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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5

       “아라 씨.”

       “네.”

       “대체 왜 사기를 치신 거죠?”

       

       방금 전에 서양의 독한 술 두 모금을 들이킨 탓일까. 양 빰이 살짝 벌개진 엔리는 눈썹을 내리며 나를 추궁했다.

       

       나를 위협하는 것으로 원하는 바를 들을 생각이겠지만 조금도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귀엽고 흐뭇할 뿐.

       

       물어보니 대답은 해주어야겠지. 그러려고 말을 꺼낸 것이니.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요. 엔리의 운에 맡겨버렸다가 대박이 터지면 곤란해지니까요.”

       “제가 대박이 나는 게 왜 문제인데요?!”

       “도박의 해악성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인생 한 방이라는 걸 배우면 곤란하잖아요.”

       

       내가 도박장에 준비해두었던 것은 도박을 하는 측에 유리하게 구성이 되어 있었다.

       

       한 방에 모든 걸 날려먹지 않고 차근차근 돈을 불려나간다면 무한히 돈을 벌 수 있도록 말이다.

       

       아무리 엔리가 돈을 내버리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 할지라도 그 정도 환경이 마련되면 돈을 벌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지.

       

       “얼핏 보기에 유리해 보이는 도박이여야 져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매달리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아라씨 설계에 완벽히 놀아났을 뿐이다?”

       “단적으로 정리하면 그렇게 되네요.”

       

       짜증을 넘어 황당함에 이른 엔리의 물음에 선선히 인정했더니 그녀가 다시금 자신의 잔에 술을 따라서는 단번에 들이켰다.

       

       대충 보기에도 꽤나 독한 술이다만 저를 저리 벌컥벌컥 마셔도 되는 것인가?

       

       그대가 그리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걱정이 되어 살짝 목소리를 내어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타박뿐이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에 집어넣고는 그걸 보면서 히히덕거렸다니!”

       “그건 아니에요.”

       “뭐가 아니란 거에요?!”

       “도박에서는 이길 수 없지만 미로에서 탈출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는 이야기에요.”

       

       본인은 스스로를 치졸한 인간이라 규정하고 있다만 그렇다하여 여러모로 알고 지낸 이에게까지 불합리함을 들이밀지는 않는다.

       

       이번에 본인이 바란 바는 그대가 도박의 해악을 느끼는 것. 바꾸어 말하자면 도박이 아닌 다른 부분에 있어선 공정하단 소리다.

       

       그리 설명을 했지만 엔리는 내 말을 조금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 미로를요?! 아이템 안 사면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잖아요!”

       “아뇨. 충분히 가능해요.”

       “아라 씨 기준에서야 가능하겠죠.”

       “그게 아니라 엔리 씨 기준에서도 가능해요. 그렇게 설계했으니까.”

       

       엔리. 본인이 그대를 얼마나 굴려보았는지 잊었느냐?

       

       그대가 어느 선까지 움직이고 대처할 수 있는지는 이미 오래 전에 파악이 끝난 상태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대가 극복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지.

       

       “그게요?! 난이도가 너무 어렵던데요?!”

       “그야 공포 때문에 몸이 굳어 있는 상태인데다 그 미로 자체에 처음 방문한 거니까요.”

       

       설마 단번에 통과할 수 있게 해두었겠느냐. 그래서야 교훈이고 뭐고 아무것도 주지 못할 터인데.

       

       그 곳에 익숙해짐에 따라 서서히 그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두었지.

       

       내 학영충에게 어느 정도 속도로 달려야 하는 지 주입시키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아느냐?

       

       “되돌려봐요. 엔리 씨. 마지막에 갔을 즈음에 미로 돌아다니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잖아요?”

       

       그 때 당시 도박에 매몰되어서 돈을 버느라 정신이 나가있어서 눈치 채지 못한 듯 하다만. 마지막에 가서는 아무런 물건 없이 미로를 잘만 돌아다니지 않았느냐.

       

       “…어. 어?”

       

       내 말에 짐작가는 부분이 있는지 엔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미로를 통과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에요.”

       

       두 번째 구획도 똑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익숙해진다면 통과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엔리가 가지 못한 곳이자 본래라면 마지막을 장식해야 했을 세 번째도 마찬가지고.

       

       “제가 도박할 시간에 도전을 했다면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거라는 거에요?!”

       “빠져나오고도 남았을 걸요? 미로에 제일 공을 많이 들인 거라 그 뒤는 허술하거든요.”

       

       이런 진실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일까. 엔리가 또 다시 술을 단 번에 들이킨다. 이미 그녀의 얼굴에는 붉은 기가 완연하다.

       

       “아무 이야기도 듣지 말 걸…”

       “나중에 다시 도전해 보실래요? 같은 구조를 재현해드릴 수 있는데.”

       “아뇨. 됐어요. 이제 미로 이야기만 들어도 지긋지긋해요.”

       

       의기소침해 보이기에 제안을 해보았다만 엔리는 비통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얼굴에선 자그마한 공포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억울함과 원망이 담겨 있을 뿐. 이쯤 되었으면 잠을 자다 이불을 걷어찰 일은 있어도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 일은 없겠구나.

       

       “그보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간 후에 엔리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그거 야바위! 어떻게 사기를 친 거에요?!”

       “다시 거기로 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모르는 게 정상이죠.”

       

       천하제일 급의 고수가 다른 무인들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낸 기재다. 무에도 도박에도 지식 하나 없는 그대가 그를 추측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름 꼼꼼히 확인해봤지만 이상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사기를 친 거죠?!”

       “보여드려요?”

       “보여줄 수 있어요!?”

       “그 때 봤던 것만큼 화려하진 않겠지만 가능하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지존이 했던 것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건 가능하다.

       

       그 뿐일까. 녀석보다 더 화려한 기예를 선보이는 것도 어렵잖지.

       

       허나 그만큼의 현란함을 보이기 위해서는 무공을 섞을 필요가 있으니 화려함은 제하자꾸나.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엔리의 찬장에 들어있는 플라스틱 잔 세 개와 어디선가 엔리가 가져온 구슬을 가지고서 자리에 앉았다.

       

       “봐요. 여기에 구슬을 넣을 게요.”

       

       잔 하나에 구슬을 넣은 후 그를 움직이자 엔리가 고갤 갸웃거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나는 강아지조차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릿하게 잔을 움직이고 있으니까.

       

       이를 보고서 구슬이 든 잔과 들지 않은 잔을 구분하기란 무척이나 쉽지.

       

       “지금 구슬이 어디에 들어있죠?”

       “여기요.”

       

       엔리는 당연하다는 듯 잔 하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확신해요?”

       “제가 지금 취기가 올라왔어도 이런 걸 착각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럼 열게요.”

       

       그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를 보고서 엔리가 눈을 끔뻑거린다.

       

       “에. 엑?!”

       

       당혹에 빠진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른 잔을 연달아서 들었다.

       

       다른 두 잔 모두에도 구슬은 존재하지 않았다. 구슬 자체가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이다.

       

       “이건 무슨.”

       “다시 첫 번째 잔 들어 보실래요?”

       “…넵.”

       

       침을 꿀꺽 삼킨 엔리가 자신이 정답이라 생각한 첫 잔을 다시 치켜들자 그 안에서 구슬이 톡하고 튀어 나왔다.

       

       “손장난이에요. 돈을 거는 사람은 절대 이길 수 없죠.”

       

       아무리 도박판을 뒤진다 하더라도 정상일 수밖에 없다. 도박의 승리를 결정짓는 것은 사람의 손기술이니까.

       

       “이것만 쓰는 건 아니죠. 호구가 떠나가지 못하게 심리전을 섞어주고.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고.”

       

       차례차례 설명을 이어나가는 것과 동시에 엔리에게 여러 가지 기술을 보여주었다.

       

       하나밖에 없는 구슬이 컵 세 개에서 차례대로 등장한다거나. 같은 자리인데 구슬이 있었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를 보고서 머리가 어지러워진 것일까. 엔리는 미간을 꾹 누른 채 손을 내저었다.

       

       “그 정도면 됐어요.”

       “혼자서 해서 이 정도에요. 인원이 추가되면 더 재밌는 걸 할 수 있답니다.”

       “…도박 무서워.”

       

       궁금증이 해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호기심보다는 질림을 드러내는 엔리를 보고 있자니 일이 내 의도대로 풀렸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걸로 당분간 도박을 조심하겠지.

       

       “이제 다 됐어요! 그냥 술이나 마실래요!”

       “좋아요. 그러죠.”

       

       그 후로 나는 엔리의 칭얼거림에 어울려주어야만 했다.

       

       요즘 너무 빡세게 굴리는 거 아니냐거나, 몸이 고된만큼 마이튜브 조회수가 나와서 포기할 수 없다거나, 내 마이튜브가 잘 나가는 거 보면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거나.

       

       어찌 보면 자잘하고 허술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으려니 어느 순간 엔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내가 도박을 시연해서 보여줄 때에도 취기가 잔뜩 올라 있던 엔리다.

       

       무작정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찾아온 것이겠지.

       

       책상 위에 엎드려 무어라 옹알이를 하다가 이내 얕은 숨을 내쉬는 그녀를 보던 난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를 이토록 편하게 대해주는 이가 얼마만인지.

       

       멀고도 먼 과거에 그나마 한 사람이 있었지만 친해짐보다 그녀가 죽는 것이 빨랐으니 사실상 엔리가 최초라 봐도 되겠구나.

       

       고로롱거리는 엔리의 몸을 들어 침대 위에 눕혀둔 나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녀석에게 이불을 덥혀 두고서 바깥으로 나왔다.

       

       천마라는 이름 앞에 존재하는 것은 공포와 광기 뿐이었거늘 현대에 와 새로운 것이 생겼구나.

       

       이것만으로도 현대에 온 보람이 있는 듯한 느낌이야.

       

       자아. 그럼 휴식을 취하기 전에 엔리와 본인이 만들어낸 이 난장판부터 해결하도록 할까.

       

       *

       

       “또 온 것이냐?”

       

       엔리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방송을 끝마치고 화룡무인에 들어왔더니 지존이 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백화령이 만들어낸 도박판을 구경만 하던 녀석은 내가 오자마자 이 쪽으로 걸어왔다.

       

       본인에게 도전하려는 것이겠지.

       

       그토록 박살이 나고도 포기할 줄을 모르는가. 이런 데서 무인의 천성이 드러나는구나.

       

       “이번에 가져온 판돈은 무엇이지?”

       

       이 도전이 저 녀석에게는 즐거운 일이겠지만 본인에게는 귀찮은 일일 뿐인지라.

       

       나는 얼마 전부터 도전하려면 그에 마땅한 무언가를 가지고 오라 이야기했다.

       

       환단이건 무공서적이건 정보건 뭐건 간에.

       

       “정보.”

       “정보라.”

       

       그 중에서 지존이 택한 것은 대개 정보였다.

       

       지존은 거대한데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도박장의 주인이다. 그러니만큼 그의 귀에는 많은 소리가 들려오게 되어 있지.

       

       정작 본인이 그 정보를 쓸 생각이 없으니 무의미한 일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녀석은 자신이 지닌 것을 내게 팔아먹으며 도전의 기회를 얻고 있었다.

       

       지금까지 저 녀석을 박살내며 얻은 정보도 꽤나 많다.

       

       혈교주가 전선에 모습을 드러내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거나.

       

       무림맹에 분열이 심화되었다거나.

       

       사파가 연합할 기미를 보인다거나.

       

       어느 쪽이건 간에 무림의 혼란이 야기될 것을 예견하는 정보들뿐이었다.

       

       본인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듣고 있다 보면 즐겁긴 하더구나.

       

       본래 무림에 존재치 않았던 이야기를 보는 느낌이라.

       

       “이번 것은 뭐지?”

       “이번에 우리 도박장에 과거 무림맹에 속해있던 자가 찾아왔다.”

       “흐음?”

       “녀석은 옛 천마신교가 불태워질 때에 그 곳에 있었으며 여러 장물을 운반하는 역을 맡은 사람이지.”

       “호오.”

       

       그렇다는 것은 본인이 찾고 있는 천마신교의 서적을 들고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리인가.

       

       “이 정도 정보면 도전권으로는 충분하겠지?”

       “그래. 안으로 들어오거라.”

       

       철저하게 박살을 내주도록 하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박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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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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