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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3

     매국노 그레이.

     그는 일생을 연기로 자신을 숨긴 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했다.

     * * * 

     #10-06-30. 매국의 날.

     “우리는 반역을 하기로 결정했다.”

     크림슨 지브롤터, 변경백의 말에 그레이 지브롤터는 당황했었다.

     식사 자리에서 나오기에는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말이었으며, 반역을 한다는 걸 뜬금없이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도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레이, 따라오너라.”

     그러나 아버지의 의지는 굳건했다.

     “네 어미는 우리를 배신했다. 네 어미가 지브롤터를 위해 마지막으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얌전히 노스트럼이 방심하도록 만드는 것.”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크게 실망했다.

     사랑하던 여인이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에게 안겼다는 것 자체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

     

     아니면 지브롤터의 자존심이 무너진 것에 대한 복수심이었을까.

     

     “자세한 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이야기해주마. 저것은…이제 더 이상 네 어머니가 아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어머니로 대하지 않았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에게 더 이상 이전의 사랑을 보내지 않았고, 그건 자식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그레이 지브롤터 10살.

     부모와 자식 사이에 더 이상 사랑은 없었다.

     “너는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최소한 20살이 되기 전까지 소드 마스터가 되어, 나의 뒤를 이어야 할 것이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버지는 무력을 통한 반역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강하게 만들어, 크림슨과 그레이라는 소드 마스터 두 명으로 국가를 전복시키려고 했던 것 같았다.

     어머니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무능왕을 속이기 위한 눈속임이 아니었을까.

     이미 더럽혀졌으니, 더럽혀진 몸으로라도 지브롤터를 위해 애쓰라는 강요 아닌 강요가 아니었을까.

     당시 두 사람의 심정에 대하여 나는 모른다.

     나는 어머니에게 더 이상 말을 걸 수 없었고, 아버지에게는 그저 일방적인 가르침만을 받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미래에 반역할 것이다.

     나라를 팔아서라도, 반드시 무능왕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복수귀 크림슨의 첫 번째 검으로서, 예비 매국노가 되었다.

     * * *

     #13-04-12. 수련의 날.

     

     매국의 날 이후.

     그레이 지브롤터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생활은 오직 모든 것이 수련에 맞춰져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신체 단련을 하고, 크림슨 백작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고, 지브롤터의 검술을 배우고, 신체가 뻗고 난 이후에는 백작으로서의 지성을 쌓고, 정해진 식사를 뱃속에 쑤셔박으며 검을 익혔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될 때까지 하면 된다.

     지브롤터는 마스터를 만들어내는데 특화되어있었고, 아버지는 나를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마스터로 만들어내려고 했다.

     자식이 피멍이 들면 회복마법을 때려붓고, 뼈가 부러지면 강제로 다시 짜맞추고, 음식을 먹다가 토하면 새로운 음식을 가져와 강제로 뱃속에 쑤셔박아 먹도록 만들었다.

     훗날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아동학대니 가정폭력이라느니 그런 제국식 시각에 따른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 당시에는 그것이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지브롤터는, 그래야 하니까.

     아버지가 그렇게 시켰으니까.

     그러다보니, 또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백작가의 도련님이라는 게 다른 이들도 비슷하겠지만, 나는 또래를 사귈 시간에 기사들을 상대하고 검을 연마했다.

     동생들-누아르나 레타르와 어울릴 시간은 없었다.

     내가 훈련을 하는 만큼 동생들도 제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었기에, 나는 둘과 그다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같이 밥을 먹지도 못했고, 같이 어울려 놀거나 그러지도 못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부모의 사랑이라고 할만한 걸 받지는 못했다는 것 정도.

     

     어머니는 아버지가 매몰차게 대할수록 더 왕도를 드나들었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정신이 팔린 무능왕 몰래 병력을 늘리고 또 늘렸다.

     아버지의 계획 속에,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복수귀가 된 시점에서 아버지는 사랑을 더 이상 믿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기에.

     사랑.

     지브롤터에게 있어 상징과도 같았던 그것이 변질되고 망가진 순간, 지브롤터는 더 이상 이전의 지브롤터와 같은 모습이 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틀리고 망가졌던 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부정을 알면서도 품었다면.

     그런 생각을 때때로 하고는 했지만, 그건 전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 지브롤터에 어머니는 없었기에.

     * * *

     #17-02-21. 입학의 날.

     17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갑자기 나를 왕도에 있는 아카데미에 입학시켰다.

     갑자기-는 아니다.

     원래 아카데미에 다들 17살이 되면 입학을 하기 마련이고, 나에게도 입학 추천서가 날아왔었다.

     본래라면 교우관계를 늘리고 사교활동을 하기 위한 장소.

     “너는 내 얼굴을 닮았으니, 많은 영애들의 마음을 홀릴 수 있을 거다. 그들을 유혹하여 정보를 캐내거라.”

     그런 곳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미인계를 통한 첩보 활동을 지시했다.

     “영애들 뿐만 아니라, 여러 부인들도 홀려라. 차기 지브롤터 백작의 정부 예정자로 두든, 아니면 백작위에 오르고 나면 첩으로 들어가겠다고 할 정도로 마음을 홀리든, 여러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이 우리의 반역에 기꺼이 성문을 열게 만들어라.”

     복잡하고 어려워보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요구는 간단했다.

     언젠가 지브롤터가 병사들을 이끌고 영지 앞에 갔을 때, 굳게 닫혀있는 성문을 열고 우리를 맞이할 수 있게 미리 설계를 해두라는 말이었다.

     방법?

     뭐, 그건 유혹당한 영애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충성하는 기사에게 몰래 시켜두든, 영지를 지키는 결계석을 빼내어 우리에게 보내주든, 아니면 아버지를 설득하여 영지 전체가 반역을 저지르든.

     

     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아카데미 생활을 요구했다.

     청춘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고, 나는 그 누구 하나 친구를 사귈 새도 없이 여자를 유혹하여 그 마음을 홀리는 것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것이 내가 지브롤터를 벗어나 아카데미에 들어갔던 배경.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브롤터에서 계속 아버지를 상대로 검을 휘둘렀을 것이다.

     오직.

     무능왕을 향한 반역을 위하여.

     * * *

     #17-04-02 매국노의 봄.

     아카데미 입학 이후.

     나는 나의 얼굴과 배경에 몰려드는 모기들을 품고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는 어리석은 자가 되었다.

     “아아, 그레이. 당신은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멋있으신 거죠…?”

     “얼굴만 그렇게 바라보면 조금 부끄러운데.”

     “어머, 그레이. 당신이 부끄러워하다니….”

     “그쪽이 계속 나를 쳐다보니까, 신경이 쓰이거든.”

     “어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얼굴을 이용해 여러 영애들이 뭇 밤잠을 설치게 만들고, 그들의 집에 방문하여 미망인이나 과부가 된 귀부인들을 홀리기도 했다.

     유혹은 상상 이상으로 쉬웠다.

     “내 딸이 그대와 긴밀한 관계가 되었다고 들었네. 내가 어렸을 때….”

     “백작께서도 부인의 이야기를 종종 하고는 했습니다. 2학년 연회에서 정원을 산책하셨다고.”

     “백작께서 나를 기억하고 계신 거니…? 아아, 그렇구나. 그분께서는 역시….”

     귀부인 중에는 내가 아닌 내 아버지를 노리고 있으면서도 나의 접근에 흔쾌히 받아주는 이도 있었다.

     “고백하는 연습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혹시 들어줄 수 있겠어? 사랑해.”

     “몇 번이고 들어드릴게요. 이번에는 좀 다르게 한 번 말씀해보시겠어요?”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내 옆에는 너만 있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좀, 더. 더, 다른 멘트로.”

     그저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는 걸로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던 수많은 레이디들은 두 말할 이유도 없었다.

     “젠장. 저녀석은 지브롤터가 맞나? 어떻게 건드리지 않는 여자가 없어.”

     “학우 뿐만 아니라 귀부인, 심지어 교수들까지 노리고 있다고 하더군.”

     “지브롤터 백작께서는 아들이 저렇게 방탕한 윤락을 즐기고 있는데 가만히 놔두시려는 건지…쯧쯧.”

     많은 남자 귀족들이 그런 나의 행동을 아니꼽게 생각했으나, 나는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내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다.

     아버지는 나를 방치하지 않았다.

     “그레이. 여기, 저희 고향의 지도예요.”

     “으음, 상급 기사요? 저희는 그러니까…다섯 명? 그런데 이분들, 다 아버지께 불만이 많아서.”

     “저희 영지에서 생산되는 밀이 어디로 가냐고요? 아, 그거 여기 강을 따라서 이동한 다음 이 근방으로 모여요. 이듬해까지 먹을 곡식을 전부 저장해둔답니다.”

     주기적으로 누구를 유혹하여 기사들의 숫자와 구성, 병사들의 배치, 식량 저장고의 위치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그레이 지브롤터! 나의 영애를 걸고 결투를…커헉!”

     “꺄아악!”

     이미 마스터로서는 무력으로 완성되었기에, 나를 향해 덤벼드는 이가 있었어도 나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마스터라는 건 숨겼지만, 상급 기사 수준의 실력만으로도 나에게 덤벼드는 이들은 대응할 수 있었으니까.

     자기가 좋아하던 소꿉친구를 빼앗겼다느니.

     레이디들이 그레이 그레이 노래를 부르느라 이골이 난다느니.

     지브롤터의 수호자 가문에서 태어난 남자가 어떻게 이렇게 여러 여인들의 마음을 후리고 다니는 난봉꾼이 될 수 있냐느니.

     그런 왕국 귀족들의 사이에서, 나를 향해 가장 강렬한 적의를 보내는 이가 하나 있었다.

     “그레이 지브롤터. 설마 나를 유혹하려고 하는 건가?”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그대와 내가 무슨 사이인지, 그대는 모른다.”

     모두가 나에게 너무나도 쉽게 함락되던 와중에, 유일하게 나를 향해 이성적 호감을 드러내지 않던 이에게 끌리게 되었다.

     “포기해라. 나는 그대와 연인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었으면 죽었지. …모르니까 그러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지낼 거라면, 차라리 좀 더 노스트럼을 위한 행동을 하는 건 어떤가.”

     아버지는 명령했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을 유혹하여 왕국의 기밀을 빼내라고.

     

     하지만 나리아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설득하고 성격을 개조시키려고 한 뒤,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노스트럼의 진중하고 예의바른 충신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어쩌면 오기가 생겼던 걸지도 모른다.

     

     아카데미에 오자마자 누구나 다 홀리는데 성공했던 내가 유일하게 실패한 나리아라는 존재에게 관심이 가던 건 어찌보면 당연했던 걸지도 모른다.

     나를 그렇게 대한 건 나리아가 처음이었으니까.

     그런 생경함에 나는 나리아에게 무언가 씌인 것처럼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른 이들을 이용하기 위해 호감을 쌓으려고 했기 때문에.

     “안녕하세요, 잘생긴 협곡의 왕자님?”

     

     마찬가지 목적을 가지고 내게 접근했던 은백발 소녀에 대하여.

     “오늘은 저랑 같이 점심 먹어요. 제가 도시락 싸왔는데, 제국 음식 한 번 먹어보실래요?”

     내가 다른 이를 상대로 그렇게 하고 다녔기에, 그녀가 내게 다가온 목적이 그레이 지브롤터를 유혹하려는 미인계라는 걸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스타시아 공주.”

     나는 그렇게, 아카데미에서 그녀를 만났다.

     “당신이 얼마나 노력하든, 제가 당신의 마음에 답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당신같은 여자가 싫거든요.”

     제국의 유학생, 아스타시아와.

     “저는 사랑한다는 말을 믿지 않거든요.”

     그 때는.

     “사랑한다면서, 결국 이용하려는 거 아닙니까.”

     사랑을 속삭이며 다가오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정 거 미리 올리는 느낌으로

    과거 이야기는 지금 아니면 풀기 애매할 것 같아서 지금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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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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