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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4

       “그거 기억나?”

        

       차가운 바닥에 가지런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내 머리 위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무슨 기억?”

        

       “지난번에 술을 마셨을 때의 기억.”

        

       “지난번 언제?”

        

       “1학년 때.”

        

       “그건 지난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전 기억 아니야?”

        

       너무 큰 간격을 두고 ‘지난번’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앨리스에게 나는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홍차에 술을 타 먹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했었잖아?”

        

       하지만 앨리스는 그런 나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렇게 마셨네.”

        

       “그러게…….”

        

       앨리스는 금방이라도 꺼져 들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더니 끙끙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내 머리 위쪽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앨리스와 나는 둘 다 천장을 보고 누워있었던 모양이다. 서로의 정수리가 거의 맞닿아있는 상태로.

        

       나도 왜 내가 그러고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까지…… 아, 그래 맞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다가 머리가 깨질듯한 통증을 느끼고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카메라.”

        

       적어도 이번에는 기억난다.

        

       빈 술병을 마이크 삼아 지나가다 들은 샹송을 어색하게 따라부르는 나를 향한 카메라 렌즈가.

        

       클레어가 나를 찍는 카메라였다.

        

       “클레어!”

        

       “으응~ 왜애~”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니, 클레어가 테이블 위에 엎드린 채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잠에서 깬 건지, 아니면 잠을 자는 상태로 나에게 대답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보통 이런 파티는 결혼 전에 하는 거 아니던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이러고 있던 걸까.

        

       분명히 각자 술 두 잔씩 마시던 순간까지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이래서야 지난번의 그 술주정을 제니퍼나 스승님 탓으로 돌릴 수도 없었다. 이번에는 온전히 우리끼리 술 마시다가 난리를 피운 거니까.

        

       우리는 아카데미 일이 바빠서 가지 못하니 우리 몫까지 마셔달라던 그 말을 이렇게 지켜버릴 줄이야.

        

       나는 숙취로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클레어의 목소리가 난 쪽으로 갔다.

        

       “클레어, 카메라 좀.”

        

       “으응~”

        

       진짜로 자는 거 맞아?

        

       그런데 자는 게 아니었다면 클레어가 내게 카메라를 넘길 리가 없긴 했다. 부끄러운 사진을 찍힌 사람이 카메라를 달라면 이유는 하나뿐이었으니까.

        

       클레어는 자기가 상반신으로 깔고 있던 카메라를 내 쪽으로 밀어 넘겨주더니, 그대로 다시 테이블에 엎드린 자세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

        

       나는 그런 클레어를 한 번 더 바라보고,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가— 그냥 그대로 다시 내려놓았다.

        

       클레어도 뭐 놀리려고 찍은 건 아닐 테니까.

        

       지금 당장은 부끄러워도, 이게 나중에는 다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차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런 짓을 하고 나면 클레어가 지을 표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말없이 카메라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몸을 돌리자, 앨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여전히 표정이 뚱했다. 대단히 피곤한 표정이었다. 아마 내 표정도 비슷했으리라.

        

       “잠깐 바람 좀 쐬자.”

        

       앨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향했다.

        

       연회장 바깥에선 밤새 호위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호위 병력만이 아니라 호텔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모여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우리를 향해 시선이 모이길래, 앨리스와 나는 거의 동시에 검지를 들어서 각자 자기 입 앞에 댔다. 덕분에 큰 소리로 우리한테 인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연회장의 처참한 모습이 최대한 보이지 않도록 문을 닫고 나왔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앨리스였다.

        

       “저희가 먼저 들어가라고 말하기 전에는 안에 들어가지 말아주세요.”

        

       안에 있는 사람들은 평민들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이 나라를 이끌어 갈 고위 귀족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었으니 최소한 체면은 지켜줘야지.

        

       결국 안을 치울 때는 직원들이 상태를 보게 되겠지만, 적어도 그 전에 애들이 깨기를 바랄 뿐이다.

        

       “…….”

        

       “…….”

        

       말없이 호텔을 나왔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하늘이 파랗게 물들어 있었고, 거리에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앨리스가 호텔 계단 앞에 서길래, 나도 그 옆에 섰다.

        

       그러자 우리 주변에 기사들이 달려와 호위하듯 자리를 맞춰 섰다.

        

       “……솔직히 말하자면, 황제가 되기 전이 더 좋았다고 생각할 때도 많아.”

        

       “이제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2주밖에 지나지 않아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겠지. 앞으로 몇 년이고 지나가 보면 이런 일도 적응할 테니까. 그래도 황제가 되기 전이 더 좋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앨리스는 그대로 호텔 정문으로 들어가는 계단 구석에 대충 앉았다. 나도 그 옆에 앉았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어? 어렸을 때는 그렇게 황제가 되고 싶어 했으면서.”

        

       “……그러게.”

        

       앨리스는 파랗게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그래도 이제 시작일 뿐이긴 해. 그냥 호위가 좀 붙은 거잖아. 생각해보면 호위는 원래도 붙었었고.”

        

       “그 호위가 나였지.”

        

       “맞아. 너였지.”

        

       앨리스는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면 너도 호위가 붙어야 할 사람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한 건 아니다, 응.”

        

       “맞아. 이게 당연한 거지.”

        

       우리 두 사람은 잠깐 소리 내서 웃었다.

        

       “그래도 뭐, 황제가 되어도 친구 결혼식 정도는 올 수 있네. 막상 가도 사람들이 뭐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고.”

        

       “충분히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던데.”

        

       “그런가? 아버지 때랑은 조금 다르지 않아?”

        

       “다시 생각해보면, 전대에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아. 우리는 연회에 따라가지 않아서 기억이 없는 거지.”

        

       “아, 그랬지…….”

        

       앨리스는 다시 잠깐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연회장 같은데 자주 가게 되려나.”

        

       “아무래도 그렇겠지. 십 년, 이십 년이 흐르면 또 모르겠지만, 황제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히 그럴 거야.”

        

       내가 대답하자, 앨리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적어도 미아는 언제나 연회장에 있을 거 아냐.”

        

       내 농담에 앨리스는 짧게 웃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원래는 연회 같은 곳에 거의 나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던 미아는 요즘엔 참석해야 할 곳에는 꼭 참석하고 있었다. 춤추는 것보다는 먹는 것에 훨씬 관심이 많아 보였지만.

        

       “맞아, 그러네. 미아뿐만이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얼굴 익힌 사람들은 자주 보겠어. 적어도 친구 보겠다고 일부러 모임 만들 필요는 없을 거 같아 좋네.”

        

       “그렇지? 그리고 내 생각인데, 의외로 샤를로트도 자주 볼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분명히 헤어질 때는 다시는 보지 못할 것처럼 양쪽 다 울음바다가 되었었는데, 친구 결혼식 간다고 그냥 바로 와버렸잖아.”

        

       우리 두 사람은 다시 웃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황제도 좀 자유롭게 외국에 나돌아다닐 수 있게 될지도 몰라. 외회랑 권한을 조율하고 있다고 했지?”

        

       “……전대에서 망가진 부분이 있으니까.”

        

       절대권력은 유능한 한 사람이 붙잡고 있으면 유용할 수 있으나, 사람이라는 존재가 원래 끝까지 유능하기가 힘든 법이다. 젊었던 시절에는 유능했던 독재자도 시간이 지나면 고집이 세지고 머리가 굳는 법이다.

        

       전대 황제는 그런 것은 고려조차 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지만, 앨리스는 다르다. 앨리스는 자기가 전대 황제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권력을 내려놓겠다는 것은 아니다. 너무 부담스러운 부분부터 조금씩 덜어놓겠다는 거지.

        

       “황제가 휴가로 해외에 다녀온다고 생각해봐. 그렇게 이상한 그림은 아니지 않아?”

        

       “그렇게 말하니 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 말에 조금은 기분이 풀어진 듯, 앨리스는 무릎을 감싸 안은 채 내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너는 어때?”

        

       “나? 나야 뭐 딱히 힘든 것도 없는데.”

        

       “어제 늦게 온 것도 공무 처리하다가 온 거잖아.”

        

       “그래도 황제가 할 일만큼 많지는 않아. 게다가 나는 황녀잖아. 실질적인 권력은 없으니 사실 할 일은 그냥 얼굴 비추는 게 다야.”

        

       실제로 그랬다. 어제는 그냥 가야 할 곳이 좀 멀었을 뿐.

        

       “……정말? 정말로 힘들거나 한 건 아니지?”

        

       “급하면 그리폰이라도 타고 다녀오지 뭐.”

        

       참고로 그 애한테는 이름을 지어주려고 했지만, 결국 그냥 그리폰이 되어버렸다.

        

       요즘도 그 먹성은 그대로라서 고기라면 뭐든 주는 대로 잘 먹는다. 그래도 살이 찌지 않는 것은 좀 신기했지만.

        

       “힘들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앨리스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나는 그런 앨리스에게 말했다.

        

       “잘 할 거야. 지금까지도 그랬잖아. 옆에서 한참 보고 있었던 내가 장담할게.”

        

       “…….”

        

       여전히 내 쪽을 바라보던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네가 그렇다니까 한 번 믿어보지 뭐. ‘나를 그렇게 오래 본’ 사람이라고 자신하는 전문가의 말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의 표정은, 그래도 지난 2주일간 보았던 표정 중 가장 편해 보였다.

        

       “내가 황제가 되었다고 해서 네가 변하지 않은 게 다행이야.”

        

       “내가 그렇게 쉽게 변하겠어?”

        

       나는 앨리스를 따라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앨리스가 문득 하늘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에, 나도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저 하늘 끄트머리에서, 푸른빛 새벽이 천천히 물러나고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둘이서 함께 바라보는 하늘은 참 예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로서 후일담은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앞으로는 외전을 쓸 예정인데, 그 외전의 내용은 일전에 여러분께서 공지에 달아주신 댓글 중 제가 쓸 수 있을만한 소재를 뽑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외전은 본편과 전혀 관련 없는 if 외전이 될 수도 있고, 본편 도중에 끼어있었던 짧은 이야기일수도 있고, 후일담보다도 미래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분량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한번 끝까지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외전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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