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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6

        

         띵, 띵….

         띵, 띵, 띵, 띵, 띠링—!

         

         “에미, 시벌~ 거 드럽게 재촉하시네. 그런다고 작업이 빨라졌으면 나도 스탠드 자리에 탁상 거울을 두고 자기 최면이라도 걸면서 일했지! 시간당 임금을 받는 처지도 아닌데 나라고 질질 끌고 싶겠어.”

         

         어딘가 심적으로 궁지에 몰려 많이 초조한듯, 사이버웨어 시야 너머의 서브 모니터에 끊임없이. 숫제 1분마다 한번씩 메시지를 보내서 알람을 발생시키는 클라이언트를 향해, 남자는 어차피 들리지도 않겠지만 입에 들러붙다시피 한 욕설을 마음껏 씨부렸다.

         

         다그치는 데에도 정도가 있지, 이건 거의 뭐 맡겨둔 물건을 다시 내놓으라는 수준이 아닌가?

         

         던져준 건 어디까지나 까다로운 복원 처리가 필요한 일감이지 그냥 보관만 잘 하다 돌려주면 땡인 미가공 자료(Raw data)가 아니거늘, 아무리 소중한 고객이라 해도 이건 좀 어떨까…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기실 의뢰인과 수주자라는 돈이 오가는 관점에서 잘 포장해준 말이 클라이언트지, 실제로는 회사 컴퓨터로 성인 사이트 깔짝거리다가 데이터 날려먹은 등신이 참을성 없이 프로그래머를 독촉하는 상황이었다.

         

         ……아, 하기야 그 정도 참을성도 없는 인간이니 굳이 업무 시간에 지저분한 손장난을 해보려다 사고를 쳤겠지만은.

         

         그럼 안 그래도 이미 세상에 많고 많은 모지리들이 여기서 더 늘어나길 바라야 하나? 그래야 조금이라도 수입원이 늘어나고 잔고 상태가 개선되니까??

         

         하지만 그딴 인간들과 되도록 덜 엮이고, 속 터지는 일 좀 줄여서 불쾌한 경험을 안 하려고 뒤지게 공부해서 사이버 엔지니어가 된 건데 그걸 바라는 게 앞뒤가 맞나 싶기도 하고.

         

         “끄응…. 이젠 나도 모르겠다 존나. 아니, 적어도 굶어 뒤질 걱정은 확실히 덜었다는 뜻이니 생활 존립의 측면에선 그냥저냥 괜찮을 것도 같네.”

         

         하도 오래 사이버웨어 화면과 세세한 코딩 보조 소프트웨어 및 개발 툴을 들여다본 탓에 뻐근한 눈가를 문지르며 남자는 암호화를 해제한 자료들을 싹 정리하여 클라이언트에게 전송했다.

         

         전문가인 그의 기준으로는 복구하는데 성공한 데이터가 별도의 보안 시스템도 없는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주고받아도 괜찮은 파일인 시점에서, 고객이 재직하는 회사도 한없이 무가치하게 여길 자료가 아닐까 싶었지만… 본인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해서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뭐.

         

         무려 자신이 밤을 꼴딱 새고도 한나절 가까이를 더 써가며, 받은 쾌속 복구 요금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했으니 황금 같은 주말을 대부분 살리지 않았겠어?

         

         무조건 24시간 이내로 끝내 달라 요청 사항을 적은 걸 보면 토요일이나 일요일도 출근하는 사업 전망이 굉장히 밝은 직장일 수 있기도 한데, 그 부분은 자기가 신경 쓸 문제는 저어어언혀 아니니까~

         

         “…잠깐만, 일부러 벗을 필요도 없지 않나 이거?”

         

         

          

         

         

         기지개를 펴며 의자에서 일어난 그가 목에 걸고 있던 뇌파 접속기를 휙 벗어 던지려다가… 살풍경한 방 구조를 새삼 재확인하고 또 병신 같이 두벌일을 할 뻔했다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빽빽이 들어찬 전자제품 박스와 서랍형 보관함들, 동선 낭비와 전파 차단재 바를 면적을 줄이겠다고 단칸방에 작업에 쓰는 물건들도 다 몰아 놓은 주제에 잠은 또 편하게 자겠다며 중앙에 비치한 더블 사이즈 침대까지.

         

         쉬려고 저기에 눕는다 한들 하는 건 웹 서핑 아니면 사이버 스페이스 탐방인데 접속기를 벗을 이유가 어디 있나, 그냥 낀 채로 관에 들어간 시체 마냥 편하게 뒹굴면 되지.

         

         남자… 시발 계속 대명사로 부르기도 뭐하니 대충 존이라 하자.

         

         존이 블랙 마켓에 처음 발붙일 실력을 갈고 닦아 뒷세계에 데뷔했을 때만 해도, 불쌍한 딸쟁이들과 문맹에 가까울 정도로 소프트웨어 관련 지식이 없는 친구들의 코 묻은 돈을 뜯어먹으며 살게 되는 미래는 계획에 없었다.

         

         고위험 고소득 직종, 해커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꿈.

         

         겁나 반사회적이며 쿨하고 동시에 영락없이 방탕한 삶을 불태울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제일 마지막 것만 공약처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왜냐고? 그야 멋지고 아찔한 비밀 작전들은 다 명성과 실력을 두루 갖춘 업계 선배와 천재 같은 이들에게 먼저 물밑 접촉을 통해 기회가 주어지지, 커리어 하이(Career high; 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시기)를 보여줘야 할 시기에 시시한 심부름이나 하며 보내던 놈은 첫 단추를 겁나 잘못 끼운 셈이지.

         

         결국 자신처럼 애매한 인적 자원은 남이 싼 똥을 치우고 잔 부스러기 정도나 긁어먹으며 살게 되는 법이다. 하.

         

         제대로 세상과 한 판 붙어본 적도 없는 만큼 실력적으로 후달린다 지레짐작하는 건 아니었으나 어느 한 가지 부분에 있어서 존은 자기 객관화가 아주 확실하게 되어있었다.

         

         알아주는 기술자,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해도 겉멋만 들었을 뿐.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모험심과 자존감이 결여되어 있는 이상 무언가 극적으로 바뀌긴 힘들 것이란 걸.

         

         무언가 엄청 짜릿하고 심장을 움켜쥐는 계기라도 있다면 모를까…… 이런 썅!

         

         “아오, 씨발 맞다!! 난 뭘 늘어지게 쉬려고 했냐? 게으름 그만 피우고, 오늘은 죽어도 해커 커뮤니티에 있던 그 이상한 악성 코드를 외장 드라이브에 격리 보관하기로 했으면서.”

         

         그렇게 호들갑 떨 만큼 경각에 달한 급무는 아니지만 달이 넘어가도록 미룬 숙제가 좋은 타이밍에 떠오른 존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귀찮다. 더럽게 귀찮지만 억만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들 자기 계발 교보재가 불과 몇 시간 차이로 공유 옵션이 해제되거나 네트워크 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경우가 잦은 걸 고려한다면 더 지체하기도 솔직히 좀 쫄렸다.

         

         시부레, 어쩔 수 없다. 슬슬 움직여야지.

         

         원래는 이제 건조한 눈에 안약 좀 넣고 아까 복구한 자료 틈새에 끼어 있던 엄선된 의문의 동영상이나 한 번 감상하며 빈둥거리려고 했는데, 적어도 시각 대체용 증강 현실이 아니라 뇌파를 이용한 가상 현실에 접속하면 안구 통증을 계승되지 않으니까.

         

         지이이잉…!

         

         존의 의식이 전자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보안상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건 잘 알지만 어차피 집밖에 나가지도 않은데 편한 게 최고라는 논리에 따라 자동 로그인 및 접속 설정이 끝난 다크 웹 주소로 단번에.

         

         로딩 현황을 알리는 빛무리가 요동치고 흐트러진 다면체들이 다시 제 위치를 찾아 정착한다.

         

         건물의 형태를 띤 글들이 새록새록 갱신, 유령처럼 희끄무레한 형체로 존재하던 다른 유저들의 모습도 로그인이 끝나자 모두 표면에 뒤집어쓴 아바타도 제대로 보여서 활기 넘치는 가상 거리를 만들……은 건 정말 좋은데 이건 좀 너무 시끌시끌한데? 뭐야.

         

         “좀 적당히 앞이나 옆으로 가라 이 씹새끼들아!! 충돌 무시 설정 키고 한군데 겹쳐 서면 괜히 서로 기분만 이상해지는데. 알아서 퍼스널 스페이스 좀 존중하면 덧나냐? 어??”

         

         “응~ 뚱뚱한 느금마가 여기 있었으면 좌석 3개는 족히 필요했을 텐데 난 양반이지. 그게 그렇게 띠꺼우면 걍 가상 현실 끄고 공간지각 안 생기는 단말기로 접속해 븅신아! 누가 칼 들고 뇌파로 갤질하라 협박했냐?!”

         

         만약 현실이었다면 어깨빵을 열댓 번도 넘게당했을 인파가 존의 옆을 우르르 스쳐 지나간다.

         

         누군가는 제 발로 뛰어서, 누군가는 어색하게 시야와 몸이 겹치는 걸 신경 쓰지 않는지 하이퍼링크를 타고 잔상을 남기며 가속해서.

         

         “…뭔데, 씨발 대체 뭔 일이야??”

         

         온갖 지연 로딩 중에서도 길기로 유명한 가상 현실 접속이 완료되었는데 정신이 덜 깬 경우는 희귀하거늘 이렇게 경험해 보다니.

         

         보기 드문 개 난장판이 따로 없는 광경에, 존은 딱히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라 씨바 어처구니없음을 토로하고자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아무것도 모른 채 얼타고 있는 신규 접속자에게 친절을 베풀려는, 혹은 그 약간의 정보 우위라도 뽐내며 으스대려는 친구들이 여기 사이트엔 아주 많아서 다행이었다.

         

         “해킹잘모름이 지금 라이브 채팅에 들어왔어! 자꾸 과분한 관심을 받는 게 미안해서 그간 쌓인 질문이랑 의혹에 대해 확실하게 해명 겸 의견 표명을 하겠대!!”

         

         “엥? 진심…? 그 신비주의자 금마가 지금 온라인인 걸로도 모자라 채널에 있다고? 전에 해머헤드 녀석처럼 해적 방송인으로 데뷔라도 하려고 어그로 끄는 건가. …그건 좀 실망이면서 재밌을지도.”

         

         자, 즐겨찾기에 등록한 해킹잘모름의 게시글로 갈까요~ 아니면 인간들이 득실득실 모여대는 채팅 방 쪽으로 갈까요.

         

         존은 고민하는 척했으나 사실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문제였달까.

         

         평소 같았으면 압박감이 가짜라 여겨지지 않을 수준의 인구 밀도를 자랑하는 후자를 고를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지만… 당사자가 간만에 나타났다는데 옛날 글이나 읽으면서 시시덕거리는 건 좀 그림이 영.

         

         옛날 감명 깊게 본 코믹의 안티 히어로와 안티 빌런 역할을 넘나드는 캐릭터를 아바타로 정성스럽게 모델링해서 낀 그가 어깨를 막 움츠렸다 폈다, 목을 상하좌우로 비틀고 꺾다가 이내 발길을 인파 쪽으로 돌렸다.

         

         본인이 여기 있다니 구걸 글이라도 도배해서 코드를 직접 받으면, 못해도 낭비한 시간과 아낀 시간이 엇비슷해지겠지 뭐.

         

         

         터덜터덜, 흥미 반 기대 반으로 도착한 장소는 관객석으로 둘러싸인 광장(Agora) 구조물.

         

         데드 링크가 해커들의 집결지로 커뮤니티를 구상하고 만들 때부터 채팅 채널이 가상 현실에서 띌 형태는 정해져 있었다나 뭐라나.

         

         당시에 참가했거나 그걸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면 알 수가 없을 노릇인데 그런 이야기가 떠도는 걸 보면 정말 네오 헤이븐 최고 지명 수배 해커들이 살아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오늘 연단에 선다는 주인공은 화제의 네임드, 어쩌면 수십 년 동안 관리자가 없던 커뮤니티에 질서 비스무리한 걸 가져올지도 모르는 우리들의 0번 후보, idkHacking.

         

         …….

         

         ‘…시발, 투표로 결정되는 선출직 같은 게 아니란 건 알지만! 한 만 명분의 성명서를 모아가면 저 소악마도 갸륵하게 여겨서 닉네임 변경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다크 웹 관련 지식만 충분히 있으면 외부인도 들락날락하는데 그래도 해커 체면이 있지!’

         

         해킹잘모름을 작은 악마라고 부른 건 단순히 존의 망상이나 독단이 아니었다.

         

         마치 자기자리라는 걸 아는 것처럼 유유히, 그리고 도도하게 연단에 서서 광장을 가득 채운 유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내고 있는 사람은 굉장히 작았으니까.

         

         “어흠. 흠, 흠…!!”

         

         외형이 가짜라 한들 아바타로 뿜어낼 수 있는 최소한 위압감이라는 것조차 테이블에 올려놓는데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콤팩트하고 껄렁하기 그지없는 작은 형상의 꼬마 갱스터께선 스타일을 자랑하며 연신 노골적으로 헛기침을 반복하고 있었다.

         

         막상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떠들려니 어색함을 느끼는 거였다면 참으로 귀여웠겠지만.

         정말, 순전히 그런 연유로 우물쭈물하고 있는 거라면 흐뭇하게 구경할 여지가 넘쳤겠지만!

         

         혹시라도 녀석의 정체를 추측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아바타 소스 분석기를 키고 눈깔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는 모두에겐 가면 밑에서 전자 세계를 집어삼킬 것처럼 일렁이는 시꺼먼 안개가 똑똑히 보였다.

         

         출처 불명, 분석 불가능. 데이터 제원 공란, 일치하거나 유사한 이미지… 22세기 사무라이 코스프레? 이런.

         

         철두철미한 걸 넘어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신비주의를 고수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이 크게 떠드는 게 불편해서 저러고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저건 지금 외야와 관중석에서 떠드는 머저리들이 모조리 눈치껏 닥칠 때까지, 조용하고 도도히 압박하는 것이다.

         

         발언권을 얻겠다며 열 번 백 번 빽빽거리는 것보다 내 침묵이 너희들의 모든 절규와 아집보다 가치 있다 주장한다니… 어쩌면 해커 커뮤니티는 어마어마하게 독선적인 선장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과연 방금 한두 사람에게만 떠올랐을까?

         

         하나둘씩 주변의 눈치가 부담되는지 쉬지 않고 떠들던 입들을 다물고.

         

         벌써부터 한방 먹고 들어가는 기분에 일부 인간들이 못마땅함을 감추지도 않은 채,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지랄해서 발표인지 해명인지를 방해해주겠다는 결심을 다지면 그때.

         

         드디어, 시대가 낳은 작은 거인의 입이 열리고 긴장한 청중 전체에게 정중한 인사말을 건넸.

         

         “아아, 아! 아니 이거, 동접자가 대체 몇천 명이…… 에바네 진짜. 하, 아무튼 이렇게 다들 헐레벌떡 모여줘서 감사합니다. …이 변태 스토커 쓰레기 여러분.”

         

         …얼른 정정하도록 하자.

         

         간혹 음식에 들어간다는 어느 향신료처럼. 작은 만큼 존나게 맵고 독살스러운 문장이 준비가 전혀 안 된 좌중을 무자비하게 강타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으아악 잠깐, 대본 누구야 이거.

    익명을 희망하시는 독자님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읽어주고 계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Glacia샤샤 님의 7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히히, 예쁜 동전이다 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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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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