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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6

       눈 떠보니 그리폰이었다.

        

       아니, 무슨 비유나 은유가 아니다. 정말로 나는 그리폰이었다.

        

       그리폰— 아니, 그리폰이 맞나? 그리폰치고는 좀 작은 것 같기도 했다. 주변에 내 몸집과 비교할만한 것이 거의 없어서 어림짐작만 해볼 뿐이지만, 이 감옥 비슷하게 생긴 곳의 돌의 크기를 생각해보면, 내가 몸을 일으켰을 때 정수리가 사람 가슴팍에 올 정도인 것 같다. 매체에서 묘사하는 그리폰의 크기와는 확연히 차이 났다.

        

       뒷다리는 사자, 앞발은 독수리. 게다가 기묘하게도 날개까지 명확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고개를 돌려 보니 날개가 보였다. 이쪽도 깃털이 자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처음에는 다소 경악했지만,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작가한테 헛소리했다가 소설로 잡혀 들어가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전에는 그런 스토리보다 더 근본이라고 할만한 이세계물이 넘쳤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눈 떠보니 자기가 그 게임 캐릭터가 되어있었다거나, 말 그대로 고등학생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냥 다른 세계로 넘어가서 활약해버린다거나.

        

       그리고 그런 이세계물의 계보를 쭉 따라가다 보면 별 요상한 것으로 전생하는 내용의 소설들이 참 많았다. 나는 그 ‘요상한 것들’ 중 내가 읽어본 라이트노벨들에 나온 것들을 쭉 나열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그래도 그리폰 정도면 상위권이야.

        

       ……생물로서는.

        

       하지만 상황을 알아차린 나에게는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일단, 나는 어린 그리폰이었다.

        

       “삐약?”

        

       그렇다. 이 세계로 넘어가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되는 라이트노벨이라면, 시간이 지나 사람 말을 하게 되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사실,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 동물이나 무생물인 상태가 계속되면 스토리가 진행이 안 된다. 굉장히 능력 좋은 작가라면 뭐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작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읽는 처지에서도 몹시 답답하다.

        

       라이트노벨에는 미소녀 캐릭터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그런 비 인간계 빙의물은 남성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많으니, 팔리기 위해서라도 예쁜 히로인들을 넣어놓는다.

        

       그런데, 주인공이 짐승이거나, 몬스터거나, 무생물이라면, 그 히로인과 이어질 수 있는가?

        

       어…… 뭐, 짐승이라면야, 뭐, 어떻게든 될지 모르겠다. 그런 장르가 있긴 하니까.

        

       하지만 그런 장르에서조차 결국에는 주인공은 히로인과 대화하게 된다.

        

       당연하지 않은가.

        

       설령 주인공이 ‘생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보통 그런 주인공—그러니까, 동물—을 돌봐주는 히로인이 주인공과 교감하다가 성욕을 느끼게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강아지를 키우다가 갑자기 강아지에게 성욕을 느끼면 그게 정상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기야 하겠지만, 대중적으로 팔리는, 서점의 평대에 올려놓을 라이트노벨에서 그러면 안 된다. 읽는 사람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겠는가?

        

       ……지금 내가 들어온 곳이 과연 소설 속은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야기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세기는 했는데, 미래에 내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둘째치고, 지금 당장은 내 입에서 사람의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리폰이다. 새대가리라는 소리다. 그리고 새 중에서 독수리는 사람 말을 따라 하지는 못한다.

        

       “삐약.”

        

       ……그렇다고 내가 독수리 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어린’ 그리폰이었으니까.

        

       소리가 아니라 글씨를 써서 대화가 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이건 간에, 내가 쓰는 문자는 이 세상에서 쓰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까.

        

       내가 사람과 소통할 방법이 없다는 것. 그게 첫 번째 문제.

        

       두 번째 문제는—

        

       절그럭.

        

       독수리 발이 되어버린 앞발—감각 상으로, 나의 손—을 들어 보이자,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앞발에는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당연하지만, 도망가지 못하도록 묶어둔 것이다.

        

       앞발뿐만이 아니다. 사자의 모습인 뒷발에도, 그리고 목에도, 날갯죽지에도 사슬이 걸려 있었다.

        

       나는 말 그대로 어떻게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

        

       이렇게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해둔 것은, 내가 그리폰이기 때문일까? 아직 온몸에 회색 솜털만 돋아있는 상태인 나를 이렇게까지 해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 그러니까, 이 그리폰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 하나만은 알 것 같았다.

        

       여기 그리폰을 잡아둔 놈은 어떤 인간일까? 그리폰을 팔려는 상인? 아니면 군용으로 개조하기 위한 포획일까?

        

       “…….”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감각은 원래 인간이었던 나의 감각보다 훨씬 더 예민했다. 분명히 나였다면 듣지 못했을 거리에서 들리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렸다.

        

       쇠로 된 신발을 신은 것 같은 절그럭거리는 소리.

        

       그리고 실제로도 쇠로 된 신발이 걷는 소리였다.

        

       철제 그리브가 보였다. 시선을 들어보니, 판금 갑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가린 기사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좋아.

        

       무슨 명령을 내리건 고분고분 듣기로 하자.

        

       나보다 훨씬 커 보이는 그 기사가 때리면 엄청나게 아플 것 같으니까.

        

       일단은 명령을 들으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하지만 나의 그 생각은 도중에 끊어졌다.

        

       뻑, 하고, 고개가 돌아갔다.

        

       “삐?”

        

       입에서 나온 소리는 그런 소리였다.

        

       하지만 상대는 그 소리를 듣기 싫다는 듯 다시 반대쪽 얼굴을 후려쳤다.

        

       “삐익!”

        

       상황에 맞지 않는, 귀엽고 높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가 간신히 눈을 떠서 올려다보니, 기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늘진 슬리브는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아 보였다.

        

       “네놈 때문에, 고작 네놈 하나를 확보하려고 내 친우들이 죽었다.”

        

       그리브가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황급히 몸을 들려고 했지만,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내가 제대로 일어나기에는 쇠사슬이 너무 짧았다.

        

       “나를 공격하려는 건가?”

        

       “삐익!”

        

       아닌데요! 저는 일단 말을 들을 생각이었는데요!

        

       하지만 내가 대답할 방법은 없었다.

        

       몸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다리도, 날개도, 머리도, 몸도, 전부 두들겨 맞아서 욱신거렸다.

        

       그리폰의 몸은 사람보다 튼튼할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쇠사슬을 몇 개씩이나 써서 묶어놨을 거다. 고작 새끼인 이 그리폰을 두려워했기에.

        

       “그만.”

        

       기사의 것은 아닌, 다른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각또각, 이번에는 내가 원래 있던 세상에서도 들어본 것 같은 평범한 구둣발 소리였다.

        

       “혹시 그리폰이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당신의 동료들의 죽음이 소용없어집니다. 당신은 그 희생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추기경님.”

        

       기사는 조금 전에 보이던 분노가 거짓말이라는 듯 바로 옆으로 물러나 차렷 자세를 취했다.

        

       아니지, 그저 표정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안에서는 어떤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맞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몸을 뒤로 뺄 수도 없을 정도로 쇠사슬은 단단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거라.”

        

       추기경이라고 불린 늙은 남자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말을 따른다면 아픈 일은 없을 거다.”

        

       “삐익, 삐약.”

        

       따를게요. 따를게요.

        

       나는 몇 번이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의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 소리를 뭐라고 생각한 걸까. 추기경은 나를 향해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조만간 테스트를 진행해보도록 하지. 우리 적과 맞설 수 있는 성격인지 파악해봐야 할 테니.”

        

       “제 친우들이 이미—”

        

       “나는 우리 ‘적’이라고 했네. 칼과 창을 말하는 게 아니야. 알고 있지 않은가. 제국은 이제 그 시대를 뛰어넘으려 하고 있어. 총과 대포에도 버틸 수 있는지 알아봐야지.”

        

       총? 대포?

        

       아니, 그게 무슨?

        

       “……그렇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기사의 목소리에서는 음습한 기쁨이 느껴졌다.

        

       아마도, 자기 동료의 복수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쁨.

        

       “…….”

        

       나는 그 기쁨이 두려워, 구석에 몸을 말고 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

        

       “힉, 히익!”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은, 손에 소총을 든 인간이었다.

        

       영화나 만화에나 나올법한 사방이 두꺼운 철망으로 가려진 원형 경기장.

        

       그런 콜로세움 같은 곳에 내가 인간 하나와 함께 있었다.

        

       상대는 총을 들고 있었고, 나는 맨몸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리고— 나는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그건 상대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죽여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저 인간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총과 대포를 견디며 사람을 죽이는 시험.

        

       그게 그때 추기경이 말한 이야기였다.

        

       “오, 오지마……!”

        

       ……갈 생각 없는데.

        

       내 쪽으로 총을 겨누는 인간을 보고, 나는 경기장 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

        

       ……무섭다.

        

       총도, 그리고 겁에 질린 인간도.

        

       그 인간을 상대로 발톱이나 부리를 들이대야 하는 나의 상황도.

        

       그냥 두려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리폰의 시점을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분량이 나뉘어 나누게 되었습니다.

    너무 길게 끌지는 않겠습니다. 다음 화에서 실비아를 만나볼 수 있도록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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