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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7

       하지만 나는 사람만큼은 죽어도 죽일 수 없었다.

        

       그리폰의 몸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이 발톱과 부리로 찢어발긴다는 소리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나에게 그 감촉이 고스란히 느껴질 것이 분명했다. 발이야 당연한 거고, 부리도 겉으로는 딱딱해도 신경이 연결되어있는 듯했으니까.

        

       그래서 일단은 버텼다.

        

       그리폰이지 않은가.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이 시간도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붙은 별명은 ‘겁쟁이’였고, ‘쓸모없는 것’이었다.

        

       “네놈 같은 것을 가져오려고……!”

        

       네 동료가 죽었다고?

        

       그 과정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리폰이 어떻게 번식하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새끼를 훔쳤건 알을 훔쳤건 임신한 그리폰을 훔쳤건, 당연히 훔치러 갔으면 그만큼 각오했어야지.

        

       듣자 하니 그리폰이 아주 흔한 동물은 아닌 듯 하다. 물론 내가 직접 신문을 읽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말 그대로 오가며 들은 이야기였다.

        

       마법을 쓰도록 유도하겠다는데, 아니, 대체 동물이 마법을 쓴다고 생각하는 놈들은 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주문도 못 외우는 존재가 마법을 쓸 거라고? 종교쟁이들이 종교에 심취하다 보니 상식에서 어긋난 소리를 하는 모양이다.

        

       하긴, 원래 판타지 세계관에서 종교계에 투신하는 이들은 보통 정상이 없었으니까.

        

       “익…… 이익……!”

        

       뭐, 아무튼, 나는 오늘 처음 본 사람을, 그리고 내가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원한을 가지지도 않은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뻑, 뻑, 나를 치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 쇠로 된 그리브를 신은 채 나를 차고 있으니 ‘아픈 게’ 정상이었지만…….

        

       나는 보란 듯이 크게 하품해 보였다.

        

       처음 1년은 진짜 고생이었다. 저놈들을 볼 때마다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리폰은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자랐다.

        

       그리폰의 수명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장 속도는 대형견과 비슷한 게 아닐까? 1년 만에 이렇게 컸으니.

        

       여기서 더 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빨리 자라는 데는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었다.

        

       내 맷집도 그만큼 같이 세졌다.

        

       처음 몇 주 정도는 맞을 때마다 아팠다. 그냥 아픈 것이 아니라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게 아팠다.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하지만 그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약해졌다.

        

       처음에는 내가 고통에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했지만, 진짜로 버티기 쉬워지는 것을 보면 내 몸이 그만큼 단단해진 것이 맞는 것 같다.

        

       실제로도 이렇게 나를 치는 놈을 무시할 수 있었으니까.

        

       단순히 무시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누가 환수 아니랄까 봐 그냥 물리 공격에 면역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손과 발로 치던 놈들이, 내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자 끝에 쇳조각이 붙은 채찍이나 칼을 들고 왔다.

        

       당연히 처음 봤을 때는 식겁했지만—

        

       웬걸, 그런 걸로 아무리 맞아도 떨어지는 것은 깃털뿐이었다.

        

       눈을 쳐도 소용없었다. 감으면 그만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저놈들이 고작 새끼 하나를 끌고 나오기 위해 왜 화가 날 정도로 많은 희생을 하게 되었는지.

        

       뭐, 그리폰을 죽이는 수단이야 있을 거다. 그러니 훔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수단을 쓰면 내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최소한 ‘쓸모가 없어지거나’. 그래서 저놈들은 약이 바짝 오른 상태에서도 나를 어떻게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말 그대로 뻐겼다.

        

       밥을 굶기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버티다 보니 사람을 죽이라고 경기장에 내보내는 일은 없었으니까.

        

       계속 이렇게 지내다 보면, 저놈들도 언젠가 포기하지 않을까?

        

       내 몸을 조르는 사슬들은 여전히 거대해서 쉽게 끊을 수 없었다. 이것만큼은 커진 그리폰 몸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교착상태가 쭉 이어지다가,

        

       “……그런 나날도 오늘로 마지막이다.”

        

       나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그 고위 성직자가 사악한 웃음을 씩 지어 보이는 것을 보고, 나는 그날은 뭔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를 볼 때마다 혈압 올라 죽는 것이 아닌가 싶던 기사도 그날만큼은 위세가 대단했으니까.

        

       게다가, 성직자 목에 걸린 목걸이에서 심상찮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게 LED 빛일 수는 없었다.

        

       “너를 약화한다면 어떻게든 주도권을 빼앗을 수 있겠지.”

        

       디버프 계열의 마법일까?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지만, 당연히 사슬 때문에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어딜!”

        

       성직자가 그렇게 외치자, 목걸이의 빛이 강렬하게 빛나고—

        

       —성직자가 호언장담한 대로 이루어졌다.

        

       *

        

       의식은 있었다.

        

       어느 정도 저항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렸다.

        

       내 몸을 약체화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던 모양이다. 질병에 걸리도록 만들고, 상처가 나기 쉽게 만들고, 상처가 곪아가도록 만들었다.

        

       처음에는 고통으로 나를 조종하려 든 건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육체의 상처는 정신까지 약하게 만들기라도 하는지, 어느 순간 나의 몸은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적의 말에 따랐다. 그런 마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빛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몸을, 어떻게든 나의 의식대로 움직이려고 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주도권을 빼앗아도 잠깐일 뿐, 상대가 조금만 집중하면 나의 몸의 주도권은 다시 빼앗겼다.

        

       그리고 상대는 나의 몸에 다시 상처를 내고, 곪게 만들고, 그게 반복될수록 나의 저항은 무의미해졌다.

        

       그렇게, 나의 몸에서 사슬은 떨어져 나갔다.

        

       적이 바라는 대로 하늘을 날 수 없는 것, 마법을 쓸 수 없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온 힘을 다해 버티면 어떻게든 저항을 시도해볼 수는 있었다.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없었고, 결국에는 적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발톱을 휘두르게 되었지만, 그것으로 사람이 죽지 않도록 할 수는 있었다.

        

       발톱에 잘릴 몸이 상처 정도로 끝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고, 부리는 휘둘러도 입이 열리지 않도록 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돌고 돌아 쓰레기 취급을 당했다.

        

       원하는 대로, 원하는 만큼 움직이지 않는 고장 난 존재.

        

       그나마 다행인 점은, 더 이상의 폭력은 없었다.

        

       금방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의 몸 상태였으니까.

        

       결국, 하늘을 날며 적을 짓밟아야 할 나는 어느 유적에 갇히게 되었다. 햇볕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지하라도 되는 모양이지.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 정확히 어떤 곳인지 판단이 서지는 않았다.

        

       “젠장, 젠장, 젠장……!”

        

       나를 열심히 괴롭히던 성기사는 결국 그렇게 절망했다.

        

       꼴 좋다.

        

       꼴 좋기는 한데, 어이없기도 했다.

        

       멋대로 잡아 와서, 멋대로 감금하고, 멋대로 이것저것 시키다가, 멋대로 실망하고.

        

       피해자는 나라고.

        

       하지만 뭐, 그래도 저놈 친구라는 놈들이 쓸모없이 뒈졌다는 생각을 해보면 기분이 좋았다.

        

       어쨌거나 나 때문에 쓸모없어진 거잖아.

        

       누가 쓰레기라고?

        

       *

        

       “……결국 이 정도밖에는 쓸모가 없는 건지.”

        

       성직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이렇게 된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몸은 날로 쇠약해져 갔다. 이제는 저쪽에서도 마음대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을 만큼. 차라리 나에게는 그게 더 편해서 다행이지만.

        

       “단 한 번이라도 쓸모가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팬그리폰 앞에서는 그리폰의 위용을 눈곱만큼이라도 보이길.”

        

       팬그리폰?

        

       그건 또 뭐냐. 그리폰 아종 같은 건가.

        

       뭘 가르쳐주기나 하고 헛소리를 했으면 좋겠다.

        

       개 같은 놈.

        

       그 개 같은 놈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빛나고, 나는 다시 내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삐걱거리는 몸이 마음대로 일어났다. 서 있기도 힘든 상태에서 나는 ‘위엄있는’ 자세를 위해 목을 치켜세우고 눈앞의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다.

        

       사방에서 기사들이 나타나 자리를 잡았다.

        

       꼭 내가 지휘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아, 정말 저 개새끼들 등짝을 발톱으로 한 번씩만 그어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를 매번 패던 놈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2층 어딘가에 있겠지.

        

       적이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그 적이 부디 유능해서, 나 대신 그놈들을 죽여주길 바랄 뿐이다.

        

       뭐, 그만큼 유능하면 나도 죽겠지만.

        

       이 상태로 살아있는 건 더 끔찍한 일이지.

        

       억지로 든 고개 때문에, 앞의 문이 제대로 보였다.

        

       그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분명 상대는 저 사이비 놈들을 정면으로 상대하고도 남을 강자겠지. 나에게 걸린 마법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을 만큼 강대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내 눈에 보인 것은, 아직 성인이 되지도 못한 아이들이었다.

        

       그나마도 남자는 고작 둘 뿐이고, 나머지는 여자애들.

        

       ……약화한 내 발톱으로 그어도 한꺼번에 전부 반토막이 될 것 같은 애들이다.

        

       제일 앞에 있는 애는 그나마 망토처럼 두른 코트 아래에 뭔가 갑옷 비슷한 거라도 입은 것 같지만.

        

       발톱에 썰리기에는 아주 아까운 미모를 가진 아이였다.

        

       ……역시 이쪽이 악당 맞네.

        

       누가 봐도 저쪽이 주인공이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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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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