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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4

        

         “저… 형님. 형님께서는 만약 여기 네오 헤이븐이나 다른 여타 메트로폴리스에 심대한 막대한 후폭풍을 몰고올 운석이 떨어진다는 걸 미리 안다면 크레딧 같은 금융 자산을 어디다 투자하실 겁니까?”

         

         테이블에 처박은 옆머리를 타고 올라오는 서늘함을 만끽하며 늘어져 있던 남자의 입이 열리고, 상당히 힘 빠진 음성이 줄줄 흘러나왔다.

         

         용병은 업무 유연성이 뛰어난 직업이라는 명제가 참이 되려면 반드시 솔로 활동자일 것, 특출 난 능력과 견고한 기반을 보유할 것 등등의 전제 조건이 덕지덕지 붙어야 한다는 걸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나.

         

         낮에는 패거리의 신입 초짜 용병으로서 우습지도 않은 단체 행사에 끌려다니랴, 밤에는 개인 정비에 개인적인 의뢰 수행으로 투 잡 뛰랴.

         

         와중에도 짬짬이 살아남을 계획 짜는 걸 게을리하지 않고 정보 조사는 기본이고, 머리속에 들어있는 천금 같은 미래 지식이 휘발되기 전에 아는 대로 다 기록하는 꼼꼼함을 발휘하기까지.

         

         아무리 본인 생존에 관련된 일인만큼 간절하다 한들 그걸 하는데 필요한 체력과 시간이 맨땅에서 샘솟는 건 아닌지라 요즘 남자는 자기대신 집안일을 해줄 청소 로봇이라도 대여해야 하나 고민이 컸다.

         

         물론 허름한 외견이나 비슷한 집값을 자랑하는 빈민가에 사는 주저에 그런 걸 쓰는 부티가 난다면 곤란한 일이 엄청, 더럽게 자주 생길 수 있으므로 실제론 그럴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덧붙여 그런 종류의 서비스 계약서를 꼼꼼하게 찾아서 읽고 신청할 정신머리도 뒤지게 바쁜 탓에 남아있지 않았지만은!

         

         결국 그래서, 좀비 같은 기색을 내비치던 그도 약간 마음이 느슨해진 걸까?

         

         평소라면 똘똘한 막내로서 점수를 따기 위해 입 닥치고 있었겠으나. 특집 편성 프로그램, ‘사이비 종교의 얼토당토 않은 종말론, 실제론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가?’이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걸 마냥 듣고 있기는 뭐했는지 무의식적으로 흘린 질문 아닌 질문에, 자기가 말하고도 놀라서 눈치를 봤지만….

         

         “앙? 그게 뭔 개풀 뜯어처먹는 소리냐? …아하! 몸에 안 받아서 약 같은 건 안 한다더니, 혼자 얼마나 좋은 걸 찾아서 빨고 다니는 거냐 킴?? 거 말로만 선배~ 형님~~ 하지 말고, 그런 게 있으면 재깍재깍 좀 나눠라 인마!”

         

         “……아니, 씨바. 대가리 위에 산만한 불타는 돌덩이가 내리 꽂히고도 계속 살 수 있을 예정이라면, 돈을 어따 꼴아서 불릴 거냐고요.”

         

         다행히 그들 패거리의 선임 용병 중 하나인 애꾸(One-eyed) 가비는 크게 개의치 않고 킴의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은 족히 듣는 동료들의 신세 한탄과 동일 선상에 놓고 흘려 넘겼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종교쟁이 소리를 또 들을 뻔했다.

         

         안 그래도 빠르게 무리의 신뢰를 사기 위해 몇 개의 알짜 정보를 천기누설 해서 그런지, 오늘 자기 운수 좀 봐 달라며 공짜 무당 노릇을 시키는 이들이 많은데 그걸 진지한 오해로 비화시킬 순 없는 노릇이지 않나.

         

         “흠, 투자라… 당장 먹고 죽을 크레딧도 없는데 투자는 무슨.”

         

         하지만 굉장히 실없는 농담이고 현실성 없는 헛소리라도 만약을 가정하고 하는 상상 놀음만큼 재밌는 것도 드문 법.

         

         머리를 처박고 있던 킴과 대비되게 맞은편에서 머리를 의자 뒤로 젖히고 빈둥거리고 있던 가비가 당치않은 소리를 들었다는 첫말과는 달리 앓는 신음을 잠깐 내고는, 본인 기준 나름 신경 쓴 대답을 내놓았으니.

         

         “애당초 그런 어처구니없는 걸 맞출 능력이 있으면 복권을 사는 편이 빠를 것 같지만. 굳이 따지자면 많이 죽고 더 많이 작살 날 테니 재건축 관련은 너무 뻔하고, 물류 관련 테마주…? 사실 그렇게 의견이 제대로 딱딱 나뉘는 분야라면 아예 주제로 삼아서 도박하는 인간들이 있을 법한데.

         

         대부분이 신용 없는 사설 게임판이라 맞춰도 건 돈만 싹 먹튀 당할 가능성이 높단 말이지. 그래서 난 보통 들어오는 판돈 자체를 아예 신탁 은행에 계좌 파서 넣는 공식 사이트에서만 노는데, 거기도 운석가지고 동전 던지기를 하고 있으려나?“

         

         “와…… 전자 화폐가 기본인 동네라 그런가. 무슨 사이버 토토를 은행이랑 보증 연계해서 하는 곳도 있어요?”

         

         “아? 토토? 왜 결이 다른 복권 얘기가 나오는진 모르겠다마는. 손맛이 없다는 단점만 빼면 널널한 직장에선 일하면서도 사이버웨어 한 구석에서 계속 룰렛 머신 같은 걸 돌릴 수 있는데, 그럼 이런 꿀단지 사업이 유행 안 하고 배기겠냐?”

         

         시발. 이걸 정말 미래 지향적인 건전한 투자 방식의 한 갈래라 봐야 하나, 아니면 재난 현장의 변사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시곗줄 빼내는 생존자 겸 도적의 마음가짐이라 봐야 하나.

         

         그래도 어떻게, 잘 알아보고 넣는다면 저런 황당한 방법으로도 유사 투자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어디 자주 이용하는 도박장이 있으면 좀 소개해 달라 애꾸 가비에게 부탁을 꺼내려던 킴은 그냥 뒷말을 삼킨 채 맞장구나 치기로 했다.

         

         거기까지 더 주절주절 떠들다가 구체적인 액수나 계획 얘기로 이어지면 할 말이 곤란하기도 하고, 여기서 괜한 말실수를 더 저지르는 것보단 이 대화를 일단 농담으로 끝맺어놓은 채 따로 혼자 알아보는 게 훨씬 나아 보이기도 했고.

         

         “으에, 그러게 말입니다. 도박 관련으로는 대차게 잃어본 기억밖에 없어서 그런 방향으로는 생각을 안 해봤네요. 아하하….”

         

         “…….”

         

         헌데 멋쩍은 웃음이 너무 촌스러웠던 걸까, 본인이 꺼낸 주제를 적당히 마무리하려는 게 이상했던 걸까. 혹은 둘 다 포함하고도 그냥 본인이 원체 말이 많은 성격일지도.

         

         큐볼 패거리에서 킴의 교육계 역할을 맡은 지라 단둘이 자주 붙어 다니게 된 가비는 피곤한 와중에도 거침없이 입을 놀렸다.

         

         “…약도 안 내킨다고 걸러, 술도 찔끔찔끔 적게 마셔, 담배도 안 펴. 그런데 도박마저 안 즐기면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지 난 도저히 모르겠다. 야심에서 비롯된 자기 관리라기엔 애가 우리랑 어울리기엔 너무 씨발 싹싹하면서 똘똘하고. 설마 진짜 종교냐…? 너 인마, 다른 건 몰라도 저 아르카디아인지 아케디아인지는 절대 안 된다? 대장이 겁나 싫어하는 거 알잖냐. 동네 분위기를 다 흐려놓는다고.”

         

         이 얘기가 나오게 된 문제의 방송을 힐끔거리며 투덜투덜. 그러면서도 동시에 킴에게 사이비 종교에 솔깃한 등신의 징후가 느껴지지는 않는지 살피는 것도 그는 잊지 않았다.

         

         용병 업계 기준으론 이성적으로 절제하며 방탕함을 즐기지 않는 것조차 속되게 말해서 도도하고 고고한 척하는 눈꼴 시린 태도.

         

         꼬투리를 잡자면 끝도 없이 잡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꼬집듯 좆같이 말한 감이 있긴 하지만, 세상의 평지풍파에 찌들 대로 찌든 사회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나름 신경 써주는 충고의 한 종류라는 것즘은 충분히 알아먹을 수 있었다.

         

         “아잇…! 그냥 다 취미가 아닌 거지 뭐 그런 걸로 사람 정신 상태를 다 감정하려고 하십니까? 걱정 붙들어 매십쇼! 제가 좀 샌님 티가 나긴 해도 그런 쪽으로 미친 또라이는 아닙니다! 예?”

         

         “그래, 뭐….”

         

         괜한 부분에 심력 낭비하지 말고 믿어보라는 말과 달리, 킴은 잊지 않고 눈을 굴려 사이버웨어의 문서 파일에 한 줄기 글귀를 추가했다.

         

         당사자는 영원히 알 일이 없을 ‘애꾸눈 가비, 과연 꽤나 인격자. 당첨일 가능성 꽤 높음.’이라는 문장을 절대 까먹지 않게 메모를.

         

         존나 계산적이라 욕을 먹어도 싼 행동이었지만 어찌하리오, 개중에 그렇게 나쁘지 않고 신의와 능력 넘치는 인간도 있으나 용병이란 기본적으로 개꼴통 무리들의 집합소.

         

         거기서도 온갖 수상하고 궂은 일거리도 마다 않는 큐볼의 팀은 군대식 내리 갈굼은 귀엽게 보일 수준으로 개새끼의 비율이 높아도 존나 지나치게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기 붙어있는 이유는 역시 단 하나였으니.

         

         바로 프롤로그 시점 기준 이 패거리에 소속되어 있던, 그러니까 모든 운명의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 네오 헤이븐 프라임의 대단하신 주인공이 대체 누구인지 도무지 가늠이 되질 않아서. 킴은 오늘도 잠입 수사를 하는 형사 마냥 팔자에도 없던 막내 생활을 아득바득 계속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도덕성 분야라면 또 몰라도, 딱히 우월감을 가지고 있진 않던 그가 졸지에 사람을 점수 매겨가며 평가하느라 바쁜 것도 그 작업의 일환.

         

         애타게 찾는 언노운 주인공 씨는 수십 명의 선배 용병들 중에 한 명일까? 그게 아니면 아직 무리에 합류를 안 한 상태라 안타깝지만 완전 헛짓거리를 하는 와중일 수도??

         

         가끔 이런저런 인류애와 픽션으로 볼 땐 멋지기만 했던 비정규직 깡패의 삶을 실감할 수 있다 한들 거지 같고 스트레스 받는 건 피할 방도가 없었는데.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당연히….

         

         ‘고맙습니다. 아나스타샤 센세…. 이 은혜는 잊지 않고, 제가 나중에 진짜 옆에서 기깔나게 서포팅하겠습니다…!’

         

         하루하루가 고난의 행군이나 다름없는 이들과는 달리 믿을 구석, 구체적으론 마음의 여유만큼 0이 찍혀 있는 통장 잔고 덕분이 아닐까.

         

         1억 크레딧을 한화로 환산하면 정확히 얼마야 대체. 대강 어림짐작으로 따져도 11억원 정도는 족히 나오려나?

         

         살인적인 이율로 세간에 악명 높은 ‘용병 대출’ 따위는 끼지도 않은 채, 현대의 무력 심부름꾼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쇼핑을 싹 끝내고도 남은 잔돈이 수천만 크레딧에 달한다.

         

         사실상 처음 마주쳤을 때 원수라도 마주친 것처럼 잡아먹을 듯이 가지고 놀던 게 골백번 정당화되고도 남을 정도의 후의가 아닐런지.

         

         아, 물론 그녀가 선 성향에 외형처럼 천사 소리 듣는 캐릭터이기는 해도 히든 스테이지의 보스 역할도 겸하는 만큼 호구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 걱정되는 부분이 많기는 하다.

         

         가령 하늘이 두 쪽 나는 한이 있다 한들 틀림없이 처음 보는 사이가 분명한데, 자선 사업하듯이 말도 안 되는 거금을 쾌척한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게 특히나 좀 미지의 공포를 좀… 네.

         

         확실한 이유가 있긴 있을 것이다. 미증유의 가능성을 보고 높이 평가했다든가, 다른 식으로 자신을 써먹을 불길한 이유가 있다든가.

         

         오죽했으면 ‘네타 캐릭터인 아나스타샤는 실은 회귀자 비슷한 존재이며, 이런 관점으로 보면 플레이어에게 여러가지 조언이나 팁을 주는 것도, 특정 분기점이나 시나리오마다 유별나게 행동하는 것도 다 설명이 된다!’는 가설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봤을까.

         

         ……첫 조우 당시에 어딘가 느껴지는 집념이 무서워서 도망 좀 쳤다고 이미 눈도장 찍혀서 좆 된 상태는 아니리라.

         

         에이, 설마. 진짜, 아니어야 한다. 하.

         

         “야, 킴! 이만 일어나자. 집결지에 탄약 박스랑 인원수 대로 요 앞에서 나시…고어릉? 인지 뭔지 하는 볶음밥으로 도시락도 사다 놓으란다. 완전 시다바리 노릇이기는 하지만 스틸볼 대장이 그래도 널 많이 예뻐하니까, 실수없이 준비해야 점수도 따고 하지.”

         

         “점수… 따두면 여러모로 좋겠죠. 옙. 무기 박스랑 합쳐서 탄약은 미리 다 밴에 실어 놨으니까 형님은 좀 더 쉬고 계시죠. 얼른 음식만 사오겠슴다.”

         

         “캬, 존나 에이스야 아주. 네 덕분에 그래도 요즘 내가 편하다 증말.”

         

         오히려 대머리 큐볼보다 가비 쪽이 인망은 더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무리를 이끄는데 필요한 스탯은 다른 법인가~ 같은 실례되는 생각을 하며 비척비척 일어나던 킴의 어깨가 갑자기 흠칫! 떨렸다.

         

         피부 아래로 임플란트의 회로 선이 선명히 빛나는 게 무슨 급한 연락이 들어온 모양인데.

         

         이제 슬슬 스마트폰 쓰듯 적응할 만도 하건만. 갑자기 망막에 맺히는 사이버웨어 알람엔 여전히 깜짝깜짝 놀라는 게 아직 옛날 사람 물이 덜 빠졌다 표현해도 맞지 않을까.

         

         어쨌거나 연락의 주체는 큐볼의 팀과 일을 자주 같이하는, 적당히 안면을 튼 사이의 해커 용병 씨. 거기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내용은 충분히 킴의 발걸음을 멈칫하게 만들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 저기, 가비 형님?”

         

         “? 왜, 그래도 역시 같이 가줄까? 딱히 무겁진 않아도 들고 오긴 힘들 수 있으니까….”

         

         “그런 건 전혀 아니고, 저희 지금 가야 하는 작전 구역이라는 게 정보 통신 구획이나 저기 프로그래머들 사는 쪽입니까 혹시?”

         

         볼일이 있어서 물어보는 거라면 일 끝나고나서 슬쩍 떨어트려 주겠다는 고마운 제안을 킴은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 이봐, 킴. ‘해킹잘모름’이 커뮤니티 활동을 재개하면 귀띔해달라 했었지? 해커도 아닌 네가 왜 관심을 가지는지도, 어떻게 그 닉네임을 아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방금 그 놈이 웬 이상한 글을 올려서 약속대로 메시지는 보내 놓을…. ]

         

         

         ‘아뇨? 반대로 존나 가면 안 될 일이 생길 것 같아서요.’라는 말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키는 걸로도 모자라.

         

         어디까지나 운석과는 결이 다르지만, 자연 재해 -재앙- 비스무리한 게 일어날 걸 미리 알고 있다면 당연히 피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법이라고 되뇌며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누군가의 폭탄 피하기 ON.

    무슨 분말 흡입기에 알약 7개씩 담긴 약 봉투 야금야금 뜯어먹으면서 기절했다 일어났다 반복했더니 정직한 몸 녀석이 나름 정성을 갸륵하게 여겼는지 몸살은 가시고 열도 거의 다 내렸습니다!
    정작 기침은 안 나아서 날짜를 두고 기관지 쪽 검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진짜 훨씬 나아진 게 느껴져서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네요. 흐아아….

    지각이 없을 거라 감히 장담하기엔 어렵겠지만, 하루라도 빨리 준비한 내용 재밌게 포장해서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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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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