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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3

       처음으로 돌아온 엔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이 지닌 것을 점검하는 일이었다.

       

       그녀의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것은 많지 못했다.

       

       이건 엔리의 업보였다.

       

       그냥 얌전하게 미로를 빠져나가도 모자랄 판에 괴인을 상대로 티배깅을 하다 보니 소모가 컸던 것이다.

       

       지금 가진 것을 최대한 아껴 쓰더라도 미로 두 번을 지나치는 것 정도가 한계 아닐까.

       

       엔리가 지갑은 상태가 더 심각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로브 쓴 이를 도발해대며 물건을 쓸어간 것이 문제가 됐다.

       

       일전에 물품을 사느라 탕진하다시피 한 그녀의 수중에는 다음 지역을 돌파하기 위한 물건을 살 돈이 부족했다.

       

       “다음 지역은 제한시간 내에 탈출하는 형식이겠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곳의 형상이 보여 준 기믹은 명확했다.

       

       양쪽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유령. 뒤편에서 따라오는 검귀. 그리고 저 멀리에 보이는 입구.

       

       제한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 반대편 입구까지 빠져나가면 되는 것이리라.

       

       이런 류의 게임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중간중간에 여러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테고 그 과정에서 엔리는 꽤 많은 죽음을 경험해야 하겠지.

       

       엔리는 벌칙으로 이런 기믹의 게임을 상당히 많이 접해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판대 위에 올려져 있는 지도의 정체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저건 공략집일 것이다.

       

       두 번째 지역을 통과할 때 어디에 어떤 기믹이 적혀 있는 지를 알려주는 물건.

       

       그렇다면 저렇게 비싼 가격이 매겨져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저 지도 하나만 있으면 두 번째 지역을 통과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렇단 소리는 괜히 여러번 도전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저 지도를 구하고 가는 게 이득이란 이야기겠죠.”

       

       엔리에게 존재하는 선택지는 두 개다.

       

       하나는 몸으로 부딪혀 스스로 공략을 개척하는 방법.

       

       정석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지만 엔리는 이를 선택할 생각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검귀한테 몇 번이나 죽어야 할 것이고 또 얼마나 많은 아이템을 소모해야 할 것인가.

       

       그건 효율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남은 자금으로 도박을 해서 지도를 사는 것이었다.

       

       엔리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녀는 오늘 되는 날이었다.

       

       방금 전 도박에서 미친 듯이 연승을 거두었던 걸 보라.

       

       원래 도박이란 건 흐름을 타는 법. 엔리는 오늘 바란다면 얼마든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갑시다! 도박장으로!”

       

       – 가즈아아아!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가즈아아아아아!]

       

       – 엔리 코인 떡상 각이냐?!

       – 오늘 되는 날이다!

       – 곧 죽어도 올인!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으며 당당한 걸음과 함께 도박장에 입장한 엔리였지만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흐름이니 뭐니 하는 것은 미신일 뿐이라는 걸 말이다.

       

       두 번째 지역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연전연승을 거두던 엔리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왜! 왜애애애애! 왜 또 0이 나오는 건가요?!”

       

       쉽게 돈을 벌었던 그녀는 방금 전의 일이 백일몽이었다는 것처럼 자신이 벌었던 것을 그대로 내놓게 되었다.

       

       컵 안에서 톡 하고 튀어 나온 x0이 적힌 공을 바라보던 엔리는 그를 집어 들고서 이리로 돌려보고 저리로 돌려보며 확인을 해보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건 그저 공일뿐이었다.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엔리님. 엔리님. 노려본다고 공에 적힌 숫자가 바뀌진 않아요.]

       

       “제가 그걸 몰라서 이러는 줄 알아요?!”

       

       분을 견디지 못한 엔리가 집어 든 공을 내던졌지만 그는 멀리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기 전에 남자의 손에 거두어 졌으니까.

       

       “이거 조작이죠?! 사기치고 있는 거죠?! 그쵸?!”

       

       엔리가 판자를 두 손으로 내리치며 고함을 내질렀지만 남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신 여느 때처럼 엔리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그릇을 앞으로 내밀었다.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도박을 하고 싶으면 돈을 내라. 그럴 것이 아니라면 떠나가라.

       

       엔리는 텅 비어 있는 그릇을 보고서 눈을 떨고는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주머니를 열어 가진 것을 세어보았다.

       

       계속된 패배 속에서 이성을 잃어버렸던 그녀에게 남은 금액은 단 5전.

       

       기껏 해봐야 도박 한 번을 하고 나면 사라질 초라한 돈.

       

       이것이 그녀의 전부였다. 허나 이 순간에도 엔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처음에도 그녀에게 남은 돈은 10전 뿐이었거늘 금방 불려내지 않았던가.

       

       한 번만 성공하면 돼. 한 번만 성공하면 돼.

       

       여기서 x3이나 x5가 뜨기만 하면 난 분명!

       

       – 땅땅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엔리코인 상장폐지 되었습니다.]

       

       – ㅠㅠㅠㅠ

       – ㅠㅠㅠㅠ

       – 아쉽네요. 엔리 코인을 믿고 있었는데.

       – 내 포인트. 내 포인트 돌려내!

       – 이거 주자조작이야아아아아!

       – 네가 잃은 포인트보다 전재산을 잃은 엔리가 더 슬플 거야.

       – 그러게. 누가 엔리 믿으래?

       – 정배 컷!

       

       또 다시 그녀의 앞에 나타난 x0이 적힌 구슬.

       

       그걸 멍하니 바라보던 엔리는 남자의 손을 걷어내고는 자신이 직접 컵을 열어 보았다.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잖아.

       

       40퍼센트라는 확률이 이렇게 연속해서 나올 리가 없다고!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기를.

       

       그래서 나에게 면죄권이 부여되기를.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고 바라고 바라던 엔리였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x0 구슬이 두 개. x1 구슬이 하나. x3 구슬이 하나. 그리고 x5구슬이 하나.

       

       도박판에 이상은 없었다.

       

       *

       

       엔리는 그 후로도 일확천금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버리지 못했다.

       

       한 번 태양 가까이에 다가가 온기를 느껴 본 새는 위로 향하는 날갯짓을 멈추지 못하는 법이니.

       

       그 끝에 비참하게 추락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새는 온기를 추구했다.

       

       처음 엔리는 남아 있는 아이템을 활용해 미로를 돌아다니며 돈을 끌어 모으고 그 때마다 도박장으로 향했다.

       

       때로는 흐름이 좋아 보이는 순간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순간도 있었지만 결과는 항시 똑같았다.

       

       엔리는 또 다시 미로로 향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공포라는 단어조차도 잊어버렸다.

       

       뒤에서 쫓아오는 괴인보다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흐릿한 유령보다도, 컵 안에서 튀어나오는 x0구슬이 더욱 무서웠기에.

       

       미로에 향했다가 죽고, 도박장 쪽으로 갔다가 탕진하고, 다시 미로로 향하고.

       

       – 충신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냥 이럴 시간에 트라이 박아보는 게 낫지 않아?]

       

       “아직 제 한 방은 끝나지 않았어요! 여태까지 잃기만 했으니까 평균회귀 할 거라고요!”

       

       본래의 목적마저 잃어버린 듯한 모습에 어느 시청자가 건설적인 의견을 내어보았지만 엔리에겐 그를 귀담아 들을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한 번의 성공. 단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엔리는 자신의 시간을 낭비했다.

       

       그렇게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다시 실패한 끝에.

       

       또 한 번의 죽음을 겪고 돌아온 엔리는 바닥에 널부러진 채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을 바라봤다.

       

       “흐읍.”

       

       평균회귀고 나발이고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그냥 싫었다.

       

       이 어두운 숲도. 심술궂은 웃음만을 흘리는 로브 쓴 이도. 도박장도. 미로도. 유령도. 괴인도. 이 곳을 만들어 낸 아라도.

       

       모든 게 다 싫었다.

       

       “끕.”

       

       그 중에서 가장 싫은 것은 자신이었다.

       

       한 번의 성공을 놓지 못해서 멍청한 짓을 반복하다가 몇 시간을 허공에 날려버린 자신 말이다.

       

       이럴 시간에 무작정 트라이를 반복했다면 지금쯤 이 숲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흐아아아앙!”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한 엔리는 방송 중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하이고. 실패할 것이라 생각했다마는 이렇게 처절하게 실패할 줄이야.”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눈물을 닦아내던 와중 귓가에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돌린 엔리는 처음으로 로브 아래에 감추어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무감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미인의 얼굴은 그녀에게 너무도 읷구한 것이었다.

       

       “아…ㄹ. 흡!”

       

       당혹 속에서 아라의 본명을 입에 담을 뻔 했던 엔리가 다급히 입을 틀어막자 아라가 웃음을 흘린다.

       

       “화령 씨였어요?”

       “그래. 나였다.”

       

       아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방금 전 노파의 목소리를 재현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아이의 목소리. 남자의 목소리. 성격 사나운 아줌마의 목소리.

       

       그녀의 입에서 무수히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가 흩어졌다.

       

       “별 것 아닌 재주지.”

       

       놀람이 컸던 것일까. 울음마저 잃어버린 채 그를 감상하던 엔리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게 별 거 아니라고요? 전 세계의 성우 지망생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기만한다면서 화를 낼 것 같은데요.

       

       “저 그럼 체형이나 손에 주름 같은 건.”

       “본인 정도 경지에 이르면 그까짓 건 몸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무언가가 될 따름이다.”

       

       주름이 생겨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손.

       

       허리와 어깨에서 괴상한 소리가 나더니 곱추가 되었다 다시 펴지는 몸.

       

       얼굴도 바꿀 수 있다고 아라는 이야기했지만 엔리가 그걸 사양했다.

       

       보기에 좋은 광경은 아니었으니까.

       

       “증명은 이쯤 하면 된 것 같고. 어떠냐. 도박장에 가는 게 지긋지긋해지지 않았느냐?”

       “…지긋지긋해요.”

       

       도박에 집착을 하느라 숲에서는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방송은 개판이 나고. 자기는 서러워서 울음을 터트리고.

       

       눈물을 흘리며 미련을 떨쳐버린 지금. 엔리는 방금 전의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아마 오늘의 일은 훌륭한 흑역사로 박제되지 않을까.

       

       “그러면 되었다. 그런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을 뿐이니.”

       

       그리 말함과 동시에 아라가 품 안에서 검을 꺼내들어 위로 치켜 들었다.

       

       태양을 베어 세상에 밤의 장막을 선사했던 검이.

       

       이번에는 밤의 장막을 베어 세상을 본래의 풍경으로 되돌린다.

       

       어둠이 걷히고 주홍빛의 노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은 시간 동안은 편하게 놀자꾸나. 그러기 위해 준비한 자리이니 말이다.”

       

       손을 내밀며 웃음을 짓는 아라를 바라보던 엔리는 똑같이 손을 내밀어서는.

       

       “이제와서 훈훈한 척 한다고 뭐가 해결될 것 같아요?!”

       

       상대의 손을 내리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가 지닌 원한은 깊었다.

       

       *

       

       엔리가 방송을 끝마치고 VR기기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평범한 이들의 꿈의 세계에 발을 들일 때였다.

       

       “오늘 너무 힘들었어…”

       

       버릇처럼 혼잣말을 내뱉으며 기지개를 펴던 그녀는 주변에 도사린 어둠을 보고서 굳었다가 다급히 일어나 불을 켰다.

       

       허나 그런다고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온 방의 불을 켜고. 노랫소리를 크게 틀고. 코미디 드라마를 재생하고.

       

       VR세상에서 전염된 공포를 떨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엔리였지만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혼자인 이상 떨칠 수 없는 불안감이 말이다.

       

       웃어야 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입술을 굳히던 엔리는 이대로는 잠은커녕 화장실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아라 씨!”

       

       그리고는 이 사태의 원흉이 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공포심을 책임지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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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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