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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4

       오랜 세월을 살아서 그런가 본인이 밤잠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애초에 수면이라는 행위자체가 필요하지 않게 된 지가 오래긴 하다만 과거 무림에 거주할 때엔 어느 정도 수면을 취했다.

       

       전기는커녕 장작조차도 소중하게 여기는 동네에서 밤에 할 일이 무어가 있겠느냐.

       

       혼자서 수련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정도뿐이지.

       

       한창 무림을 돌아다닐 적에는 여러 이유 때문에 수면을 꺼렸다만 경험이 쌓이고 나서부터는 모든 것에 무뎌져서 그냥 수면을 취했지.

       

       그렇기에 현대에 오기 전 본인의 밤은 대개 수면이라는 단어로 채워져 있었다.

       

       허나 현대에 오고 나서는 많이 달라졌다.

       

       이 곳은 할 것이 차고 넘쳐나니까. 수많은 볼거리가 존재하고, 여러 놀이가 있고, 집 안 뿐만 아니라 바깥으로 나가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니까.

       

       현상이 이러하니 본인은 최근 수면이라는 단어를 지운 채 살아가곤 했다.

       

       그랬기에 본인이 새벽이라 불러 마땅한 시간에 엔리의 전화를 받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아라 씨! 지금 저 무서워서 죽을 것 같으니까 빨리 와요!”

       

       엔리는 버릇 때문인지는 몰라도 장난스럽고 과장된 어투를 사용하고 있었다만 그 근간에 깔려 있는 것은 분명 두려움이었다.

       

       아무래도 오늘 본인이 했던 일이 과했던 모양이야.

       

       모든 게 끝나고 두려움을 지워주기 위하여 꽤 길게 놀이판을 만들었다만 그걸로도 모자랐나.

       

       저 공포는 본인이 만들어낸 것이었으니 본인이 책임을 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금방 그 쪽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아 그리고 올 때 술 사오세요!”

       “술이요?”

       “네! 그거라도 마셔야 잘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에요!”

       

       바란다면 엔리가 있는 곳까지 한걸음에 향할 수도 있는 본인이다만 그러지는 않았다.

       

       이 세상의 밤은 밝으니 말이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한다면 모를까 도심의 하늘을 걷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지가 아니지.

       

       뭣보다 착지할 곳을 찾는 게 귀찮은 것이 문제다.

       

       지난 번 섬에 도술을 쓰러 갔다 돌아올 적에 한 번 곤욕을 치렀거든. 그 후부터는 좀 귀찮아도 땅으로 다니는 게 낫더구나.

       

       밤늦은 시간이라 대중교통이 모두 문을 닫았기에 도로에서 택시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이는 머리가 희끗한 이였는데 내 모습을 보곤 밤늦은 시간에 조심해야 한다며 잔소리를 했다.

       

       나는 그에 대충 대답을 하고 말았다. 저런 소리를 듣는 게 한 두 번이 아닌지라.

       

       네 두 배는 살았다고 해봐야 믿기나 하겠느냐.

       

       엔리의 아파트 인근에 도착한 나는 술을 사기 위해 인근 편의점에 들렀다.

       

       평소 술에 관심이 없어 굳이 눈에 담지 않았다만 술의 종류가 무척이나 많구나.

       

       다 똑같은 맥주와 소주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어찌 이리 이름이 다양한 것인지.

       

       “뭐 사야해요?”

       “저희 집 앞 편의점이죠? 거기라면…”

       

       엔리가 시키는 대로 장바구니에 술과 그를 마시며 먹을 것들을 담아 계산대 앞에 내려놓았더니 점원이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아. 그래. 현대에는 이런 절차가 필요했었지. 주류 같은 것에 접근할 일이 없다 보니 잊고 있었군.

       

       지갑을 꺼내어 뒤져보던 나는 신분증을 집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단 걸 떠올리곤 침음성을 흘렸다.

       

       곤란하게 되었다. 엔리보고 내려오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저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점원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 화령님 맞으세요?”

       “네?”

       “아. 그게. 그러니까. 방송에 나오는 VR아바타랑 너무 닮으셔서. 엔리님도 여기에 자주 방문하시는 데 혹시 엔리님 만나러 온 거 아닌가 싶어서. 아니시라면.”

       

       최근 들어서 바깥에 나오는 본인을 알아보는 일이 잦았다. 본인이 VR세상에서 보여주는 외모와 현실의 외모에 차이가 없기 때문이겠지.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던지라 고개를 끄덕여 주자 점원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뇨. 맞아요.”

       “역시나! 너무 아름다우셔서 한 눈에 알아 봤어요!”

       

       횡설수설 이야기하는 점원의 말에는 논리가 없었지만 그 뜻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신분증이 없어서 곤란하신 것 같은데 그냥 사가시라고. 그 대신 사인 한 장만 부탁드린다고.

       

       별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에 펜을 받아 종이에 한자로 된 내 이름을 적었다.

       

       “와아! 진짜 컨셉에 진심이시네요! 나중에 액자에 끼워놔야지!”

       

       종이에 적힌 이름이 무어라고 아이마냥 기뻐하는 점원을 뒤로 한 채 엔리가 사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자마자 빨리 와달라고 재촉을 한 엔리는 내가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었다.

       

       엔리의 집은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벽을 쾅쾅 울려대서 옆에서 민원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은 노랫소리. 고막에 직선으로 처박히는 TV의 소리.

       

       그 탓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엔리가 울상을 지은 채 나를 타박했다.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최대한 빠르게 온 건데요.”

       “무공을 쓰셔서라도 빠르게 오셨어야죠!”

       “너무 억지 아니에요?”

       

       하려면 할 수야 있으니 마냥 억지라 할 수 없긴 하다만.

       

       “어쨌든!”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는 엔리의 재촉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여러 가지를 볼 수가 있었다.

       

       이전과 달리 처박아 둘 틈이 없었기에 집 이곳저곳에 늘어져있는 쓰레기와 옷가지들이라던가.

       

       방. 화장실. 베란다. 그 어디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곳이 환히 켜져 있다거나.

       

       TV 속 무대 위에 선 이들이 무슨 말을 하면 신나게 웃음소리를 내는 이들이라거나.

       

       “진짜 겁 많으시네요. 예전에 같이 공포게임 했을 때는 어떻게 혼자 주무셨어요?”

       “그 땐 마지막에 아라 씨가 깽판치셨잖아요! 보스가 아무것도 못하고 박살나는 거 보고 있으면 공포심이 생길 수가 없다고요!”

       

       확실히 그 땐 상대가 불쌍해 보일 정도로 괴롭혔더랬지.

       

       흐음. 그렇다면 이번에도 본인이 저들을 박살내는 것을 보여주었어야 했나?

       

       곰곰이 생각을 하던 나는 지금도 혀로 엔리의 공포심을 박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 숲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는지 알려드리면 안 무섭겠네요.”

       

       공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만 이번에 엔리가 느끼는 것은 실체를 모르기에 느끼는 공포다.

       

       놀이동산 같은 곳에 있는 유령의 집을 두려워하는 것과 비슷한 게지.

       

       이런 공포를 해소하는 법은 간단하다. 귀신의 정체를 알려주면 된다.

       

       자신을 놀래켰던 것이 순박한 청년 김씨라는 것을 알게 되면 비명을 지르던 자신이 부끄러워지거든.

       

       “…그래도 무서울 것 같은데요.”

       “일단 들어나 보세요.”

       

       엔리를 앞에 앉힌 나는 우선 엔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을 것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흐릿하게 생긴 유령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맞다! 그거 뭐에요?! 저 진짜 그거 때문에 너무 무서웠다고요!”

       “그거 유령 맞아요.”

       “…네?”

       “유령? 원혼? 어쨌든 그런 종류죠.”

       

       바루가 부리는 도술에 따라 모여든 녀석들은 이미 한 번의 죽음을 겪은 자들이었으니. 그들은 분명 유령이라 불려 마땅했다.

       

       “왜 진짜 유령인 건데요?!”

       “침착하게 들어보세요.”

       “유령이 맞는데 그걸 어떻게 침착하게 들어요!”

       “그 유령들 하나같이 악질이거든요.”

       “…악질이요?”

       

       바루의 도술은 원혼을 불러내긴 하지만 명령을 강제하진 않는다.

       

       이게 무슨소리인가 하면 숲 안을 돌아다니는 혼들은 다들 엔리가 비명지르는 것을 들으며 히히덕거리는 작자라는 이야기다.

       

       “그럼. 그럼 원통하다던가. 원망스럽다던가 하는 말들은.”

       “그거요? 당연히 거짓말이죠. 그 분들 엔리 씨가 도망치는 거 보고 여기에 오길 잘했다면서 웃고 있던데요.”

       

       진짜 원한이 깊어 악령이라 불릴 작자들은 그런 장난에 참여하지 않는다.

       

       않는다고 할까 그런 놈들은 도술사의 눈에 들어오면 보통 퇴치되어버리니 참여할 수가 없지.

       

       내 이야기를 들은 엔리는 질린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원혼 때문에 산자를 증오하는 자와 겁쟁이를 놀리며 웃음을 터트리는 자 사이의 간극이 무척이나 거대했던 모양이다.

       

       “그 숲 한 가운데 있던 노파의 정체는 이미 들으셨고.”

       “아라 씨였죠.”

       “그래! 그건 나였지!”

       

       엔리를 놀래켜 줄 생각으로 목소리를 바꾸었더니 그녀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나다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아야…”

       “이런. 미안해요.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은.”

       “미리 경고 좀 하고 해주세요!”

       

       분노에 찬 엔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키득거리던 나는 느긋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검귀는 엔리 씨도 몇 번인가 본 사람이에요. 화산에서 다른 유저분들을 가르치던 학영충이죠.”

       “그 사람도 저 놀리면서 재밌다고 그랬나요?”

       “아뇨. 그런 곳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아니라.”

       

       녀석은 새로운 무공을 발견하고 배우고 수집하고 퍼트리는 데에 재미를 느끼는 인간이다.

       

       엔리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트리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참가하진 않았지.

       

       “그럼 왜 온 건데요?”

       “제가 시켰단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죠. 도박판에서 빠져나오고 싶었거든요.”

       “갑자기 거기서 도박판이 왜 튀어나와요?”

       

       갑작스레 튀어나온 단어에 의아해하는 엔리에게 현 화산의 중추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대충 설명해 주었다.

       

       현재 화룡무인 세상에서 천하제일을 두고서 다툴 수 있는 인간들이 모여 도박을 하고 있고, 학영충은 참여인원이 부족하단 이유에서 강제로 끼워 넣어진 상태라고.

       

       “쉽게 비유하면 임원들이 노는 판에 끼워넣어진 사원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다른 점이라면 그 쪽은 비유적인 의미에서 목이 잘릴 수 있고, 학영충은 물리적인 의미에서 목이 잘릴 수 있다는 것일까.

       

       그 곳에서 며칠 동안 탈출할 수 있었기에 학영충은 기꺼이 내 계획에 참여해 주었다.

       

       “나를 쫓아오던 그 무서운 검귀가 평범한 사회인이었다니…”

       

       이쯤 되니 공포심이 옅어진 듯 검귀를 언급하는 엔리의 눈이 짜해져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설명해줄 걸 그랬구나. 본인의 불찰이야.

       

       맥주캔을 마시는 엔리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엔리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그럼 그 가면 쓴 사람은요? 누구에요?!”

       “도박장말이죠? 그 사람은 지존이라 불리는 분이에요. 학영충을 괴롭히는 천하제일인 중 하나죠.”

       

       그녀가 안다 하여 달라질 것도 없었기에 설명해주었더니 허탈한 듯 맥주캔을 내려 놓은 엔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분이 도박사가 아니라면 저 진짜로 확률 싸움에서 진 거네요…”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그 소리였나.

       

       끝난 지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걸 보면 많이 아쉬웠던 모양이구나.

       

       하긴 열성적으로 도박에 몰두했던 그대다. 아쉽지 않을 수가 없겠지.

       

       흐음. 어차피 모든 것이 끝난 뒤이니 이것도 이야기를 해주어도 되겠지.

       

       “그거 엔리 씨가 못해서 진 건 아니에요.”

       “위로 안 해주셔도 돼요. 저도 제가 멍청했다는 건.”

       “아니 진짜 엔리 씨가 뭔갈 해서 진 게 아니라니까요? 그거 사기 도박이었거든요.”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서 말이다. 이길 때는 그토록 기세를 타서 이기고 질 때는 한없이 나락으로 처박힌 것이 그대만의 잘못일 리 없잖으냐.

       

       당연히 외부의 무언가가 개입을 한 게지.

       

       엔리의 서운함을 달래어 주기 위해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만 이는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네에에에에?!”

       

       그 순간부터 엔리가 진심을 담아 투덜대기 시작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 작업 당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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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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