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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7

   조이가 내게 무얼 시키려하는 지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본인이 직접 내게 이야기해준 것도 있지만 이거 게임 속 조이 관련 이벤트 중 하나였거든.

   

   거리에 나가 서로가 입을 옷을 골라주고 그걸 입은 채로 논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소망은 조이에게 있어서는 간절한 소원이었다.

   

   조이는 얼빵하긴 하지만 바보는 아니다.

   

   스스로가 지닌 공작영애라는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고,

   

   자신의 위치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비쳐지는 가도 인지하고 있으며,

   

   자신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여러 영애들에게 어떻게 여겨질 수 있는지도 잘 이해하고 있다.

   

   악역영애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소심한 여고생의 혼을 지닌 그녀는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면서까지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 할 사람이 아니었으니.

   

   어느 책에서 본 순간부터 꿈꿔왔던 그녀의 소망은 십년이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소망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게임 속 플레이어, 지금은 나란 사람을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있었던 나는 기꺼이 조이의 소원에 응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 사이에 둘러 싸여 있으면서도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자아이에게 웃음을 새겨줄 수 있다면 뭔들 못 하겠는가.

   

   “자! 영애! 오늘은 절 이름으로 불러주셔야겠어요!”

   

   이런 내 결심은 이른 아침부터 날 만나러 와서는 장난스런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본 순간 한층 더 굳건해졌다.

   

   치켜 올라가는 입꼬리를 부채로 가린 조이를 보고 있자니 내가 왜 그녀를 최애캐로 삼았는지 새삼 깨닫게 되더라고.

   

   ‘이름으로 부르는 걸로 충분한가요? 조이?’

   “흐응. 이름으로 부르는 걸로 만족하는 거야? 조이? 정말로?”

   

   “그럼요! 그 이상 뭘 바라겠어요!”

   

   ‘그런 것치고는…’

   “이상하다? 그런 것치곤 얼마 전에 잔뜩 욕망을 드러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그 때는 잠이 덜 깬 상태라서.”

   

   ‘조이 언니.’

   “조이 언니.”

   

   “…다. 다시 한 번만 해주시겠어요?”

   

   ‘싫은데요?’

   “언제는 필요 없다면서? 왜 갑자기 말을 바꾼 걸까? 응? 나 정말 궁금해.”

   

   “그게에. 그러니까아아…”

   

   두 손으로 부채를 붙잡고 벌게진 얼굴을 가린 조이를 잔뜩 놀려준 후.

   

   ‘페이비. 방금 전에…’

   “허접 성녀. 방금 전에 있잖아. 조이를 조이 언니라고 부르니까 완전 수줍어하는 거 있지. 생긴 거랑 다르게 너무 순수하지 않아?”

   

   “후후. 영애님께서 워낙에 귀여우셔서 이런 여동생을 가지고 싶다 생각한 게 아닐까요?”

   

   ‘그렇다는 데 어떻게…’

   “조이. 허접 성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넌 어때? 나처럼 귀여운 여동생이 가지고 싶었던 거야? 그런 거야?”

   

   “…제에발 그만해주세요오오.”

   

   페이비와 만나 방금 전 일을 이야기하며 또 다시 조이를 놀려먹은 나는 수도 쪽 거리로 이동하기 위해 순간이동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 참. 영애. 혹시 칼 교수님을 데려올 수 있을까요? 옷을 들어줄 분이 필요해서.”

   

   난 조이가 꺼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들의 신체능력이 일반인을 한참 상회하는 데 옷을 들어줄 사람이 왜 필요해?

   

   아니 그리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옷을 많이 산다 치더라도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버리면 그만이잖아.

   

   이런 의문을 그대로 입 밖으로 냈더니 조이와 페이비가 서로 시선을 나누더니 이내 날 흐뭇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웃음을 흘렸다.

   

   “가보면 아실거에요. 영애.”

   

   수도 거리에 도착하고 우리가 처음 방문한 가게는 조이가 자주 들른다는 커다란 규모의 옷가게였다.

   

   “어머! 파트란 영애! 어서 오세요!”

   

   단골이라는 이야기가 거짓은 아니었는지 옷가게의 주인은 조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색을 하며 달려왔지만.

   

   “성녀님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리고. …알른 영애?”

   

   그 시선이 내 얼굴에 닿은 순간 밝았던 얼굴이 시퍼렇게 바뀌었다.

   

   …대체 과거의 루시가 얼마나 깽판을 쳤으면 이렇게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낼까.

   

   혐오 어린 시선에 익숙했던 나는 체념을 하고 어깨를 으쓱였지만 다른 두 사람은 아니었다.

   

   “여사. 설마 제 친구가 껄끄러워서 그런 표정을 지은 건 아니시겠죠?”

   

   조이의 표정에 차가움이 깃든다.

   

   평소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악역영애스러운 얼굴이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날선 눈동자.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가게 주인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럴리가요! 다만. 그. 예전에 알른 영애께서.”

   “여사님.”

   

   과거의 루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설명하려던 가게주인의 말은 페이비의 말에 의해서 끊어졌다.

   

   여느 때처럼 부드러운 눈과 그 눈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단호한 목소리 앞에서 가게 주인이 입을 우물걸니다.

   

   “과거의 영애님께서 어떤 분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만 지금의 영애는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이 제가 보증하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사.”

   

   파트란 공작 가문의 영애와 주신 교회의 성녀가 같은 의견을 내는데 거기에 반박할 수 있는 이는 존재치 아니했고.

   

   옷가게의 주인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여사. 알른 영애께 옷을 선물해드리고자 합니다만. 이 분께 어울리는 옷이 있을까요?”

   “물. 물론이죠! 파트란 영애! 이 영애처럼 귀엽고 아름다운 분께 어울리지 않는 옷이 어딨겠습니까!”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낸 가게 주인은 우리 옆에 있던 칼을 데리고서 다급히 가게 안쪽으로 향했다.

   

   “마음에 안 드네요. 영애를 예전 일로 판단하려 들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과거의 죄과가 어찌되었든 사람은 바뀔 수 있는 것인데 말이죠.”

   

   어.

   

   음.

   

   너희들 내 편을 들어주는 건 좋은데 말이야.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가게 주인 쪽이 피해자고 내가 가해자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한 건 저 쪽인 것 같은데.

   

   가게 주인이 떠나간 곳을 노려보는 너네 눈이 무서워서 차마 말은 못 꺼내겠다만 이건 권력에 의한 횡포라고 생각해.

   

   그러다 이상한 소문이 돌아도 난 모른다?

   

   성녀님 갑질논란 같은 게 생겨나도 내 잘못 아냐?

   

   머잖아 가게 주인이 칼과 함께 돌아왔을 때 난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고 말았다.

   

   칼의 품에 들려 있는 옷은 그의 정수리를 넘을 만큼 많았으니까.

   

   우와아. 이래서 옷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거구나.

   

   확실히 힘 좋은 시종이 없으면 여러모로 곤란하겠네.

   

   “여사. 이게 다 인가요?”

   “아뇨! 그럴리가요! 저희 가게가 어떤 곳인데요!”

   

   엑?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이것보다 더 많아?!

   

   아무리 세 사람 분이라지만 저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 같은데?!

   

   얼빵이라도 공작 영애는 공작 영애라는 건가.

   

   스케일이 다르네.

   

   “다행이네요. 그럼 도움을 줄 시종을 보내주세요. 일단 저것들부터 영애께 입혀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파트란 영애.”

   

   …어라?

   

   방금 전에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저것들부터 나한테 입혀본다고?

   

   세 사람이 나눠서 입는 게 아니라?

   

   ‘저기. 조이?…’

   “조이. 저 산더미 같은 옷을 나한테 다 입혀 볼 거라고? 얼빵이답게 말 잘못한 거지?”

   

   “무슨 농담을 하시는 건가요. 영애? 과거 여러 의복을 구비하셨던 영애께서 이 정도로… 아. 저희는 안 입어 보냐는 말씀이신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나중일이니까.”

   

   아니! 그런 거 아냐!

   

   네 멋대로 오해하지 마! 조이!

   

   진짜로 저 옷을 다 입혀 볼 생각이야?!

   

   옷 갈아 입는 데만 해도 하루가 지나가겠다!

   

   “조이. 잠시만요.”

   

   그래! 페이비!

   

   성녀님답게 사치를 부리는 귀족한테 통렬한 한 마디를 날려 줘!

   

   “이 가게의 옷만 살펴보실 건 아니죠?”

   “당연한 걸 왜 물어보시나요. 여러 옷가게를 돌아다니며 디자인을 살피는 건 ‘상식’이잖아요?”

   

   두 사람이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본 나는 무엇인가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야?! 그냥 옷 몇 개 입어보고 하나 사는 거 아니었어!?

   

   그 몇 안 되는 대사 속에 이런 이들이 존재했다고?!

   

   아. 그러고 보면 아침이 시작된 이벤트가 끝날 때쯤엔 밤 시간으로 바뀌어 있었지.

   

   그냥 하루 종일 놀았단 묘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설마 하루 종일 옷구경을 다녔다는 묘사였을 줄이야.

   

   그렇구나. 이게 귀족들의 상식이구나.

   

   조이와 페이비의 손길에 이끌려 도착한 방 안에서 수십 명의 여자 시종을 마주하게 된 나는 죽은 눈으로 천장의 샹들리에를 바라봤다.

   

   …여긴 지옥이야.

   

   “어쩜 이렇게 모든 옷이 잘 어울릴 수 있을까요. 역시 영애님이에요.”

   “영애의 미모는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약간 질투가 날 정도네요.”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조이. 어떡하죠. 영애님께 모든 디자인이 잘 어울려서 하나를 고를 수가 없어요!”

   “페이비.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땐 그냥 다 사면 되는 거랍니다!”

   

   세 시간이 지나고.

   

   “여기는 별로네요. 이거랑 이거만 사고 갈까요.”

   “조이. 방금 전에 지나가면서 봐뒀던 곳이 있는데…”

   “거기 말이죠? 그래요. 그럼 이번엔 거기로…”

   

   다섯 시간이 지나.

   

   “후우. 만족스러운 하루였어요.”

   “오늘을 잊지 못할 거에요.”

   

   하늘에 노을이 드리우고 나서야 나는 옷 갈아입히기 인형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체 오늘 하루 동안만 옷 몇 벌을 입은 거지?

   

   패션 모델이 노예 계약을 하더라도 이 정도 일정을 소화하진 않을 것 같은데?

   

   기숙사에 돌아가면 쓰러질 게 분명하단 생각을 하며 과자로 떨어진 당을 보충하던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조이. 한 가지..’

   “얼빵얼빵한 조이. 한 가지 잊어버린 게 있지 않아?”

   

   “제가요? 그런 게 있을… 아! 맞다! 제 옷을 골라 달라 그랬어야 했는데!”

   

   내게 여러 옷을 입히는 게 즐거워서 잊고 있었다며 한탄하던 조이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을 하다가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뭔데. 뭔데. 설마 지금 또 옷가게 가자는 거 아니지?

   

   나 지금 진짜 힘들어!

   

   이 이상 돌아다녔다간 탈진할 거야!

   

   “알른 영애. 영애께서는 오늘 제가 무슨 부탁을 하더라도 들어주셔야 해요. 그쵸?”

   

   ‘…그쵸?’

   “그런데 왜?”

   

   “약속하세요! 나중에 제 옷을! 아니. 저랑 페이비가 입을 드레스를 골라주기로! 만약 약속을 어길 경우 한 번 더 옷구경에 어울려줘야 할 거에요!”

   

   …이 악독한 귀족 같으니.

   

   백지 계약서를 이용해 이런 수작을 부릴 줄이야.

   

   네 이년! 내 메이스가 일으킬 레볼루숑이 두렵지 않더냐!

   

   하루만 지나면 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명령이에요! 빨리 고갤 끄덕이세요!”

   

   – 띠링.

   

   알겠어!

   

   약속하면 되잖아!

   

   귀족의 앞잡이 같으니라고!

   

   네가 그러고도 주신이야?!

   

   두고 봐! 나중에 혁명이 일어나면!

   

   …아. 그럼 나부터 머리가 날아가겠네.

   

   나 완전 망나니 귀족이니까.

   

   패널티의 협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고갤 끄덕인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조이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하아. 젠장. 권리가 없다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일 줄이야.

   

   ‘조이. 어디서…’

   “조이. 허접 성녀. 내가 골라준 옷을 어디서 입을 건지나 말해봐.”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지키긴 해야지.

   

   커마질에서 손 뗀 지가 오래 돼서 잘 할 수 있을라나 모르겠네.

   

   분명 조이한테 잘 어울리는 의상은 동부 쪽에…

   

   “물론 아카데미 종강 파티에서 입을 거랍니다. 영애께서 골라주신 옷이라고 자랑할 거에요.”

   

   아아. 그거? 거기라면 쉽지. 눈에 제일 잘 띄는 쪽으로 가면 되니까.

   

   “아! 맞다! 영애께서도 제가 골라준 옷 입기로 약속해 주셔야 해요?”

   

   알겠어. 그 정도야 뭐 별 거 아니지.

   

   이것저것 갈아입느라 힘들긴 했어도 디자인 자체는 다 괜찮았으니까.

   

   …근데 조이. 네가 사 준 게 차고 넘치는 데 그 중에 뭘 입어야 해?

   

   정해 준 게 있었던가? 중간부터 정신을 놓아서 잘 기억이 안 나네.

   

   “잊어버리셨다고요?! 너무해요! 제가 얼마나 많이 신경을 썼는데요! 1학년 전교 1등인 영애께서는 무대에 서게 되실 거라 그걸 고려해서!”

   

   응?

   

   …

   

   으으응?!

   

   무대?

   

   그게 무슨 소리니?! 조이조이야?!

   

   1학년 때 연설 담당은 언제나 아서…

   

   아. 맞다! 내가 걔 이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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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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