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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5

       능숙한 사냥꾼은 사냥감의 모습을 훔친다는 속설이 있다. 이는 어떤 격언이라기보다 사냥꾼의 생리를 담백하게 묘사하는 말에 가까웠다.

         

       사냥꾼이 사냥감의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냥꾼은 사냥감을 쫓는 과정에서 대상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익히게 되고, 그렇게 배운 것들은 몸에 배어 자신도 모르게 사냥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됐다.

         

       거기다 사냥감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일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팔고 남은 가죽들은 모자, 목도리, 장갑, 외투 따위로 만들어 쓰기 그만이었으니까.

         

       자신이 죽인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자신이 죽인 짐승의 걸음걸이로 배회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사냥꾼이 사냥감의 모습을 훔쳤다고 믿은 것이다.

         

       그런 주술적 믿음은 바로 ‘사냥의 마신’ 밀레투스가 추종자들에게 내리는 축복으로 이어졌다.

         

       사자의 머리 가죽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면 그의 목소리에는 사자의 힘이 깃들게 되고, 토끼의 발을 잘라 만든 장신구를 목에 걸면 주변에서 자신을 노리는 기척을 감지해 알려주며, 산양의 가죽으로 장화를 만들어 신으면 절벽에서 단단히 버티고 설 수 있게 된다는 식이었다.

         

       사냥의 마신이 사냥꾼들의 전리품에 내려준다는 축복, 마스코트. 그것은 자신이 직접 사냥한 대상을 재료로 만든 물건에만 깃드는 힘이었다.

         

       오늘도 많은 사냥꾼이 마스코트의 힘을 바라고 사냥감을 해체해 도구를 제작하지만, 실제로 초자연적이라고 불릴 만한 힘이 깃드는 경우는 아주 극소수였다.

         

       밀레투스의 인정을 받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강한 사냥감을 잡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밀레투스는 사냥꾼이 얼마나 교활하게 지혜를 짜내 상대의 전력을 간파하고 힘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내는지를 중요시했다.

         

       페렌츠가 애용하는 각궁인 ‘그믐달’도 그 희귀한 경우 중 하나였다. 그것은 그가 20대 때 잡은 그림자 늑대의 뿔로 만든 활이었다. 어둠 속에서 소리와 형체를 남기지 않고 움직이는 그 녀석을 그는 그믐달 밤 내내 사투를 벌인 끝에 겨우 처치할 수 있었다.

         

       이름 그대로 그믐달처럼 휘어진 형태를 한 검은색 활. 그는 그것에 화살을 넣고 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시위를 떠나는 순간 그 형체를 감췄다. 이것이 바로 밀레투스가 이 무기에 내려준 축복이었다. 이 활이 날린 화살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페렌츠는 이 기술을 ‘그믐살’이라고 불렀다.

         

       그가 조준한 것은 절벽 위 망루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였다. 이 정도면 그와 같은 노련한 사냥꾼은 충분히 맞출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믐달의 주인인 그도 그믐살이 날아가는 궤도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믐달을 제작하고 나서 이 녀석의 궤적을 머릿속에 그려 넣기 위해 몇 달을 고생해야 했었다.

         

       페렌츠는 병사의 머리통이 무언가에 꿰뚫리며 휘청이는 것을 보았다. 병사는 죽는 그 순간까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눈치채지 못했다. 화살은 무언가에 적중하고 난 뒤에야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저, 적습이다……크억!”

         

       그와 함께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는 급히 경보를 울리려다 역시 뒤이어 날아온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그는 날아오는 화살에 대처하는 훈련을 충분히 받았었다. 동료가 화살에 당한 것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주변을 경계했지만, 보이지 않는 화살에 대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종을 울리기 위해 뻗었던 그의 손은 기둥을 타고 힘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성공이군.”

         

       페렌츠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이것으로 사건이 터졌을 때, 황실 휴양지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이 출동하는 것이 5분 정도는 더 늦춰질 것이다. 그정도만 되어도 암살의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그는 활을 거두고 바위 아래로 내려갔다. 자신의 묘기에 감탄한 부하들의 표정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는 곧 그들이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냐?”

       “저기……제 토끼 발이…….”

         

       페렌츠는 부하의 목걸이를 바라봤다. 고작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산 하나에 있는 모든 토끼굴과 전쟁을 벌였다는 이 정신 나간 근성을 자랑하는 친구는 그 대가로 귀한 마스코트를 얻게 됐다. 바로 근처에 자신을 노리는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물건이었다.

         

       토끼 발이 까딱이며 숲 안쪽을 가리켰다. 그곳을 돌아본 페렌츠는 어둠 속에서 짐승인지 인간인지 알 수 없는 형태의 생물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크르르, 설마 경계용 마도구를 가진 녀석이 있을 줄이야.”

         

       분명 사람의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짐승의 울음소리 또한 섞여 있었다. 등불 아래에 드러난 그의 모습은 사람 골격에 호랑이의 상을 덮어 씌어 놓은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웨어링?”

         

       토끼 발을 가진 사냥꾼이 그 모습을 보고 뭔가 떠올랐다는 듯 중얼거렸다.

         

       웨어링. 그것 또한 밀레투스가 내려주는 축복 중 하나였다. 그것은 말 그대로 사냥감의 모습을 훔치는 힘으로, 몸 일부를 짐승의 형태로 바꿀 수 있었다.

         

       인류학자들이 수인족의 기원을 밀레투스 신앙에서 찾는 것도 바로 이 웨어링 때문이었다.

       랫맨, 라이칸, 마예케 등. 그들은 단순히 다른 종족으로 취급하기에는 골격이나 신체 구조가 명백히 인간과 같은 기원을 지니고 있었다. 학자들은 구석기 시대의 수렵 사회를 거치면서 밀레투스의 권능에 의해 저들이 인류에서 분화된 것으로 보고 있었다.

         

       “설마 사제님이십니까?”

         

       웨어링은 마스코트보다 좀 더 정형화된 의식을 통해 얻는 힘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냥꾼들은 매해 수렵제마다 밀레투스에게 바칠 제물을 고르고 제사를 주관하는 지역 사제들의 모습을 본 적 있었다. 그들은 다들 눈앞에 보이는 남자처럼 완전한 반인반수의 모습은 아니지만, 저마다 동물의 일부를 몸에 달고 있었다.

         

       “크르르, 나보고 사제 운운했다는 건 네놈들은 사냥꾼이라는 소리인데?”

         

       페렌츠는 시계를 확인했다. 기껏 벌은 5분을 이런 식으로 낭비할 수 없었다. 그는 칼을 뽑아 들고 그를 향해 겨눴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오늘은 만월이 뜨지 않았소. 멀쩡히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피를 억누를 수 없는 상태도 아닌 것 같은데……. 같은 신을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못 본 척하고 제 갈 길 가는 게 어떻겠소?”

         

       그의 말에 호랑이 수인은 피식 미소를 흘렸다.

         

       “크르르, 그럴 순 없지. 너희들이 노리고 있는 사람이 내가 모시는 분이랑 인연이 있거든.”

       “우리가 노리는 사람이 누군 줄 알고?”

       “네가 들고 있는 그 칼. 저주가 걸려 있군? 그런데 그거 내가 잘 아는 마도사들이 만든 물건이거든.”

         

       그의 말에 페렌츠는 이를 악물었다.

         

       ‘며칠 전에 고용한 마도사 놈들! 왜 우리랑 손을 잡았나 했더니. 놈들도 적이 있었던 거였군.’

         

       여기서 그들과 자신들이 한 편이 아니라는 설득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설득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제 작전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너희들은 내려가서 계획대로 작전을 개시해라.”

       “하지만 대장님…….”

       “어서 가라! 저 짐승은 내가 사냥한다.”

         

       웨어링을 전신에 적용할 수 있다면 분명 마도사 중에서도 상급의 실력자였다.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부하들에게 이놈을 맡기고 자신이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작전의 발동은 여러 방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야 했다. ‘지휘부’라고 할 수 있는 이놈들이 여기에 발이 묶여서는 안 된다.

         

       페렌츠는 혹시나 상대가 자신을 두고 부하들을 쫓는 건 아닌지 주의했다. 그러나 다행히 놈은 오직 페렌츠 하나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하나만 묻지. 혹시 타이롭스 출신인가?”

         

       페렌츠는 그믐달에 화살을 장전하며 질문했다. 첫 타로 깜짝 그믐살 한 방 먹여주면 일단 흐름을 이쪽으로 끌고 올 수 있었다.

         

       “내 고향은 미켈튼이다. 하지만 내 동료 중 한 명의 고향이 그쪽이라고 하더군. 연어 초절임이 그곳 명물이라며?”

       “아, 어느 동네 쪽 친구인 줄 알겠어. 안타깝지만 우리 동네는 간장 절임 파라서.”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시야에서 사라진 화살의 존재에 호랑이 수인은 잠시 멈칫했지만, 활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반사적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퍽.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화살이 왼쪽 어깨에 꽂혔다. 방금까지 그의 심장이 위치했던 곳이었다.

         

       ‘활 마스코트. 적중하기 전까지 기척을 감추는 능력인가…….’

         

       그가 평범한 마도사였다면 상대의 능력에 당황했겠지만, 그는 수백 명의 가지각색의 마도사들이 모여 있는 부두교에서 전투 훈련을 받은 몸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온갖 기상천외한 능력을 대상으로 침착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익혔다.

       

       벤 설리반은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머리가 멍해지는 것이 화살촉에 독이 발려 있는 게 분명했다.

         

       “따라와 봐라! 사냥꾼끼리 한번 붙어보자고.”

         

       벤은 화살을 날리자마자 뒤돌아서 삼림 속으로 뛰어드는 페렌츠를 보며 만만치 않은 적임을 직감했다. 아무래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

         

         

       원더스타인이 설리반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아나이스를 구하기 위해 막 황태자의 앞을 막아섰을 무렵이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그는 설리반에게 밤마다 호텔 주변을 순찰하도록 했다. 그런데 오늘 마침 그는 수상한 무리를 발견해 그들을 뒤쫓다가 들켜 그들과 대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더스타인은 그에게 음향실을 통해 지시를 내리면서, 황태자에게는 거래할 만한 정보들을 들려주었다.

         

       황제 암살 시도의 진범.

       황실 비자금의 행방.

       그리고 황태자 출생과 관련된 비밀.

       그것들은 모두 원작에서 나온 적 있는 사실들이었다.

         

       -저는 그러면 놈을 쫓아가 보겠습니다.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언제든 도망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연락을 마쳤을 때, 마침 늑대 울음소리와 함께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원더스타인은 황태자의 일행에 숨어 있던 암살자가 그의 가슴에 칼을 박아넣는 것을 보고, 부두교의 마도사들과 손을 잡았다는 사냥꾼들이 어떤 자들인지 깨달았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죠.”

         

       그들의 목표는 황태자와 아나이스였다. 두 사람이 여기 같이 있으면 적들의 집중 공격을 받을 확률이 높았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와 니카를 데리고 탕을 벗어났다. 다행히 근위대원들은 모두 황태자 곁에서 그를 호위하느라 그들의 앞을 막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웬 늑대 울음소리?”

       “진짜 늑대 떼가 호텔을 덮친 건 아니겠지?”

         

       그들은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틈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때, 아까부터 가만히 원더스타인을 노려보고 있던 아나이스가 그를 향해 소리쳤다.

         

       “방금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들을 하신 거예요?”

       “응? 무슨 말들 말입니까?”

       “그, 암살범이니 비자금이니 하는 소리요. 뭔지는 알고 하신 말씀이에요?”

       “그거요? 저는 그저 황태자의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들을 꺼냈을 뿐인데요.”

         

       차마 미래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던 그는 대충 그렇게 둘러댔다. 그러나 그의 태평스러운 반응에 아나이스는 속이 터질 뻔했다.

         

       “그, 그러니까 정말로 고작 제게 쏠린 시선을 돌리려고 그런 말을……? 단장님, 정신 나갔어요? 그게 얼마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인데! 황태자가 즉석에서 단장님을 참수할 수도 있었어요.”

       “아…….”

         

       마지막에 황태자가 자신에게 고함쳤던 게 그래서였던 건가?

       그는 그때 벤과 얘기하던 중이라 미처 코카의 반응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다 황태자에게 중요한 정보들이라 거래하기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거기까진 생각 못 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나이스는 그를 향해 뭐라고 소리칠 듯 말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곧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천진하게 웃은 그의 얼굴을 보니 더는 화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는 못 할망정 사과를 받아버린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

         

       니카는 아나이스의 뒤에서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그녀가 방금 그가 언급한 내용에 대해 좀 더 캐묻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인간 도대체 정체가 뭐지?’

         

       원더스타인이 코카에게 제안한 정보는 하나같이 범상한 게 없었다.

         

       황제의 암살 미수범.

       황실 비자금.

       콤프라치코스.

         

       앞의 두 개는 무심결에 나왔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는 아직도 제국 신민들 사이에서 음모론이 들끓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몇 주 내내 일간신문의 1면을 장식했었던 대형 스캔들이니까.

         

       그러나 그가 마지막에 입에 담은 이름, 콤프라치코스.

       그 이름이 어떻게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일까?

         

       그가 콤프라치코스를 알고 있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인신매매 조직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자신에게 거래의 대가로 내밀었다는 것은 그가 그 이상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니카는 크게 흥미가 동했다. 애초에 제3 황비와 콤프라치코스가 접촉한 증거를 캐기 위해 이 호텔에 잠입했던 것 아닌가?

         

       ‘이 남자에 대해 더 알아야겠어.’

         

       니카는 조용히 자신의 속내를 감추며 그의 뒤를 따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글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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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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