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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6

       티림스 강 이북은 본래 제국인의 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인이 없는 상태. 이른바 무법지대인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살리에르 전(前) 백작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의제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제국이 멸망한 이후, 살아남은 제국인들은 수인족과 마왕군 잔당의 도움을 받아 살리에르 영지에 터를 잡았다. 이곳에서 임시정부를 세운 뒤 건국을 위한 준비를 나날히 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엘프국이 세운 독트린입니다.”

         

       살리에르는 준비된 대본을 묵묵히 읽었다.

         

       “카우렐리아의 경제부장관이 최근 발표한 독트린은 크게 세 가지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를 잠재적 주적으로 삼을 것. 둘째, 외교적으로 우리를 압박할 것. 셋째, 대외적으로 종족자결주의를 표방할 것.”

         

       모두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단 한 명.

         

       프레이만 빼고.

         

       ‘뭔 소리야.’

         

       프레이는 몰래 하품하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요호족이 꼬리를 느긋하게 좌우로 흔드는 경우는 보통 둘 중 하나였다.

         

       노곤하거나, 지루하거나.

         

       프레이는 둘 다였다.

         

       ‘술 마시고 싶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으니 자꾸만 딴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녀가 멍청해서는 아니었다.

         

       ‘정치가 뭔데.’

         

       수인족 태반이 정치를 모른다.

         

       중앙집권?

         

       모른다.

         

       국가와 주권의 형성?

         

       모른다.

         

       행정학? 국제관계?

         

       당연히 모른다.

         

       지금까지 수렵이나 채집, 약탈만 하며 살아온 수인족이었다. 원시적인 삶에 가까워 야만스럽다는 소리까지 빈번하게 듣던 종족인데, 아카데미에 다니는 프레이 정도면 굉장한 엘리트인 것이다.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해 듣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종족자결주의는 말이 많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엘프 놈들, 내부적으로는 금안족을 다시 박해하기 시작했거든.”

         

       프레이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금안족 박해라고?’

         

       그건 나쁜 짓 아닌가?

         

       적어도, 프레이가 원하는 평등함에는 반대되는 일이다.

         

       “놈들이 자기 나라에 있는 국민들을 박해하건 말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네. 중요한 건, 왜 대외적으로는 평등을 주장했느냐 하는 것이지.”

         

       명백한 모순이었다.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

         

       프레이도 야수적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보통 이중적인 것들은 뒤꿍꿍이가 있는 법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냐악!”

         

       옆구리에 쿡, 하고 찌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파스트렌드 호의 프레이 선장은 깜짝 놀라 비상탈출을 시도했다. 몸이 앞으로, 뒤로, 옆으로 마구 흔들거렸다.

         

       “뭐, 뭐야? 누구야?”

       “나다.”

         

       로즈마리였다.

         

       로즈마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프레이의 등짝을 두어 번 두들겼다.

         

       프레이는 목소리를 낮추며 역정을 부렸다.

         

       “야…! 갑자기 왜 건드리고 난리야…!”

       “지금이 네가 활약할 좋은 기회야. 손 들고 발언권 얻으라고.”

         

       눈가를 쓱싹쓱삭 비비는 프레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기회? 뭔 기회?”

       “그건 스스로 생각하라고.”

         

       더는 힌트를 주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 버린 로즈마리.

         

       다른 사람은 몰라도, 로즈마리가 이리 얘기할 정도라면 분명히 중요한 상황이다.

         

       ‘우으….’

         

       프레이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짜냈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그래서 파스트렌드 양. 현재 엘프들의 속셈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아.”

         

       번쩍, 하고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를 분열하려는 거예요!”

         

       프레이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우리한텐 신령님이 있으니까, 엘프들도 함부로 우리에게 전쟁을 걸어오질 못해요. 그러니까 외교로 하려는 거겠죠. 그중에서도 우리 종족을 포섭하려 할 거예요. 우리 수인들이 빠지면, 신령님도 더는 인간들을 보호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른바 용족의 습성을 이용한 계략이었다.

         

       동류를 끔찍이 사랑하는 드래곤의 특성상 수인이나 금안족이 인간과의 연합을 해체하면 요르문간드는 엘프국의 물리적인 침공에도 인간들을 도우려 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맞습니다, 파스트렌드 양.”

         

       로테의 아버지, 크롬웰 살리에르가 흐뭇하게 웃었다.

         

       “조만간 엘프국에서 당신이나 당신 종족에게 사신을 보낼 겁니다. 틀림없이 귀가 솔깃할 만한 조건을 내걸고 인간들을 배신하라고 종용하겠지요. 만약 요호족이 그들의 요청을 거부한다면, 엘프들은 다른 부족에게로 가 같은 짓을 반복할 겁니다.”

       “한 놈만 얻어걸리라는 소리네요.”

       “그렇죠.”

         

       수인족은 그 결속력이 매우 약하다. 틀림없이 한 부족은 호응할 것이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이라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파스트렌드 양이 모든 수인족을 일치단결하는 겁니다.”

       “그건 여신이 와도 어려워요.”

       “그래서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할 겁니다.”

         

       크롬웰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레너윌 하스펠트와 눈을 맞추었다.

         

       레너윌이 입을 열었다.

         

       “지난 한 달간 모두 최선을 다해 주었소. 이제 정식으로 정부를 출범할 것이오.”

         

       그러면서 레너윌은 책상에 서류더미를 내려놓았다.

         

       그동안 회의를 통해 모아 놓은 의견을 정리한 서류였다.

         

       “이 공문서에 따라 본국의 형태는 국가 연합체로 한 뒤, 이후 연방제로 천천히 전환할 것이오. 당장 국가수반은 인간, 금안, 수인에서 한 명씩 선출하도록 하겠소.”

         

       연방 형태의 과두정.

         

       이것이 수인족과 금안족, 그리고 구제국인이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타협한 결과였다.

         

       “마지막으로!”

         

       레너윌은 목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본국의 국호는 ‘에테리아’로 하겠소.”

         

         

       **

         

         

       [본국의 국호는 ‘에테리아’로 하겠소.]

         

       세계수 씨앗에 줄 마력을 흘려 넣고 있던 나는 그만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할 말이 없으면 뭐다?

         

       욕을 한다.

         

       “미친 새끼들아!!”

       

       챱! 챱! 챠압!

         

       “동생! 나쁜 말!”

       “하지만 언니! 저 새끼들 좀…!”

         

       찰싹!

         

       “쓰읍!”

         

       미치겠다. 미쳐서 아예 돌아가시겠다.

         

       나라 이름이 ‘에테리아’라고?

         

       필리우트의 이름을 딴 것도 아니고, 다른 괜찮은 이름도 많은데. 굳이 왜?

         

       “허어.”

         

       무슨 햄버거 가게냐고.

         

       나는 벌겋게 부어오른 입술을 훔치며 속으로 쌍욕을 퍼부었다.

         

       [국호를 이렇게 정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 우리를 구해준 에테르 양이 구제국의 사람임을 인정하고, 삼족(三族) 연방에서 금안족 정부의 정통한 시조임을 공표하기 위함이오.]

         

       레너윌, 저 사람이 진짜.

         

       보증 좀 서 달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내 이름을 따서 국호를 지으라고 한 적은 없다.

         

       “인간들이 국호를 어떻게 짓든 우리는 상관할 수 없어요.”

       “아니, 그건 아는데.”

         

       저건 좀 너무하다 싶었다.

         

       “동생, 제가 시킨 게 따로 있잖아요?”

       “이거? 거의 다 하긴 했는데.”

         

       앨리스 언니가 나한테 맡긴 임무란, 세계수를 파종하기 위한 마력을 모아 씨앗에 해당하는 그릇에 안전하게 담아내는 것이었다.

         

       작업이야 얼마 전부터 꾸준히 착수하고 있었다. 마침 거의 다 해 놓은 참이었다.

         

       “이 정도면… 좋아요. 충분하겠어요.”

         

       앨리스는 씨앗을 흙과 함께 주머니에 담았다.

         

       “잠깐 하계에 다녀올게요. 동생은 집 잘 보고 있으세요.”

         

       앨리스 입장에선 나와 재회한 뒤 처음으로 내려가는 하계였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친구들에게 전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언니. 부탁이 하나 있는데….”

       “안 돼요.”

         

       아니나 다를까. 칼같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정령은 성년이 될 때까지 그 존재를 하계에 알릴 수 없어요. 천기누설이라고요.”

       “대체 왜?”

       “어린 정령은 외부 환경에 취약하니까요.”

       “내려가지만 않으면 괜찮은 거 아니야?”

       “저쪽에서 이리로 올 수도 있잖아요?”

         

       말도 안 된다.

       

       “순 억지야. 귀띔해 주는 것도 안 돼?”

       “네. 어려워요.”

         

       앨리스는 그러면서 현재 정령계의 취약성을 짚었다.

         

       “이 정령계는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이제 겨우 세계수를 심으러 가는 건데, 그 과정에서 버그라도 터져 봐요. 이제 막 환생한 동생이 어떻게 되겠어요?”

       “흐어.”

         

       그러면 어쩔 수 없나.

         

       내 존재를 지금 하계에 알리는 건, 게임으로 치면 서버 안정화 패치도 다 안 했는데 새로운 캐릭터를 출시 노트를 발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디까지나 여신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고.

         

       “기다린다고 큰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조금만 더 참으세요.”

       “그러지 뭐.”

         

       로테나 다른 아이들이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한다면 몰라.

         

       로테에겐 아카샤가 붙어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극복하면서 잘 지내는 모양이다. 그러니 대규모 전쟁이라도 벌어지지 않는 한 내가 하계에 관여할 일은 아직 없을 것이다.

         

       “다녀올게요.”

         

       앨리스는 살리에르 영지로 내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수경으로 비춰 보았다.

         

       [여신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세계수의 씨앗을 나눠주는 앨리스. 예상대로 인간들은 크게 놀랐다. 설마 새 세계수를 돌보는 종족이 자신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물론 세계수는 엘프들이 있는 곳에도 다시 심는다. 정령족인 이상 그들과도 연락해야 하니까.

         

       단, 국제질서 형성을 위해 인간들이 사는 곳에 먼저 수여되는 것뿐이다.

         

       “엘프들도 당분간은 못 나대겠지.”

         

       세계수가 있는 땅을 감히 침공해?

         

       절대로 안 될 일이지.

         

       심지어 자기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여신 신앙도 못 팔아먹는다.

         

       어쨌든 나라도 세웠겠다. 이제 ‘에테리아’ 사람들이 해야 할 것은 세계수를 심는 일이었다.

         

       [양지바른 곳에 심어 주시고, 1년에서 2년 동안 잘 보살펴 주세요. 모두가 새 세계수의 위용을 볼 수 있도록 탁 트인 평야나 언덕에 파종하는 것을 권장드릴게요.]

         

       앨리스도 그 말을 끝으로 정령계에 돌아왔다.

         

       “이제 저들이 어떻게 심나 볼까요?”

         

       앨리스는 나를 번쩍 들어 무릎에 앉혀 놓았다. 나는 고개를 까딱이며 하계의 모습을 계속 감상했다.

         

       “…뭐, 어디에 심든 크게 상관은 없는데.”

         

       문제는 살리에르 영지 근처에 탁 트이고 괜찮은 땅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

         

       우선 서쪽. 서쪽은 우거진 삼림이라 커다란 나무를 심을 공간이 되지 못한다.

         

       구제국 수도로 향하는 동쪽에는 깎아지르는 절벽이 많이 있어 험준하며, 북쪽은 아예 피치블렌드 바위산이 자리잡고 있다.

         

       그나마 심을 만한 땅이라면 남쪽인데, 이곳은 농경지대이기 때문에 심으면 민폐다.

         

       [어디에 파종하면 좋겠소?]

         

       레너윌 공작도 그 점을 우려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두루 의견을 물었다.

         

       [새 수도를 이곳으로 잡기로 했으니 이곳에 파종해야 마땅합니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곳 살리에르령은 거목이 자라기에 부적합한 지대가 많소. 잘 선택해야 할 것이오.]

         

       어느덧 이야기는 학문적인 부분으로 넘어갔다.

         

       이런 토의라면 조금 관심이 생긴다.

         

       나는 귀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곧이어 들려온 것은 블루베리의 목소리였다.

         

       [마침 양지바른 땅이 하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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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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