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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2

       

       

       

       

       

       332화. 차원의 폭풍은 정말 최고야 ( 4 )

       

       

       

       

       

       쩌적ㅡ!

       

       세상에 커다랗게 금이 간다. 거친 파열음과 함께 눈앞의 모든 것이 어지러이 부서지고 깨졌다.

       거리와 행인, 구름과 하늘이, 그리고 케니스까지.

       

       “아ㅡ!”

       

       케니스를 향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 했던 한스였지만, 그의 의지대로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가로막은 것처럼 손이 파르르 떨리기만 할 뿐.

       

       《정말이지. 단명종들은 어찌 그렇게 한 치 앞만을 보느냐.》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묵직한 의념.

       본능적으로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한스가 자신의 의수를 내려다보았다.

       

       《이대로 구경하는 것도 꽤나 즐거운 유흥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네가 죽으면 이 몸도 곤란해지니. 여기서 참아야겠구나.》

       “뭐라고?”

       

       쩍ㅡ 쩌저저적ㅡ!

       

       한번 금이 간 세상은 부서진 거울처럼 작은 파편으로 깨져갔다.

       이윽고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세상의 파편이 산산이 흩날리며 아무것도 없는 칠흑의 공간이 펼쳐졌다.

       

       화륵.

       

       칠흑의 공간을 가르며, 거대한 붉은 안광 두 개가 초승달처럼 떠올랐다.

       

       크고 거대하다.

       그리고 강하다.

       

       어둠 그 자체인 것 마냥 붉은 눈동자 두 개를 제외하면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 그려진 두 개의 초승달이 고고하게 빛을 발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눈빛.

       

       포식자를 마주한 먹잇감처럼, 한스의 몸이 절로 딱딱하게 굳었다. 식은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온다. 저 존재의 기세에 짓눌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여. 움직여!

       

       필사적으로 굳은 몸을 움직였다. 입 안에서 이빨이 으득거리며 부서졌고, 억지로 움직인 근육과 인대가 비명을 질렀다.

       

       “…끄흐읍ㅡ!”

       

       ㅡ손가락 하나를 간신히 움직였다.

       

       두근, 손에 쥔 롱소드가 가볍게 맥동하며 용기의 룬이 밝은 빛을 뿜어냈다. 온몸에 룬의 힘이 감돌자 한스는 그제야 막힌 숨을 뱉을 수 있었다.

       

       붉은 안광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호오. 기세는 제법 쓸 만하구나.》

       “너, 는 대체 뭐냐…!”

       

       한스가 바들거리는 몸을 애써 겨누며 두 개의 눈동자를 올려봤다. 파괴, 살육, 죽음 그 자체인 것 마냥 불길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라니.

       

       “네가, 나를… 환각에 빠지게 한 거냐!”

       《뭐?》

       

       어이없다는 듯 되물은 존재가 곧장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

       “크으으윽!”

       

       고막이 터질 듯 울리는 거대한 괴성. 

       웃음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아아ㅡ 즐겁구나.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나 처음 보는 것이 단명종의 귀여운 행태와 이 몸을 웃기는 농담이라니.》

       

       스윽.

       

       커다란 두 개의 눈이 한스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제야 어떤 생물의 눈동자라는 것을, 그것도 도마뱀과 같은 파충류의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ㅡ앞으로의 나날이 무척이나 기대되는구나.》

       “앞으로?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뭐어. 앞으로 차차 알게 될 거다.》

       

       다시 높게 멀어진 눈동자에 척 즐거운 기색이 가득했다.

       

       《나의 계약자여.》

       “계, 계약자?”

       

       도대체 언제 봤다고 계약자라는 것인지.

       

       《같잖은 장난에 어울려 주는 건 여기까지다.》

       “장난이라니… 도대체 그게ㅡ”

       

       한스를 내려다보는 존재가 조소를 터뜨렸다.

       

       《인제 그만 일어날 때가 됐다는 소리다.》

       “…일어나라고?”

       

       무심코 그 말을 따라 중얼거리자, 한스는 돌연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의 빛에 눈을 찌푸리다가, 천천히 시야가 돌아오며 세상의 윤곽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할 때쯤.

       

       “…! 이, 이건ㅡ!”

       

       한스가 제 손을 강하게 움켜잡고 있는 통통하고 끈적한 촉수를 강하게 뿌리쳤다. 동시에 몸 곳곳을 묶고 있던 촉수를 가볍게 힘을 주어 툭툭 끊어냈다.

       

       아직도 촉수 특유의 끈적하고 말랑한 감촉이 남아 있어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욱씬, 머리가 아파온다.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이스칼과 자신은 심연에 왔고, 그다음에 한참을 걷다가… 케니스와 데이트를 했고…

       

       툭툭 끊어지는 기억에 한스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환각인가?’

       

       당했다는 불쾌감에 눈을 잔뜩 찌푸리던 한스는 미처 손안의 점액을 닦을 틈도 없이 검을 뽑고 내달렸다.

       

       “ㅡ이스칼!”

       “으헤, 헤헤헤… 프, 프리가! 어, 어후 거기는 좀… 으헉! 세, 셀리나까지? 응고오옥ㅡ!”

       

       멀지 않은 곳에서 바보처럼 웃고 있는 이스칼이 굵은 촉수 여럿에 묶인 채 어딘가로 질질 끌려가고 있다.

       촉수들이 이스칼을 끌고 가는 곳은 커다란 촉수의 구덩이. 그 안은 뾰족한 이빨이 가득했다.

       

       서걱!

       

       용기의 룬, 속도의 룬을 쓸 것도 없다. 그저 본신의 무력으로 검을 휘둘러 촉수 덩어리들을 토막 냈다.

       

       실실 웃으며 끌려가던 이스칼이 바닥을 구르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끔뻑거리며 사방을 둘러봤다.

       

       “으음? 도, 도대체 이게 무슨… 나, 나는 분명 프리가랑 셀리나와 우리 집 침실에서ㅡ”

       “신혼부부 얘기는 별로 안 듣고 싶으니까! 일단 전투 준비를! 환각입니다! 저희가 당했어요!”

       “환각이라고?”

       

       환각이라는 말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이스칼이 등에서 방패를 부여잡고 재빨리 일어났다. 

       

       다 잡은 먹잇감을 놓친 것에 약이 잔뜩 오른 촉수 더미가 꽈르릉, 땅을 부수고 본신을 드러냈다. 제법 커다란 녀석이다.

       

       목을 꺾어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지만, 허나 딱 그것뿐.

       

       “덩치만 큰 녀석이군요.”

       “하하! 우리는 이미 너보다 훨씬 더 큰 괴물도 상대한 몸이다!”

       

       이미 숱한 적수를 마주한 한스와 이스칼에게는 그저 그런 상대였을 뿐이다. 비록 환각이라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해 조금 추한 모습을 보였을지라도.

       

       촤자자작! 쾅! 서걱!

       

       한스의 롱소드가 촉수를 토막 내고, 이스칼의 방패가 촉수를 패링하며 묵사발로 만들었다. 처음의 기세가 무색하게 촉수 더미는 낙지 탕탕이로 변하며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다.

       

       “후. 별것도 아닌 녀석이 잔재주를 부렸군.”

       “그래도 큰일 날 뻔 했습니다. 환각이라니… 이런 종류의 공격은 또 처음이라서 방심했네요.”

       “그러게 말이네. 아,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환각에서 깨어난 건가?”

       “그건…”

       

       한스가 제 오른손의 의수를 내려봤다. 모든 색을 빨아들인 것처럼 칠흑의 색을 발하는 그의 의수.

       환각 속에서 의수 안에 있는 무언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그 특유의 오만한 말투, 단명종이라는 단어랑 커다란 의념…’

       

       거기에 그의 의수가 무엇을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보면 더 따질 것도 없다.

       

       “아무래도 의수 안에 있는 용왕이 저를 깨운 것 같습니다. 다짜고짜 저한테 단명종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용왕이라고?”

       “예.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용왕이 틀림 없습니다.”

       “보다니? 만났다는 소리인가?”

       “어두워서 뭐 하나 보이는 게 없었지만 말이죠. 눈동자밖에 안 보였습니다.”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만으로도 그 존재를 실감했으니.

       그 이상의 증명은 필요 없었다.

       

       “아마 지금은 다시 잠든 것 같은데… 솔직히 잠든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허. 용왕의 심장으로 자네 의수를 만든 것은 알았지만, 설마 그 안에 용왕까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스칼이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사안이 아니었다. 무려 용왕이라는 한 종족의 수장이, 그것도 신화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일족의 정점이 한 인간의 팔에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이러면 흑염용왕의 주인이라는 별명은 사실이 되는 건가? 정말로 오른손에 흑염룡을 봉인하고 있는?”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엄청 중요하지. 돌아가면 자네의 이명을 뭐로 바꿔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인데.”

       

        

       으득ㅡ

       

       이런 시답지 않은 소리를 들으려고 이스칼을 구한 게 아니었는데. 콱 그냥 촉수한테 잡혀가게 두는 거였는데.

       

       “에휴.”

       

       무슨 말을 하겠나.

       

       투닥거리던 둘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다시 사방을 경계하며 심연을 나아갔다. 이전처럼 허망하게 환각에 걸리지 않기 위해 법구를 단단히 손에 쥔 채로.

       

       ‘용왕이라…’

       

       한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자신의 의수 안에 용왕이 있다는 것은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당장 재료부터 용왕의 심장과 비늘, 발톱이었고 하나 된 분께서 직접 만드셨으니 용왕의 의념이 깃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지.

       

       ‘하지만 왜 지금이지?’

       

       여태껏 조용하다가 왜 하필 지금일까.

       

       ‘날 구경하는 게 즐겁다고 했었지?’

       

       마치 자신을 광대처럼 여기며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 스며오는 불안감에 한스가 몸을 떨었다.

       

       “…용이라는 족속은 항상 자신의 즐거움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여태껏 만나온 용이라고는 서리고룡 이베르뿐이었지만, 하나를 알면 열이 보이는 법. 이베르가 자신의 흥미를 우선시하며 움직이는데 용왕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나마 일족의 수장일 테니까 조금은 다를 수도 있다는 게 유일한 희망인가…’

       

       만약 용왕마저 자신의 즐거움을 우선시하며 움직인다면…

       

       부르르!

       

       의수 안에 깃든 용왕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오히려 짐작 가는 것이 너무 많아서 오한이 날 지경이었다.

       

       용이라는 족속의 자아는 끝도 없는 자존심, 자긍심, 자존감, 오만함 등등으로 똘똘 뭉친, 그야말로 선민의식의 결정체.

       

       신화시대에는 그 오만한 태도에 걸맞는 위용을 뽐냈기에 지배자로서의 품위를 떨쳤겠지만.

       

       용족 특유의 자아가 인간에게 어설프게 영향을 미치면 과연 어떻게 되는지,

       일찍이 경험해 본 적 있는 한스로서는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부르르르!

       

       ‘안 된다…!! 절대로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돼!’

       

       한스는 다짐했다.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그리되지 않겠노라고.

       

       ‘음. 이번에 돌아가면 이명을 뭐라고 소문내지? 흑염의 수호자? 아니면 흑염용제의 봉인자? 사왕흑염살용제? 다 괜찮아서 고민되는군.’

       

       둘의 동상이몽이 이어졌다.

       

       그리고ㅡ

       

       “크하하하하! 내 눈을 보아라! 이 하찮은 벌레들아! 내 속에서 타오르는 억겁의 흑염 속에서 너희들의 영혼마저 불타리라! 나는 세계를 조율하는 천칭이자, 잿더미에서 일어나는 불멸이니! 내가 곧, 파멸이다! 크하하하하!”

       

       줄기줄기 흑염을 두른 한스가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광소를 토했다. 주변에는 잡다한 악마의 사체가 탄 내를 풍기며 불타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이었다.

       

       흔하디 흔한 하급 악마가 우르르 몰려왔는데, 한스와 이스칼이 이에 맞서다가 갑자기 한스가 폭주했다.

       

       허공에 광소를 토하는 한스를 보며 이스칼이 결정했다.

       

       “이번 이명은 사왕흑염용살제가 좋겠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초월자도 감탄을 참지 못했다.

       

       “개쩌네 진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타와 어색한 부분이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대 흑역사의 시간이 도래…!! 자신의 가장 창피한 순간을 만인에게 박제 당한다는 것은…!! 아주 심각할 정도의 수치심을 유발하지만, 옆에서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솔직히 개꿀잼…!!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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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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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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