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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5

       시간이 약이다.

       

       아픔도, 슬픔도, 상실감도.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시간이라는 파도 앞에 쓸려나가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식으로 진통을 겪고, 극복한다.

       

       아카샤나 로즈마리도 그러했다.

       

       언니를 잃었지만.

       

       그래서 슬펐지만, 나아가야 할 사람은 나아가야만 했기에. 주저앉지 말고 꿋꿋하게 걸으라는 유언이 있었기에.

       

       힘들게나마 버티고, 감정을 어느 정도 털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단 한 명.

       

       직접적인 사인(死因)이 된 당사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차 한 잔 타줄까?”

       

       아카샤의 물음에, 붉은 머리칼의 소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활발하던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고난과 역경이 무엇인지 한 번도 알지 못했던 소녀에게 이번 시련은 흑사병에 걸리는 것 이상으로 지독한 것이었다.

       

       ‘홍차로 해야겠군.’

       

       [팔정도(八正道) 제3식(式)]

       

       [테슬라(Tesla)]

       

       아카샤는 주방으로 가 냄비를 덥히고 그 자리에 티백을 풀었다.

       

       팔정도는 이럴 때 편리했다. 전기와 물의 성질이 어느 정도는 비슷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왕 사후, 마력초가 없어도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

       

       ‘기적이지.’

       

       금안이 장애의 징표라는 증거는 옛말이 되리라.

       

       물을 데워낸 아카샤는 유리잔 두 개를 세팅하고 은빛 쟁반에 담아 층계 위로 올라갔다.

       

       로테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땅을 응시하고 있었다.

       

       초점 없는 눈동자.

       

       어디부터 도와줘야 할지 난감했다.

       

       ‘염색이라도 해야 하나.’

       

       아카샤는 찻잔을 건네며 말했다.

       

       “받아.”

       “…고마워.”

       

       그래도 대화는 된다.

       

       정말 심각했으면 아예 말을 나누려고 하지도 않았을 텐데.

       

       아카샤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바쁘디바쁜 이 소녀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감정적인 교류를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하지만 말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인간으로 진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카샤였다.

       

       자신에게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이 소녀를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지, 묘책이 도통 떠오르질 않았다.

       

       그래서였다.

       

       “…….”

       

       아카샤는 일단 침묵을 선택했다.

       

       로테 살리에르의 곁에 앉아서, 그녀가 차를 다 마실 때까지 가만히 있어주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답이었다.

       

       “…괜찮아?”

       

       로테가 먼저 입을 연 것이다.

       

       드디어.

       

       한동안 은톨이 생활을 계속하나 싶었던 이 소녀가!

       

       아카샤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뭐가?”

       “내가 네 언니를… 그랬는데도…….”

       

       로테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숨을 쉬었다. 울분 섞인 음색이 텁텁한 방의 공기와 함께 침전한다.

       

       또다시 위기였다.

       

       이번에는 침묵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하자.’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만, 아카샤는 에테르와 여러모로 비슷한 존재.

       

       에테르가 해줄 법한 말만 해 주어도 성공이다.

       

       그리고 에테르는 그 누구보다도 이성과 논리를 중요시하여 말하는 존재였다.

       

       몇 번의 연산 과정을 거친 아카샤가 입을 열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이 또한 정답이었다.

       

       로테의 눈동자에 반응이 있다.

       

       지금이 기회였다.

       

       아카샤는 제 언니에 빙의하여 말을 이어갔다.

       

       “그때 너는 날 살려주고 대신 죽으려고 했어. 네가 가사 상태에 빠졌을 때 내 기분이 어땠을까?”

       “그, 그건.”

       “지금의 너와 똑같았겠지.”

       

       만약 그 당시 에테르가 아닌 로테가 죽었더라면.

       

       에테르 또한 현재의 로테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방에 틀어박혀서 평생 연구만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 자기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았으니까.

       

       “네가 나를 위했듯이, 나 또한 너를 위한 거야. 그러니까…….”

       

       살아.

       

       주눅들어 있지 말고, 어깨 편 채로 당당하게 살라고.

       

       “네 잘못은 하나도 없으니까.”

       “아….”

       

       아카샤에겐 머쓱한 몇 마디.

       

       그러나 모든 것이 굴절되어 보이던 로테에게는 구원과도 같은 한 마디였다.

       

       

       **

       

       

       아카샤는 며칠간 로테를 돌보듯이 곁에 있었다.

       

       남는 게 시간이었다. 국정에 관한 업무는 로즈마리가 전부 하고 있었기에 아카샤는 로테와 온종일 있을 수 있었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산책하고.

       

       로테가 허락하는 한 아카샤는 그녀의 곁을 지켰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산책하러 나갈까?”

       

       로테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로테의 우울감은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나아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매일같이 우울 장애에 좋은 차를 타 주고, 죄책감을 느낄 때마다 위로해 주고, 의욕을 북돋아 주기까지 했는데.

       

       호전되는 기미가 없었더라면 아카샤도 맥이 탁 풀릴 뻔했다.

       

       “오늘 바람이 많이 불더라.”

       

       아카샤의 한 마디에 로테는 장롱을 뒤적였다.

       

       코트 하나를 꺼내 걸치고는 습관적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바스락.

       

       무언가가 잡힌다.

       

       “이건….”

       

       곱게 접힌 종이였다.

       

       ‘에테르’라는 단어가 정갈한 글씨체로 적혀 있는 종이.

       

       로테의 입에서 자그마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게 뭔데?”

       

       그리 물으며 다가온 아카샤도 머지않아 입을 다물었다.

       

       그날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마왕군의 최고 전력이 하나씩 죽을 때마다, 대응하는 종이를 태워버려 역사의 기록으로 삼으라는 에테르의 유언.

       

       그런 에테르가 죽었음에도, 로테는 그녀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태우지 못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부정하면 할수록 시간은 지나가고, 친한 옛 친구의 모습은 점점 세상에서 잊혀간다.

       

       “……잠깐만 기다려 줘.”

       

       아카샤는 기다렸다.

       

       로테가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얼마가 걸리더라도, 그녀를 기다려주기로 했다.

       

       로테는 종이를 곱게 접어 품에 넣었다.

       

       “가자.”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약하게나마 힘이 담겨있었다.

       

       ‘무슨 일이지?’

       

       며칠 사이에 상태가 나아졌다고는 하나,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혹시 종이를 태우려고 하나?’

       

       에테르는 죽었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로테가 제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면, 필히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를 훌훌 놓아주려 할 것이다.

       

       “나, 가고 싶은 곳이 있어.”

       “그래.”

       

       오늘 로테는 아카샤보다 앞서 걸었다.

       

       어디로 향하나 싶어 천천히 뒤를 따라가는 아카샤.

       

       시내를 건너고, 물가를 건넜다. 그러자 피치블렌드 산을 끼고 있는 작은 언덕이 나타났다.

       

       완만한 언덕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따금 실바람이 불어왔다. 바람개비가 돌 듯 말 듯 한 날씨였다.

       

       ‘여긴.’

       

       언덕 하나를 다 넘었을 때, 아카샤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떠올려냈다.

       

       에테르의 묘소가 위치한 곳이었다.

       

       “나 왔어.”

       

       로테는 에테르의 묘비가 위치한 곳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시체조차 찾지 못해서, 생전 그녀가 쓰던 물건으로 관을 채워넣은 무덤이었다.

       

       묘비가 처음 세워지던 날, 로테가 얼마나 고개를 저어 부정했는지 아카샤는 알고 있었다.

       

       에테르는 아직 살아있다고.

       

       왜 묘비를 세우냐고.

       

       말도 안 된다고.

       

       꺽꺽 울어대던 그날의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

       

       “잘 지냈니?”

       

       비석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늘어놓는 모습에서 아카샤는 심장이 뒤틀리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오늘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로테가 말을 이었다.

       

       “네 동생은 좋은 아이야. 너와 어쩌면 이리 똑 닮았니. 네가 그랬듯, 네 자매도 내 곁을 지켜주고 있어.”

       

       아카샤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말이야. 네가 없으니까 늘 허전한 거 있지? 그러니까 빨리 돌아와.”

       “저….”

       “이건 태우지 않고 있을게.”

       

       로테는 예의 종이를 펼쳐서 보여주었다.

       

       산들바람에 나부끼는 종이가 처연하게 보인다.

       

       아카샤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사르르 풀린 탓이다.

       

       ‘이것이 여신의 인도란 말인가?’

       

       앨리스의 말에 따르면, 여신은 마왕 사후 자신이나 에테르 둘 중 한 명을 제거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알았던 에테르는 자신과 로테를 동시에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

       

       공리주의적으로 보면 합당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언니다운 결정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랬다.

       

       그렇지만….

       

       “아카샤.”

       

       로테가 뒤를 돌며 말했다.

       

       “에테르는 반드시 돌아올 거야. 그럴 거라고 믿어.”

       

       

       **

       

       

       정령계에 온 지도 한 달 가까이 지났다.

       

       응애 정령이 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시설 유지보수하는 것 정도?

       

       제대로 된 활동을 시작하려면 10년은 지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얼마나 절망스러웠는지.

       

       10년이면 알고 지내던 친구하고도 서먹해질 만한 시간이다.

       

       게다가.

       

       “아, 드럽게 할 거 없네.”

       

       찰싹!

       

       “말을 예쁘게 해야죠, 동생!”

       

       조금이라도 나이(?)에 맞지 않는 언동을 하면 앨리스가 나타나 입단속을 시킨다.

       

       “자, 다시 똑바로 말해 보세요.”

       “와 존나 심심하다.”

       

       찰싹!

       

       “정말 심심하다.”

       “그렇죠.”

       

       정령의 삶이란 이렇게 고달프다.

       

       여신의 직속 부하라는 이유만으로 항상 선(善)을 유지해야 하고, 그렇기에 예절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덕분에 터울진 언니한테 매일같이 입술 맴매를 받고 있다.

       

       빌어먹을 여신 같으니라고.

       

       “동생, 주어진 임무는 잘하고 있었나요?”

       “서버 관리라면 이젠 지긋지긋해. 오늘만 세 번 반복했어.”

       “역시 동생이에요. 똑똑해.”

       

       앨리스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들어올렸다. 이런 몸인지라 무저항하게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뭔가 굴욕스럽다.

       

       “그런 동생을 위해 임무를 하나 더 맡기도록 할게요.”

       “뭔데?”

       

       앨리스는 씩 웃었다.

       

       얼굴을 살펴보니 다크서클 진 게 보통이 아니었다.

       

       아직 나 말고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전계 정령이 없었기에 어려운 임무 대부분은 언니 혼자서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동안 나를 조금이라도 더 의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새 임무를 주려는 모양이다.

       

       과연 어떤 임무일까?

       

       내심 기대하며 귀를 쫑긋거리고 있던 사이, 앨리스가 입을 뗐다.

       

       “세계수 파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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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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