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34

       

       

       렌까는 백철연의 목에 칼을 들이댄 채,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취조라도 하는 듯한 태도였다. 

       

       『저도 동검도에 와서 요까이찌 선생에게 들고, 또 직접 보기도 했습니다만, 서봉도에서는 비밀 연구개발계획으로 공룡을 만들고 있었지요.』

       『어, 그랬지. 나도 놀랬다.』

       

       백철연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렌까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그러나 끈질기게 물었다. 

       

       『제가 듣기로, 시라바야시 상은 학기시험 준비를 위해 동검도에 파견된 것이라더군요. 그런데 어째서, 담당교수를 잠재운 뒤 비밀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던 서봉도로 몰래 들어간 것인지요? 혹시, 공룡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아니…… 저럴 줄 알았으면 알고 들어갔겠냐. 그냥 호기심에 들어가 본 거지.』

       『그런데, 어째서 공룡은 형광화된 것일까요. 형광화라는 것은 괴력을 부여하지만 또한 죽게도 만들죠. 저 섬의 공룡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인데……』

       

       미래의 비밀병기로 쓰일 공룡들이 어째서 전부 형광화로 소모되고 만 것일까? 자폭이나 마찬가지인 그런 결정을 누가 내렸을까? 

       

       『그것은, 대동아공영회로서는 큰 손실이고, 돌이킬 수 없는 사보타쥬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것이 만약, 백철연의 고도의 사보타주였다면……

       

       ‘……의심일지도 몰라. 아니, 의심이 맞을 거야.’

       

       렌까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단순한 의심암귀라고 생각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확실하게 확인받고 싶었다. 

       

       『그러니 묻겠습니다만, 시라바야시 상, 설마, 당신이 벌인 일은 아니겠지요? 대동아공영회의 비밀 병기를 없애기 위해서, 연구소장을 협박한다든가 해서 고의적으로 형광화를 지시한 것은 아니겠지요?』 

       

       렌까는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과 함께 마음속의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백철연이 정말로 대동아공영회를 배신하고 파괴행각을 일으킨 것이라면,  

       

       그를 사랑하는 이 마음이 배반당한다면…… 

       

       『그렇다면 저도, 당신을 지켜드릴 수 없답니다. 아니, 어쩌면 이곳에서 제가 직접—』

       

       그렇게 칼을 들이밀며 말은 했지만, 칼자루를 쥔 렌까의 손은 떨리고, 목구멍으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정말 백철연이 배신을 하고 사보타주를 시도한 것이었다면, 이대로 백철연의 목을 베어버릴 수 있을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 남자를 죽이고 나도 죽으리라! 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백철연의 얼굴을 보니 주저되었다.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이 남자를 찔러 죽일 수 있을까?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은 것도 잠시, 백철연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있겠냐.』

       

       백철연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까 양복자…… 도미꼬한테 대충 듣지 않았어? 나중에 자세히 얘기해 주겠지만, 기술자 한 명이 배신해서 섬의 결계가 풀렸고, 공룡들이 섬을 탈출할까 우려된 연구소장이 형광화를 지시했어. 거기다가 연구소장은 미쳐버렸는지 스스로 공룡이 되지를 않나…… 아무튼 그 난리통에 우린 고생만 하고 죽을 뻔했어.』 

       『에……』

       『내 말을 들을 것도 없이, 섬을 조사해보면 다 나올거야. 흔적이 다 남아있을테니까.』 

       

       생각해보니, 그건 그랬다. 이만한 사건이라면 정황을 파악할만한 증거가 수두룩하게 남아있을 터. 섬에 남은 흔적들을 조사하면 뻔히 드러날 일을, 백철연이 거짓말할 리는 없었다. 

       

       『어쨌든 그 난리통에, 나는 우 박사만큼은 목숨을 걸고 구출해냈어.』

       『우 박사라면……?』

       『우리랑 같이 탄 안경 쓴 아저씨. 수석 연구원인 우 나가하루 박사야. 연구소장은 미쳐버렸지만, 우 박사만 있다면 공룡이야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렌까는, 백철연의 해명을 들으니 마치 마음속의 불안이 사르르 풀어지는 듯 안심이 되었다. 

       

       모든 정황을 따지고 보면 이 사태는 백철연이 없었어도 일어났을 일이고, 백철연은 그 난리통에 핵심인물인 우 박사만이라도 구출하여 살려낸 것이다. 

       

       어떻게 보더라도 백철연은 배반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동아공영회를 위해 칭찬받을 일을 한 것이었다. 

       

       렌까는 칼을 거두어 납도했다. 도무지 근거없는 의혹으로 백철연을 추궁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고, 백철연에게 미안했다. 백철연의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까? 미안함을 느낀 렌까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후후! 미안해요. 장난이었습니다.』

       『……장난을 목에 칼을 들이대고 하냐.』

       『오랜만에 당신의 얼굴을 봐서, 짗궂은 장난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죄의 의미로, 저, 저에게 장난을 치셔도 좋습니다만?』 

       『관둬라. 너랑 놀다가 내 수명만 줄지.』

       

       백철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난간에 상체를 기대고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았다. 렌까는 그런 백철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사내, 나를 배반하지는 않겠구나. 

       

       내가 이 사내에게 애정이 쌓인 만큼, 이 사내도 나를 무심하게 여기지만은 않으리라. 

       

       렌까 자신이 방금 칼로 목을 겨눈 것은, 아무리 장난이라고 둘러대기는 했어도, 무례한 짓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정말 장난이었던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백철연의 태도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퉁명스러운 듯 하면서도 은근한 친밀감이 묻어 있었다.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감정적인 유대를 차치하고서라도, 제대로 된 사리분별은 할 수 있을 만큼 영리한 사내이니 대동아공영회에 배반하는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렌까는 이어 생각했다. 

       

       내가 만주에서 대동아공영회를 위해 동분서주했듯이, 이 사내 역시 이곳에서 대동아공영회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구나. 

       

       그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하나의 같은 이상—대동아공영회를 위해 동병상련으로 고생했다는 생각에, 렌까는 눈앞의 이 사내가 더욱 대견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먼 곳을 바라보는 백철연의 옆모습…… 

       

       그 순간, 렌까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지금 말할까. 말해 버릴까.’

       

       기회였다. 위기의 순간에 구해졌기 때문에, 백철연은 지금 강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며, 의지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상황 자체가 적기(適期)였다.

       

       파도 소리만 잔잔히 들려오는 가운데, 이렇게 단 둘만 말없이 있는 상황—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이 기회에, 사랑한다는 것을 고백하고 그의 마음을 확인받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렌까로서도 지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서 당장 무엇을 어쩌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후일의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충동이 머리를 든 것은 어째서일까.

       

       사실, 이것은 편련(片戀)를 앓는 자라면 누구든지 겪는 열망이었다. 짝사랑을 가진 자는 그 결과가 어찌 되든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자 하는 강한 충동이 있기 마련이고, 

       

       또한 바라기를, 자신의 고백에 호응하여 상대방 역시 자신을 애정하고 있었다라는 대답을 듣고 싶은 강렬한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종류의 마음이었다. 

       

       물론 고백이라는 것은 렌까에게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만주에서의 여러 밤을 지새우며 경성에 돌아오면 언제고 그러한 마음을 고백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때가 이렇게 빠르게 다가올 줄은 본인 스스로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 좋은 기회를, 하늘이 내린 듯한 ‘챤스’를 놓칠 수는 없었다. 

       

       아직 한밤중인데다가 날이 흐리고 어두워, 꼴사납게 얼굴이 붉어진 것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렌까는 슬그머니 백철연을 바라보았다. 백철연은 자신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이 서로 말없이 있는 것도 과히 싫지는 않다는 것인지, 갑판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묵묵히 입을 다문 백철연의 옆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렌까는 굳은 결심을 하고,

       

       ‘저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라고 말하기로 입 속에서 몇 번이나 되뇌이고는, 굳게 마음을 먹고 마침내 고개를 치켜들며,  

       

       『시라바야시 상. 저는, 당신을—』

       

       하고 은근하게 불렀으나, 

       

       —끼에에에에에에에엑…… 

       

       마치 렌까의 말을 끊으려는 듯, 

       

       —키야아아아아앗……

       —캬오오오오오오오……

       

       멀리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겹쳐 울려퍼져오는 바람에, 렌까가 하려던 말은 목구멍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백철연이 외쳤다.

       

       『우왓, 렌까! 저것 봐봐!』 

       『……예?』

       『이제서야 제대로 보이네. 저기 봐봐.』

       

       백철연은 멀어지는 서봉도를 가리켰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어둠 속에서 녹색을 띤 샛누런 빛들이 점점이 환하게 밝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은은하게 빛날던 공룡들이, 형광화가 완전히 진행된 끝에 발광(發光)하며 불타죽는 공룡들의 모습이었다. 

       

       『봐봐. 형광공룡이야.』

       

       대단한 구경거리나 난 것처럼 눈길을 떼지 못하는 백철연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 공룡들에게 죽을 뻔 했으면서도, 공룡이 형광빛으로 불타며 죽어가는 광경에 열중하는 모습이라니. 말 그대로, ‘건너편 해안의 화재(対岸の火事)’라는 것일까.

       

       『너도 잘 봐봐. 저런거 어디가서 다시 보기 힘들 테니까.』 

       『…….』

       

       왜 백철연이 말도 없이 이 위에서 묵묵히 바다만 내다보고 있나 했더니, 자신의 말을 기다리던 것도 아니었고, 두 사람 사이의 조용함을 음미하던 것도 아니었고, 다만, 저걸 보기 위함이었던가. 

       

       그저, 공룡이 형광화에 완전히 잠식되어 강한 빛으로 불타죽는 광경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뿐이라니. 

       

       『…….』

       

       렌까는 방금 전까지의 용기와 기세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느꼈다. 이 좋은 ‘챤스’를 방해한 공룡이 원망스럽고 눈 앞의 백철연이 야속하게 여겨지는 것을 넘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놓쳐버린 기회요 깨어져버린 ‘챤스’였다. 

       

       『챤스였는데……』

       

       하고 렌까가 중얼거리자 백철연이 외쳤다. 

       

       『그렇지! 이런 찬스가 아니면 저런걸 또 언제 보겠어? 장난감도 아니고 진짜 형광공룡이라고!』 

       『……그렇네요.』

       

       힘빠지는 대꾸를 한 렌까는 백철연과 나란히 난간에 기대어 서서, 멀어지는 서봉도의 해안에서 형광빛으로 불타는 공룡들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형광공룡이네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3/3)!!!!!

    공룡 에피소드 드디어 끝!!!!!!!!

    마무리가 조금 더 이어지겠지만, 공룡 에피소드는 우선은 이것으로 끝입니당! 이번에도 꽤나 길었네용!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그나저나 형광공룡이라니, 누가 보면 일제강점기 배경 소설에 공룡, 그것도 형광공룡이란걸 어떻게든 한번 넣어보겠답시고, 초반의 창경원 동물 마수화부터 최근의 중국인거리 형광화 에피소드까지 쭈욱 빌드업을 쌓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형광공룡은 참을 수 없었습니닷……!!!!!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