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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5

    아직 예르나의 여행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루크는 홀로 아카데미로 향했다.

    아카데미에 말해야 할 것도 있고, 시루드에게 물어봐야겠다 싶은 것도 있었으니까.

    물론 이번에는 어떤 의심이나 관심을 사지 않도록 폴리모프를 적당히 이용해서 뿔을 비롯해 외모에 미묘한 차이도 없도록 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이번에도 루크의 자리를 둘러싸고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정말 루크는 우리가 3학년이 되면 졸업하는 거야?”

     

    그렇다.

    오늘 아카데미에 도착한 루크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다름아닌 젠페이와의 면담.

    그 이유는 국제 마법 경시대회의 입상소식을 알리고, 졸업시험의 명단에 자신을 넣어달라는 요청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조기졸업 시험을 보기 위해서 받아야 할 상은, 의외로 널널한 기준을 갖고 있던 모양이다.

    덕분에 라스상에 대한 이야기도 할 필요가 없었고.

    만약 그래도 안된다고 하면 토스크 콩쿠르까지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닥 필요없게 되어버렸다.

    뭐, 일단 상금이 걸려있는 콩쿠르라면 나중에 나가볼 생각이 있기는 하다만.

     

    따라서 루크는 이번 기말시험에는 아이들과 함께 시험을 치루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졸업하는 학생들과 함께 졸업 시험을 보게 될 테니까.

     

    그리고 아마도 그 시험은 루크가 아카데미에서 치르는 마지막 시험이 되겠지.

     

    루크는 돌이켜보니 참 감회가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자신에게는 그닥 쓸모가 없는 기관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카데미에서는 생각보다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지난 1년, 아직 사회의 어둠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겪은 여러가지 경험들은 아마 절대로 잊지 못하리라.

     

    ‘확실히 그런 경험은, 앞으로 어디에서도 겪기 어려울 거다.’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어린 아이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어울리는 경험을 어디에서 또 해 볼 수가 있겠는가?

    바로 이 시기, 이 때에만 겪을 수 있는 아주 진귀한 경험일 것이다.

     

    “…….”

     

    때문에 루크 또한 아쉽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조기졸업만을 위해서 노력해온 것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처음부터 아카데미는 졸업장이 필요할 뿐이었으니 조기졸업을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각종 교외 행사까지 찾아가며 시간을 쓴 것이 아니던가.

    이제와서 아쉽다는 이유만으로 조기졸업 시험을 포기할 생각은 루크에게 없었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는, 언제나 과거와는 작별을 고해야 하는 법.

    마치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결국 하나의 껍데기를 벗어던지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아쉬운 감정은 뒤로 하고, 앞으로 다가올 밝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자.

     

    그런 감정을 가슴 한켠에 꾸욱 눌러담으며, 루크는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그렇게 되겠지.”

    “히잉, 아쉽다….”

     

    비록 루크는 학기 초부터 자율출석을 따낸 탓에 평소에 아카데미를 자주 오지도 않는 아이기는 했다만, 그럼에도 루크의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똑똑하고, 예쁘고, 항상 우아한데다, 능력도 뛰어나서 어떤 부탁을 해도 친절하고 착실하게 잘 도와주는 루크는, 반에 있는 것 만으로도 분위기를 한층 더 즐겁게 해 주는 빛과 같은 존재였으니.

    루크는 오히려 메리보다도 훨씬 더 반장 같은 아이였다.

    그러니 아이들이 루크의 졸업에 아쉬운 마음을 토로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리라.

     

    게다가, 반의 아이들은 모두 아직 졸업이라는 이름의 이별을 겪기에는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있는 2학년 아이들에 불과했기에 그 아쉬운 마음은 더 컸다.

    몇몇 아이들은 루크의 졸업 이야기에 눈물까지 보일 정도였으니.

     

    원래도 아카데미에 자주 오지 않았던 루크인지라, 이번에 졸업을 하면 영영 보지 못 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던 걸까.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해온 학급의 귀여운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핑계가 사라진다는 것은, 루크 또한 아쉽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루크는 눈물을 보이고 있는 아이들의 눈가를 손수건으로 닦아주면서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말거라, 내가 어딘가로 영영 가버리는 것도 아니니까. 너희 생각이 나면 종종 들리지.”

    “정말이지?”

    “약속이야!”

     

     

    루크가 그런 약속을 하자, 아이들의 얼굴에 곧바로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반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지는 것 같았다.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반드시 그러마.”

     

     

    —–

     

    잠시 후, 점심 시간.

     

    “…….”

     

    루크는 자리에 앉은 채 여느때와 다른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딱히 아침에 있었던 자신의 졸업 때문에 벌어진 소동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

     

    슬슬 점심을 먹으러 가려던 시루드가 와서 묻는다.

     

    “설마 아직도 그 생각 하고 있어?”

    “……그렇다만.”

     

    루크는 아까전에 시루드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려 보았다.

     

    ‘뭐, 뭐라고?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단 말이냐?’

    ‘그렇다는데? 엄마는 네가 말한 찻잎에 대해서 어떠한 상품화 계획도 없대.’

    ‘그, 그럴수가…….’

     

    그것은 루크에게 충분히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거기에 시루드는 추가적으로 덧붙였다.

     

    “그게, 그냥 지나가듯이 한 말이라 전혀 생각을 못했대. 그래서 어떤 계약적인 내용도 오간 적도 없고, 그렇다고 뭔가 확언된 것도 없었잖아. 게다가, 지금부터 한다고 해도 음료를 비롯한 식품을 상품으로 팔기 위해서는 적합한 안전검사도 받아야 하는데, 그것만 해도 시간은 엄청 걸릴거고.”

    “……나도 안다.”

     

    ‘이제는.’

     

     

    휴트리 그룹의 백화점은 맘대로 운영하는 구멍가게가 절대 아니다.

    정확한 규칙과 절차를 거쳐서 적법하게 운영되는 사업.

    그 말인 즉, 각종 안전상의 규제와 유통에 대한 투명성도 필요하다는 뜻.

     

    어디서 기른 것인지도 모르는, 출처가 불분명한 재료로 만들어진 찻잎을 하루아침에 아무런 절차도 없이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루크는 멍한 표정으로 시루드가 곁에서 하는 말을 주워들으며 생각했다.

     

    ‘하긴, 사업적인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오간 적이 전혀 없기는 하다.’

     

    다시 말하지만 루크는 마법사였지 사업가가 아니었다.

    확실히 작은 마을의 가게를 운영해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험 따위는 모든것이 체계적인 현대사회에서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았다.

     

    상단주가 언제든 마음대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고, 마땅한 규제도 없던 5000년 전의 사업구조는 굳이 이런저런 생각을 할 것도 없이 아주 널널했다.

    때문에 루크는 현대의 사업구조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알 생각도 없었을 뿐더러, 알 기회도 없었다.

     

    ‘그러면 내 찻잎은, 개인적으로 어떻게든 해결하는 수 밖에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루크는 크게 좌절했다.

    더욱 총기를 잃은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는 루크.

    루크가 이 정도로 충격받은 얼굴은 처음 본다.

    그런데 왜일까, 그게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내가 이상한 걸까.’

     

    루크의 침울한 모습이, 이상하게 오늘따라 재미있다.

    이상한 일이다.

    원래 루크가 곤란해하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는 이야기니까.

     

    지금은 뭐랄까, 평소 잘난 척 하던 재수없는 애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을 본 것 같은 느낌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대체 옛날이랑 뭐가 변해서 이런 느낌이 드는 건지, 시루드는 어렴풋이 이해할 것도 같다.

    그때는 아마, 자신이 루크를 이성으로서 좋아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뭐,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아무리 시루드라고 해도 걱정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럼 밥은 안 먹을거야?”

    “그건……. 조금 있다가.”

     

    별일이다, 루크가 급식을 ‘조금 있다가’먹겠다고 한다니.

    또 점심을 틈타 체육창고의 창문을 넘었던 저번처럼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걸까 하는 생각이 일순 들었으나, 지금 루크의 상태를 보아하니 딱히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이러면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는데…….

     

    하지만 딱히 자신은 루크하고 들어가는 급식시설부터 달라서 강요할 수는 없다.

    나중에 메리가 보면 알아서 같이 점심먹으러 가자고 하겠지.

     

    “흐음, 그래. 그럼 난 먼저 간다?”

    “그래, 점심 맛있게 먹거라.”

     

    그렇게 대답한 뒤, 루크는 창가에 기대어 바람부는 운동장에 쌓인 낙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버려지기 위해 쌓인 낙엽 뭉치들.

    지금은 저 낙엽들이 마치 자신의 찻잎과도 같아 보인다.

     

    그만한 양을 개인적으로 팔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많은 양의 찻잎을, 전부 폐기처분할 수 밖에 없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또 한숨이 절로 나올 것 같다.

    루크는 공책에 그려 두었던 몇가지 디자인 샘플을 공허하게 바라보다가, 이 모든 노력 또한 물거품이 된 것이구나 싶어 힘없이 펜과 수첩을 떨구며 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아…….”

     

     

    우연히 같은 타이밍에 발생한 한숨소리에, 루크는 기묘한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돌렸다.

     

    “응?”

    “어?”

     

    그곳에는, 예전에 시험 때 이야기를 한번 나눈 적이 있던 토끼 수인, 에이미 스텔라가 있었다.

    둘은, 서로 다른 고민을 지닌 채 그렇게 서로 눈이 마주쳤다.

     

    —–

     

    그렇게, 루크는 에이미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근심이 담긴 아이의 눈이 마주친 이상, 루크는 매정하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리 마음이 편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지금 둘 다 고민하는 게 있는 모양이구나.”

    “너도 고민이라는 걸 하는구나. 처음 알았어. 너는 딱히 고민 같은 거 할 것 같지 않아 보였거든. 뭐든지 잘하니까.”

    “나라고 해도 못 하는 게 있고, 모르는 것도 있는 법이지. 뭐든지 완벽할 수는 없으니.”

    “그렇구나. 그럼 지금 네 고민은 뭐야? 혹시 말해줄 수 있어?”

    “흐음, 확정된 것도 없는데 너무 많은 물건을 만들어서 곤란해졌달까, 원래 절차를 알아볼 생각도 없이 무턱대고 너무 많은 찻잎을 만들었어.”

    “으음, 무슨 소리 하는거야? 그거, 혹시 게임 이야기?”

    “아니, 게임 얘기가 아니다. 그…….”

     

    루크는 에이미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봤자,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차피 자신의 고민은 에이미에게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까, 대충 넘기기로 한다.

     

    “하아, 단순하게 말하자면 실수를 좀 해서 손해를 보게 생겼다고 하지.”

    “그렇구나……. 힘들겠네.”

     

    루크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에이미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냥 꽤 심각한 느낌이라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루크의 고민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 보다는, 일단 자신의 고민이 더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으니, 이제는 에이미의 차례다.

     

    “그럼, 내 고민은 들었으니 이제 네 고민을 말해 보거라.”

     

    루크의 질문에 에이미는 우물쭈물 거리다가 이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게……. 혹시 알고 있어? 시험이 끝나면 축제가 시작된다는 거.”

    “음. 알고는 있다만…….”

     

    기말시험이 끝나면 학교 축제가 열린다.

    그건 학교를 다니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

    그리고 그 때, 학생들은 학교 측에서 지원금을 받아서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골라서 할 수 있다.

    축제 공연을 한다던가, 음식을 판다던가, 물건을 판매한다던가.

    그리고 그 활동은 동아리 단위로 묶여서 단체로 행동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다.

    동아리에 속해있는 아이들은 이미 관심사가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니 말이다.

     

    “나는 제과제빵 동아리거든. 이번에 선배들하고 카페를 하기로 했단 말이야.”

    “흐음, 카페라고? 괜찮은 생각인 것 같군, 그런데 왜?”

     

    에이미는 고개를 푸욱떨구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메뉴가 모자라서 고민이야. 특히 음료 쪽이. 어떡하지, 메뉴가 너무 적으면 지원금 승인이 나지 않는대. 그래서 각자 동아리 부원 한명씩 음료를 생각해 오기로 했는데, 선배들이 다 말해서 나는 전혀 떠오르는 게 없어!”

    “……!”

     

    에이미의 고민을 들은 루크의 눈이 뜨였다.

    맙소사, 음료의 메뉴라!

    어찌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마침 자신에게는 찻잎이 남아돌고 있었다.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어떻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하!
    이제 축제가 오면 루크의 카페 알바(?)가 시작되겠군요.
    이것이 빌드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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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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