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33

       

       

       

       

       

       333화. 차원의 폭풍은 정말 최고야 ( 5 )

       

       

       

       

       

       한스는 이전의 폭주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새까만 흑염을 갑옷처럼 두르고 석탄처럼 탄 악마의 사체를 밟고 우뚝 서서 광소를 터뜨리는 모습이라니.

       

       “원래 저 정도로 심했던가?”

       

       이전에 몇 번인가 한스의 의수가 폭주한 것을 본 적 있는 이스칼이 의문을 표했다. 의수의 폭주는 으레 있던 일이었지만,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크하하하하!! 나는 세계의 종말이자 파멸이다! 나로 말미암아 세상은 재로 타올라서 가장 순수한 형태로 다시 태어나리라!! 흐하하하하ㅡ!!”

       “…완전히 미쳤군.”

       

       아무래도 용왕이 이번 폭주에 강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붉은 안광을 줄기줄기 흘리는 한스의 외형은 이전의 폭주와도 굉장히 다른 모습이었다.

       

       흑색의 화염은 매섭도록 타오르며 전신을 갑옷처럼 감쌌고, 얼굴의 절반은 흑염으로 만들어진 복면으로 가렸다. 뒤로 너풀너풀 흔들리는 복면은 마치 목도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온몸을 흑염으로 칭칭 두른 모습.

       와중 붉은 안광만이 남다른 존재감을 발했다.

       

       화룡점정은 흑염으로 만들어진 날개.

       한스의 등 뒤로 흑염의 날개가 펄럭이며 연신 주변으로 불티를 흩날렸다.

       

       “이것 참…”

       

       이스칼이 머리를 긁적였다. 모습과 이상한 말투만 조금 이상해졌을 뿐이지, 하는 행동은 별로 위험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멀쩡했을 때보다 더욱 활발하게 악마를 사냥하기도 했고.

       

       화르르륵! 화아악! 

       

       한스의 손짓을 따라 흑염이 매섭게 일어난다. 벌레처럼 도망치는 악마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타오르다가 한 줌 재가 되어 흩날렸다.

       

       “키흐햐아아아아ㅡ!!!”

       “흐하하하하! 더, 더! 노래해라! 너희들의 비명은 곧 파멸의 장송곡이요, 내 흑염이 너희들의 영혼을 갈망하는구나!”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느닷없는 한스의 폭주였지만,

       이스칼은 어쩐지 대충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용왕도 용은 용이라는 건가? 자신의 재미를 위해 이렇게 잔인하게 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다니.”

       

       이스칼도 알고 있다.

       용이라는 종족은 억겁의 세월에서 자신의 흥미를 추구하는 종족이라는 것을.

       

       애초에 이베르와 가장 접점이 많은 사람이 그의 아내 프리가 아니겠는가. 심심할 때면 이베르의 뒷담을 하는 까닭에 자연히 알게 됐다.

       

       펄럭!

       

       “음?”

       

       열심히 악마를 불태우던 한스가 돌연 흑염의 날개를 거세게 펄럭이더니, 훌쩍 하늘로 날아올랐다.

       

       흑염을 두르고 하늘을 역행하는 모습은 마치 역천의 존재.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보아라ㅡ!!”

       

       산천을 뒤흔드는 한스의 외침.

       심연 가득 한스의 목소리가 퍼져간다.

       

       “……오… 이건 좀…”

       

       이스칼은 그 모습을 보며 직감했다. 이건 한스가 진짜 자살할지도 모르겠다고.

       

       친우를 죽게 놔둘 수 없던 이스칼이 방패를 힘차게 던졌다. 저대로 좋지 못한 기억을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일격에 기절하는 것이 한스에게 이로울 것이다.

       

        한스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조금이라도 덜 괴롭게 만들어 주려는 이스칼 나름의 배려였다. 

       

       원형의 방패가 화살처럼 날아들며 한스의 머리를 향했다. 원형의 방패에서 날 수도 없고, 나서도 안 되는 흉흉한 소리가 방패의 궤적을 뒤따랐다.

       

       “ㅡ느려.”

       

       스윽ㅡ

       

       “무, 무슨…”

       

       놀랍게도 한스는 제자리에서 고개만 까딱이며 이스칼의 방패를 피했다.

       

       가소롭다는 듯 이스칼을 내려본 한스가 더욱 거세게 흑염을 뿜어냈다.

       마치 심연의 어둠을 가르며 떠오르는 흑염의 태양이라, 거기에 사방으로 퍼져가는 용왕의 위엄에 급 낮은 존재들은 덜덜 떨며 오줌을 지렸다.

       

       화르르륵!

       

       흑염이 피어오른다.

       어둠을 불사르는 어둠의 불꽃이요, 재에서 재로 환원하는 죽음이라.

       

       “나를 보아라! 삿되고 헛되며 악한 너희들의 존재를 불사르는 나의 영원한 흑염을 두 눈으로 목도하라!”

       “오, 탄탈로스 맙소사…”

       

       이스칼이 침음을 흘리며 눈가를 덮었다.

       이제 상황은 그의 손을 떠나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종류의 것으로 변했다.

       

       아마 심연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한스의 존재를 두 눈으로 보고, 귀로 똑똑히 듣고 있을 테니.

       

       이제 이 일은 영영 무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악한 것들의 영원한 파멸이자 진정한 죽음의 구도자이니! 나는 이제 죽음의 죽음이요, 이 심연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꽈르르릉ㅡ!

       

       한스의 뒤로 흑염이 해일처럼 퍼지며 하늘을 불살랐다.

       피부가 아릿할 정도의 열기가 지상에 작열한다.

       

       “나는 이 세상의 종결자이며, 대격변이다!!”

       “……오, 한스…..”

       

       이스칼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한스를 바라봤다. 

       

       저 멀리서 경악과 공포에 찬 비명이 들려온다.

       

       “저게, 저게 도대체 무엇이냐!”

       “심연이 불타고 있잖아!! 심연의 종말이다!! 대종말이야!!”

       “흑염이 몰려와요!! 다들 피해요! 구석으로!!”

       

       다른 이들이 보기에 한스는 무엇으로 보일까.

       형용할 수 없는 공포의 존재? 아니면, 강대하고 두려운 힘을 품은 강자? 사나운 성질의 폭군?

       

       이스칼은 차라리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랐다.

       

       죽음의 구도자, 심연의 파괴자, 세상의 종결자, 대격변 그 자체… 

       

       “…..사왕흑염용살제가 조금 더 나아 보일 줄은 몰랐는데.”

       

       어쩌면 사람들이 진심으로 한스를 경외하고 존경하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당장 한스가 하늘을 흑염으로 불태우는 신위를 보여줬으니, 그의 힘을 찬양하며 따르고 추종하는 이들이 분명 나타나겠지.

       

       “한스가 그 상황을 좋아할지 모르겠군…”

       

       추종자들이 한스를 죽음의 구도자, 심연의 파괴자, 세상의 종결자, 대격변이라고 부른다면…

       

       한스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폭주 중에 있던 일은 전부 기억하는 것 같던데…”

       

       정신을 차리면 당장 혀부터 깨물려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 * * *

       .

       

       

       

       《…으, 으으음…》

       

       한스의 자아 한구석에 자리 잡은 용왕이 작게 신음을 흘렸다. 그는 한스의 눈동자를 빌려 바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보고 있었다.

       

       지금 이 인간의 몸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어떤 언행을 하고 있는지도 전부.

       

       《……이럴 의도는 없었는데 말이야.》

       

       이건 용왕의 진심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계약자를 괴롭힐 의도가 없었다. 정말로 놀랍게도 이건 사실이었다.

       

       용왕은 한스를 괴롭힐 의도가 없었고, 오히려 도와주려고 했다. 

       

       아주 살짝, 그러니까 의수에 아주 살짝 자신의 격을 불어넣으며 계약자에게 힘을 보태는 식으로 말이다.

       

       《….정말 아주 조금만 힘을 썼는데도 이 정도라니….》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은, 인간과 용 사이에 있는 격차.

       

       기껏 해봐야 80년을 사는 인간의 의식과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용왕의 사이에 있는 까마득한 간격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용왕의 기준에서는 아주 조금이었겠지만, 당하는 인간에게는 산사태나 다름없는 힘의 폭거였다.

       

       한스가 ‘벽’을 넘어서 영혼의 바다에 자신만의 정의를 내렸다면 혹은, 프리가와 이베르처럼 서로를 믿고 영혼을 통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저 인간치고는 격이 제법 높고, 힘이 굉장히 강한 필부에 불과했다.

       

       ….애당초, 용왕의 의식이 없을 적에도 의수가 이따금 폭주하기도 했었다.

       하물며 용왕이 의식하여 격을 불어 넣었으니 이번 폭주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거 참… 계약자한테는 미안하게 됐군.》

       

       용이 아무리 재미와 흥미를 추구하는 종족이라지만, 용왕도 염치는 있었다. 한 종족의 수장으로 살아온 세월이 까마득하기에,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얹혀사는 입장에서 뭣하러 집주인에게 밉보이겠는가.

       

       선의에서 비롯된 불행한 사고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일로 도움을 줘서 호의를 쌓고,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들어보려 했건만…》

       

       아무래도 영 그른 모양이다.

       

       

       

        * * * * *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좋은 일이 생기면 기쁨을 나누고 슬픈 일은 괴로움을 함께 짊어지려 한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 슬픔은 나누면 절반.

       

       이는, 내가 보기에 즐거운 것은 남과 함께 보면 더욱 즐겁다는 뜻이다.

       

       “햐. 한스 저놈이 드디어 사고를 치는구나.”

       

       나 혼자 보기 아까운 꼴이었다.

       

       한스가 흑염으로 만들어진 날개를 펄럭이며 심연의 하늘을 매섭게 날아다닌다. 그 모양새가 마치 세상을 불태우는 흑룡의 것이다.

       

       – “만 년 동안 응어리진 나의 분노를 느껴라!!”

       

       만 년은 개뿔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만 년의 분노를 운운하고 있다.

       

       한스가 저렇게 중 2병 모드로 발작하는 것은 이전에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기껏 해봐야 흑염을 두르면서 큭큭거리고, 이상하고 오글거리는 말투로 다니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제대로 발작하는 건 정말 처음 봤다.

       

       ‘이건 진짜 나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즐겁다.

       한스의 발작을 보니 정말 순수하게 웃음이 나왔다. 너무 즐거워서.

       

       이런 건 나 혼자 볼 수 없다. 온 세상 사람이 알아야 한다. 함께 보고 이 감동을 공유해야 한다.

       

       이건 의무였다. 이 순간부터 나의 어깨에는 의무라는 무거운 짐이 실린 것이다.

       

       양피지를 말아쥐고 밤낮을 달리는 파발마처럼. 

       전쟁의 화두를 알리는 봉화의 연기처럼.

       

       한스의 모습을 소리 높여 알릴 의무가 생겼다.

       

        ‘그대는 박제가 되어버린 흑염룡을 아시오?’

       

       흑염룡의 커다란 날개와 우렁찬 포효는 별의 자태로 표표하게 빛나며 하늘에 아스라이 박제되었다오.

       

       박제.

       박제를 하자.

       

       이건 별자리로 만들어 영원토록 남겨야 한다. 이 멋진 모습을 찰나의 이승처럼 사라지게 둘 수는 없었다.

       

       심지어 명분도 완벽했다.

       

       폭주 상황이기는 했지만 일단 한스가 악마도 제일 많이 죽이고 있었고, 단독으로 발하는 존재감이며 무게감이 남달랐다.

       

       거기에 나를 가장 즐겁게 했으니 10점 만점에 12점.

       합격이다.

       

       ‘저 모습을 별로 만들어서… 별자리로… 그런데 저 모습을 어떻게 별로 만들지.’

       

       별자리가 무엇인가.

       하늘에서 하는 점잇기 놀이다. 

       

       별과 별 사이에 가상의 선을 그어 일정한 모양을 만들고, 그 모양에 의미와 이야기를 불어넣는다. 그렇게 탄생하는 것이 일반적인 별자리.

       

       결국 별자리는 스케일이 큰 점잇기 놀이였기에, 흑염룡의 한스처럼 복잡한 형태는 표현하기 살짝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저 한스의 모습을 그대로 별자리에 박아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려면 하루 종일 별을 만들어서 박아야 한다. 그건 끝도 없는 노가다의 시작이었고, 별을 만들다가 내가 탈진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흑염룡만 만들자.”

       

       타협했다.

       한스의 외형은 버리고, 흑염룡만 만들기로.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별자리에 깃드는 것은 이야기였고,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을 볼 때마다 흑염룡의 별자리를 올려보며 한스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애초에 내가 심연 청소부 하청업자들에게 약속한 내용도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영원토록 잊혀지지 않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도록, 별로서 그 위업을 새겨 넣는 것.

       

       ‘내가 한 말은 지켰어.’

       

       사람들은 밤하늘의 저편과 노을의 끝자락, 새벽의 어스름에서 빛나는 흑염룡의 별자리를 보며 한스의 무용담을 칭송할 것이다.

       

       “죽음의 구도자, 심연의 파괴자, 세상의 종결자, 대격변… 푸흡!”

       

       그 뒤는 내 알 바 아니니까.

       난 일단 약속한 내용을 전부 지켰다.

       

       츠파아앗!

       

       손에서 별빛이 떠오르며 환하게 빛을 발한다. 그러한 별이 무려 여덟 개.

       

       네 개의 별이 커다란 사각형을 만들고, 두 개는 머리의 형태로, 나머지 두 개는 길쭉한 꼬리로.

       

       이름은 흑염룡의 별자리라고 했지만, 실상 모습은 여타 용과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별자리로 색까지 표현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내가 표현하려는 의도는 썩 괜찮게 나타났다고 본다.

       

       내가 만든 눈동자 별자리처럼 직관적인 형태는 아닐지라도, 흑염룡 별자리에 담긴 서사가 뚜렷했으니까.

       

       중요한 건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다.

       

       “한스. 이 별자리에 담긴 서사와 철학을 알겠어?”

       

       아아. 한스.

       흑염룡의 한스.

       

       그대는 박제가 된 흑염룡을 아시오?

       

       몰라?

       이제 알게 될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야말로 고로시의 제왕!! 필살 사회적 죽음을 시전…!! 그런데 진짜 존나 짱 쌤…!! 이러면 이건 중2병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허세 가득한 짱 쌘 인간인지… 문득 의문이 드는군요…!!

    오른손에 흑염룡이 있음(진짜임)
    흑염이 나옴(진짜임)
    가끔 폭주함(진짜임)

    …어?

    다음화 보기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