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37

   글라이드 락테아.

   어머니인 글라이시스 락테아가 세계 침식자로 아들을 잃고, 증오로 탄생시킨 이.

     

   그렇기에 그는 세계 침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증오한다.

     

   그리고 지금.

   그는 흑염을 두른 크라슈와 마주했다.

     

   “그 힘, 세계 침식이지 않습니까?”

     

   세계 침식에 예민한 글라이드다.

     

   그의 눈을 피할 순 없었는지.

   그는 크라슈를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이건 저주라고 딴청을 피워도 넘어갈 리가 없었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백염을 쓰려 내려올 때는 한 번도 안 마주치더니.

   지금 와서 딱 마주칠 줄이야.

     

   크라슈는 입에서 한숨이 나오는 기분을 느꼈다.

     

   이래서 되도록 마주침을 피하려한 거였는데, 마주친 이상 어쩔 수 없다.

     

   “제가 제 능력 쓰는데 무슨 문제 있습니까?”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거다.

     

   [ 너답다. ]

     

   크라슈의 입지는 예전보다 훨씬 올라갔다.

   이제는 세계 침식의 힘 좀 다룬다 한들 그걸로 누군가 죽이러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해양 차원종을 도륙 낸 글라이드가 크라슈와 가까워졌다.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불쾌한 것을 본 듯 일그러졌다.

     

   “세계 침식의 힘이 본인 능력이라 말하는 겁니까. 지금?”

   “예, 제가 지닌 비술로 세계 침식의 힘을 흡수했으니까요.”

   “그런 더러운 짓을 하다니. 세계 침식의 힘이 얼마나 더럽고 끔찍한지 모르는 모양이군요.”

   “하하.”

     

   이야기를 들은 크라슈는 짧게 웃었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글라이드 당신보다는 더 세계 침식의 힘을 잘 알 거 같은데?”

     

   지금까지 세계 침식의 힘을 누구보다 잘 다뤄온 크라슈다.

     

   그런 그에게 세계 침식의 힘을 모른다니.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크라슈와 마주하게 된 글라이드의 몸에 그림자가 일렁였다.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룬다는 건 곧 세계 침식자라는 뜻입니다. 그 뜻을 이해 못하겠습니까?”

   “편협한 사고방식은 세계를 좁게 보게 되지. 세상은 넓고, 강해질 방법은 다양하다. 다룰 수 있는 걸 눈앞에 두고, 다루지 않는 것이 더 아둔한 생각 아닌가?”

     

   크라슈는 말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글라이드는 조용히 크라슈를 노려보았다.

     

   “그렇군요.”

     

   이해해준 건가.

     

   “그럼 우리는 적이다.”

     

   이럴 줄 알았다.

     

   크라슈가 지금껏 락테아와의 접촉을 구태여 하지 않은 이유.

   그건 바로 이들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패황, 글라이시스 락테아는 그나마 괜찮다.

   그녀는 오랜 세월을 살아 쇠하여 원한조차 태우기 힘들어졌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원한을 이어받은 글라이드는 세계 침식과 타협할 수 없다.

     

   “그렇게 편협하게 굴 필요 있나? 세계 침식자 중에서도 말이 통하는 녀석은 있는데.”

   “역겨운 소리 마라. 그것들은 이 세상에서 전부 지워야 할 쓰레기들이다.”

     

   말이 안 통한다.

   글라이드는 자기 생각에 꽉 막힌 사람이다.

     

   “그래, 그럼.”

     

   크라슈는 물속에서 가볍게 발을 뻗었다.

     

   “너와 난 적이라는 말이 딱 알맞네.”

     

   크라슈는 딱히 세계 침식이나 세계 침식자를 우호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크라슈의 눈에는 세계 침식자나 사람이나 똑같았다.

     

   인간이 전쟁이나 침략을 통해 자기가 필요하다면 해치고, 빼앗듯이.

   세계 침식자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반대로 세계 침식자 중에서도 옳은 녀석은 있다는 소리다.

     

   익시온에 모든 세계 침식자가 찬동하지는 않듯이.

   그들과 다른 사상을 지니고, 이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도 존재한다.

     

   글라이드의 사상은 그런 그들조차 전부 적으로 간주하는 위험한 사상이었다.

     

   세계 침식자라는 낙인 하나로 그들이 전부 같은 사상을 지닌 죽여야 할 인물로 간주한다는 건.

   곧 그들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만 한다는 거니까.

     

   크라슈는 그런 세상 원하지도 않았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 같은데 증오심 하나로 일을 키우는 것만큼 멍청한 건 없다.

     

   크라슈는 자신의 두 눈으로 그런 증오심이 어떤 재앙을 불러오는지 봤으니까.

     

   천구성 블라비가 세피라의 공주 세이랑 세피라를 세계 침식자에게 잃고.

   세계 침식자를 죄다 죽이고 다니다 전쟁이 일어났듯이.

     

   크라슈는 똑같은 상황을 재림시킬 생각 없었다.

     

   크라슈의 흑염이 휘몰아쳤다.

   글라이드의 그림자가 휘몰아쳤다.

     

   두 사람이 부딪치기 직전인 일촉즉발의 상황.

     

   [ 온다. ]

     

   쿠웅!

     

   대해 전체가 울리듯 크게 진동했다.

   그리고 저 아래 무언가 움직였다.

     

   크라슈가 흑염을 두른 채 즉시 엑셀을 발동시키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글라이드도 마찬가지로 그 자리를 박차며 벗어났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그리고 거센 물살이 주변을 휘어 감았다.

   만약, 휘말렸다면 몸이 갈가리 찢겨 버릴 정도로 거센 물살이었다.

     

   “쯧.”

     

   크라슈가 혀 차는 소리를 내었다.

   누가 등장했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심해, 저 아래.

   창을 든 3m에 가까운 몸집의 어인이 한 명 서 있다.

   

   

   

   

     

   몸에 돋아난 푸른 비늘과 물갈퀴.

   그리고 험상궂게 생긴 상어 얼굴을 지닌 놈은 대해의 파수꾼 중 하나.

     

   자라탄.

     

   무려, 10성급에 달하는 침식종이다.

     

   9성급 침식종 역야성 이후 그보다 더 높은 침식종은 크라슈도 처음이다.

     

   10성급 침식종이라 하면 마스터 완숙의 기사단이 최소치로 잡을 수 있는 상대.

     

   저릿저릿!

     

   크라슈는 고작 놈이 살기를 보낸 것만으로 피부가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과연, 10성급이다.

   일반적인 침식종과는 궤를 달리했다.

     

   ‘너무 소란을 부렸네.’

     

   대해의 주인인 해룡의 산란기다.

   대해는 한없이 예민해진 상태다.

     

   그런 대해에서 이만큼 소란을 피우며 나타났으니.

   파수꾼이 나타나는 것도 당연히 이상하지 않았다.

     

   그 사이, 자라탄의 창이 다시금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아까 쏘아 보낸 물결은 바로 자라탄이 일으킨 것이었다.

     

   승류(昇流)

   자라탄의 비술이다.

     

   또다시 쏘아 보낼 작정인 거겠지.

     

   그렇게 둘 생각 없다.

   크라슈는 바닷속을 박참과 동시에 자라탄에게 쏘아졌다.

     

   대해의 바닷속이라 한들 크라슈가 나아가는 것은 변함없었다.

   이제 물의 압력 정도로 크라슈의 움직임은 제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라탄도 그 순간 크라슈의 움직임을 눈치챘다.

   바닷속에서 훨씬 시야가 넓은 자라탄은 크라슈를 훤히 보고 있다.

     

   자라탄의 창이 크라슈에게 겨누어졌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바로 몸을 튼 채 우뢰성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자라탄이 일으킨 승류를 향해 바로 검을 내질렀다.

     

   멸화침식(滅火浸蝕)

   일식(一式)

   멸화발검(滅火抜剣)

     

   크라슈가 뻗어낸 불길이 백염으로 뒤바뀌었다.

   그러자 쏟아진 백염과 승류가 맞부딪치며 힘을 겨뤘다.

     

   콰가각!

     

   승리한 건 승류였다.

   승류를 최대치로 완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힘을 모아낸 시간이 자라탄이 더 높았다.

     

   하지만 덕분에 승류를 회피할 시간이 생겼다.

   크라슈는 승류의 남은 여파를 피해 물러서곤 다시금 물 아래로 박찼다.

     

   자라탄의 앞에 도착한 크라슈가 그 즉시 검을 휘두르자 놈의 몸이 순식간에 꺾였다.

     

   ‘빠르다.’

     

   게다가 무슨 유연함인지 자라탄의 몸은 뒤틀리듯 크라슈의 검을 피했다.

     

   그러자 자라탄의 창은 제 의지를 갖추기라도 한 듯 꺾일 수 없는 각도로 창대가 푹하니 꺾였다.

   그러고는 곧장 크라슈의 심장을 노려왔다.

     

   일반적인 창이 아니다.

   저 창은 바다뱀 형태의 침식종이다.

     

   크라슈가 우뢰성을 뻗어 간신히 창을 받아쳤다.

     

   후욱!

     

   그 순간 자라탄의 어깨 위에 붙어 있던 문어 침식종이 대뜸 먹물을 뱉었다.

     

   순식간에 퍼진 먹물이 시야를 가렸다.

     

   먹물 너머 물장구치는 게 언뜻 보였다.

   자라탄을 놓쳤음을 깨달은 크라슈는 바로 제 육감을 발동 시켰다.

     

   후웅!

     

   그 순간 먹물 속을 뚫고, 창이 크라슈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크라슈의 팔뚝보다 커다란 창은 사실상 둔기였다.

   크라슈가 몸을 젖혀 피하자 창에는 또다시 승류가 맺혀 있었다.

     

   크라슈가 혀를 참과 함께 바로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폭발한 승류가 크라슈를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바다로 한참을 날아가던 크라슈가 몸을 정지 시키기 직전.

   날아가던 그를 검은색 막이 잡아냈다.

     

   크라슈는 그것이 글라이드의 그림자임을 깨달았다.

   그가 고개를 들자 저 멀리 글라이드가 이쪽에 손을 뻗고 있는 게 보였다.

     

   자라탄은 보이지 않는다.

   흩날리는 먹물과 함께 자취를 감춘 것이다.

     

   대해에서 자라탄은 대해의 사냥꾼이라 불린다.

   그는 대해를 어지럽히는 이들을 잡는 천부적인 사냥꾼이다.

     

   ‘일부러 몸을 뺀 건가?’

     

   사냥감에게 자신이 왔음을 알려주고, 서서히 조일 작정일지도 모른다.

     

   “크라슈.”

     

   그러는 사이, 글라이드가 물속에서 그림자를 밟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적이라면서 구하냐?”

   “나도 그럴 생각 없었다.”

     

   크라슈의 비아냥거림에 글라이드는 무표정하게 답했다.

     

   “놈의 가슴팍을 봤나?”

     

   글라이드가 질문하자 크라슈가 답했다.

     

   “그래.”

     

   자라탄의 가슴팍에는 알이 하나 달려 있었다.

   크라슈와 글라이드는 그 알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해룡의 알.

   자라탄이 해룡의 알을 지니고 있었다.

     

   “먼바다에 떠내려 보낼 작정인 거겠지.”

     

   크라슈는 자라탄이 왜 해룡의 알을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앞서 말했든 해룡의 알은 일반적인 바다로 흘러 들어가 폭풍을 일으킨다.

     

   이것만 보아도 막아야 하는 최우선 과제였으나.

   그와는 별개로 또 다른 능력이 하나 더 있다.

     

   해룡의 알은 떠내려간 바다에서 세계 침식을 일으킨다.

     

   대하가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해룡의 알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해룡의 알은 정기적으로 반드시 빼앗아 제거해야만 한다.

     

   이는 포세우스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기도 했다.

     

   ‘그런 전통을 시험으로 써먹지 말라고.’

     

   크라슈는 다이노를 속으로 욕하며 글라이드를 보았다.

     

   글라이드도 당연히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터.

   그렇기에 크라슈에게 자라탄이 가지고 있던 알을 언급할 것이다.

     

   “최우선으로 잡아야 할 놈이 정해졌으니 임시 휴전하자는 거냐?”

   “세계 침식이나 두르는 쓰레기랑 그런 걸 하겠나?”

     

   이 썩을 레이시스트 놈이.

     

   “하지만 일반 바다에 저걸 흘려보내게 둘 생각 없다.”

     

   그런데도 글라이드는 귀족이었다.

   귀족이란 평민이 세계 침식의 위협을 받지 않도록 울타리가 되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현대의 많은 귀족이 이를 망각하는 모양이지만.

   귀족이 만들어진 토대가 바로 이것이다.

     

   누리는 만큼 평민을 지켜라.

     

   이는 귀족의 사명이자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의 유지 이유였다.

     

   글라이드는 다행히 세계 침식자를 증오하기 이전에 무엇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지 아는 이였다.

     

   ‘최소한 머리가 완전히 돌아버린 놈은 아니란 거겠지.’

     

   의견을 충돌시키더라도 그건 평민들이 안전한 다음에.

     

   이 부분만큼은 동의하는 두 사람이 몸을 돌렸다.

     

   “자라탄은 빨라. 나도 잡긴 힘들어.”

   “그럼 묶는 건 내가 하겠다.”

     

   레이시스트랑 임시동맹이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