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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7

     #105-04-20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다.

     노스트럼에서는, 아니 대륙에서는 당연한 상식이었다.

     

     애초에 결혼을 하는 이유가 일반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남녀가 만나 자식을 낳기 위함이며, 그건 가문과 가문 사이의 결합도 마찬가지였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혹은 왕족이든.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는 것이 순리였고, 당연한 일이었으며, 상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았다.

     초기에는 변경백 일이 워낙 바빠서 그렇다고 넘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는 ‘매국노 그레이가 자기 부인을 밤마다 놓아주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우리가 결혼을 하고 난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나 통했던 이야기.

     아스타시아의 나이가 25살에 이르른 시점.

     농민 부부라면 20살에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은 부부의 경우에는 둘째는 물론이거니와 셋째를 낳고 이제는 넷째까지 가지게 되는 시점.

     22살이 된 누아르가 책임을 질 생각도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뿌려댄 씨가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난 수가 두 자리 수를 돌파하여 어느덧 세 자리 수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싶었던 시점.

     “아이, 안 낳나?”

     합스베르크 황제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슬슬, 아이를 낳아야지. 언제까지 아스타시아의 품에만 안겨있을 참인가.”

     합스베르크 황제는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와 내게 아스타시아를 임신시키기를 강요했다.

     그에게는 망집이 있었다.

     통일제국을 만들어 합스베르크 대제국을 선포하였으나, 그 합스베르크라는 국가를 이어나갈 후계자가 고민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혹은 자신보다 더 위대한.

     자신을 뛰어넘는 재능을 가진 이가 합스베르크 제국을 이어받야만이 자신이 더욱더 칭송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는 나에게서 태어나는 자식이 얼마나 재능있는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바빠서 그렇다? 대리인을 보내주지. 안심하게. 그 어떤 불만도 없이, 백작령을 잘 관리해줄 행정관들이야. 자네는 마음놓고 아이만들기에 열중하게.”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아스타시아가 아이를 가진 동안 그 넘치는 활력을 어디에 풀어낼지 고민이라고? 안심하게. 여자는 많아. 여차하면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의 사생아들을 잠시나마 붙여두지. 아스타시아가 임신한 동안 대용품으로 사용해도 좋아.”

     황제는 비정상이었고, 내가 내세울 수 있는 모든 변명을 차단하고자 했다.

     “설마, 아스타시아가 불임인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그건 안심할 수 없는 걸. 아쉽기는 하지만, 아스타시아가 아닌 다른 여자를 통해 후계를 볼 수밖에 없는 건가.”

     심지어 아스타시아가 물리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가지게 되어, 그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자네. 자네의 여동생은 어떠한가?”

     황제는 가족에 대하여, 가족에 대한 생각이 보통과는 달랐다.

     “자네의 여동생도 이제 곧 성인이 되지 않나.”

     황제가 나보다도 더 비틀린 존재라는 걸 인지한 뒤로, 나는 황제에게 각을 세우지 않았다.

     나에게는 황제보다 젊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떤 유리한 점도 없었기에.

     황제는 나보다 강했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며,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미 그에게 대항하기 위한 힘을 기르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아스타시아가 한 살을 더 먹을수록 황제의 재촉은 심해졌고, 아스타시아는 황제의 그런 닥달이 있을 때마다 더욱더 두려움에 빠졌다.

     나는 그 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노스트럼 혁명군을 잡았을 때, 나는 그들을 잡아죽이면서 그들로부터 정보를 캐냈다.

     그들을 직접적으로 돕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활동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일부러 사각을 내어주기도 했다.

     철저하게 지키면 도둑맞기는 커녕 전부 사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치안에 구멍을 만들었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망국의 공주와 혁명군이 나타나 물자를 약탈했다.

     황제가 나보고 혁명군을 직접 처분하라고 사로잡은 충성병자들을 보냈을 때,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그들을 쏴죽였다.

     

     고문으로 괴로워하다가 동지의 정보를 팔아넘기는 일 없이, 내가 그들을 철저하게 죽이는 모습을 보이는 걸로 나는 혁명군이 와해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검을 배웠다.

     아스타시아에게 직접 제국에서 운용하는 도법을 배웠고, 당시 살아있던 팔신장들을 한 명씩 초청하여 직접 대련하는 걸로 칼을 연마했다.

     지브롤터의 검에 더불어, 제국의 칼을.

     “요즘 재미있는 소식이 들려오더군. 누구를 죽이려고 하는 건지는 몰라도, 제국도법을 극한으로 연마한다고 말이야.”

     “멘테 경이 말했습니까?”

     “황제는 모든 걸 알고 있지. 특히 지브롤터라고 한다면 더더욱.”

     황제는 알고 있었다.

     “설마 자네, 그 검으로 내 목을 날리려고 하는 건가?”

     내가 칼을 갈고 닦는 이유가 아스타시아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여차하면 내가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기 위함이라는 것을.

     “설마요.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황제 폐하께 칼을 겨누겠습니까.”

     “아, 그래.”

     거짓말을 했다. 

     그는 이미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는 이들을 수도 없이 봐왔고, 나는 안일하게도 그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렇군. 자네도 그런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자였어.”

     나는 안 걸리겠지.

     “하지만 자네니까 기회를 주는 거야. 나도 어렸을 때는 자네와 같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으니.”

     황제는 나의 거짓을 간파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후회한다고 한들 돌이킬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빠르게 강해져야만했다.

     “형. 나 있잖아, 이번에 세이레네 영애를….”

     “좀 닥쳐. 내가 지금 검을 휘두르고 있잖나.”

     “…….”

     그래서 조금, 신경이 어딘가에 집중되고 말았다.

     “오라버니. 저, 또 사람을 죽였어요.”

     “그래? 애들한테 시켜서 치우라고 해.”

     “오라버니, 제가 사람을 죽였다니까요! 노스트럼의 부활을 위해 애쓰던 자를! 오라버니의 학생회 후배였던 사람을!”

     “죽었으면 죽는 거지.”

     그래서 나는 백작가에, 가족에 조금 소홀해지고 말았다.

     백작가 전체를 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나의 가족은 언제부터인가, 아스타시아 한 명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내가 신경을 잠시 내려놓은 순간, 사고는 일어나고 말았다.

     시작은 레타르.

     레타르가 죽었다.

     내가 그녀에게 가지고 놀라고 던져주고 그랬던 혁명군 간부에 의하여.

     * * *

     #106-12-30.

     “에단 세자르가 레타르 아가씨를 살해했습니다. 보고 끝.”

     황제가 보내준 행정관들은 현장 상황을 철저하게 보고했다.

     그 황제가 보내준 사람들 답게, 그들은 감정의 동요 없이 완벽하게 정보를 파악하여 내게 레타르의 사인을 읊었다.

     “아무래도 아가씨가 족쇄를 풀어준 모양입니다. 조금, 직접 즐기시려고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스트럼이 멸망한지 6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망국의 공주를 따르던 충성병자, 에단 세자르라는 청년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에단은 제국에 빌붙은 매국노들을 죽이다가 사로잡혀서 나에게 보내졌고, 나는 그런 에단을 레타르의 고문용 인형으로 던졌다.

     사실 에단이라는 이름도 몰랐다.

     레타르를 죽였다고 했기에, 나는 그 녀석의 이름과 성을 인지하고 기억했다.

     레타르를 죽인 자로.

     레타르가 사랑에 빠져,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기꺼이 살려주기로 한 자로.

     “크윽…!”

     “잡았군.”

     에단은 멀리 도망치지 못했다.

     그 누구도 모르는 곳에서, 나는 에단을 묶어놓고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신 여동생이 바란 건 그저 관심과 사랑 뿐이었어!”

     “그런가.”

     레타르는 에단을 인형으로 대했다.

     자신의 감정을 마구 쏟아내는 애착인형으로서.

     그 어떤 사랑도 전해주지 않는 지브롤터를,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복수하기 위한 칼날로서.

     “레타르의 유언은 뭐였지?”

     “…….”

     “그것이 네 유언이다.”

     “만일 누군가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남긴다면, 이 말을 꼭 전하라고 하셨다.”

     레타르는 에단의 입을 통해, 가족을 향한 저주를 퍼부었다.

     “이 저주받을 지브롤터의 피가 부디 어디에도 이어지지 않고 영원히 끊어지기를. 설령 다른 이들이 그 피를 이어준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피를 이 세상에 남기지 않을 거라고.”

     에단을 죽였다.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에단 세자르는 나에게 죽을 운명이었다.

     비록 세상에 알려진 부분은 조금 달랐으나, 나는 에단을 묻고 집으로 돌아왔다.

     “으아아아아!! 레타르, 으아아아!!”

     집기를 마구 부수며 발광하는 누아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 여동생이라고 챙겨줬다고.

     발광하는 누아르의 모습에서 ‘그 정도로?’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누아르가 ‘여동생을 잃은 오라버니’로서 내는 분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누아르가 노스트럼을 향해 복수 아닌 복수를 하는 걸 그냥 놔뒀다.

     “그레이. 지금은….”

     “한 번 더.”

     “…대련을 한다고 지금은 더 늘어나지 않을 거예요.”

     “한 번, 더. 칼을 들어주십시오, 공주님.”

     

     내가 강해지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그러지 않으면 지금,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화풀이라면 낮이든 밤이든 얼마든지 받아드릴게요.”

     나는 더욱더 검에 몰두했다.

     그래서 누아르가 혁명군의 간부들을 마구 처죽이고 다니며, 살아남은 노스트럼의 귀족 영애들을 상대로 씨를 뿌리는 걸로도 모자라 저항하는 이들의 피를 뿌리게 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같은 피를 나눴다고 해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났다고 해서, 같은 성을 쓰고 있다고 해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던 걸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던 와중에,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아니었다.

     교묘히 짜여진 암살이었다.

     “누아르 도련님, 이대로 가다가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할지도 몰라요. 너무나도 많은 피를 뿌리고 계시니까.”

     아스타시아는 누아르가 누군가로부터 살해당할 거라고 생각했고, 나 또한 동감했다.

     “죽으면 죽는 거죠.”

     하지만 나는 누아르를 챙기지 않았다.

     그가 황금여명의 매국노들과 어울리든 말든,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을 하든 말든.

     백은에 쩔어서 약에 취해 말을 타고 달리다가 낙마하는 바람에 목뼈가 부러져 죽든 말든.

     “누아르가 죽으면 지브롤터에 묫자리가 하나 더 늘어날 뿐입니다.”

     나는 누아르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예감하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죠.”

     놀라기는 했다.

     누아르가 매독에 걸렸다고 했을 때.

     그것이 마치 저주와도 같이 누아르의 생명력을 앗아가, 마스터의 체력과 마나도 그 불결함에 누아르의 몸에서 빠져나가며 누아르가 서서히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와 닮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하는 미녀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누아르를 중독시켰다고 했을 때.

     나는 약간, 현기증을 느꼈다.

     나도 어쩌면 자식을 낳고 저렇게 가는 게 아닐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방치하고 버려서 제 알아서 살라고 할까봐 두려웠다.

     크림슨 지브롤터가 부정한 부인 샤를로트의 자식들을 도구로 사용하고 연을 끊은 것처럼.

     누아르 지브롤터가 수많은 사생아를 낳고도 그들을 책임지지 않은 채 방탕하게 지낸 것처럼.

     레타르 지브롤터가 아이를 낳기 전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죽어 그 피가 이어지는 원천을 스스로 끊어냈던 것처럼.

     나도 황제처럼, 자식을 유기하지는 않을까.

     그런 두려움에 휘말렸으나.

     “공주님. 당신은 만일 황제만 없다면….”

     “무조건 낳았을 거예요.”

     “그렇군요.”

     “갑자기 그건 왜요?”

     “아뇨. 별 건 아닙니다.”

     나는 이미, 아스타시아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조금 더 빨리 강해지고 싶을 뿐.”

     황제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내가 다섯 발자국을 질주하고 있는 동안에도, 황제는 나이가 들었지만 꾸준히 두 발자국씩 앞으로 달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벌어진 간격은 좁힐 수 없었다.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그레이 지브롤터.”

     황제가 지브롤터를 찾아왔다.

     팔신장, 그리고 제국군과 함께.

     “아스타시아든 누구든, 아이를 낳아라. 이건 황명이다.”

     구 제국력 107년.

     합스베르크 통일력 7년.

     내가 20살이 되었고, 아카데미에 입학한 17살 때부터 이미 들어온 제국의 행정관들이 지브롤터의 모든 걸 장악한지 어느덧 10년이 된 시점.

     “아스타시아를 임신시키지 않는다면, 지브롤터를 전부 숙청하겠다.”

     황제가 먼저 칼을 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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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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