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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5

     #100-1-20.

     내가 아스타시아와 연인 비슷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아니었다.

     -나의 아들이 공주에게 대놓고 면박을 당했으니, 이는 지브롤터 전체가 받은 모욕이로다. 완벽한 상황이군.

     아버지는 내가 나리아에게 차였다는 상황 자체를 이용하기로 했다.

     명분.

     자신의 대에서는 어땠을지 몰라도, 자식 세대에서라도 나름 친하게 지내기를 바랐건만 그 관계를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이 끊어버렸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이미 지브롤터에는 명분이 충분했다.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은 문제 하나만 세상에 퍼뜨린다면, 그건 누군가의 인격을 말살하는 동시에 모든 귀족들이 지브롤터를 향해 손뼉을 치며 반역을 인정할만한 사안이었다.

     무능왕이 백작부인을 빼앗았다.

     오히려 왜 10년 동안 참았냐고 따지려고 드는 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10년 동안 백작부인을 계속 무능왕에게 보내면서 도대체 얼마나 칼을 갈아온 거냐 말하는 이는 있을 수 있어도.

     

     -이 정도면 지브롤터가 반역하는데 큰 문제는 없겠군.

     지브롤터의 반역에 있어, 일단 절반 이상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그러나 아버지도 마지막 선은 넘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저 ‘빼앗긴 것’이라고 되어야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집안을 단속하지 못한 채 10년 동안 방치해둔 자신에게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걸 걱정했기 때문일까.

     아마도 아버지는 어머니의 명예만큼은 지켜주려고 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저 순수하게 지브롤터가 제국의 편에 서겠다는 반역을 저지르는 걸로, 무능왕의 악행이라는 가장 완벽한 명분을 숨기기로 했다.

     그리고 나와 아스타시아가 이어진 건 아버지에게 그 명분을 숨길 수 있는 또다른 패가 되었다.

     

     아버지는 졸업식에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을 초대했다.

     어머니가 어디에 있든 아버지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그는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을 초청하여 나와 아스타시아의 졸업식에서 조우했다.

     공식적인 만남은 그 때의 짧은 만남 뿐.

     너무나도 짧게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다들 가볍게 인사만 하는 줄 알았지만, 이미 모든 건 내가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거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야, 반갑군.”

     그 때.

     “자네가 그레이 지브롤터인가.”

     나는 합스베르크 황제를 처음 만났다.

     “그래. 내 딸과 사랑에 빠졌다고.”

     첫 인상은 그저 아스타시아의 미인계에 결국 넘어간 지브롤터의 잠재적 소드마스터.

     “그렇게 되었습니다.”

     “허, 되었습니다?”

     그 때, 나 또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과 연인 관계가 되었으니, 지브롤터는 이제 테르시안과 나란히 갈 수 있겠다고 할 수 있겠군요.”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요점만 짧게 말하게.”

     

     당시에는 딱히 합스베르크 황제에 대하여 잘 아는 편이 아니라 노스트럼의 귀족들 평균처럼 수사적으로 이야기를 했으나.

     “전쟁.”

     당시, 나는 여러 가지로 심란한 상황에서 만사가 귀찮고 짜증이 일어났었다.

     “지브롤터만큼은, 피가 적게 흘러야 할 것입니다.”

     “……호오?”

     그 말이, 어쩌면 황제에게 있어서는 관심을 끌게 만든 원인이 아니었을까.

     “전쟁이라니. 무슨 말을.”

     “두 분이 정한 거, ‘개전일’ 아닙니까?”

     “…….”

     그 때 황제의 표정은 잊을 수 없었다.

     마치 쓰레기장에서 황금을 발견한 것 같은, 혹은 그보다도 더한 표정.

     “……제가 실언을 했군요.”

     “아니, 실언이 아니야. 후후, 재미있군. 아스타시아, 그 아이가 역시 누구의 딸이라서 그런지 제법 재미있는 걸 물어왔군.”

     “…….”

     “아스타시아는 자네에게 주지. 그러면, 그 날에 만나도록 하세.”

     이후.

     나는 늦게나마 알았다.

     내가 진짜로 앞서서 말해버렸다는 걸.

     

     아버지가 황제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오직 두 사람의 편지로만 모든 이야기가 이루어졌고, 아카데미 졸업 이후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전부 두 사람만의 비밀이었다는 걸.

     황제 입장에서는 당황하지 않았을까.

     혹시나 아버지가 장남에게는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기에는 이야기가 맞지 않는데.

     아, 그렇구나.

     그레이 지브롤터는 알고 있었구나.

     끼이이익.

     협곡의 문이 열리며, 오직 순수한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순수한 인간의 기술로 개발된 마도소총과 군복을 입은 제국군이 지브롤터에 들어온 그 날.

     “또 만났군, 그레이 지브롤터.”

     그렇게.

     “총을 들게나. 노스트럼을 점령하기 위한 선봉장이 되어주게.”

     나는 황제의 곁에 나란히 서게 되었다.

     “심심한데, 가는 동안 이야기나 하지.”

     상대는 제국의 황제였지만, 나는 그냥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 때.

     어쩌면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나는 그 때 이후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제와 거의 24시간을 가까이 붙어있어야 했다.

     * * *

     

     #100-02-18.

     협곡의 문이 열리고 제국군이 지브롤터를 점거한 날로부터 약 일주일.

     지브롤터는 대혼란을 겪었으나,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영지민들을 다스린 덕분에 지브롤터 백작령의 영지민들은 당황하면서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자네와 백작을 향해 무릎까지 꿇으면서 외쳤던 그 기사, 로버트 경이라고 했던가?”

     “그런 이름이었습니까?”

     “그래. 노스트럼은 아까운 사람을 잃었군.”

     반발이 아예 없었지는 않았지만, 황제는 약속 아닌 약속대로 지브롤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았다.

     “자네, 제국에서 태어났어야 해.”

     

     그 대신 노스트럼은 철저히 짓밟았다.

     “노스트럼의 황금기병을 상대로 머스킷이 그렇게 효과적으로 먹혀들어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

     “아카데미에서 배운 내용의 응용이었을 뿐입니다.”

     나는 생각 이상으로 고전하는 제국군에게 적당히 생각나는 말이나 대충 읊어댔고, 그건 의외로 제법 큰 효과를 거두었다.

     “아카데미에서 이런 것도 가르쳐주던가?”

     “아카데미에서 하는 짓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이 머저리들의 대가리를 깨놓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결과였죠.”

     “으하하하하!!”

     정말 어쩌다보니, 황제의 마음에 쏙 들어버리고 말았다.

     딱히 그럴 의도는 없었다.

     그냥 나는 아카데미 3년 동안 쌓였던 울분을 마구잡이로 토해냈을 뿐이었으니까.

     나리아의 공개 고백 거절로 인한 노스트럼에 대한 반감과 분노를 대 노스트럼 왕국 전쟁에 대한 전술적 제언이라는 형태로 마구 배출해냈을 뿐이다.

     “비룡에 대한 대응 방안은 정말이지 완벽하군. 저 비룡들이 저렇게 골골거리는 머저리 집단이라는 걸 알았다면 세우지도 않았을 계획이겠지만.”

     “노스트럼의 자랑인 용기병 군단입니다.”

     “자랑인가?”

     “조롱이죠.”

     일부 계획은 전제 자체가 틀리기도 했으며.

     “적이 청야전으로 도망치는 걸 대비하여 추격해야 한다? 안심하게. 비스킷은 세 조각 정도로도 한 끼 식사를 대체할 수 있으니. 그리고 빠르게 보급이 가능하지.”

     “그러면 저들의 유인을 쫓을 필요도 없이, 그대로 왕도까지 진격하면 되겠군요.”

     “유인?”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쫓아오라는 거죠. 왕도로 가지말고, 우리 성으로 와서 나를 상대하라.”

     “그렇군. 무시하고 계속 왕도로 가지.”

     때로는 왕국과 제국의 시각 차이에 대하여 인식을 새롭게 바꾸고 그걸 이용하여 전장을 유리한 고지로 이끌었으며.

     “클레이돌 후작은 성급하며 잔인하지만 냉철한 사람입니다. 롤랜드 후작령으로 보내시죠. 롤랜드 후작의 목을 도끼로 찍어버린다면, 문이 바로 열릴 겁니다.”

     “멘테 경을 모르가니아에 보내는 건 어떤가? 과거 그녀는 모르가니아에서 쫓겨난 사람인데.”

     “모르가니아에 대한 반감 보다는 기사 문화 전체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것 같더군요. 그냥 중군에 두고 필요할 때 쓰심이.”

     “그렇군. 노스트럼을 향해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는 건 각오가 부족하다는 건가.”

     “각오라기보다는 효율성의 문제죠.”

     “효율성? …크으, 역시. 재미있군, 재미있어.”

     때로는 제국군의 편제에 대하여 공부하고, 편제 내용을 바탕으로 제국의 침공에 대한 조언을 하기도 했다.

     “…아빌레스 영지라면 제가 편지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곳 영지의 장녀가 저와 아카데미에서 제법 관계가 있었으니, 잘하면 항복할 것입니다.”

     “못하면?”

     “제 아비의 술잔에 몰래 독이라도 태워서 제게 잘 보이려고 하겠죠. 덤으로 성문도 좀 열어두고.”

     “으하하하하!!”

     황제는 눈감아줬다.

     “그래, 그렇게 하지. 하하, 원래는 마스터 한 명 보내서 쓸어버리려고 했는데,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어.”

     결사항전하겠다며 영지민들을 노스트럼과 함께 순장하려는 영주 한 명의 죽음을 통해 영지민들을 살리려고 하는 조악한 수작이라는 걸 알면서, 그는 최대한 나의 제안을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일주일 동안 여러 영주들과 전투를 치르며 왕도에 도착한 순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도망쳤다고 합니다!”

     “…….”

     “예상대로군요. 아니, 예상보다도 더 최악의 짓을 저지르고 말았지만.”

     정찰병의 보고에 합스베르크 황제는 그 어떤 때보다도 놀랐고, 나는 그저 무능왕의 행보에 헛웃음이 나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무능왕을 죽이러 오겠다며 아버지가 직접 지브롤터에 왔을 때.

     만일 내가 알았다면 말렸을까.

     아니면 내가 지브롤터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을까.

     제국력 100년 3월 18일.

     노스트럼은 멸망했다.

     그리고 그 날은 어머니가 죽은 날이었다.

     

     어머니는 왜 죽었을까.

     사인은 자살이라고 알려졌지만, 그 누구도 어머니가 자살한 건지 모른다.

     무능왕이 처형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걸린 시간이 너무 짧았으니까.

     

     혹시나 무능왕이 몰래 자기 부하에게 명령을 내린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어머니에게 붙여준 사람을 이용하여, 설령 자신이 사라지더라도 어머니를 죽여서 다시 아버지가 ‘쓰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거나.

     아버지는 쓰러졌다.

     동생들은 어머니가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믿지 않았다.

     결국 그 뒷수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었다.

     “백작 부인.”

     언제 어머니라고 불러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고, 백작 부인이라고 부르기에는 10년 동안의 행적이 너무나도 떠올리기 불편했으나.

     “그것이 당신께 사랑을 주지 않은 크림슨 변경백에 대한 복수입니까.”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머니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든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든, 결국 어머니가 10년 동안 저질렀던 행동은 전부 사랑 때문이라고.

     스스로 사랑에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이가 극단적인 사고방식에 빠졌을 때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가.

     나는 그걸 어머니의 시신을 수습하며 배웠다.

     10년 전에 가슴에 묻은 어머니를, 10년이 지나서야 땅에 묻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과거편이 연참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이미 스토리 라인이 다 짜여있어서 빠르게 쓰기 편하니까…!

    는 옛날 이야기는 연참으로 밀어버리고

    엔딩으로 달려가기 위함이라는 것.

    앞으로 2~3편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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