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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2

       “혈교의 본거지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극히 적네. 중원에 있을지, 새외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정녕 그들을 찾아 떠돌겠단 말인가.”

         

       무림맹주 현학의 물음에 백우진이 즉답했다.

         

       “예, 맹주님. 부디 제게 오늘의 과오를 씻을 기회를 주십시오.”

         

       이 모습을 본 사흑련주 도굉의 입술이 비틀렸다.

         

       무거운 엉덩이로 수뇌부를 차지하고 있던 장로들이 잡혀가기가 무섭게 치고 들어오는 제안.

         

       단순히 제 잘못을 씻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극적인 순간 아닌가.

         

       ‘처음부터 이걸 노렸던 게로군.’

         

       이곳에 모여 앉은 수많은 무인 중 오직 도굉과 사뇌만이 이 사실을 깨달았다.

         

       왜냐.

         

       그들은 이미 백우진이 얼마나 영악하고, 머리 회전이 빠른지 몸소 경험해 보았기 때문.

         

       ‘혈교의 본거지를 찾는 것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선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일.’

         

       누가 되었든 혈교의 본거지를 찾는 것은 연합에 있어 제일의 우선 과제.

         

       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임과 동시에 백우진이 가장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영악하지 않은가?

         

       굳이 이런 사건이 아니더라도 본거지를 찾는 일에 자원했을 거면서 남들이 기피하는 일에 처절한 희생정신을 품고 자원하는 것처럼 일을 꾸미고 있지 않나.

         

       ‘상황 좋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적대적이었던 무인들의 시선이 어느덧 호의로 변한 것을 느끼며, 백우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도굉과 사뇌가 예상했던 대로, 그는 수뇌부의 장로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지금의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둔 상태였다.

         

       ‘고리타분한 정파에 붙어 있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정파는 전통과 역사를 무척이나 중요시하는 곳.

         

       그만큼 의와 예에도 예민하여 윗사람에게 조금만 우를 범해도 크게 혼쭐이 나게 된다.

         

       ‘그런 것도 나쁘지는 않지.’

         

       윗사람을 공경하고, 전통과 역사를 중요시하는 것.

         

       절대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보다 긴 세월을 살아온 선배의 지혜는 분명 뛰어날 것이고, 먼 옛날 선배들이 지나온 발자취에는 지금의 위기와 고민을 해결할 방도가 숨어 있는 법이니.

         

       다만, 세상이 그렇다.

         

       순기능이 존재하면 역기능 또한 존재하는 법.

         

       수뇌부의 장로들은 이러한 방식이 낳은 역기능이다.

         

       ‘지혜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고, 권위 의식으로 찌든 노인네들.’

         

       그들은 선배를 향한 공경을 권위로 착각하고, 그저 헛먹었을 뿐인 나이를 지혜로 둔갑했다.

         

       그렇게 사기 쳐서 얻은 자리에서 무얼 하였나.

         

       오로지 제 잇속을 챙기기 위한 방만한 병력 운용만을 일삼지 않았던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간다는 뜻인데, 전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군의 진영이 더없이 안정된 상태로 하나로 뭉쳤을 때 비로소 승리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

         

       그래서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온갖 수를 동원했다.

         

       수뇌부 장로들이 의약전 신세를 면치 못하게끔 몸을 망가뜨리고, 그들의 방을 수색하여 그들의 필체가 고스란히 드러난 서찰들을 하나씩 빼돌렸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오문이 자랑하는 기술자에게 의뢰하여 필체를 베낀 뒤, 오늘 송사장에서 그가 보인 협의서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이러한 과정을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과거에는 백우진도 그랬다.

         

       모든 과정에 한 치의 오점도 남기지 않고 공명정대한 방식으로 아군을 좀먹는 이들의 비리를 밝혀내 몰아내고자 애썼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부터 포기하게 되더라.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의문 하나 때문이었다.

         

       그들이 비열하게 나오는데 어째서 자신만 공명정대해야 한단 말인가?

         

       지구의 속담 중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때부터 백우진은 달라졌다.

         

       상대에게 죄가 있다면 그 죄를 묻기 위해 조작이나 선동 또한 서슴지 않았다.

         

       그들에게 죄가 있는 건 사실이니, 어떻게든 이를 밝히기만 하면 그만 아닌가.

         

       “으음….”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백우진의 표정에 현학이 침음성을 흘렸다.

         

       양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현학과 도굉,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맞부딪힌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라고 눈빛으로 묻는 현학의 물음에, 도굉은 그의 뜻대로 해주자는 의미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로써 결정되었다.

         

       “옥면신룡과 그의 조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겠다.”

         

       백우진이 두 사람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하명하십시오.”

       “그대들에게 단독 작전을 허한다.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인즉!”

         

       장엄한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중원 전역을, 필요하다면 새외를 모두 뒤져서라도 혈교의 본거지를 찾으라. 그리하면 오늘날 그대가 쌓은 과오는 절로 씻겨 내려갈 것이니.”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 백우진 또한 제 목에 거센 기운을 담아 외쳤다.

         

       “명을 받듭니다!”

         

       짝짝짝짝!

         

       이를 본 무인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 * *

         

         

       송사가 무사히 끝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백우진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 그가 원하는 결말대로 막을 내렸다고 봐야겠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백우진과 당선영은 더없이 뜨거운 밤을 보냈다.

         

       전신을 흠뻑 적신 땀을 닦을 생각조차 않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침상 위에 부둥켜 안은 채 누운 두 사람.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린 그녀가 검지로 그의 탄탄한 가슴을 살살 간질이며 말했다.

         

       “정말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됐네.”

         

       감탄 섞인 그녀의 말에 백우진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해.”

         

       이에 의아함을 느낀 당선영이 베고 있던 그의 팔로부터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물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백우진은 그런 그녀의 머리를 제 팔 위로 지그시 누르며 대답했다.

         

       “그들을 몰아내기를 바랐던 사람이 그자리에 나 말고 더 있었단 얘기야.”

         

       처음부터 끝까지 분명 일을 꾸민 것은 백우진 오롯이 혼자만의 일이다.

         

       그러나 그가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상황을 그의 통제하에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그들은 결국 가짜로 꾸며낸 협의서 한 장에 송두리째 뽑혀 나갈 만큼 덕망이 좋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때다 싶어 모두가 백우진이 그린 밥상에 한 숟가락씩 얹은 거고.

         

       말인즉 구태여 백우진이 나서지 않아도 그들은 언제고 축출되었을 거다.

         

       다만, 백우진은 그 시기를 크게 앞당겼을 뿐.

         

       “흐응…, 그렇구나.”

         

       그제야 송사 과정에서 느낀 위화감을 이해하게 된 당선영.

         

       확실히 중요한 사안으로 열리게 된 송사치고는 너무나도 순조로웠다.

         

       이게 이렇게 흘러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기에는 백우진의 계략과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도움 또한 더해진 결과였던 거다.

         

       그리고 그를 도운 다른 이는 아마도….

         

       ‘맹주님인가?’

         

       그도 마찬가지로 수뇌부 장로들을 탐탁지 않게 여긴 거라면 모두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백우진이 가장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원하는 걸 모두 이루었고, 떨어진 명성은 오늘의 일이 퍼지는 순간 회복을 넘어 더 높이 치솟을 게 아닌가.

         

       ‘남자 하나는 참 잘 골랐다니까.’

         

       새삼 놀랍다.

         

       평생 가문에 묶인 채 진정한 사랑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할 줄 알았건만.

         

       죽고자 결심했던 수없이 많은 순간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이깟 비루한 목숨 따위 조금도 아깝지 않다며 몇 번이나 비수로 제 목을 찌르려 했지만, 결과적으론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비참한 삶을 왜 자꾸만 연명하고자 했는지.

         

       근데 이제 알겠다.

         

       자신이 꾸역꾸역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오직 그를 만나 이 순간을 누리기 위해서임을.

         

       ‘죽지 않길 잘했어.’

         

       만약 그때 죽었더라면 끔찍했던 기억만 품은 채 잠들었을 게 아닌가.

         

       “후후.”

       “…갑자기 웬 웃음?”

         

       백우진의 물음에 당선영은 더욱 그의 품으로 몸을 끌어당기며 앙탈을 부렸다.

         

       “그냥, 행복해서.”

         

       짙은 평온이 깃든 음성과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이 전해진다.

         

       이에 그 또한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그럼 다행이고.”

         

       서로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기분에 취해 서서히 잠들어갈 무렵.

         

       문득 무언가 떠오른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떠날 채비하느라 바쁘겠네.”

       “아무래도 그렇겠지.”

       “연지가 많이 벼르고 있던데…, 내일 밤은 둘이서 시간 보내도록 해.”

       “…응?”

         

       어라.

         

       오늘 힘 다 썼는데…?

         

       땀이 주룩 하고 흘러내린다.

         

         

       * * *

         

         

       행복하고 편안했던 순간은 끝났다.

         

       이제는 무림맹 본단을 떠나 중원 전역을 넘나들며 혈교의 본거지를 찾을 차례.

         

       아직까지 그 어떤 단서도 없는 곳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좀처럼 가늠하기 힘든 여정을 위해 백우진과 조원들이 떠날 채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직접 나서서 연합에서 지원해준 물품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던 백우진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가…, 가가…!”

         

       가가.

         

       그것은 제갈연지 또는 당선영만이 할 수 있는 호칭.

         

       당연히 둘 중 한 사람인 줄 알고 밝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는데….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됐어.”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서 있었다.

         

       깊게 눌러 쓴 흑립 아래로 드러난 빨간 입술과 발그레 달아오른 부드러운 살결.

         

       날카로운 눈매 아래에 잠든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생각해 보니 한 명 더 있었다.

         

       자신을 가가로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도, 도 소저…?”

         

       도경.

         

       사흑련 본단에서 헤어졌던 그녀가 마침내 연합의 본거지인 무림맹 본단에 당도했다.

         

       백우진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도 소저가 왜 여기에…?”

         

       그러자 그녀가 대답하길.

         

       “아버님께서 그대와 함께 여정을 나서라고 명하셨는데…, 아직 얘기를 못 들은 건가?”

       “…….”

         

       듣지 못했다.

         

       어쩌면 자신의 딸 외에 다른 여인들과 시시덕대는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긴 그가 일부러 숨긴 것일지도 모른다.

         

       ‘좆됐다….’

         

       백우진의 머릿속에 든 단 하나의 생각.

         

       갑자기 일이 마구마구 터지는 바람에 당선영과 제갈연지에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와 두 사람이 마주했다간….

         

       “지금…, 가가라고 했지?”

       “그, 그러게요…. 백 공자를 가가라고 부를 사람은 우, 우리 둘뿐이어야 하는데에…?”

       “헉.”

         

       그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신은 오늘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백우진 인생 최대 위기 ㄷㄷ

    과연 그는 또 어떻게 이 위기를 빠져나갈지, 다음 편을 지켜봐 주십시오…!

    조만간 빠르게 태세 정비하여 1일 1연재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읍니다.

    매번 부족한 모습 보여드려 죄송하고, 또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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