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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6

        

         

       진성이 주언을 입에 담자 푸르스름한 눈 모양의 형상이 새겨진 통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눈 부분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더니 울룩불룩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박진성을 노려보았다.

         

       ‘이건 대박이다!’

         

       대박.

       대박이다.

         

       ‘키야. 아까 심마니들이 수상한 곳이 있다면서 안내할 때부터 알아봤지. 이 방송이 대박이 날 거라는 걸 말이야.’

         

       제작진은 땀방울이 볼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집중해서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콰득.

         

       눈은 곧 입이 되었다.

       눈이 튀어나온 부분은 주둥이가 되었고, 그 주둥이는 쩍 벌어지며 생선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었다. 그리곤 연기가 흐물거리며 통 밖으로 기어 나오더니 몸체가 되었고, 마치 뱀처럼 진성의 팔을 타고 올라가더니 그의 팔을 콱 깨물었다.

         

       “꺄아아악!”

         

       그 그로테스크한 장면에 옆에 있던 차이네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흘끗 훔쳐보고 있던 심마니들 역시 그 장면을 보고 역겹다는 듯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역겹다기보다는 그 장면 자체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심마니에게 가장 위험한 천적은 뱀이었으니까 말이다.

         

       진성이 팔을 물리는 것을 보고 자기 팔이 뱀에 물린 듯한 착각을 하고 만 것이다.

         

       진성은 이러한 사람들의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며 뱀에게 피를 먹였다.

       다행히 뱀은 피를 몇 방울만 핥아먹더니 그대로 연기가 되었고,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 푸르스름한 통으로 들어갔다.

         

       그 기괴한 장면을 본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지금이 촬영 중이라는 것조차 잃어버린 듯 말이다.

         

       하지만 이내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졸지에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개고생하게 될 군인들을 달래고 의욕을 불어넣기 위해 섭외한 인물이자, 혹시 오디오가 비었을 때를 대비해 섭외한 사람.

         

       차이네였다.

         

       “저기, 박진성 주술사니임…?”

         

       차이네는 갑자기 입이 돋아나서 사람의 팔뚝을 문, 사나운 통을 꺼림칙하게 여기면서도 티를 내지 않고 박진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살가워 보이는 태도로 애교 섞인 미소를 지으며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방금 사용하신 게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요.”

         

       진성은 방긋 웃으며 그렇게 답해주었다.

       그리곤 검지와 중지를 쭉 펴서 물린 곳을 쓰윽 훑었다.

         

       그러자 피가 조금씩 맺혀 나오던 상처는 순식간에 딱지가 만들어졌고, 피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게 되었다.

         

       ‘이야. 이거 진짜 대박인데?’

         

       그 장면을 찍고 있던 제작진은 속으로 감탄을 토해내었다.

       통에 입이 돋아나서 사람의 팔을 물고, 그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다듬어서 순식간에 딱지가 생기게 만든다?

         

       이런 장면을 어디서 뽑아낼 수 있겠는가.

         

       이건 무조건 대박이었다.

         

       제작진은 이 촬영은 대박이라는 생각만을 머리에 담은 채 집중해서 그들을 찍었다.

         

       이제 설명을 시작하겠다는 듯 카메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진성과 그 옆에서 궁금하다는 듯 경청할 자세를 취하고 있는 차이네를 말이다.

         

       “제가 만든 주물입니다.”

         

       “네? 주물? 만들어요?”

         

       “주물…. 이라는 것은. 음. 설명하자면 길고 지루하겠군요. 아마 그건.”

         

       진성은 주물에 관해서는 설명을 아끼겠다는 듯 그렇게 말을 잇더니, 슬쩍 제작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PD님께서 자막으로 아래에 잘 표시해주실 겁니다. 그렇지요?”

         

       “물론입니다.”

         

       PD는 진성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주물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는 진성의 태도에 내심 놀랐다.

         

       ‘예능감이 있는데?’

         

       예능감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방송이 ‘노잼’이라면서 욕을 먹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쓸데없는 설명이었다.

         

       방송이라는 매체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흥미.

         

       정보 전달이 목적이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든, 사람에게 웃음을 주려고 하든.

       방송에는 흥미가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흥미를 저해시키는 것 중 하나가 바로 TMI(Too Much Information)라고 불리는 과한 정보였다. 말이 줄줄 늘어지는 과정에서 원래 있던 흥미도 다 떠나가 버리고, 방송이 아니라 무슨 강의를 듣거나 백과사전을 읽는 듯한 느낌에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리게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PD들은 이러한 TMI가 나오게 되면 그냥 편집해버리고 아래에 자막을 달아버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지금 진성은 이러한 ‘편집각’을 귀신같이 알아내서 피해버린 것이다.

         

       ‘방송 경험 없을 텐데. 예습이라도 했나?’

         

       방송에 몇 번 출연한 사람도 쉽게 깨닫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편집각인데, 진성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것을 넘겨버렸다. 부자연스럽게 편집될만한 요소 대신에, 자신의 예능감과 능청스러움을 돋보일 수 있는 형태로 말이다.

         

       PD는 혹여 진성이 예습하고 오지 않았나 생각했다.

       실제로 가능성이 있기도 했다.

         

       진성이 누구인가.

       정부에, 재벌에….

       어마어마한 백을 두고 있는 주술사가 아니던가.

       방송 과외 정도는 얼마든지 받을 수 있었으리라.

         

       아니, 과외가 뭔가.

       그냥 방송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하면 방송 생활에서 얻어온 팁을 진성에게 아낌없이 줄 사람들이 잔뜩 널려있었다.

       주술사라는 능력자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말이다.

         

       방송이라는 것은 예술 쪽에 속해있어서 그런지 미신이 판쳤다.

       대표적인 예시로 음반을 녹음할 때 귀신 소리가 들리면 대박이 난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영화나 드라마에 귀신이 찍히면 시청률이 폭발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때문에 아직도 작품을 만들기 전에는 고사를 지내는 것은 기본이요, 영능력자를 따로 불러서 좋은 기운을 받아 대박을 노리려 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런데 이렇게 미신이 판치는 동네에 주술사가 나타났다?

       점술로 미래를 점쳐줄 수 있는 데다가, 구복(求福)과 기복(祈福)과 관련된 주술을 행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눈이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흐음. 나도 방송 팁 좀 알려준다면서 좀 친해져 볼까….’

         

       PD는 그렇게 생각하며 진성을 찍었다.

         

       진성은 어느새 방긋 웃으며 한 손에 든 통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카메라에 아주 잘 찍히도록 말이다.

         

       “이 주물은 제가 손수 만든 녀석입니다. 무언가를 찾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지요.”

         

       “무언가를 찾아요? 아,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상한 주문 같은 걸 외워서 말이죠?”

         

       “예. 적절한 주문과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요. 신기하죠?”

         

       “네, 신기해요!”

         

       차이네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과는 달리 그녀의 몸은 박진성의 주물을 꺼리고 있는지 슬쩍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아까 이빨을 드러내며 진성의 팔을 물고 피를 마셨던 것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효과가 좋다고 한들, 그런 장면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면야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진성은 이러한 차이네의 태도를 보고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였다.

         

       진성은 한 손에 든 통을 음료수 캔이라도 되는 것처럼 슬쩍 흔들더니, 눈웃음을 치면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신기함과 별개로 주물은 취급에 주의해야 하는 물건입니다. 그 자체로 저주를 품은 것이 있기도 하며, 사용에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지요. 하여 가볍게 여겨 사용했다가는 가볍게는 상해를 입거나 몸의 기가 고갈될 것이요, 자칫 잘못했다가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횡래지액(橫來之厄)을 당할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는 잘 새겨두라는 듯 그렇게 말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에게 주의사항을 안내하는 선생님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곤 하하 웃으며 통을 가방 안으로 쑤욱 집어넣었다. 그리곤 자기 눈에만 보이는 연기를 따라 한 걸음 앞으로 걸었다.

         

       노란색의 연기는 흐드러지게 판 꽃을 연상시키는 밝은 빛깔이었는데, 그 빛이 진성이 가슴에 꽂고 있는 꽃잎의 색채와 참으로 닮아 있었다.

         

       “자아. 주물이 삿된 것을 끌어들이는 것의 위치를 안내하였으니 제 인도에 따라 움직이도록 해주시지요.”

         

         

         

        * * *

         

         

         

       주물 덕분에 제대로 목표가 정해졌다고 해서 촬영이 획기적으로 빨라지는 일은 없었다.

       최선두에 있는 공병들이 지뢰를 탐지하고, 그 뒤에 있는 군인들이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진성은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있음에도 지지부진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그와 함께 움직이는 제작진과 경호원들, 그리고 심마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지지부진함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소위 ‘방송 분량’이라고 말하는 것을 채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으니까 말이다.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하면 한없이 잘 풀린다고 하던가?

         

       PD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갈 줄 몰랐다.

         

       “내가 이 산 저 산 다 타고 다닌 지가 벌써 15년째여, 15년째. 그래가 어느 산에 어떤 약초가 좋고 어느 산에 어떤 약초가 잘 자라는지는 내가 아주 빠삭하지.”

         

       “아이고, 고작 15년? 그거 가지고 유세는. 여기 그 정도 산 안 타본 사람도 있어? 누가 들으면 백년하수오니 인형설삼이니 그런 거 캐다가 팔아먹은 전설의 약초꾼이라도 되는 줄 알것어?”

         

       “아이고, 장 씨. 혹시 아는감? 15년에 저 정돈디 15년 더 하다가 거 약초 캐다가 신선이 될지 모르는겨. 장래의 신선님께 잘 보이진 못할망정 거 그렇게 꼽을 주면 쓰나. 그러다가 천벌을 받어 천벌. 자, 어여 사과해.”

         

       “아이고 그러네. 김 씨 내가 미안혀. 거 약초 캐다가 우화등선할 사람을 몰라보고 내가 이리 말을 험하게 했네그려.”

         

       뽑힌다.

         

       분량이 술술 뽑힌다.

         

       “박진성 주술사님. 이번 소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에 일어난 소동은 아주 흥미로운 것이지요.”

         

       “흥미롭다….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야기에서나 나와야 할 것이 현세에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어찌 흥미로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이미 모습을 감추어버린 초월종이 다시 강림한 것도 아니니 흥미로울 수밖에요.”

         

       “그렇게 생각하신 근거가 있나요?”

         

       “실존하는 것이라기에는 존재감이 옅었고, 그 힘이 경천동지는커녕 열 사람도 감당치 못할 정도로 한미하였으니 이것을 어찌 자연스럽다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하여 그것들은 사람을 흉내 내 돌을 쪼아 조각상을 만든 것처럼, 누군가가 어떠한 것을 이용해 조각하고 흉내를 낸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분량이 넘쳐난다.

         

       ‘끝내주는군.’

         

       긴장이 풀려서인지 저들끼리 재미있는 말싸움을 하는 심마니들.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경호원과 군인들 사이를 오가며 인터뷰를 짜내며 분량을 만드는 차이네.

       그리고 주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술술 뽑아내는 박진성까지.

         

       PD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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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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