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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3

        

       정부에서 입김을 불어 넣은 것이니만큼 그들이 도움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정부는 선을 긋는 것처럼 그들에게 일체 관련이 되려 하지 않았다. 자료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보여주고, 인터뷰가 필요하다면 인터뷰를 해주는 등 일반적인 협조는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특별한 도움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외교에 관련된 것이겠지.’

         

       방송 이후 반향이 클 것임이 분명한 만큼, 혹여나 일본에게 책잡힐 일은 만들지 않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태도 덕분에 갈려 나가는 것은 방송국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갈렸다.

         

       미친 듯이 말이다.

         

       하지만 갈려 나간 보람이 있기는 했다.

         

       방송에 쓸만한 자료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모자람이 있기는 했지만, 편집에 힘을 잔뜩 실으면 어찌어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확실한 거 맞지? 맞아야 해.”

         

       “몇 번이나 확인했잖아요. 확실해요.”

         

       “틀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조작 방송이니 선동 방송이니 욕먹고, 방송사에서는 항의 들어오고, 지금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만큼 고스란히 배신감이 돼서 난리가 날 거야. 그러니 다시 확인해봐.”

         

       “아 확실하다니까…. 알았어요.”

         

       ‘추적, 탐사, 보도’ 팀은 신중히 처리하려는 듯 몇 번이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녹화가 시작되었다.

         

         

         

        * * *

         

         

         

       ‘추적, 탐사, 보도’의 첫 녹화는 스튜디오였다.

         

       서재와 비슷하게 생긴 스튜디오에는 의자 두 개가 있었는데, 의자 두 개는 텅 빈 채 앉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스튜디오의 가장자리에 있는 나무로 만든 나선형 계단 위에서는 MC가 스탠바이를 기다리고 있었고, 스튜디오의 바깥쪽에서는 양복을 입고 있는 젊은 남성이 서 있었다.

         

       남성은 큰 키에 순해 보이는 얼굴, 순해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선해 보이는 분위기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토끼를 떠올리게 만드는 남자였다.

         

       “자, 시작합니다. 3, 2, 1.”

         

       짜악-!

         

       PD가 보내는 신호와 손뼉 치는 소리와 함께 그렇게 스튜디오 녹화가 시작되었다.

       녹화가 시작되자 MC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나선 계단을 내려와 단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곤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구주천지 복잡기괴(歐洲天地 複雜怪奇).”

         

       MC는 비장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유럽 천지가 복잡하고 기괴하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그는 말을 잠시 멈추더니 손가락으로 허공에 매달려 있는 초록색 천을 가리켰다.

       마치 거기에 글자가 띄워진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천지 복잡기괴(韓國天地 複雜怪奇)라고 말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다가 맥을 끊어버리기라도 하듯 크게 크게 움직이며 손뼉을 쳤고, 그 후 PD가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동그라미를 그리자 말을 이어갔다.

         

       “수많은 산, 수많은 괴물. 수많은 등산객이 똑똑히 목격한 이 미스터리한 사건. 제작진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하여, 도움을 주실 분을 모셔 왔습니다.”

         

       그는 익숙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박진성 주술사님입니다.”

         

       중간에 무언가가 사라진 듯한 맥락 없는 전개였다.

         

       녹화 방송이기에 필요한 장면만 녹화하기에 생긴 일이었다.

         

       진성은 맥락 없는 전개를 지켜보다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스튜디오 밖에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설치된 문을 열고 스튜디오로 가볍게 인사를 하며 들어갔다. 이때 진성이 짓고 있는 표정은 스튜디오 밖에서 짓고 있던 미소와 똑같은 것이었는데, 스튜디오 내부의 조명을 받자 정말 환하고 선량하게 보였다.

         

       “박진성 주술사님은 이번에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제작진과 함께….”

         

       그렇게 진성과 MC, 둘은 스튜디오를 무대로 녹화를 이어갔다.

       MC는 자연스럽게 진성을 소개했고, 아직 하지도 않은 ‘조사’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등의 대본에 적힌 말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몇 번 NG가 일어나기도 했으나, 애초에 촬영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았던 터라 녹화는 금방 끝나게 되었다.

         

       고작 이거 찍으려고 왔냐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비효율적이고 짧은 녹화였다.

         

       실제로 비효율적인 녹화이기도 했다.

       다 촬영한 다음 대본을 만들어서 스튜디오에서 사용할 오프닝 장면, 진행 장면, 엔딩 장면을 모두 한 번에 찍어버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박진성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게스트라면 스튜디오에 데려오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냥 따로 인터뷰하고 자료 화면으로 내보내거나, 아예 전화 통화로 퉁치고 끝내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촬영 과정에서 도움을 준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박진성은 일반적인 게스트가 아니었다.

       이 특집 방송이 만들어진 이유이자, 촬영 전반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전문가였다.

         

       게다가 권력을 등에 업고 있기까지 했으니….

         

       그렇기에 방송국에서는 기왕 띄워주는 거 화끈하게 해버리자며 박진성을 오프닝부터 투입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그 때문에 오늘 박진성이 스튜디오에 와서 촬영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본래 하는 것처럼 촬영 다 끝내고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한 번에 찍으면 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말이다.

         

       어차피 사람 한 명 더해졌을 뿐이지 하는 일은 똑같은데, 왜 굳이 이런 방법을 택한 것인가.

         

       ‘흐음. 카메라 울렁증은 없는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박진성이 방송에 맞나 확인하기 위해서.

         

       카메라 울렁증이라는 말이 있다.

       평소에는 끼가 넘치다가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목각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온몸의 관절이 삐거덕거리고, 행동이 무슨 로봇이 연기를 하는 것처럼 어색해지는 증상이다.

       심하면 과한 스트레스 때문에 이상 증상을 호소하거나, 공황 상태에 빠져들어서 촬영 중에 비명을 지르거나 과호흡으로 바닥에 엎어지기도 한다.

         

       박진성이 혹여나 카메라 울렁증을 앓고 있다면 촬영에 문제가 생길 터.

       그렇기에 스튜디오 촬영을 핑계로 그를 불러서 확인하려 한 것이다.

         

       촬영 전반적으로 부각되게 될 예정인데, 카메라 울렁증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든 미리 조처해야만 했다. 막상 촬영에 들어갔는데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촬영에 지장이 생기거나 분량을 제대로 뽑지도 못하게 된다면 골치가 아플 테니까 말이다.

         

       다행히 방송국의 우려와는 달리 진성에게 카메라 울렁증은 발견되지 않았다.

       도리어 카메라를 신경도 쓰지 않는지 자연스러운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소위 ‘방송 체질’이라고 불리는, 끼 넘치는 사람들과 비교해도 될 정도였다.

         

       그리고 그를 부른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박진성 주술사님.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번 특집 방송에서 주술사님과 함께할 이동균이라고 합니다.”

         

       바로 박진성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진성은 자신에게 다가온 이동균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이동균 PD님. 전화로만 이야기하고 직접 뵙는 것은 처음이네요. 이번 촬영,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성은 친근한 태도로 이동균을 대했다.

       이동균이 자신에게 보이는 친근감을 거울에 비추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하하. 오히려 제가 잘 부탁드린다고 해야 맞겠지요. 제작진은 박진성 주술사님만 믿고 있습니다.”

         

       이동균은 박진성에게 호감을 사려는 듯 그렇게 말하며 그를 이끌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향했다.

         

       “촬영 중 많이 마주칠 사람이니 제가 직접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일단 여기는 우리 프로그램의 핵심이자 보물들, 작가입니다. 자, 여기 안경을 쓰고 있는 작가님은 박상아 작가님이고, 우리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를 맡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상아라고 해요. 박진성 주술사님께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촬영 잘 부탁드려요.”

         

       “자, 그리고….”

         

       다른 이들 역시 박진성에게 친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박진성에게 호감을 사려는 것처럼 말이다.

         

       ‘낙하산이니 뭐니 했지만 다르게 말하면 인맥이 엄청나다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아무리 썩어도 주술사야. 어떻게든 인맥을 만들면 반드시 도움이 될 거야.’

         

       실제로 호감을 사려는 게 맞았다.

         

       제작진들은 박진성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검증되지 않았기에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지, 박진성이 가지고 있는 인맥이나 ‘주술사’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엄청난 인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당연히 친해진다면 무슨 일이 있을 때 도움을 받기도 좋았다.

         

       게다가 본인 역시 평범한가?

       무려 주술사였다.

         

       능력이 평범하거나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주술사라는 타이틀은 엄청난 쓸모가 있었다.

       주술, 아니 주술뿐만이 아니라 이능력과 관련해서 전문가와 인터뷰해야 할 때 박진성과 연락해서 인터뷰하면 엄청나게 좋은 그림이 만들어진다.

         

       대한민국 토종 주술사이자, 주술 유망주가 직접 해주는 인터뷰라.

         

       치트키나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외모마저 준수하기까지 하니, 뭘 더 말하겠는가?

         

       한 번 친해지면 두고두고 우려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친해져야만 했다.

       반드시 말이다.

         

       그렇게 제작진과 박진성은 훈훈하게 자기소개를 나누었다.

         

       첫인상은 가장 짧지만 강렬한 기억이며, 가장 오래 가는 기억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제작진은 박진성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겼고, 그리고 그 첫인상을 굳히기 위해서 훈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다.

         

       물론 사적인 대화는 아니었다.

       거기까지 들어가기에는 친분이 아예 없는 상태였으니까.

         

       대신에 그들은 다른 대화를 했다.

         

       앞으로 있을 촬영을 주제로 삼은 대화를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성은 꽤 쓸만한 정보를 얻어내었다.

         

       군에 연락해서 공병 부대를 섭외했다는 것.

       심마니들을 섭외해 길잡이로 삼을 예정이라는 것.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경호원이 함께하리라는 것.

         

       그리고.

       이동 경로까지.

         

       ‘첫 촬영은 황장산부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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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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