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32

   조이와 페이비라는 이름의 폭풍이 루시 알른을 휘감고 돌아간 후.

   

   난장판이 된 개인실에 홀로 남겨진 아서는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다가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정말이지. 내 평생에 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한 순간이었다.

   

   평소 얼굴을 붉히긴 해도 진심으로 화를 내는 일은 없던 조이와 분노라는 감정이 존재하기는 할까 싶던 성녀님이 동시에 정색을 하다니.

   

   어지간한 일은 다 겪어보았다 자부하는 나였지만 두 사람의 분노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설마 나쯤 되는 사람이 해명의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처벌을 당하게 될 줄이야.

   

   두 사람이 정색을 하며 다가오던 풍경을 떠올린 아서는 공격당한 부분이 아려오는 것을 느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이. 그 녀석. 진심으로 날 튀겨 죽일 생각으로 번개를 쏘아댔지.

   

   성녀님도 마찬가지다.

   

   신성의 열기로 날 지져 죽이려 하시다니. 지금도 그 열기가 닿은 부분이 따끔따끔 거리고 있으니.

   

   루시 알른의 해명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진짜로 화상을 입지 않았을까.

   

   “루시 알른.”

   

   그 이름을 떠올린 순간 아서는 한숨과 함께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서는 딱히 진지하게 루시에게 사과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과거 그녀가 불쌍왕자라는 별명을 처음 썼을 땐 진심으로 정색을 했고.

   

   그 후로도 루시가 저지른 수많은 무례가 때로 불쾌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사실들을 가뿐히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루시는 아서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다.

   

   루시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아서를 살려줬다.

   

   루시는 가르침을 달라는 뻔뻔스러운 제안에 거리낌 없이 응해주었다.

   

   루시는 언제나 그가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외에도 지난 몇 달 간 루시의 옆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아서는 그녀의 겉으로 드러난 부분과 달리 그 속이 선하다는 것을 확신했고. 그렇기에 그녀의 무례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는 그녀의 무례에도 익숙해져서 어지간한 건 웃어넘길 수 있을 지경이 되었는데 아서가 무얼 하러 루시에게 진지한 사과를 청하겠는가.

   

   그가 루시에게 사과를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던전의 공략법을 알려 달라하기 위한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3왕자님의 방식은 알른 영애와 닮았네요.’

   

   기말고사 던전에서 조이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아서는 자신이 루시의 뒤를 따라갈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술을 곱씹었지만 그 우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내가 루시 알른의 뒤를 따라갈 뿐이라는 이야기는 결국 루시 알른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

   

   그녀에게 길을 알려 달라 부탁한다면 언젠가는 그녀의 기행을 흉내 낼 수 있게 되겠지.

   

   어쩌면 루시 알른을 추월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고.

   

   어차피 자존심은 오래 전에 내다버렸다.

   

   그녀를 한 번이라도 이기기 위해서라면 추한 짓 정도야 얼마든 해주지.

   

   아서가 두 가지 선택지를 내민 이유도 이거였다.

   

   한 쪽에 결코 루시 알른이 하지 않을 선택지를 내밈으로써 던전의 공략법을 알려줄 수밖에 없게 하기 위해.

   

   루시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순간 그의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으니.

   

   그 후에 루시가 어떤 식으로 사과를 하건 아서는 웃으며 넘길 생각이었다.

   

   그가 아는 루시는 결코 진지하게 사과를 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평소에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

   

   그래서 아서는 루시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을 때 당황했다.

   

   ‘자주 도와주시는데 고맙다는 말 못해서 죄송해요.’

   

   이런 상황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자꾸 허접이라 그래서 죄송해요.’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면서도.

   

   ‘그리고. 흑. 불쌍하다는 말을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걸 가지고 놀려서 죄송해요.’

   

   머리가 하얘져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흑. 그리고. 훌쩍. 또.’

   

   눈물이 터져서 제대로 말을 잇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루시를 앞에 두고서도 굳어버렸을 뿐.

   

   그녀를 달랜다거나, 위로한다거나 하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난 조이와 성녀님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을 때 살았다는 생각을 했었구나.

   

   내가 쓰레기로 보일 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루시 알른을 달래줄 두 사람이 왔단 사실에 눈을 크게 떴어.

   

   정작 그 후에 찾아온 건 구원이 아니라 재앙이었지만.

   

   참으로 짜증나는 것은 그 재앙 속에 날 들이민 게 루시 알른이지만 그 곳에서 날 구원해준 것도 루시 알른이라는 사실이다.

   

   한참을 울다 진정이 된 듯 훌쩍이면서 우리 쪽으로 다가온 그녀는 이성을 잃은 조이와 페이비의 사이를 뚫고서 내 앞에 서더니 자신의 머리를 내 주먹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자신이 언제 울음을 터트렸냐능 냥 어깨를 활짝 피고는 훌쩍대는 소리와 함께 이렇게 이야기를 했지.

   

   ‘이걸로. 훌쩍. 저 할 거 다했죠? 불쌍왕자님?’

   ‘설마 정말로 울었다고 생각하세요? 다들 바보 허접들이네요. 당연히 연기잖아요.’

   ‘훌쩍. 뭐어. 불쌍왕자님이 여자애를 울릴지 모르는 쓰레기처럼 비친단 사실은 분명해 보이네요.’

   

   자신의 눈가를 닦아내며 말을 이어가던 루시는 자신에게 괜찮냐고 묻는 조이와 페이비를 데리고 이 곳을 빠져나갔다.

   

   “그 녀석은 도대체 날 얼마나 멍청하다 생각하는 거냐.”

   

   울 것을 다 울어 놓고 연기라 그러면 누가 그 말을 믿겠느냐.

   

   그대의 절절한 사과를 들었는데 어찌 그것을 연기라 여기겠느냔 말이다.

   

   “젠장.”

   

   그렇게 미안하다 생각을 하면 평소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

   

   마음속에 짐을 그리 쌓아 두면서도 왜 자꾸 다른 이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상처가 될 말을 내뱉는 것이야.

   

   “모르겠군. 모르겠어.”

   

   머리를 쥐어뜯을 듯 움켜쥐던 아서는 이내 책상 위에 늘어지듯 엎드려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루시 알른. 난 그대라는 인간이 어떤 사람인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어.”

   

   그대는 진정 그대가 원하여 그런 태도를 고수하는 것인가?

   

   *

   

   아서라는 이름의 야한 늅늅이가 던전을 가르쳐 달라 부탁한 다음 날.

   

   이틀 간의 늦잠을 보상하듯 이른 시간에 깨어난 나는 몸단장을 끝마친 후 여느 때처럼 허접 주신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어제 패널티에 의해 울음을 터트린 후 허접 주신을 향한 신앙심이 한층 더 낮아지긴 했다만 그래도 기도를 해야 일퀘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까.

   

   아악. 진짜 다시 생각해봐도 짜증나네.

   

   페도변태로리콘 주신 그 자식은 분명 내가 울음을 터트리는 걸 보고 싶었던 걸 거야.

   

   그 역겨운 변태 자식이 진심을 담으란 패널티를 내린 이유가 그것 말고 어디 있겠어!

   

   원한의 서에 한 페이지를 추가해야겠다 생각하던 나는 점차 가까워지는 신성의 기운을 느끼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페이비가 내 하루를 빌리는 날. 심성이 착한 그녀이니만큼 내게 괴상한 무언가를 부탁하진 않겠지.

   

   기껏해봐야 호칭을 바꾸는 거나. 옷을 갈아입는 거. 그리고 페이비를 위해 기도를 하는 정도이지 않을까.

   

   …음? 이상하다.

   

   문 앞에 도착했는데 왜 문을 두드리질 않는 거야?

   

   한참을 기다려도 페이비가 가만히 서 있는 게 이상하다 생각한 나는 일부러 밟힐 만한 위치에 자리한 얼빠여우를 가볍게 뛰어넘고서 문을 열었다.

   

   “어. 그. 아.”

   

   문 바로 앞에 서 있던 페이비는 문을 두드리려는 자세 그대로 멈춰있다가 내 얼굴을 마주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안… 안녕하세요. 영애님.”

   

   ‘안녕하세요. 페이비.’

   “안녕. 허접성녀. 오늘도 성녀라고는 믿을 수 없는 바보 같은 얼굴이네.”

   

   “그게. 오늘 따라 영애님께서 평소보다 고귀해 보이셔서.”

   

   우물쭈물거리는 페이비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아직 변태사도의 장신구를 끼고 있단 사실을 떠올렸다.

   

   이걸 끼고 기도해야 허접 주신이 보상을 많이 줘서 착용하고 있었던 건데 하마터면 이거 끼고 바깥에 나갈 뻔 했네.

   

   장신구를 빼서 인벤토리에 넣고 나서야 페이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침착하던 페이비마저도 이렇게 동요시킬 정도라니. 변태사도 그 녀석이 도저히 상종하고 싶지 않은 쓰레기인 건 사실이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하다는 거려나.

   

   근데 있잖아. 위력도 적당해야지. 이렇게 지닌 힘이 강하면 곤란하다고! 페도변태주신한테 기도할 때 말고는 써먹을 수가 없잖아!

   

   본래 끼던 장신구를 꺼내며 투덜거리던 나는 페이비를 언제까지고 세워둘 수 없단 생각에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흐갸아악!”

   “죄…죄송합니다.”

   

   너 따위에게 밟히려고 한 것이 아니라며 투덜거리는 얼빠여우의 말을 흘려들으며 다시 머리를 묶었다.

   

   으음. 내가 보기엔 변태사도가 준 장신구를 꼈을 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말야.

   

   다른 사람들이 볼 땐 대체 무슨 차이가 있기에 다들 난리인 걸까?

   

   몸가짐을 끝마친 나는 아직도 투덜투덜 거리고 있는 얼빠여우를 집어 들어서는 그녀의 얼굴을 마구잡이로 쓰다듬어 리타이어시킨 후 페이비 쪽으로 고갤 돌렸다.

   

   ‘오늘…’

   “허접성녀. 오늘 나한테 무슨 변태같은 걸 시킬 생각이기에 이렇게 일찍 온 거야?”

   

   “변…변태 같은 거라뇨! 그런 거 아니에요. 전 그저 영애께서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기를…”

   

   끝으로 갈수록 기어들어가는 페이비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샜다.

   

   이게 어제 아서를 찍어 누르던 페이비랑 동일인물이 맞나?

   

   그 때 아서에게 처벌을 내릴 때는 진짜 무서웠었는데 지금은 귀엽기만 하잖아.

   

   ‘지금 해드릴까요?’

   “푸하핳. 그렇게 급했어? 지금해줄까?”

   

   “네? 아. 아뇨. 지금은 괜찮습니다. 영애님의 기도는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받고 싶어서요.”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페이비를 본 순간 나는 그녀가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온 것인지를 이해했다.

   

   오늘은 페이비가 나에게 부탁을 하는 날임과 동시에 요한과 카리아가 함께 조사한 교회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서 듣기로 한 날.

   

   교회의 부패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을지언정 그 부패의 명확한 내용은 알지 못하는 페이비다.

   

   자신이 듣게 될 내용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터.

   

   페이비가 나를 만나러 온 이유는 분명 내 옆에 있는 것으로 그 불안함을 조금이라도 떨치려 하는 것이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나는 고개 숙인 페이비의 아래 쪽으로 걸어가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정말…’

   “허접성녀. 정말 널 위해 기도하는 것말고는 부탁할게 없어? 너무 가식 떠는 거 아냐?”

   

   “가식이라뇨. 제가 어찌 주신의 사도께 그 이상을 바라겠습니까. 여태까지 영애님께서 해준 것이 있는데 모자라디 모자란 제가 어찌.”

   “허접성녀라 그런가 거짓말도 잘 하네♡ 나중에 밤새서 회개를 해야겠는 걸?♡”

   

   내 도발을 듣고서 말문이 막힌 페이비는 한참 동안 입을 우물거리다가 이내 두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페…페이비라고. 불러주시겠어요?”

   

   ‘물론이에요. 페이비.’

   “푸하핳. 페이비는 완~전 부끄럼쟁이구나? 정말 귀엽네.”

   

   오늘 하루 일정을 정했어.

   

   나중에 요한이랑 카리아를 만나러가기 전까진 페이비를 데리고 여기저기에 놀러가야겠다.

   

   그 때까지 불안하단 생각조차 못 하도록 말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