도된 것이었다고?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어. 한낱 술집 계집 따위에게 이 내가…….’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주변 사람들도 게임판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하나둘 깨닫고 있을 때, 아나이스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눈치챈 모양이군요.”

“무, 무슨 소리냐……. 이, 이걸 네가 의도했다고? 큭, 우, 우연히 어쩌다 모은 것 가지고…….”

“우연이라고요?”

아나이스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당신이 카드에 뭔가 표시를 해뒀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어요.”

“어, 어떻게……아, 아니, 무, 무슨 헛소리냐? 내가 표시를 해뒀다고?”

“부정하고 싶다면 부정하세요. 하지만 저는 그런 전제를 깔고 작전을 세웠어요. 당신이 뒷면 표시된 카드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것으로 말이죠.”

청년은 이를 갈았다가 다시 테이블 위를 응시했다. 그러다 뭔가 깨닫고는 소리쳤다.

“우, 웃기지 마라! 그렇다고 해도 네가 그렇게 필요한 카드를 모으기 위해서는 뒷면이 되어 있는 카드가 뭔지 알았어야 한다!”

그녀는 다음 카드를 손으로 가져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맞아요. 저는 뒷면으로 된 카드가 뭔지 알고 있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해서 알아냈다고 말하는 게 맞겠군요.”

“어, 어떻게?”

그녀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가리켰다.

“예로부터 간헐천 근처에는 도깨비불이 나타나는 현상이 자주 발생했죠. 그리고 그 현상에 대해서는 몇 년 전에 연금술 길드에서 해명했어요. 바로 암석층에 있는 라듐이라는 물질 때문이에요. 그 물질이 붕괴하면서 나오는 에너지가 특정 물질에 반사되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죠. 당연히 라듐은 온천수에도 다량으로 섞여 있어요.”

아나이스는 자신의 카드 중 하나를 들어 뒷면을 보였다. 그곳에는 희미한 녹색 빛을 발하는 글씨가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명백히 그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밝았다.

“당신은 카드에 아주 미세한 양의 라듐을 발랐겠죠. 통상 상태에서는 붕괴 반응이 아주 천천히 진행될 거예요. 그만큼 빛이 약하겠죠. 하지만 저는 아까 이 카드를 한 번 물에 떨어트린 적이 있어요. 거기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이렇게 글씨가 선명하게 떠오르더군요. 아마 온천수에 섞여 있는 활발하게 붕괴가 진행되는 라듐이 이 안료에 영향을 끼쳤겠죠.”

청년은 아까 아나이스가 손에서 카드를 흘렸을 때를 기억했다. 어지간히 긴장했구나 하고 말았는데…….

“라듐? 그게 뭐야, 태어나서 처음 듣는데…….”

“넌 신문도 안 보고 사냐? 그 있잖아. 몸에 바르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하는 그거.”

“야광 시계에 쓰인다고 했던가?”

“몰라. 그딴 거.”

“으휴, 무식한 새끼.”

“그건 그렇고 저 기녀는 어떻게 저런 걸 다 아는 거지?”

아나이스의 입에서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지식에 다들 입을 쩍 벌렸다. 저런 지식을 백과사전처럼 줄줄 꿰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얼마 안 되는 실마리로 사건의 진상을 즉석에서 간파해내는 그녀의 솜씨는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그것을 발견한 우연이었어요. 어떻게 이 위기를 넘겨야 할지 고민하다가 실수로 카드를 놓쳐버렸던 것이니까요. 어쨌든 덕분에 저는 당신이 쓴 속임수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했던 것처럼 눈을 감았다가 뜨는 방식으로 카드의 글씨를 읽어낸 거죠.”

그것까지 알아냈다니.

도박꾼 청년은 분했는지 테이블을 손톱으로 거칠게 긁었다.

“크, 크윽, 고, 고작 술집 작부 주제에 어디서 그런 지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