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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2

        

         

       “그리고 특집 이후에 두 개의 방송에 더 출연하시게 될 텐데…. 뉴스와 예능이 될 겁니다.”

         

       “뉴스와 예능이라. 자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일단 뉴스는…게스트를 불러놓고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있습니다.”

         

       “알고 계신다면 얘기가 빠르겠군요. 박진성 주술사님이 게스트로 출연해서 대화하게 될 겁니다.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내용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일단은 기본적으로 국방과 주술에 대해 논하고, 박진성 주술사님이 PR(Public Relations)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겁니다.”

         

       김철수는 그렇게 말하곤 말을 이었다.

         

       “그리고 뉴스에 출연하신 다음에는 예능에 출연하시게 될 텐데…. 이건 박진성 주술사님이 원하는 예능에 나가시면 됩니다. 아, 물론 지상파 방송에 한해서입니다. 정부가 원하는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지상파 방송이 좋거든요.”

         

       되도록 황금시간대 예능을 선택해주신다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김철수는 그렇게 말을 끝냈다.

         

       ‘흐음.’

         

       그림이 나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지원이 팍팍 들어가는 특집 방송이라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특집 방송’이라는 것 자체가 정부가 작금의 사태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데다가, 그 특집 방송조차 유명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것이니만큼 꽤 높은 시청률과 반향을 기대해보아도 되리라.

         

       그리고 뉴스.

       뉴스라는 매체는 시청률이 획기적이지는 않지만, 반대로 시청률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특성이 있었다.

         

       말하자면 TV 프로그램계의 스테디셀러(Steady Seller)인 셈이다.

         

       게다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폭넓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니, 박진성을 포장하고 앞서 방영했던 ‘특집’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퍼뜨리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능.

       이것 역시 나쁘지 않았다.

       뉴스가 얕고 넓었다면 예능은 좁고 깊다고 할 수 있었다.

         

       특정 계층, 특정 나이, 특정 성별, 특정 취향의 사람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특히나 시청률이 높은, 소위 말하는 ‘국민 예능’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다면 좁다는 단점조차 무시할 수 있다.

       게다가 예능의 특성상 사람들이 박진성에 대해 친근감을 가지게 하기 좋으며, 예능에 출연할 때는 특집과 뉴스라는 매개로 ‘정부가 이번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박진성을 고용했다.’라는 이미지를 심어놓은 상태일 것이기에 박진성에 대한 호감을 정부에 대한 호감으로 바꿔버릴 수도 있었다.

         

       그나마 단점이라면 ‘예능’이라는 프로그램 특성상 박진성을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그려내거나 ‘악마의 편집’이라고 불리는 짓으로 비호감으로 만들 수 있다는 위험성 정도인데, 그 위험도 ‘정부’라는 거스를 수 없는 집단의 지원이 껴 있는 이상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김철수가 말했듯 진성은 주술사였다.

       잘못 건드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주술사.

         

       ‘주술사에게 원한을 사면 후환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는 것이 사람들이 주술사에게 품고 있는 두려움이었는데, 그 두려움을 무릅쓰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이상한 짓을 한다?

         

       그걸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청률을 위해 영혼까지 팔았다.’라는 감탄해도 모자랄 것이다.

         

       물론 실제로 시청률에 영혼까지 팔 사람들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했다.

         

       방송 전에 한번 확인해보면 그만이다.

         

       이 경우에도 가짜 편집본을 보여줘서 진성을 속일 수도 있기는 했지만….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허튼 짓거리를 하는 즉시 식물인간이 되어버리도록 머릿속에 벌레를 심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방송 직전에 혼절하도록 손을 써서 가짜 편집본이 방송되도록 하면 되었고.

         

       즉, 진성에게 손해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겠군요.”

         

       진성은 조건이 나쁘지 않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흐름은 점점 긍정적으로 흘러갔다. 이는 김철수가 주의사항과 정부의 요구사항을 말할 때도 이어졌으며, 그 끝에는.

         

       “계약하겠습니다.”

         

       “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계약이 성립되었고, 박진성이 방송에 나가는 것이 확정되었다.

         

       김철수는 진성을 방송에 출연시키라는 윗선의 지시를 성공시킨 것이 기쁜 것인지 싱글벙글 웃었고, 진성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일이 잘 풀렸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일은 술술 잘 풀렸고, 계약도 별다른 잡음 없이 성사되었다.

       게다가 자신이 극히 유리한 상황임에도 진성은 딱히 조건을 걸지도 않았고, 정부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달라는…어찌 들으면 불쾌할 수도 있을 법한 요구사항 역시 흔쾌히 들어주었다.

         

       대성공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김철수는 기쁨을 품에 끌어안고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의 기쁨을 공유하기라도 한 것일까.

       먼젓번에 방문했을 때는 건물의 휑한 풍경을 소름 끼친다고 여겼건만, 지금은 건물에서 왠지 모를 포근함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전과 똑같이 아무것도 들어선 것도 없고 휑했음에도 말이다.

         

       ‘이번 일, 성공했으니 오랜만에 느긋하게 쉴 수 있겠군.’

         

         

         

        * * *

         

         

       세상의 이치는 시소와 같아 한쪽이 내려앉으면 반대쪽이 올라가고, 반대쪽이 내려가면 다른 쪽이 올라가게 된다고 하였던가.

         

       “이번 일, 성공해야 하는 거 알고 있지? 제발 좀 더 힘을 내자. 응? 좀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여보자고.”

         

       계약을 성사하고 포상과 휴식을 기대하고 있는 김철수와는 달리, 끔찍하게 바빠진 곳이 있었다.

         

       바로 ‘추적, 탐사, 보도’ 팀이었다.

         

       “아니 그게 되냐고요, 지금.”

         

       그들이 난리 난 이유는 간단했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특성상, 발로 뛰고 온갖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는 것.

       철저하게 준비하기에는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고, 안된다고 말하기에는 윗선이 너무 강경하게 나왔다.

       본부장이 직접 나서서 ‘우리 방송국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건 자네들이네. 할 수 있으리라 믿네.’라고 말했다.

         

       ‘사실상 이 일은 확정되었고 너희는 이것을 성공시켜야 한다’라는 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부국장이 수시로 그들에게 찾아와서 일은 잘되고 있냐고 물어보았고, 국장 역시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만날 때마다 은근히 눈치를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거절?

         

       불가능하다.

         

       지금 상황에서 거절한다면…그 후환이 참으로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일을 받고, 성공시키는 것이다.

         

       성공만 하면 그만한 보상이 따라올 테니까.

       무리하게 진행한 만큼, 성공시키기만 하면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꽃길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공시키기가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정보 수집부터 난항이었다.

         

       이번 주제가 전국의 산에 출몰한 괴물에 대한 것이니만큼 그것과 관련된 것들을 조사해야 했는데, 인터넷으로 조사하기에는 온갖 가짜정보가 범람하고 있었다. 군부대의 실험체 설부터 옛 북한 잔당들이 벌인 테러까지 수많은 가설이 난무했고, 조작된 자료부터 비슷한 자료까지 들고나와서 괴물들의 정체를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확실한 것은 옛 기록들이었는데, 여기서도 문제가 생긴다.

       삼한시대나 삼국시대는 기록이 별로 없으니 기대하기 힘들었고, 그나마 기대할 만한 것이 고려와 조선의 기록이었는데….

         

       고려 시대의 기록은 조선이 직접 나서서 파기하거나 훼손, 변형시켰고, 조선 시대의 기록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조선은 괴력난신과 미신을 극도로 배척하고 배격하는 나라였다. 그 때문에 요괴나 귀신, 괴물에 대한 기록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학식이 있는 사람들은 군자가 다룰만한 것이 아니라면서 꺼렸고, 천박하다면서 기록으로 남기려 하지 않았다.

       그나마 전설이나 신화 같은 것은 학술적인 측면이나 민족적 측면에서 기록되는 것들이 있었으나, 귀신이니 괴물이니 하는 것들은 어지간한 괴짜나 서얼, 양반가의 여자가 아닌 이상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기록을 제대로 남기질 못했다.

       문맹이 많아 기록으로 남길 수 없었다.

         

       그나마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이후에는 훈민정음을 읽고 쓸 수 있는 이들이 많아지기는 했지만…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다.

         

       바로 기록에 필요한 문방사우(文房四友)가 비싸다는 것.

         

       종이, 붓, 먹, 벼루.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기에는 제대로 된 문방구는 너무 비쌌다.

       그 때문에 귀신, 괴물, 요괴 같은 야담(夜談)에 관심을 가지고 소비하는 계층이 제대로 기록에 남길 수 없었다. 게다가 어찌어찌 기록을 남긴다고 할지라도 문방구의 질이 좋지 않았고,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한 채 삭거나 찢어지는 등 훼손되었다.

         

       게다가 나라가 평화롭기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조선은 외침(外侵)을 수시로 받았고, 그 과정에서 자료들이 훼손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살아남는 자료?

         

       극소수만 남기고 일제 강점기에 불태워지거나 내용이 왜곡되었다.

         

       일본 제국은 내선일체(内鮮一体)를 표어로 내세우며 조선인의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고 했고, 이러한 목적으로 민족적 정체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지우고 왜곡시켰다. 삼한, 삼국, 고려, 조선 같은 옛 나라에 향수를 가지지 않도록 부정적인 면을 강조했고, 설화(說話)에 일본의 색채를 집어넣음으로써 일본에 동화되기 쉽게 만들었다.

         

       ‘한국 괴물인지 다른 나라 괴물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러니 팩트 체크를 하기 위해 한국의 자료들을 뒤져보는 건 극히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다른 나라 자료를 살펴보는 것이었는데…이것도 문제였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내용처럼, ‘일본 요괴’로 추정되는 괴물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일본에 가야만 한다. 일본으로 가서 관련 자료들도 보고, 인터뷰도 하면서 취재해야 하는데.

         

       일본이 거부했다.

         

       출입국재류관리청(出入国在留管理庁)이 ‘추적, 탐사, 보도’팀의 일본 입국을 거부한 것이다.

         

       일본은 촬영 목적으로 일본에 들어오려는 그들에게 상륙의 거부를 알리며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그 이유를 물어도 애매모호하게 대답해주기만 했다. 게다가 입국을 거부한 후에는 일본의 민속학 교수나 명사와도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연락이 된다고 하더라도 비협조적으로 나왔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없고, 정신병을 앓는 사람도 없다.

       해외여행 결격사유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사람들로만 구성해서 일본에 입국하려고 했는데, 그걸 받아들여 주지를 않는다.

       어떻게든 해보기 위해 다른 촬영팀을 섭외해서 관광객으로 일본에 들여보내려고 해도, 눈치를 챈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들마저 일본에 상륙시키는 것을 거부했다.

         

       인터뷰하기로 약속을 잡아놓은 사람들?

         

       약속이 죄다 터졌다.

       급한 일이 있다며 취소하거나, 연락 두절 상태가 되어버리거나, 말을 이리저리 빙빙 돌리며 ‘자료가 충분치 않다.’, ‘내 권한으로는 알지 못한다.’, ‘학계에서 논란이 되는 것이라 의견을 말하기 조심스럽다.’ 등의 온갖 핑계를 대며 그들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말을 왜곡하거나 지어내서 말한다면 녹음본을 공개하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까지 했으니 어떻게 말을 교묘하게 편집해서 쓸 수도 없었다.

         

       “아니 그래도 박진성 주술사가 도우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아니 그 사람이 뭐 도깨비방망이에요? 주술 불모지 소리를 대놓고 듣는 게 한국 아니에요? 그런데 주술 불모지에다가 나이 젊은 주술사라면서요. 그것도 이제 막 성인이 된. 그 사람한테 무슨 기대를 해요.”

         

       그나마 믿을만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번 특집의 중심이 되어야 할 박진성은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인물이었다.

         

       주술 불모지 한국 출신에, 스승도 없이 독학했으며, 나이까지 젊다.

       게다가 정부의 입김을 팍팍 받는 데다가, 듣기로 재벌이니 하는 사람들과 연관이 있다는 소문까지 들리는 걸 보면 대놓고 낙하산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갈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 힘들어서 잠시 희망 좀 품어봤다. 자료 조사나 하자….”

       

       “…예.”

         

       비효율적이라는 것도 다른 선택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의 자료들을 어떻게든 조사하고, 한국의 민속학과 일본의 민속학에 대해서 교수들을 쫓아다니며 인터뷰하고, 어떻게든 팩트 체크를 할 수밖에.

         

       “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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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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