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35

       만약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모든 실수를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면.

        

       그 실수가 얼마나 큰 것이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능력을 갖춘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순간은, 아찔한 혈 향이 코를 찔렀을 때.

        

       내가 끝까지 지켜내겠다고 한 사람이, 내 눈앞에서 붉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을 때였다.

        

       딱딱한 바닥에 저렇게 갑자기 내동댕이쳐지면 얼마나 아플까.

        

       아, 언제나 잘 관리되어 윤기 흐르던 예쁜 금발이 붉은 핏물에 물들어갔다.

        

       순간 사고가 마비되어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몸을 겨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앨리스가 바닥에 쓰러진 되였다.

        

       급하게 움직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이 바닥에 세게 찍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앨리스……!”

        

       너무 늦게 외친 나의 목소리에, 앨리스의 눈이 나를 향했다.

        

       몸이 피에 젖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앨리스 옆에 무릎을 꿇은 채 뚫린 가슴을 양손으로 꽉 눌렀다.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총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기사들이 급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머리 위에서는 행사용으로 뿌린 꽃잎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 가짜 꽃잎 몇 조각이 웅덩이지기 시작한 핏물 위로 떨어져 붉게 물들어갔다.

        

       “아, 큭…….”

        

       앨리스가 입을 열 때마다 식도로 역류한 핏물이 올라와 말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를 보며 뭐라고 하고 싶은 것 같은데, 나는 그 말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앨리스의 입 안에 고인 피가 목을 막아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탓이다.

        

       괜찮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살 수 있어, 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래, 늦었다—

        

       너무—

        

       *

        

       —아니, 늦지 않았다.

        

       눈을 한 번 깜빡이자 돌아온 것은 바로 전날 밤.

        

       방 안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이 결정된 뒤로, 앨리스와는 평범하게 잘 지낼 수 있었다.

        

       앨리스는 여전히 나한테 다소 틱틱거리긴 했지만, 이전처럼 진심으로 짜증을 내지는 않았다. 지난번에 함께 루테티아에 방문했던 것이 도움이 된 것일까.

        

       이제 앨리스와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앨리스는 내 눈앞에서 총을 맞았다.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운 채 그 순간을 복기했다.

        

       내 기억력이 순간적으로 모든 상황을 전부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좋지는 못했다. 내 눈이 카메라만큼 좋은 것도 아니니, 그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총소리가 난 정확한 방향은 알지 못한다. 그저 앨리스의 심장을 쏠 수 있는 곳에서 총알이 날아왔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그거면 충분하다.

        

       내일 그 시간까지 아직 열두 시간이 넘게 남아있다.

        

       그리고 나에게 열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는 말은 영겁의 세월이 남아있다는 말과 같았다.

        

       *

        

       제국에는 수많은 집이 있지만, 황제의 새해 기념 연설이 있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그곳에서 앨리스가 바라보던 방향은 황제의 연단이었다.

        

       그러니 내가 수색할 곳은 황제의 등 뒤쪽에 있던 모든 집이었다.

        

       “다, 당신은 누구— 끅!”

        

       “묻는 말에나 대답하십시오. 이 집에 숨겨진 무기가 있습니까?”

        

       내가 목에 권총을 들이대자,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날카롭지는 않지만 단단한 쇠막대나 다름없는 총구다. 당연히 아프고 두렵겠지.

        

       “어, 어, 없습니다, 정말, 정말로 없어요! 당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아무것도—”

        

       “당신,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어.”

        

       총성이 울렸다.

        

       아마 이것으로 이 건물에 있는 사람들, 아니, 주변 사람 중 잠에서 깬 사람이 있으리라.

        

       “끄……억…….”

        

       허벅지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말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남자의 귀에 대고, 나는 작게 속삭였다.

        

       “창가 마루 아래 사냥용 소총이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나의 말에 남자는 움직임을 멈췄다. 귓가에 남자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나는 그런 남자의 귓가에 다시 속삭였다.

        

       “지금 당신의 선택지는 단 두 가지입니다. 당신에게 황녀 앨리스의 암살을 의뢰한 이의 이름을 말씀하십시오. 그렇다면 다음 총탄은 당신의 머리에 박힐 겁니다. 만약 당신이 이번에도 나의 말을 부정한다면, 다음 총알은 당신 음경을 날려버릴 겁니다.”

        

       “나, 나는 아무것도—”

        

       총성이 다시 울렸다.

        

       남자의 입이 크게 벌어졌지만,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지, 소리가 나긴 했다. 비명이 너무 높아서 오히려 쇠 두 개가 긁히는 것 같은 작은 소음처럼 들렸을 뿐.

        

       “그거 아십니까? 사실 저는 별로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잡히지 않고 빠져나갈 방법이 있고, 당신이 죽어도 다시 물어볼 상대가 있습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애초에 오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 있고, 다시 물어볼 사람은 과다출혈로 죽은 뒤 다시 살아날 과거의 이 남자니까.

        

       “그러니 말씀하십시오. 그럼 다음 총알은 당신 머리에 박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죽은 건 아닌 것 같았지만, 방금 그 총알로 정신이 나가버린 모양이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총성이 들렸다.

        

       남자의 양쪽 허벅지 모두에는 총알이 한 발씩 박혀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허벅지는 덜 아프기라도 한 걸까?

        

       *

        

       남자는 손가락 열 개 중 일곱 개가 대구경 총알에 날아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사실 그 일곱 발의 총알은 불필요한 것이긴 했다.

        

       내가 남자의 친족의 이름을 줄줄 읊은 뒤, 갈색 머리카락 한 묶음을 남자 얼굴 위에 뿌려주고 나서야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손가락 일곱 개가 모두 날아가는 것보다도 아픈 여동생의 목숨은 소중한 모양이었다.

        

       그 여동생과 비슷한 나이의 여자애를 쏴 죽일 생각은 했으면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문은 이미 식탁에 막혀 있었다. 한동안은 버텨주리라.

        

       그리고, 사실 나는 굳이 여기서 직접 탈출할 필요는 없었다.

        

       “저, 저도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모, 모, 모릅니다…….”

        

       남자는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얼굴이 파랗게 질린 것을 보면 별다른 조치 없이도 금방 죽게 되리라.

        

       하지만 남자는 자기가 죽기 전에 말하지 못할 것이 두렵기라도 하다는 듯 빠르게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제게 총과 총알, 그리고 계획이 내려왔을 때는 이미 몇 사람이고 거쳐서 내려왔을 테고—”

        

       “그렇다면 당신에게 이런 의뢰를 한 자에 대해 최대한 자세하게 말해보십시오.”

        

       “하, 하지만 그러면 제 동생이—”

        

       “말하지 않으면 어차피 제 손에 죽습니다. 적어도 제가 그 남자를 찾아가 죽여주기를 바라십시오.”

        

       “…….”

        

       남자는 결국 그 남자의 인상착의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서도.

        

       *

        

       그 남자는 잔챙이였다.

        

       그리고 그 위의 인간도, 그 위에 인간도.

        

       귀족이 몇 명인가 섞여 있긴 했다. 하나같이 입이 무거운 자들이었다.

        

       하지만 무거운 입도 쇠지렛대로 열면 열리는 법이다.

        

       시간을 거스르고, 거스르고, 거스르고—

        

       다시, 다시, 다시—

        

       몇 번이고 시도해서, 결과적으로 나는 그 의뢰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어, 어째서…….”

        

       “미안, 앨리스.”

        

       무릎 꿇고 앉아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보면서 허탈하게 중얼거리는 앨리스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나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었어. 가능성을 찾아야 했으니까.”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그건 중요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필요하지 않아서 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이렇게 황궁을 불살라버렸을 때 황제가 어떻게 나올지 알아야 했다.

        

       피와, 피와, 피.

        

       그 웅덩이 위에 아무렇게나 쓰러져있는 병사들과 기사들.

        

       여기저기 그슬린, 과거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궁.

        

       내 체력으로 가능할까? 결론적으로는 가능했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사격에 집중하고 폭탄을 던지는 데 집중한다면.

        

       그리고 그 이전에 몇 번이고 시간을 돌려가며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들키면 그 위치를 수정하고, 상대의 정찰 루트를 미리 외워둔다면.

        

       능력 있는 이와 비교적 능력이 떨어지는 이를 분류하여, 능력 있는 이의 집안에 사고를 일으켜 우연을 가장해 황궁에서 빼내고, 주요하지 않은 곳에서 폭탄을 터뜨려 시선을 돌리고, 나 자신을 ‘숨겨줘야 할 사람’ 안에 넣어둔다면.

        

       이런 식으로 황궁을 불사르는 것은 가능했다.

        

       “실비아, 대체…….”

        

       나는 앨리스를 그대로 둔 채 일어났다.

        

       그리고 몸을 돌려 황제를 향했다.

        

       아이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

        

       바둑은 먼저 움직이는 쪽이 유리하다고 했던가. 하지만 먼저 수를 쓰는 것은 반칙하는 비매너 선수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피해지지 않으면 피해질 때까지, 맞지 않으면 맞을 때까지 쏘면 될 일이다.

        

       “결국, 미래의 나는 그 계획을 실행한 모양이군.”

        

       황제는 말했다.

        

       “이것으로 한 가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너의 능력은…… ‘예측’이 아니군. 이건 그저 예측한 이의 행동이 아니다. 모든 것을 예상 범위 안에 넣고 계산하는 이가 이렇게 분노할 필요는 없지.”

        

       “그저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기 위하여 자기 딸을 쏘는 이가 할 소린가?”

        

       나는 장전된 총을 황제에게 겨누며 말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원상복구 시킬 것이 아닌가? 이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황제는 나를 비웃듯 말했다.

        

       “상대가 살아있다면 복수하는 의미가 있나?”

        

       “복수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니까.”

        

       나의 말에, 황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가에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군. 너 또한 그저, 가능성을 보고자 한 것인가. 네가 이렇게 움직이면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기 위해.”

        

       물론 분풀이도 있긴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불행해지는 건 앨리스니까.

        

       “실비아…… 제발……!”

        

       이런 놈이라도, 결국 앨리스의 아버지였다.

        

       “…….”

        

       나는 황제를 겨눈 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은 채로 가만히 서 있다가—

        

       *

        

       “그런가. 그조차도 예측해낸 건가.”

        

       황제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불타는 황궁의 한가운데 앉아있을 때와는 다른,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

        

       “네가 이미 알고 있으니, 계획은 의미가 없어졌군.”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너도 내가 그 계획을 세운 이유는 알고 있지 않으냐?”

        

       “그저 제 반응을 보기 위해, 당신의 딸을 쏠 계획을 세우신 겁니까?”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의 너였다면 이렇게까지 먼저 행동하지 않았을지 모르지.”

        

       아니, 당신은 날 몰라.

        

       나는 앨리스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했더라도 앨리스를 위해 움직였을 테니까.

        

       앨리스뿐만이 아니다.

        

       내 손이 닿는 곳에 내가 좋아하던 그 캐릭터들이 있다면, 나는 해피엔딩을 위해 어떻게든 움직였을 테니까.

        

       ……이 능력이 없었다면 그 시도조차 하지 못했겠지만.

        

       “네가 앨리스를 황제의 자리에 앉히려는 이유가 있겠지. 이런 예측을 해내는 이라면 스스로 황위에 오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소리일 테니까. 혹시 네가 자리에 오르면 타락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냐?”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흠.”

        

       황제는 내 쪽으로 살짝 숙였던 몸을 다시 펴 황상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그렇다면, 알겠다. 네 뜻대로 하마. 앨리스는 안전할 것이다. 애초에 이미 내가 그 계획을 세웠던 이유를 얻었으니.”

        

       황제는 만족스럽다는 듯 한쪽 입술을 슬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니, 아닐 텐데.

        

       적어도 당신은 내가 ‘시간을 돌린다’라는 것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는 건, 언젠가 ‘정말로’ 제대로 된 복수를 할 순간이 오게 될지 모른다는 소리다.

        

       당신도 모르는 이유로, 그리고 눈치도 채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당신은 황제의 자리에서 물리적으로 내려오게 될 거다.

        

       언젠가, 확실히 그렇게 되도록 만들 테니까.

        

       당신에게는 없던 일이 되었지만,

        

       나에게는 아니니까.

        

       아직도 피를 흘리던 앨리스가 눈에 선명했다.

        

       앨리스가 자기 아버지에게서 학을 떼고, 내가 죽이더라도 별다른 반응이 없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긴 몰라도 그 모든 정보를 알아내고 가능성을 시험해보려면 시간이 무척 많이 필요할 것이다.

        

       다행히 나에게는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나는 물끄러미 황제를 올려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외전으로 어떤 것을 먼저 쓸까 하다가, 과거에 가능성 중 하나로 생각해두었던 것을 구체적으로 써보았습니다.

    본편에서는 설정과 전개를 바꾸면서 쓰지 않게 되었지만, 이런 전개도 꽤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결국 ‘해피 엔딩’은 힘들었겠지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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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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