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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7

       불과 반 시간 전만 해도 연말 시즌을 맞아 흥겨운 분위기에 취해 있던 호텔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복면의 괴한들 때문이었다. 그들이 꺼내든 무기는 통일성 없이 제각각이었다. 그들의 복장이나 장비에서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아우우우!”

         

       그러나 정작 공격을 시작하자 그들은 자신들이 사냥꾼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근처에 있는 타이롭스 지방이 곧바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마련인데 말이다.

         

       어차피 이백 명이 넘게 동원된 대규모 암살이었다. 애초에 출신지를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럴 바에 그들은 자신들의 지역이 확실하게 주목받기를 원했다. 첩자에게 암살을 시도하기 전에 타이롭스 출신인 것을 밝히라고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는 극단주의자들이 테러할 때 자주 써먹는 방법이었다. 자신이 속한 집단 전체를 범인으로 내세움으로써 집단의 대표들이 ‘우리 집단이 그럴 리 없다’라고 주장하게 만들어 수사를 지연시키게 하는 것이다. 정치인이라는 족속들은 사건의 진실이 어떻게 됐든 정적들이 그걸 빌미로 자기를 물어뜯으려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 준다면, 설사 암살이 실패한다고 해도 페렌츠 일당은 그런 정치적 거미줄 아래에서 수사망을 피해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황태자 암살 시도는 그런 얄팍한 거미줄을 찢어놓을 만한 대형 사건이었다. 어떤 수작을 부린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암살범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을 확률보다 모두 잡혀 사형당할 확률이 더 높았다.

         

       그래서 사실 출신지를 드러내는 것은 암살이 실패했을 때보다 성공했을 때를 노린 것이었다. 황태자가 죽으면 대세는 단숨에 제3 황비 쪽으로 기울게 될 게 확실했다.

         

       그렇게 되면 타이롭스 지방의 영주들도 ‘황태자를 암살한 지방’이라는 간판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사건을 파헤치거나 수습하려는 시도 자체가 황태자 파벌로 몰리는 근거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자연스럽게 간판을 그린 페렌츠 일당에게 힘이 쏠리게 될 것이다. 대놓고 우리가 황태자를 죽였다고 말하고 다니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암살범들은 개인 신상은 숨기되 출신지는 드러내려고 애썼다. 위에서 말한 시나리오대로 되기 위해서는 사건 초기에 저 간판이라는 것을 빠르게 확보하는 게 중요했으니까.

         

       그들은 변장을 풀자마자 미리 점찍어 두었던 근위대원들을 향해 칼을 내지르거나 총을 쏘아댔다.

         

       “뭐냐, 네놈들은!”

       “적습이다! 적습!”

         

       설마 도시 한복판에 있는 호텔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근위대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습에 대한 그들의 대처는 암살자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침착했다.

         

       니카가 일부러 버리는 말들을 모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명색이 황실근위대였다. 그들의 실력은 어지간한 기사를 웃돌았다.

         

       제국에는 지방 영주의 자식이 수도로 올라와 일정 기간 정해진 직역에 임해야 하는 법이 있었다.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주로 수도권 외곽 주둔지의 하급 장교로 배치되었지만, 실력이 뛰어난 이들은 수도경비대의 장교 혹은 황실근위대에 임관될 수 있었다.

         

       이러한 군역에 복무하는 이들은 주로 계승권이 없는 영주의 둘째나 셋째 자식들이었다. 이들을 수도에 묶어둠으로써 황실은 혹시나 모를 반란을 억제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인질을 붙잡아 둔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제국 전역에서 모인 젊은 귀족들이 한군데 섞여 있다는 것은 누군가 수도에서 일을 벌이려고 해도, 그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연회에 초대해서 모두에게 칼을 나눠준 후, 연회장 중간에 왕관을 두면 누가 감히 그것을 훔치려 들겠는가?

         

       황실은 이러한 복잡한 관계의 거미줄 위에 권위를 보장받았다. 그리고 황실이 안전하다면, 황실근위대 또한 복무 중에 직접 전투를 치를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이 제도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거미줄 위의 거미가 2마리일 경우였다. 즉, 황실 자체가 쪼개졌을 때, 중앙군을 결속시키는 이 복잡한 균형은 깨지게 됐다.

         

       암살자들이 아무 망설임 없이 황실근위대를 향해 공격을 날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상대는 어차피 황태자 니콜라이의 측근들. 이미 제3 황비 측에 붙기로 한 그들에겐 박멸해야 할 적이었다. 오히려 최대한 많이 죽이는 것이 황실 내에서 황태자의 입지에 타격을 주는 길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도 설마 지금 황태자의 경호를 맡은 이들이 버리는 패라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코카에게 붙인 근위대원들은 모두 황태자와 제3 황비 사이에 어중간하게 발을 걸친 이들이었다. 이곳에 황태자의 진짜 측근은 아무도 없었다.

         

       이들이 모두 죽는다고 해도 실제로 그의 진영에 타격은 미미했다. 오히려 외부에 숨겨뒀던 기사들을 대거 황실 내로 끌어들일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거기다 죽은 근위대원을 자식으로 둔 귀족들에게 황태자의 진영에 합류할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자식의 복수’와 ‘황태자를 지키다 순직’했다는 명분은 그들에게 꽤나 매력적인 정치적 카드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암살 작전은 시작하기도 전에 니카가 이긴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제3 황비 측이 현재 경호를 맡은 근위대원들의 신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 이것이 덫이라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평소에 알던 자들과 다르니까.

         

       하지만 황태자 진영은 암살범들이 며칠 만에 그것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내부 단속을 허술히 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경호는 역시 튼튼한 보호보다 철저한 보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사례가 오늘 밤 또 하나 추가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암살범들과 근위대원들의 정치적 사정은 모두 대국적 관점에서 오가는 것일 뿐이었다. 현재 그들은 눈앞의 적을 처치하기 위해, 당장 자신이 살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황태자의 개들 죽어라!”

       “이 역도놈들이!”

         

       호텔 여기저기서 살육이 벌어졌다.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들려온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고함, 비명 등이 숙박객들을 떨게 했다.

         

       그것은 괴물 서커스단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숙소 밖을 돌아다니기 힘들었던 그들은 대부분 숙소 안에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란에 깜짝 놀라 거실에 모였다.

         

       -당신 어디야!

       -엘라 양, 무사합니까?

         

       엘라는 수십 번 그의 이름을 부른 끝에 들려오는 답변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뭐 하느라 도대체……. 나는 무사해. 지금 숙소에 있어. 도대체 무슨 일 벌어지고 있는 거야?

         

       원더스타인은 복잡한 사정은 제쳐두고 황태자 일행을 암살하려는 자들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들이 호텔 직원들을 흑마법으로 조종하고 있다는 것까지도.

         

       -그래서 당신은 그 주범들을 막으러 가겠다고?

       -후후, 걱정되시나요?

       -무, 무슨 헛소리……. 걱정할 사람이 따로 있지……. 그, 그리고 내가 왜 당신 걱정을 해? 차라리 콱 죽었으면 좋겠는데…….

       -…….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엘라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설마……설마……섭섭해하는 건가?

       에이, 설마 저 능글맞은 인간이?

         

       엘라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고 치부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그는 기억을 잃은 자신과 3개월을 보냈었다. 그녀에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그때의 자신은 그를 정말 좋아했었다.

         

       그의 목소리, 그의 미소, 그의 눈빛, 그의 머리카락, 그의 손길, 그의 냄새. 그의 모든 것에 푹 빠졌었다. 그만 보면 늘 웃음이 나왔고 언제나 그와 붙어 있으려 했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갑자기 돌변해서 싸늘한 태도로 그를 대하면 그의 심정은 어떨까? 분명 내색은 안 하지만 한 달 내내 무척 섭섭했을 것이다. 방금 그녀의 발언에는 더욱더.

         

       사실 그의 기분 따위 그녀가 알 바 아니었다. 지금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도 괜히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가 또 애먼 사람이 죽을까 봐 그게 걱정이이서 그런 거지, 절대 그에 대한 호감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저기……당신 화났어?

       -…….

         

       목소리에 깃든 걱정스러움도 이상하게 여길 필요 없었다. 어디까지나 타고난 재능 덕분에 상황에 맞는 감정 연기가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것일 뿐이었다.

         

       -아니, 뭐, 당신이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내가 그렇게 말해도 당신이 좀……이해해 줄 수 있지……않나?

       -…….

       -그렇다고 어린애처럼 삐칠 건 또 뭐야, 참. 사람 목숨은 그렇게 우습게 아는 인간이……. 어휴, 어, 그러니까……음, 그, 그게 참……미, 미안……됐지? 그러니까……미, 미안하다고. 내가 좀 말을 심하게 했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를 위한 사과일 뿐인데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그에게 굽히기 싫다는 자존심이 작용한 것 같았다.

         

       그때, 그녀를 향해 원더스타인이 반문했다.

         

       -네? 무슨 말씀하셨나요? 다른 단원들에게 연락을 돌리느라 잠시 연결을 끊었었습니다.

       -어……그래?

       -모두에게 숙소로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전달했습니다.

       -그, 그렇구나…….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셨죠? ‘걱정할 사람 따로 있지.’까지는 들었는데…….

       -아, 아니야……. 아무것도……호, 혼잣말이야, 혼잣말……. 어, 어쨌든 그 나쁜 놈들 잡고 온다는 거지? 하하, 그러면 우린 여기 있을 테니까 그……히, 힘내!

         

       엘라는 자신의 마지막 단어 선택에 자괴감을 느끼며 주먹으로 관자놀이를 쾅 때렸다.

         

       그녀와 연락을 끊은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감정선은 아직도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여전히 한 달 전 사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감도는 여전히 고장이 난 것처럼 46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상념에 잠겨 있을 수 없었다. 그를 저주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었다.

         

       “뭐냐, 네놈은!”

       “아, 악마의 수법이다!”

       “끄으윽, 어, 어떻게 이런 짓을…….”

         

       그것은 방금 그에게 당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냥꾼들이 내지르는 고함이었다.

         

       사실 다른 단원들에 연락을 돌리는 중이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통제실을 향해 걸어가다가 마침 회색 머리 소년을 죽이려는 그들을 보았고, 재빨리 개입해 그들을 쓰러트리고 그를 구해냈다.

         

       하지만 그에게 구해진 소년도, 소년의 부모도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도망가버렸다. 일반인이 유혈 현장에서 몸을 빼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원더스타인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는 혓바닥을 채찍처럼 뻗어 사냥꾼들이 날린 화살을 낚아채고, 머리카락을 바늘처럼 세워서 날려 그들의 손바닥을 꿰뚫어 무기를 떨어트리도록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양손에 달린 손가락들을 고무줄처럼 늘여 이리저리 묶어 놓는 것으로 결박을 대신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악마는 사냥꾼들이 아니라 원더스타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제압당한 사냥꾼들을 내버려 두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걸음을 옮기면서 다른 단원들에게 숙소로 돌아가라고 연락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실 이번 적들은 그들과 상관없었다. 아마 무사할 것이다. 걱정해야 할 것은 그가 뒤에 남겨두고 온 두 사람이었다.

         

       “알아서 잘하겠지?”

         

       그들에겐 ‘배역 이름표’를 각자 2장씩 찢어 주고 왔다. 그는 그들의 똑똑한 머리라면 그것만 있으면 충분히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 화는 내일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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