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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2

        

         “그러나저러나 이건 이거고, 원래도 내가 그… 약간 이상한 닉네임 쓰는. “…해킹잘모름.” 어허!! 넌 좀 가만있어 봐. 아무튼 걔가 나인 줄은 물론이고, 출시한 백신 건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인데. 어떻게 알았어?”

         

         비슷하게 덩치가 산만한 남정네 껍데기를 쓰고 있는 터라 새침한 삐진 척이 저어어언혀 어울리지 않는 마리나의 쓸데없는 참견을 마구 탄압하며, 우선은 여러 정보의 출처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내가 외부 활동한 양에 비례해 질질 끌고 다닌 꼬리가 좀 여기저기 길기는 해도, 어디가 붙잡혔는지부터 알아야 개선을 하던가 말던가 하지.

         

         “네? 그야 아나스타샤 언니,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커뮤니티 쪽 힐끔거리실 때도 이런 시크한 느낌의 닉네임 쓰셨잖아요? 제가 언니의 최초 기록을 찾아 더듬어서 연락했던 게 도시생활잘모름(idkCitylife)부터였으니까.

         

         게다가 같이 열차로 네오 헤이븐에 넘어온 직후부터 활동한 것도 시기적으로 딱 들어맞고, 그때 옆에서 곁눈질 봤던 것처럼 상용 프로그램 대신 독자적으로 개발한 코드만 쓰는 스타일이나 구축 매커니즘도 똑같았고요!”

         

         “이런 망할.”

         

         마치 재밌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이,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근거 있는 해설이 줄줄 흘러나오는 게 로잘린이 얄미워 보이리만치 쉬운 대답이었다.

         

         그으으렇게 간단하게 말해버리니까, 외려 그녀가 못 알아채고 넘어가는 편이 훨씬 더 설득력이 없는데 나 혼자 어림도 없는 기대를 하고 있던 것처럼 들리는 걸?

         

         그러고 보니 ‘파라다이스에게 한 방 먹인 해커는 누구냐!’ 같은 걸 취재하는 느낌으로 먼저 찾아왔던 게 로잘린이었지… 그럼 이건 어쩌다 걸린 시점부터 숨기기는 절대 무리였네. 응.

         

         “뭐, 언니 근황은 리얼에서도 놓치지 않고 알아보는 만큼, 에나마나 파라다이스와의 교류로 티격태격한 것도 다 지켜보고 있어서 더 알아채기 쉬웠지만요.”

         

         “그건 논리 있는 추론이 아니라 대놓고 스토킹이잖니…!!”

         

         어쩐지 연관성을 알았다 하더라도 모은 조각들을 유달리 부드럽게 이어 붙이더라니, 그런 사소하지 않은 트릭과 비밀이.

         

         바로 옆에서 ‘오올~ 아주 인기인이네~ 어쩐지 공중파 광고도 찍더라니.’ 같은 태평한 소리를 하고 있는 마리나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들어 현실까지 닿을 전기 충격을 마구 먹였다.

         

         아무리 극성 팬의 정체가 지인이라 밝혀졌다 한들 제대로 해결된 게 하나도 없거늘 지 일이 아니라고 진짜.

         

         “그래, 뭐. 본업만 해도 충분히 바쁠 애가 그런 행동에 나서게 된 연유는 찬찬히 듣도록 하고…. 근데, 로잘린…?”

         

         “네, 언니? 뭐든 편히 말씀하세요.”

         

         “딱히 불편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닌데, 절대 아닌데! 그, 얼굴 마주보고 얘기하려면 옆자리보다는 맞은편에 앉는 게 낫지 않아? 효율적인 측면에서.”

         

         돌아다니는 유저들의 간이 인터뷰를 끝마치고 꽤나 외진 자리에 방금 전의 난리통을 아무도 관측하지 못했다는 장점이 있었으나, 어디 대합실에 놓을 법한 비좁은 의자에 이런 덩어리 아바타들이.

         

         다시 말하지만 내용물과는 별개로 산만한 남자 스킨 낀 애들이 양 옆구리에 한 명씩 다닥다닥 몰려 있으니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랄까.

         

         굳이 위장용 아바타를 만든 보람을 느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멀리서 보면 둘 사이에 내가 껴 있는 게 보이기는 할까 싶다.

         

         비밀 이야기를 할 거라면 음성 메시지 송수신 설정을 바꾸면 되지 이렇게 가까이서 떠들 필요가 정말 있어?

         

         “…그렇지만 이 시건방진 인간도 뭔가 당연한 것처럼 언니랑 붙어있는데, 저만 덩그러니 혼자 따로 있으면 너무 거리감이 차이 나잖아요? 그런 건 용납할 수 없어요! …물론 아나스타샤 언니가 비켜달라면 비키겠지만.”

         

         “어허! 이 진저(Ginger; 빨간 머리 여성을 일컫는 별명, 적생강 꽃의 아름다운 자주색에서 파생됨) 아가씨가 가시 돋친 말하는 게 경우가 없네. 당사자 불편하게 인맥 과시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난 적어도 가계정까지 빌려줘가며 처음부터 일행 자격으로 왔다고!”

         

         “제발… 안 그래도 될 얘기를 굳이 여기서 더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 줄래, 둘 다.”

         

         아하, 필요에 의해 취한 스탠스가 아니라 그냥 무분별한 경쟁 의식이었군요.

         

         …그건 너무 뜬금없는 적개심이라 너그럽게 이해해주기가 난해한데? 대체 어느 부분에서 로잘린이 아직 이름도 모르는 마리나를 상대로 그런 심리를 품고 으르렁거리는 걸까.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으라면, 삐딱하게 엇나가는 와중에도 내 말은 존중해줄 의향이 있어 보인다는 건데.

         

         으음… 싸우는 친구들을 화해시키는 건 그다지, 사실 전문 분야가 전혀 아니긴 하다만.

         

         일단 통성명도 할 겸 정식으로 서로를 소개시켜 주면, 알게 되는 만큼 치켜세운 날을 조금은 무디게 들지 않을까?

         

         왜 가끔 있지 않나.

         

         실화인지 따로 검증은 안 했지만. 인터넷 상에서 싸움이 났을 때 막상 현실 PK를 하러 나갈 정도의 행동력은 둘 다 있어도, 막상 이성을 잃고 폭행을 저지르기엔 양측 모두 점잖아서 사과에 이어 악수하고~ 만난 김에 밥도 먹고~ 결국 친구가 되었다는 그런 스토리.

         

         어떻게, 그럼 이대로 진짜 성함들 깝니다? ‘파라다이스회사개짱남’에 ‘닉스다이스키’ 씨??

         

         …….

         씁, 하여간 닉네임 꼬라지들 어지러운 거 봐라. 아으. 나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얌전하게 좀 짓지.

         

         “자, 로잘린? 이쪽은 마리나 세라노야. 예전에 같이 의뢰를 수행했던 블랙마켓 소속 해커 용병에 취미로 악질 정보상을 겸하고 있는 완전 기억 능력자. 그리고 마리나, 내가 지금 여러 차례 이름을 연호한 로잘린은. 어…… 어쩌다 알게 된 팔란티어 에이전시에 다니는 사이버 아키텍쳐니까 인사들 하고.”

         

         딱히 거짓말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이런 위험한 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부연 설명에 급커브를 틀었다.

         

         파이브 아이즈에서 자금 조달 겸 위장용으로 운영하는 기업 이름을 갑자기 꺼내려니 뇌리에 안 떠올라서 말을 약간 더듬긴 했지만, 로잘린이 ‘역시 언니야…!’ 같은 수긍하는 눈길을 보내오는 걸 보면 이 정도 핑계로 괜찮았던 모양이다.

         

         “다짜고짜 둘이 절친이 되라는 존나 현실성 없는 소리까지는 안 하겠지만. 내 얼굴을 봐서라도 오늘 알아가는 정보를 따로 악용하거나, 나 없는 자리에서 심각하게 총부리 겨눌 일은 부디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것만 좀 약속해 줄래?”

         

         이건 약간 나에게 통제광(Control freak) 같은 면모가 있다며 충분히 불쾌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응당 요구할 수 있는 부탁이라 할지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강압적이거나 사적인 부분을 침해하려는 의도로 보일 수도 있으니까.

         

         서구권에서 중시하는 ‘자유’라는 개념에 개인차가 굉장히 큰 걸 고려하면 이런 건 더더욱 조심해도 모자라다.

         

         그렇지만 내가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변수인 걸 고려하면… 일어난 변화가 가급적 나를 거쳐가도록 안전 장치를 걸어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단 말이지.

         

         “그래, 뭐. 팔란티어 에이전시라면 호텔 비즈니스도 하는 곳 아냐? 날카로운 애인 줄만 알았는데, 바꿔서 멀쩡한 중견 기업에 일하는 친구가 받은 스트레스 풀려고 가상에서 시비 걸고 다닌다 생각하면 그리 놀라울 것도 없네. 그럼 지금 화해의 악수라도 해줘야 우리 이쁜이가 안심하려나?”

         

         “흥, 의뢰를 같이 한 사이라고 하면 무조건 제가 언니를 먼저 만났겠네요. 그럼 선배로서 언니 대신 나섰던 적극성을 높이 평가해 그건 너그럽게 용서해드리는 걸로 하죠. 잘 부탁해요, 돈 보고 움직이는 속물 씨.”

         

         “…요 쥐방울 같은 매운 생강이 진짜 왜 이리 틱틱대나 했더니 그게 문제였어?? 얌마, 굳이 그걸로 따지자면 난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면접도 같이 봤다고?”

         

         “……안 되겠네요. 완전 기억 능력자라면 아까 제 알몸을, 그것도 가슴께를 보고 미묘하게 납득하는 표정을 지은 것에 대한 청구서를 받아내야!”

         

         “아오, 이것들이 진짜. 내가 방금 뭐라고 했어!?”

         

         고놈의 쓸데없는 미묘한 기 싸움 좀 그만하라고요 이 미친 사람들아!

         

         차라리 마음에 안 드는 걸 돌려 까기를 할 거라면 그냥 직설적으로 하고 해결을 봐! 괜히 중간에 날 끼운 채로 경유하면서 정신 공격을 두 배로 하지 말고. 크아아악…!!

         

         

         

         

         “참나… 해커로 사는 게 금전적으로 제일 윤택할 것 같답시고, 10대도 아니고 20대에 시중에 떠도는 스크립트와 견본 데이터를 몇 테라바이트 어치 외워서 무작정 뛰어드는 무식한 인간이 어딨어요? 요즘은 뇌가 7, 8살만 되도 미리미리 수술까지 받아가며 체질부터 바꾼다는데. 아까운 재능 낭비에도 정도가 있지.”

         

         “에이, 저장 자체는 하드웨어에 했으니 페타바이트 단위로 진작 넘어갔고. 사용법이랑 매크로 툴 기억한 게 대강 그쯤이라는 거지. 그런데 막상 저지르고 보니까 심화해서 응용하는 방법이나 테크닉이 각자 다 다르다고들 하니, 스타트가 한참 늦은 나야 버는 족족 재투자해가며 버티는 셈이고.”

         

         도란도란.

         

         내 혼신의 절규가 먹혔는지, 아까 전보다는 비교가 안 되리만치 훨씬 건설적으로. 사적인 영역에서부터 차근차근 평화로운 교류를 시도하는 둘을 어깨너머로 슬쩍 흘겨봤다.

         

         아무래도 마주친 장소가 장소인지라 상대를 의심하는 건 이해하지만.

         겪어본 바, 이 동네 기준 ‘잘못한 걸 사과할 줄 안다’는 게 가능하기만 해도 교양인이라 봐도 괜찮은 평가를 도입한다면 충분히 상식적인 사람들끼리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요~

         

         딱 봐도 평범하게 어울릴 여지가 있구만 진작 그렇게 화해할 것이지.

         

         구태여 이유를 가져다 붙이자면, 유약해 보이면 무시당한다는 걸 어지간히 몸으로 배운 결과 생긴 방어 기재가 아닐까?

         

         [ 예쁜아, 흐뭇하게 구경하지 말고 얼른 확인부터 하고 돌아와 줄래?! ]

         [ 저기… 아나스타샤 언니? 재촉하려는 건 절대 아닌데, 생각보다 너무 진지한 주제로 넘어와버려서 둘만 남으면 엄청 불편할 같거든요…! ]

         

         “프흡, 어흠. 흠….”

         

         뭐, 아님 말고!

         

         로잘린은 둘째 치고, 마리나는 본인이 먼저 유쾌하게 다가서는 성격이었던 만큼 별 저항이 없는 줄 알았는데, 초면 프리 토킹은 약간 무리였던 모양이다. 개인 채널로 각자 나보고 딴짓하지 말고 후딱 다녀오라 재촉하는 걸 보면.

         

         그래서, 결국 난 왜 저 못 어울려서 안달인 파티원들을 사이드로 밀어내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느냐.

         

         백 마디 단어로 구질구질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여태 기를 쓰고 외면하던 판도라의 상자를.

         해킹잘모름의 묵힌 쪽지함부터 전부 읽어보고, 졸지에 이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된 내가 이 관심을 써먹을지.

         

         혹은 영구히 봉인하는 걸 선택할지를 결정하라는 로잘린의 조언에 따라 영 손이 가지 않는 찝찝한 뚜껑을 만지작거리는 와중이었다고.

         

         아니, 신경을 안 써도 너무 안 썼다는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설마 이딴 곳으로 진지하고 중요한 메시지가 왔을까 싶어서 고려조차 안 했는데. 내가 아무런 개인 정보나 연결고리도 없는 빈 아이디, 속칭 깡계를 너무 열심히 숨겨 놔서 여기 말고는 연락 창구가 없었던 걸 인지하라는 건… 약간 가혹하지 않습니까. 으음.

         

         고의성은 정말 없었습니다? 

        사소한 장난으로 시작된 해프닝이라 한들, 도와 달라고 손도 막 내밀어서 여기까지 온 주제에 사람 여럿 미치게 만들려고 그런 건 아니라니까요. 부디 믿어주세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양손에 꽃이네요~

    변명의 여지없이 정말 많이 늦었습니다.
    안 그래도 최근 몸살 감기로 쓰는데 오래 걸리는데, 너무 작업 시간이 늘어지다 보니 집중력이 심각하게 떨어져서… 작업 중간에 여러 개 띄워 놓은 원고 파일들을 만지다가 세이브를 덧씌워서 날려버리기까지 해서 다시 쓰느라 많이 지체 되었네요.

    내일 연재를 위해 일단 얼른 눈 좀 붙이고 오겠습니다. 별도의 공지도 없이 어마어마하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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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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