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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4

       연한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연못 앞에 포개어 선 그녀의 자태는 실로 아름답고, 강인했다.

         

       제 결연한 의지를 그대로 빼다 박은 것처럼 빛나는 두 눈은 한 치의 물러남 없이 백우진의 무심한 시선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시선을 버티지 못하고 먼저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었는데.

         

       작게 한숨을 내쉰 백우진이 물었다.

         

       “날 따라가려는 이유는?”

       “백 공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망설임 없는 즉답에 도리어 백우진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처음에는 그를 돌아보게 하려고 검을 휘둘렀다.

         

       제 실력이 그와 견줄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서로를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한 확신을 검에 담은 채 일취월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나아가는 걸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갔고, 자신이 무엇을 한들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아예 관심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 생각이 틀렸어.’

         

       지금까지 그녀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자신을 그토록 좋아해 주었던 그였기에, 또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기에.

         

       제 진심이 그에게 닿기만 한다면 잠시 끊어졌던 연을 이을 수 있을 거라고.

         

       지금껏 그와 눈빛을 마주할 수 없었던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무심하기 짝이 없는 눈빛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그 작은 희망마저 송두리째 뽑혀 나갈 것만 같아서.

         

       제갈연지 그리고 당선영.

         

       두 사람이 백우진의 연인을 넘어 사실 혼인한 것과 다름없는 관계임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녀의 희망은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그녀는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였다.

         

       정확히는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내가 진짜 바라는 건 뭐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거기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가 나를 봐주었으면 해.’

         

       백우진이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다.

         

       제갈연지나, 당선영에게 하는 것까지는 언감생심 바라지 않는다.

         

       적어도…, 적어도 무심한 그 눈빛에 일말의 감정이라도 담기기를.

         

       다시 고민했다.

         

       ‘어떻게 돌아보게 할 수 있을까.’

         

       며칠간의 고민 끝에 깨달았다.

         

       결국 무엇이 됐든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것.

         

       그래야 무심한 눈빛이든, 어떤 감정이 담긴 눈빛이든 마주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였다.

         

       가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그녀가 황급히 무림맹 본단으로 돌아온 것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의 시선 안에 머무를 수 있을까 고민하던 도중, 그와 그의 조원들이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혈교의 본거지를 찾을 때까지 중원 전역을 떠돌 것이라는 말도.

         

       그녀에게는 그것이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다.

         

       ‘무조건 따라가야 해.’

         

       이번에도 그를 놓친다면 완벽하게 끝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뒤흔든다.

         

       그것이 그녀를 절박함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그것만은 안 돼, 그것만은…!’

         

       잠깐의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치민다.

         

       ‘아아, 나는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은 어째서 그런 어리석은 미혹에 빠져 제게 헌신하던 남자를 밀어내고야 말았는지.

         

       그때만 생각하면 무언가에 씌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그가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죽음 앞에서 그녀는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그의 거처를 찾아가고, 그가 자주 거니는 길을 따라 뛰었다.

         

       이따금 들르는 객잔에도 가보고, 당선영과 제갈연지의 거처에도 기웃거렸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수색 범위를 더욱 넓혔다.

         

       무림맹 본단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가 있을 만한 곳뿐만 아니라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곳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녀의 머리칼이 땀에 젖어 얼굴에 들러붙은 것도, 의복 곳곳이 땀에 젖어 여리한 몸에 들러붙은 것도 전부 그러한 까닭이었다.

         

       “유 소저. 우리는 이미….”

       “알아요.”

         

       불쑥 튀어나온 그녀의 목소리가 백우진의 말을 중간에 베어냈다.

         

       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알아요. 백 공자와 난…,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어져 버렸다는 거.”

       “…그런데도 날 따라가겠다고?”

       “네.”

         

       백우진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미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와버렸음을 알면서도 대체 함께하겠단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싫다면?”

       “멀리서라도 백 공자를 계속해서 쫓을 거예요.”

       “우리 조원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유 소저를 따돌리는 것도 가능….”

         

       아니, 안 될 것 같은데…?

         

       자신은 몰라도 조원들이 그녀를 따돌릴 수는 없을 듯하다.

         

       그러기엔 그녀의 경지가 너무 높아졌다.

         

       ‘화경…은 아닌 듯한데.’

         

       그렇다고 초절정으로 격하하자니 그것도 애매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초절정과 화경 사이 그 어딘가.

         

       초절정의 수준은 넘어섰고, 화경이 되기까지 얇지만 단단한 벽 하나를 두고 있는 느낌.

         

       약간의 계기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화경으로 껑충 뛰어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절 따돌린다고 해도 소용없어요.”

         

       그리 말한 그녀가 작은 목패를 꺼내어 그의 앞에 내밀었다.

         

       중앙에 ‘걸(乞)’자가 음각되어 있는 볼품없는 목패.

         

       백우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건 개방의…?”

         

       그것은 다름 아닌 개방의 은인에게 주어지는 목패.

         

       일결에서 구결.

         

       총 아홉의 매듭으로 구분 짓는 개방의 지위에서 오결 즉, 한 지역을 책임지는 당주의 직위를 가진 이들부터 지니고 다닌다는 목패.

         

       저것을 지닌 자는 개방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거지들의 집단이기에 물질적인 것을 바라기는 어려우나, 정보는 충분히 얻을 수 있을 터다.

         

       가령 백우진의 현재 위치와도 같은 것이라면 몇 번이든지.

         

       “과거에 개방의 제자를 도운 적이 있어요.”

       “대단한 거지였나 보네.”

       “대단했죠. 무려 방주의 제자였으니까요.”

       “저런….”

         

       혀를 끌끌 차는 백우진.

         

       개방 방주의 제자라는 놈이 위기 하나 이겨내지 못하고 여인의 도움이나 받다니.

         

       “그걸로 내 정보를 얻겠다…?”

       “네.”

       “…….”

         

       그야말로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어버렸다.

         

       거지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물론 모든 거지가 개방의 제자는 아니지만, 거지들 중 개방의 은혜를 입지 않은 거지가 어찌 존재할까.

         

       더군다나 백우진은 현재 중원에서 가장 뜨거운 명성을 날리고 있는 사내.

         

       무림맹을 떠난 이후로 어떤 마을에도 일절 접근하지 않고 산으로만 다니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은 이상에야 개방으로부터 제 위치를 완벽하게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자신의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가지.

         

       하나는 그녀가 쫓아오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살거나, 그녀의 동행을 허락하거나.

         

       “그럼 그렇게 해.”

         

       백우진은 그중 후자를 택했다.

         

       ‘전자는 변수가 너무 많아.’

         

       그녀가 졸졸 따라다니게 둔다는 건 기다란 꼬리 하나를 달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

         

       그랬다간 중요한 상황에서 일을 그르치거나, 도리어 위기에 빠지는 순간이 생길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이 그녀가 바라지 않던 상황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동료로서 받아들이는 게 나을 테지.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해둬.”

         

       모르겠다.

         

       지금의 결정이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지필지, 아니면 작은 불씨마저 꺼트릴지.

         

       곁에서 다른 여자와 맺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제 곁을 지키고 서 있는 신예화의 존재 때문에 더더욱 헤아릴 수 없다.

         

       그렇기에 백우진은 그녀에게 이 말을 꼭 해야만 한다.

         

       “그리 멀지 않은 훗날에 당신은 오늘의 결정을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음울한 그의 한마디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단호한 음성에 백우진은 두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그녀를 지나쳐갔다.

         

       “새벽 일찍 출발할 테니 그리 알아.”

       “…네!”

         

       오늘따라 술이 더욱 달다.

         

         

       * * *

         

         

       해가 채 뜨지 않은 새벽.

         

       술에 취해 깊게 잠들어 있던 백우진이 몸을 일으켰다.

         

       잠들기 전 미리 개어둔 무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검과 호리병을 허리춤에 두른다.

         

       아, 그 전에 한 모금.

         

       꼴깍꼴깍!

         

       “크으…!”

         

       새벽이슬을 닮은 깨끗하고 청량한 맛이 텁텁한 입 속을 개운하게 만든다.

         

       높다랗게 솟아오른 봉우리 너머로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태양을 보며 감상에 잠기는 백우진.

         

       온갖 잡다한 상념들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유화연과 신예화, 숨죽이고 있는 마교의 목적, 혈교의 본거지는 어디일까 등.

         

       풀어야 할 매듭은 점점 쌓여만 가는데 몸뚱어리는 여전히 하나.

         

       ‘차근차근 풀어나가자.’

         

       백우진은 조바심 내지 않기로 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던가.

         

       차근차근 눈앞에 놓인 매듭을 하나둘씩 풀어나가다 보면 마침내 엉켜 있던 끈을 전부 풀게 될 날이 오겠지.

         

       ‘그러니 지금은 혈교만 생각하자.’

         

       유화연도, 신예화도, 마교에 있을 그녀도.

         

       지금은 머릿속에서 털어낸다.

         

       가장 급한 것은 혈교의 본거지를 찾아 더 큰 피해 없이 전쟁을 끝내는 것이기에.

         

       무거운 중압감이 어깨를 짓누른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뇌는 것으로 더없이 무거운 첫 걸음을 떼어낸다.

         

       이윽고 멀리 보이는 무림맹 본단의 대문 앞.

         

       익숙한 얼굴들이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대고 있다.

         

       “빨리 오쇼, 조장!”

       “오늘은 웬일로 조장이 꼴찌네?”

       “뻔하지, 뭐.”

       “응응, 술을 진탕 마신 게 분명해요.”

       “후후…, 아침에도 한 잔 마시면서 나오지 않았을까.”

         

       어쩜 그리들 잘 아는지.

         

       백우진은 설핏 웃으며 그들에게로 향했다.

         

       지금껏 함께해온 신룡조원들, 혈수마녀, 그리고 유화연.

         

       얼굴들을 보아하니 이미 대충 이야기는 나눈 모양.

         

       그렇다면 구태여 말을 꺼낼 필요는 없겠지.

         

       어느덧 선두에 선 백우진이 외쳤다.

         

       “가자, 전장으로!”

         

       기나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에피소드는 여기서 끝입니다.

    다음 편부터는 조금 더 속도감 있는 전개를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고민 또 고민하고, 조심스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일찍 자는 버릇을 들여놨더니 이 밤에 깨어 있는 게 쉽지가 않네요.

    또 최근에 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같은 일이 집에 벌어지는 바람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고요.

    그래도 최대한 텐션 끌어 올려서 1일 1연재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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