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33

       “뭘 고상하게 그러고 있어?”

        

       양손에 술병을 들고 들어온 제이크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입고 있는 옷은 결혼식 때 입은 옷 그대로였다. 아무리 봐도 더러워지기 딱 좋은 흰색 턱시도였다. 적어도 술 마실 때 입을 만한 옷은 아니다.

        

       린드버러의 재력을 생각하면 뭐 고급 옷 한 세트 버려도 큰 문제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손님들 상대는 제대로 하고 왔어? 린드버러 공작은?”

        

       “괜찮아. 한마디씩 하고 왔으니까.”

        

       한마디씩으로 이야기가 끝날 리가 있나.

        

       황제나 황녀, 혹은 외국의 왕녀 수준은 아니지만, 공작이나 공자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건 신분의 격차가 클수록, 그리고 별다른 이유가 없을수록 더 그랬는데, 그런 의미에서 결혼식은 하급 귀족들에게 공작가와 안면을 틀 좋은 기회였다. 얼굴을 마주 보고 축하한다고 말할 명분이 있으니까.

        

       좋은 날이니 웃으며 대화가 오갈 거고, 그러면 가벼운 말 한마디 나눌만한 여유도 생긴다.

        

       만약 신랑이 이런 식으로 빠져버리면 그 관심이 신랑의 아버지한테 전부 쏠려버릴 텐데.

        

       “괜찮아, 괜찮아. 좋은 날이잖아. 솔직히, 좋은 날에는 그냥 아들 사람들이랑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아버지도 우리 의향을 무시하고 결혼식을 이만큼 벌였으니 그만큼 각오하고 있겠지.”

        

       이런 식의 각오는 하지 않았겠지만…… 뭐, 제이크가 여기까지 온 시점에서 이미 늦었다. 지난 4년간 같은 반이었던 나는, 제이크의 고집이 은근히 강하다는 사실을 이미 겪어봐서 알고 있다. 아니지, 여기 있는 모두가 다 같은 생각일 거다.

        

       제이크를 보고 다들 쓴웃음을 지은 걸 보면 명확하다.

        

       “로티, 거기 숨어있지만 말고 나오지 그래? 여기는 불편한 사람 없잖아.”

        

       제이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발로 반쯤 열려있는 문을 밀어 활짝 열어버렸다. 덕분에 문 뒤쪽에 몸을 숨기고 있던 로티의 모습이 바로 드러났다.

        

       제이크가 여전히 턱시도를 입고 있는 것처럼, 로티도 여전히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그렇게 부끄러워할 거 없어. 아까 함께 행진할 때는 애들한테 손도 잘만 흔들었잖아.”

        

       “하지만…… 그때는 오히려 이성이 마비되어서…….”

        

       로티가 부끄러움에 딱딱한 존댓말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네 부인 너무 괴롭히지 말고, 그냥 안으로 좀 들어와.”

        

       그런 두 사람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던 앨리스가 그렇게 말하자, 안 그래도 붉었던 로티의 얼굴이 더 붉게 변했다.

        

       “음— 아, 아니다.”

        

       그리고 자기 말을 따라 안으로 들어오려던 둘을, 앨리스가 손을 내밀어 제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로티 친구들도 같이 마시자. 어차피 제이크가 양손에 들고 있는 술로는 부족한 거 아니야?”

        

       그 말에 로티의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파랗게 변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부인의 친구들을 두고 우리만 마시는 것도 조금 미안하네요.”

        

       앨리스를 따라 샤를로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했다.

        

       뭐, 엄밀히 따지면 우리도 부인의 지인으로서 참석한 거지만 말이야. 엄밀히 따지면 남편의 지인에 더 가깝기는 했다. 아무래도 로티는 졸업할 때까지 다른 반이었으니까. 물론 자주 만나서 자주 대화하고 어울리긴 했지만, 아무래도 로티의 관점으로는 같은 반 친구들이 더 편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가 모여서 방문하면 그 친구들은 둘째치고 여관 주인도 기절하는 거 아닐까 몰라.

        

       당장 앨리스만 해도 제국 황제 신분이잖아. 이 안까지 호위 병력이 들어오진 않았지만, 이미 린드버러 가 주변은 대놓고 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제국군과 기사들이 많이 보였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뜬금없이 장소를 옮겨 술을 마시겠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

        

       어떻게 반응하긴 뭘 어떻게 반응해. 까라면 까야지. 무려 황제가 원한다는데.

        

       “좋아, 그럼, 자리를 옮겨 볼까?”

        

       이제는 자기 남편인 제이크가 그렇게 말하자, 로티의 표정이 순간 아주 진지하게 바뀌었다.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순간 보인 그 표정은 이 귀한 사람들 앞에서 남편 등짝을 때려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

        

       아니나 다를까, 여관은 난리가 났다.

        

       아니지, 여관이라고 부를 사이즈는 아니었다. 로티가 친구들에게 잡아준 곳이다. 좋지 못한 곳일 리가 없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호텔이었다. 평민들 뿐만이 아니라, 귀족들이 묵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호텔.

        

       결혼 전부터 린드버러의 자금 일부를 받은 것일까? 린드버러 공작이 의리 있는 성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체면은 차릴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폐, 폐하…….”

        

       여제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황제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된다는 표정을 짓던 지배인은, 결국 그렇게 말하며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직 의전이나 공식 명칭이 정해지지 않은 탓이다. 특히 투표권 관련해서 말이 나오고 있는데, ‘제국법으로 볼 때는 참정권이 없는 여성’인 앨리스가 황제 자리에 오르면서 이런저런 법리적인 해석이 나오는 중이라는 모양이다. 차라리 의회도 없고 법도 황제 마음대로 할 수 있던 시절에는 여왕이 나타나도 별문제가 없었다는데, 시대가 흐름을 못 따라오는 것인지.

        

       3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러는 것을 보면 의원들 뭉그적거리는 건 어느 세계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호텔에 만나고 싶은 이들이 묵고 있다고 하여 왔다.”

        

       “예, 말씀만 하십시오. 저희가 성심껏 도와드리겠나이다.”

        

       지배인의 말에, 앨리스는 조금 거만해 보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리가 호텔에 온 목적을 말했다.

        

       그리고 지배인은 곧장 연회장 하나를 통째로 빌려주었다.

        

       “와, 진짜 넓네.”

        

       클레어는 조금 들뜬 표정으로 연회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만 넓어 보이는 게 아니었나 봐.”

        

       “로티가 친구들에게 잡아준 호텔인데 설마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싸해 보였겠어?”

        

       클레어의 말에 레오가 핀잔을 주듯 말했다.

        

       사실 클레어가 말한 것처럼 로티 친구들과 우리만 쓰기에는 좀 지나치게 넓은 곳이었다. 황제가 방문했다는 사실 때문에 일부러 이런 곳을 빌려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지배인의 의향이 어찌 되었건,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이, 이래도 되는 걸까요?”

        

       소피아가 매우 소시민적인 말을 했다.

        

       “공짜로 쓰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나갈 때 제대로 돈 낼 테니까. 황제의 이름에 쪼잔하다는 말이 따라다니게 할 수는 없지.”

        

       앨리스는 그런 소피아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너한테 내라고 할 생각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앨리스의 말에 소피아가 조금 발끈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내 다시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이러실 필요까지는 없었습니다만…….”

        

       결국 우리를 따라 여기까지 온 로티는 조금 소심한 목소리로 항의해보았지만, 자리에 있는 모두는 로티에게 빙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아니지, 미아와 레나는 사실 아직 상황 파악을 잘 못 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그냥 앉아있다가 휘말려서 여기까지 와버린 모양이니까.

        

       괜찮겠지. 미아는 입에 달콤한 안주 몇 개 넣어주면 표정이 녹아내릴 거고, 레나는 미리 챙겨온 미니 디거를 건네주면 표정이 녹아내릴 테니까.

        

       “……왜 그렇게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자리에 앉아있는 내 얼굴을 보고 앨리스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나는 그런 앨리스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앨리스는 나를 흘겨보았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기다리면 다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아, 그런데, 가지고 온 술은 뭐야?”

        

       클레어가 제이크에게 물었다.

        

       “응? 아, 사실 나도 잘 몰라. 그냥 집에서 대충 집히는 걸 가지고 왔으니까.”

        

       “도련님……!”

        

       결국 제이크의 말에 로티가 참지 못하고 그렇게 외치자, 연회실에서 기다리던 모두의 시선이 로티에게로 확 몰렸다.

        

       “로티, 도련님이 뭐야? 나는 이제 네 남편이잖아. 제대로 ‘여보’라고 불러야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어색하네.

        

       아니, 로티라서 어색하다는 소리는 아니고, 이 두 사람은 사실 우리랑 동갑이니까.

        

       나야 엄밀히 따지면 내용물의 나이가 다르긴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여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두 사람이 너무 어려 보였다.

        

       “응? 응? 어쩔 거야? 이제 결혼도 했으니 호칭도 바꿔야 하잖아? 안 그래, 여보?”

        

       제이크가 다가가면서 그렇게 말하자, 로티는 고개를 푹 숙이고 부들부들 떨었다. 목덜미와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여, 여…….”

        

       “응? 잘 안 들리는데?”

        

       제이크가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며 그렇게 말하자—

        

       “여보.”

        

       로티가 정색한 채 고개를 들었다.

        

       “지금 얼마짜리를 들고나왔는지 알고 있는 거예요?”

        

       “엉?”

        

       그리고, 제이크가 처음으로 들은 ‘여보’ 뒤에 따라온 것은 그 ‘여보’의 아내로서의 첫 잔소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화는 최대한 빠르게 써서 업로드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