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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2

    <332 – 무모한 도전>

     

    엘프궁수 스콜라 공략은 뜻밖의 난관과 마주했다.

     

    “그게 뭐가 불쌍한데?”

     

    스콜라에게의 접선을 옆에서 들은 이슈타르가 불쑥 끼어들었다.

     

    “누가 시켜서 들은 것도 아니고 자기가 좋아서 들은 거잖아. 누가 칼 들고 38학점 들으라고 협박했어?”

    ‘저 독한년.’

     

    이슈타르는 상상을 초월하는 나쁜 년이었다.

    지젤은 속으로 용사의 흉을 보았다.

     

    “그건 누가 보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재단에서 지령을 받은 거잖습니까!”

    “거부하면 되잖아. 재단의 지령에 따르기로 결정한 것도 오크노디의 결정이야.”

     

    그녀가 반감을 품은 것도 이유는 있었다.

    재단의 장학생으로 전락한 자신.

    그 원인이 오크노디의 스티커 복사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이사장의 만찬에서 알게 된 것!

    정정당당한 대결도 아니고 그런 비겁한 수에 당해서 오크노디의 조직에 코가 꿰였으니 열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반은 그런 이유라면, 나머지 반은 불안감에 기인했다.

    재단의 지령.

    폭탄조끼를 차고 뛰어드는 테러리스트마냥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암흑마나를 품은 장학생들.

    그들이 저지르는 무리한 지령이 자신에게도 내려질지 누가 알겠는가?

    용사는 이제 자유의 몸이 아니었다.

    아무런 지령이 내려오지 않더라도 그런 불안과 공포만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요컨대 이것은 재단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오크노디에게 해소하는 화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당신에게도 재단의 지령이 오면 38학점을 이수할 겁니까?”

    “…그거야 그때 가보면 알겠지.”

    “하. 우습군요. 우리 꼬마숙녀를 마음껏 비웃을 때는 언제고 정작 자기가 하기는 두려워하다니.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은 용사 이슈타르를 가리키는 말이군요?”

     

    지젤의 당돌한 도발에 이슈타르가 넘어왔다.

     

    “웃기지 마. 난 용사야.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애초에 오크노디는 용사도 뭣도 아니잖아.”

     

    지젤의 얼굴에 ‘말했겠다?’라는 도발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순간 앗차 하고 이슈타르의 얼굴에 후회의 기색이 어렸다.

    뒤이어 표정은 사라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평정심을 가장하는 얼굴이 이어졌지만 지젤은 알고 있다.

    사람의 진짜 표정은 순간에 드러난다.

    순간의 진심이 아니라면 나머지는 전부 거짓된 연기, 보이고 싶은 감정일 뿐이다.

    적어도 뒷세계를 살아가는 암상인에게는 그것이 상식이었다.

     

    “그렇게까지 오크노디를 업신여긴다면 당신도 할 수 있겠죠?”

    “아 못 할 거 뭐 있어!”

     

    도발을 넙죽 받아버린 이슈타르.

    어리석다는 것쯤은 알아도 그녀에게도 체면이 있다.

    용사라는 이름의 체면이.

    크루즈선에서의 굴욕은 이슈타르에게 발에 박힌 가시처럼 거슬렸다.

    자신은 극복하지 못한 안라게의 사도이자 마족계약자 로우를 오크노디가 꾀를 부려 쓰러트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 잔꾀로 헤쳐나갈 수 없는 학점이수는 장기간의 체력분배와 종합적인 실력으로 부딪치는 일상 속의 장기전.

    순간적인 기책에 능한 오크노디라도 2학기가 끝나기까지의 긴 시간을 전부 버티지는 못하리라.

     

    ‘분명 도중에 학점을 하나씩 포기하겠지.’

     

    강의 13개?

    퍼포먼스로는 인정한다.

    누구라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계속할 수는 없다.

    정신력이든 체력이든 주변 환경, 하다못해 생활여건에서라도 반드시 한계가 찾아온다.

     

    ‘이번에야말로 승부야, 오크노디.’

     

    그렇게 그 길로 이슈타르는 기존의 6개의 강의에서 무려 7개나 되는 강의를 추가로 더 수강했다.

    마하바라타 교수는 수강신청기간이 지난 신청이지만 신청자가 이슈타르라는 사실에 고민에 빠졌다.

     

    ‘뭐, 자질은 분명하니 괜찮겠죠. 죽을 것처럼 힘들면 성녀든 성검이든 용사를 살리려고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요.’

     

    그렇게 스콜라공략은 엄한 용사의 도전 38학점으로 흘러갔다.

     

     

    * *

     

     

    “오크노디, 들었어? 용사가 13강의 38학점에 도전했대.”

    “우왕. 굉장하네.”

     

    솔직히 깜짝 놀랐다.

    용사가 이렇게까지 학구열에 불타는 회차는 사상최초였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만 아니면 학년최강.

    그 힘은 현 시점에서조차도 3학년에게까지 통용된다.

    기고만장한 태도를 지니게 되는 건 당연하다.

    학업을 등한시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수련을 하는 것은 모든 회차의 용사들이 지닌 클리셰.

     

    “용사뿐만이 아니야. 외톨이황녀도 강의를 아홉 개에서 열 개로 늘렸대!”

     

    토끼와 거북이의 게으른 토끼에 비견되는 인물이 용사라면 느리지만 성실하게 노력해서 왕귀하는 인생역전의 교과서 같은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제 3황녀 <야요이>다.

    제 2황녀 매스각키와 달리 추종자도 일신의 저력도 변변찮은 야요이는 저학년에는 쥐 죽은 듯이 아카데미를 다니며 진도를 따라잡기 급급하다.

    그런 내막을 모르더라도 일반학생들의 시야에서도 야요이의 도전은 용사보다 대단하게 느껴졌다.

    용사야 원체 잘났으니 저런 기행을 벌여도 용사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이 들지만 마땅히 부각될만한 장점이 없는 평범한 황녀가 강의 하나를 늘리는 것은 대단한 도전처럼 보인다.

    운동하기 싫어.

    공부하기 싫어.

    일상 속 누구나 생각할법한 게으름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는 위대한 영웅의 도전보다 공감하기 쉽다.

     

    “그래서 있지? 나도 하나 늘리기로 했어!”

     

    재잘재잘 교내가십을 떠들던 티토소가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티토소가였다.

     

    “정말? 뭐 들으려고?”

    “음~ 오크노디가 듣는 강의 중에 하나?”

    “그럼 이번 강의 같이 가자!”

    “아직 강의추가신청도 안 했는데?”

    “참관이라고 하면 되겠지!”

     

    이번에 듣는 강의는 화요일 오후8시부터 11시까지 3시간동안 듣는 2학점짜리 강의였다.

    마법학부의 피타고라스 교수님이 가르치는 <지식판정으로 마법쓰기>.

    주 2회 총합 4시간을 듣는 3학점 강의보다 손쉬운 주 1회 총합 3시간짜리 가성비 맛집 강의다.

     

    “퍼즐마법 쓸 줄 몰라도 괜찮아?”

    “응. 메커니즘이 다른 마법이니까. 얼른 가자!”

     

    강의실에 들어가자 퀭한 얼굴로 강의실 책상에 엎어져있던 학생들의 뒤통수가 보였다.

    저녁을 먹고 1시간이 더 지난 오후 8시.

    슬슬 살인적인 과제량을 실감하기 시작할 무렵의 학생들에게 이 시간의 강의는 죽지 못해 악과 깡으로 듣는 궁극의 시련이었다.

     

    “다들 지쳤나봐.”

    “2학년은 더 힘드니까 어쩔 수 없지!”

    “2학년?”

     

    티토소가가 참새마냥 귀엽게 고개를 갸웃했다.

     

    “2학년? 어째서? 또 유급한 선배들이 있는 거야?”

    “…유급이 아니라 재수강이겠지.”

     

    엎어져있던 선배 중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앗, 빅스톤 선배님! 또 재수강하세요?”

    “아니거든? 사람 멍청이 취급하지 말아줄래, 이 실례되는 후배님아?”

     

    1학기에 안목키우기 강의를 들으며 나름대로 안면을 튼 빅스톤 선배.

    2학년 트리오 중에서는 가장 만만하고 편한 사람이었던 덕분에 티토소가는 나름대로 그를 반가워했다.

     

    “그럼 선배님은 이 강의 왜 듣는데요?”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니들이 이상한 거지.”

     

    빅스톤은 책상 위에 쓰러진 학생들을 가리켰다.

     

    “여기 기절하듯이 쓰러진 가엾은 인생들은 전부 2학년. 이 강의를 듣는 1학년은 너희 둘밖에 없다고.”

    “네에에!?”

     

    배신감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 티토소가.

     

    “같이 듣고 싶다고 한 건 티토였잖아!”

    “힝. 다른 강의도 많은데 선배들이 듣는 강의에 꼭 데려와야 했어?”

    “늦었어. 강의시작이야.”

     

    빅스톤 선배의 말에 곧이어 강의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달아날 타이밍을 놓친 티토소가도 사이좋게 나란히 빅스톤 선배의 옆에 착석했다.

    화난 소동물처럼 옆에서 마구마구 화난 표정을 짓던 티토소가가 달라진 강의실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역시 2학년은 면학분위기가 다르네!’

     

    햇병아리 1학년들과 달리 2학년들이 느끼는 포인트부담은 차원이 다르다.

    강의시각 정각이 되자 소환마법진에서 빛을 뿜으며 나타난 교사 또한 1학년 교사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일주일 만에 다시 보니 더욱 너절한 상판대기들이군. 그 정도 정신력으로 지식판정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분한 얼굴의 2학년들을 돌아보던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 티토소가와 나를 발견했다.

     

    “뭐지, 이 풋내기들은?”

    “1학년이에요!”

    “패널에 마법시계를 대고 신원을 등록해라.”

     

    휘리릭, 팍!

    교수가 가볍게 던진 패널이 책상 위에 수리검처럼 꽂혔다.

    패널을 뽑아 신원을 등록한 내 옆에서 티토소가가 벌벌 떨며 마법시계를 대었다.

    삑.

    교통카드처럼 소리가 난 패널을 손을 뻗어 회수한 피타고라스 교수.

     

    “우리 강의 잘못 들어온 거 아니야…?”

    “제대로 들어온 거 맞아!”

     

    티토소가가 위화감을 느낄 만도 했다.

    피타고라스 교수님은 근육질의 조각상, 플라톤 교수님만큼 우락부락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대신 인상은 전혀 달랐다.

    플라톤 교수님이 맑은 눈의 프로틴 광인이라면 피타고라스 교수님은 언제든지 상대를 때려죽일 작정으로 곧 뛰쳐나갈 표범처럼 거친 야성을 지녔다.

    나도 뉴비시절에는 기사학부 교수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의 기세였으니 티토소가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1학년 오크노디, 1학년 티토소가. 학년수석과 하급반. 늑대가 한입거리 비상식량을 곁에 둔 꼴이군.”

    “티토소가는 일단 참관으로 가능할까요?”

    “배움의 길은 열려있다. 그 길의 혹독함을 견디는 자에게만.”

     

    사다코 교수님과는 다른 의미로 두려움을 느끼는지 벌벌 떠는 티토소가.

    그녀의 안쓰러운 모습과는 별개로 교수님은 오늘 처음 강의를 듣는 우리를 위해 가벼운 복습에 나섰다.

     

    “복습이다. 선착순 한 명. 지식판정으로 마법을 쓰는 원리에 대해 설명해라.”

     

    빅스톤 선배가 벌떡 일어났다.

     

    “마나퍼즐을 맞춰서 마법을 구현하는 통상마법사용과 달리, <뇌파감지><지식감별><구현유도>가 인챈트 된 마나보드로 즉각 마나를 구현하는 방식입니다!”

    “계속해서, 마나보드 사용의 장단점.”

    “단점은 지팡이나 완드를 사용할 때와는 달리 대부분의 마법보조능력이 마법구현에 치중되어 있어 위력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특정속성의 마나퍼즐을 집중적으로 모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대신, 통상마법을 다룰 줄 모르는 미숙한 자들도 간편하게 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들었는가? 이것이 너희가 배울 강의의 내용이다. 실망스럽다면 지금 당장 강의실을 나가라. 도중에 도망치려 든다면 창문 밖에 거꾸로 매달아놓겠다.”

     

    겁 많은 티토소가지만 자신이 어떤 행운을 마주했는지는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붕붕 저으며 꼭 듣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마나량만 많은 티토소가에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은 매력적이겠지.

    <마나보드>를 이용해서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마법을 지식만으로 사용한다.

    이 사실에 매력을 느끼는 건 고인물인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고 있는 마법’을 구현한다.

    배움이 짧은 1학년이나 마법학부 전공이 아닌 학생들에게는 통곡의 벽이 따로 없는 강의지만 내게는 결코 무모한 도전이 아니다.

    아는 마법을 세는 것보다 모르는 마법을 세는 것이 훨씬 더 빠를 다회차 고인물한테는 날로 먹으라고 있는 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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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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