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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6

     #100-5-31

     어머니의 죽음 이후.

     

     우리 가족은 망가졌다.

     아니다.

     이미 망가져있던 가족의 균열이 어머니를 시작으로 쪼개어지고, 겉으로 드러나게 되었을 뿐이다.

     그릇은 한 번 깨지면 되돌릴 수 없다.

     다시 붙인다고 하더라도, 그 깨진 부위를 접착제로 붙인 흔적이 남는다.

     지브롤터는 하나의 가문이었지만, 더 이상 우리는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을만큼 뒤틀려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어머니의 빈 자리, 혹은 망가진 가족의 관계를 복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미 각자도생으로 살아가는데 너무나도 익숙해졌기에.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가까운 타인이라고 하는 게 더 익숙해져버렸기에.

     서로가 서로 먼저 다가가서 관계를 개선할 생각도 없었다.

     그럴 시간도 없었고, 생각도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지브롤터 백작성에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그저 주어진 음식만 먹고 자고 검을 수련하기를 반복하는 아버지.

     이미 난봉꾼 그레이의 행동을 보며 어느정도는 부러워하던 녀석이 어머니와 무능왕 사이의 추문에 대하여 알게 되고 심성이 비틀려, 여자를 상대로 막나가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던 누아르.

     한창 사랑을 받고 자랄 나이에 아버지도 오빠들도 별다른 사랑과 관심을 주지 못한 채, 무언가를 파괴하고 부수고 찢는 걸로 관심을 끌려고 했던 레타르.

     그런 가족을 수습하기에는 내게 주어진 역할이 너무나도 막중했다.

     -그레이 지브롤터, 자네가 변경백이 되어줘야겠네.

     20살.

     나는 지브롤터 변경백이 되었다.

     

     제국령 노스트럼에서 지브롤터를 다스리는 존재로서, 노스트럼 인들이 제국을 향해 두려워할 때 지브롤터 또한 떠올리게 만드는 무력의 상징으로서 백작위를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하지만 숨만 쉬고 검만 휘두른다고 해서, 그게 ‘변경백’으로서 살아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20살에 영주가 되었다.

     다행히 17살,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배워둔 지식과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영지를 운영하는데 아스타시아의 도움을 받게. 나 또한 자네를 위해 속성으로 가르쳐줄 경영전문인을 양껏 지원해줄 테니.

     그리고 그 지식은 아스타시아의 조언, 황제의 다양한 지원을 통해 빠르게 체화될 수 있었다.

     삐거덕거리기는 했다.

     하지만 왕국이 멸망하고 영지 전체가 매국노 배신자라는 상황 속에서, 약 3년 정도의 시간만에 제국의 여느 후작령에 준하는 수준으로 영지를 발전시킨 건 나름 고무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역시, 나의 눈은 틀리지 않았어.

     영지를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부분에 있어서는 그 황제조차도 인정할 정도.

     -백작령으로 성에 차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노스트럼 전체를 다스려보는 건 어떤가?

     황제는 내게 아예 노스트럼 전체를 맡길 기세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지를, 왕국을, 그리고 나중에는 제국을 다스리게 하려고 점진적으로 경험을 쌓게 하려는 계획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변경백으로 만족했다.

     -카르멘 총독이 충분히 잘 하고 있습니다.

     하나. 노스트럼은 카르멘 총독이 잘 관리했다.

     

     그녀는 물심양면으로 노스트럼 백성들이 제국의 2등시민이 되도록 열성을 다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아버지를 종종 찾아와서 상태를 봐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카르멘 왕비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카르멘 왕비는 그런 아버지조차 주기적으로 돌봐주기도 했다.

     사랑에 배신당해 영원히 누구도 사랑하지 않기로 한 이에게 진심을 다하면 다시 그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의 불씨가 피어오르기를 기대했던 걸까.

     카르멘은 아버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카르멘의 목을 치고 모르가니아를 무너뜨려, 노스트럼 전체를 다스린다는 생각은 고이 접었다.

     또한.

     -카르멘 총독이 있음으로서, 망국의 공주를 위시한 콩키스타도르를 억제할 수 있겠죠. 모녀 싸움이 되어버리니.

     둘. 왕도에서 도망친 나리아가 이끄는 혁명군으로부터 정치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매국노 그레이만 상대하는 거라면 노스트럼 전체가 들고 일어나겠지만, 매국노는 지브롤터만 그대로 유지한 채 가만히 있으면 혁명군에 편승하려던 이들도 뭔가 이상함을 느낄 테니까.

     지브롤터는 노스트럼을 잡아먹기 위해 배신한 게 아니었구나.

     단순히 백작부인이 죽었다고 저렇게까지 가만히 있는 건 뭔가 이상한 일이다.

     아.

     그렇구나.

     저들은 그저 노스트럼 왕조가 답이 없었기 때문에 매국의 검을 들었을뿐, 원래는 저렇게 조용하게 지내고 싶어했던 이들이구나.

     노스트럼에 대한 지배는 모르가니아가 하고 있으며, 지브롤터가 모르가니아를 가만히 놔두는 것이 그 증거이구나.

     입김이 강한 이들을 이용해 적당히 소문을 흘리기도 했고, 황제가 적당히 잘 꾸며준 덕분에 우리는 정의로운 매국노가 되었다.

     무능왕의 행실에 참다못해 결국 검을 빼어든 정당한 매국노.

     비록 500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황금룡의 나라가 더 이상 왕국이 아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만들었으나,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같은 자가 있다면 누구나 매국하는 게 당연한 일이리라.

     매국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오히려 제국의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며,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저는 백작가를 다스리는 걸로 충분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몇 년 정도는 천천히 쉬고 싶습니다.

     셋. 나는 굳이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책임을 지는 자리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10년 동안 매국노가 되도록 강요당하며 살았으니, 백작이 된 지금은 조금 자유롭게 지내고 싶습니다.

     -자유라. 어떻게?

     -그냥, 남들이 하는 걸 때때로 하고 싶을 뿐입니다.

     여행을 간다거나, 쇼핑을 한다거나, 박물관을 간다거나, 풍경을 구경하러 간다거나.

     -그런 걸,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그런 삶을 한 번 누려보고 싶습니다.

     -누구와? 폐인이 된 네 아버지? 형보다 더 많은 여자를 후리고 다닐 거라고 공언하며 망국의 질 나쁜 기사들과 어울리는 남동생? 도자기를 깨뜨리고 사치와 향락을 부리며 비싼 옷을 한 번 입고 가위질을 하며 자기에게 관심을 달라고 하는 여동생?

     -아스타시아.

     어느새.

     -제게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들을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나에게 있어, 아스타시아는 제법 깊은 곳까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래. 그렇다면, 나야 좋지.

     황제의 면전에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그 때는 몰랐다.

     -아이는 몇 명이나 낳을 건가?

     그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그 어떤 저주보다도 공포스러울 수 있다는 걸.

     * * *

     #104-11-14

     아스타시아는 아이를 낳기를 원하지 않았다.

     

     20살에는 내가 변경백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돕기 위해 미루는 거라고 생각했다.

     21살에는 나와 노스트럼 여러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하기 위해 미루는 거라고 생각했다.

     22살에는 제국의 여러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평균 출산 연령이 높아진 것처럼, 자신 또한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23살에는 혹시 임신을 했을 때, 부부관계를 계속 가지지 못하는 것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하고는 했다.

     때때로 여행지에 정체를 숨기고 돌아다닐 때, 부모의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평민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녀의 눈빛은 아련했으니까.

     알고 있었다.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보는 이가 어떤 눈을 하는 건지.

     나는 아스타시아에게 사랑을 받기만 했고, 그녀가 가르쳐주는대로 사랑을 표현하고 베풀었으나, 그녀의 이면에 있는 무언가를 굳이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밝혔던 것은 조금은 사소하면서도 특이한, 혹은 어처구니 없는 계기였다.

     “이 애들이 네 아이라고?”

     “…….”

     

     난봉꾼 누아르.

     

     누아르는 20살이 되자마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혹은 발정기에 장기간 암컷과 접촉하지 못한 종마처럼 여기 저기에 지브롤터의 피를 뿌리고 다녔다.

     배가 부른 채로 온 여인들 대부분 ‘책임’을 요구했다.

     “내, 내가 낳고 싶어서 낳았나! 자기들이 원해서 그랬으면, 지들이 키울 것이지!”

     “…….”

     “내 말이 틀렸냐고! 나는 내 자식으로 키운다고 한 적 없어!”

     누아르는 책임지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히 책임질 필요는 없었다.

     그들 중 누가 누아르가 그런 인간인지 모르고 아이를 가졌겠는가.

     아무리 피임을 철저히 하지 않는 머저리라고 해도, 여러 여자들이 배가 부른 채로 왔다는 건 그들 또한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누아르를 사랑해서 아이를 가진 게 아니었다.

     아이를 가진 채, 지브롤터에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 협박하러 온 것이었다.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건 누아르가 상상 이상으로 또라이였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요구하는 책임에 대하여 그 책임을 다할 권력과 자산이 있는 당사자인 나는 그들에게서 그저 혐오감만 느낄 뿐이었다.

     그 누구도, 누아르에게 사랑하는 시선을 보내는 이가 없었으니까.

     아스타시아가 나를 향해 보내는 시선을 누아르에게 보내는 이가 있었다면 모를까, 그 어떤 누구도 누아르를 한 명의 남자로서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그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건 아스타시아였다.

     태어날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부모를 잘못 만났다고 하여, 태어나기 전부터 죄를 짊어지고 태어나는 건 잘못되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다면, 아이의 모습을 한 괴물이 될 뿐이다.

     

     그 때, 아스타시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

     그 덕분에 나는 황제가 수많은 사생아를 낳았고, 그 중 가장 우수한 ‘개체’가 아스타시아였으며, 그렇게 나는 그녀가 나를 상대로 미인계를 펼치려고 했던 그 필사적인 시선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생존의 문제였다.

     버려지는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누아르가 낳고 책임지지 않는 아이들.

     분명 어딘가에서 푸른 머리칼을 가진 청년들이 나타나 아이들을 데려가겠지.

     

     그리고 소드 마스터의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7살 전후까지 보육원 같은 시설에서 키워낸 뒤, 전투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첩보원이나 그림자로 양성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도태되어 죽는 이가 있다면, 죽어서 누군가의 마나로 흡수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스타시아는 걱정했다.

     

     혹시나 우리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황제의 시선에서 ‘기형’이면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딘가 신체적 결손이 있는 게 아니라, ‘재능의 결함’을 가진 이라면 황제는 어떻게 하려고 할까.

     그래서 나는 어찌보면 약은 꾀를 내었다.

     “제가, 아스타시아를 좀 더 품고 싶습니다.”

     “어째서?”

     “임신하면 격하게 아스타시아를 품을 수 없으니까요.”

     “…젊다는 건 좋은 거지.”

     젊음을 핑계삼아.

     혈기를 핑계삼아.

     나 자신을 깎아내리면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지키고자 했다.

     그렇게, 우리는 임신을 미뤘다.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했다.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선택지 이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황제 폐하. 저희 부부가 낳은 자식들 말입니다. 누아르나 레타르 같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아이는 자네들 아이가 아니야.”

     “…….”

     “그레이 지브롤터의 아이는 완벽해야 해. 자네와 나를 초월하는 초인이 되어야 하지.”

     황제는.

     “나처럼 일단 최대한 많이 낳고 그 중 좋은 걸 뽑아내거나, 아니면 1년에 한 번씩 그 재능을 확인해보거나.”

     우리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했었다.

     “괜찮네. 딸이 태어난다면 기회는 남아있을 것이야.”

     “딸이요?”

     “아스타시아가 늙어서 아이를 낳지 못해도, 그 다음 ‘스페어’가 있지 않은가.”

     그 뒤는.

     “씨발, 미치셨습니까?”

     뭔가, 내가 상당히 큰 실수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실수가 나올 정도로, 나는 그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허허. 뭔가 문제라도?”

     “문제가 있냐고요? 딸이 태어난 뒤, 저보고 제 딸을….”

     “자네만 괜찮다면 그 반대도 딱히 상관은 없긴 해.”

     그것이, 나와 황제의 엇갈림.

     “나와 자네의 제국, ‘합스베르크 통일제국’을 이끌어나갈 초인만 태어난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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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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